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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禪, 禪과 시]
인생의 비의秘義 덧없음과 내맡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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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택  /  2022 년 6 월 [통권 제110호]  /     /  작성일22-06-07 10:39  /   조회4,670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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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회에서 야유회를 갑니다. 아침 7시 법원주차장 집결인데, 6시 40분경에는 거의 모두 버스에 탑승합니다. 버스로 3시간 정도 달린 끝에 드디어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 전통마을에 도착합니다. 200년 된 고가들이 30여 채 쯤 있는 영양 남씨 집성촌입니다.  

 

마을 왼쪽 그리 가파르지 않은 언덕배기에 목은기념관이 있습니다. 괴시리는 목은 이색(1328~1396) 선생의 외가입니다. 유명한 사람들의 기념관이나 유적지가 본가가 아닌 곳에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고려나 조선시대에는 친정에서 출산하는 경우가 많았고, 처가 동네에서 사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요일이라 기념관 문은 잠겨 있고, 마을 어귀에 있는 연못의 연꽃을 감상하면서 무더위를 잠시 씻어봅니다. 괴시리 마을에서 한 15분 정도 달리면 신돌석(1878~1908) 장군 기념관이 있지만 그곳도 사람은 거의 없고, 기념관은 역시 잠겨 있습니다. 

 

동해안의 비경秘境

 

우리는 바닷가에 있는 원조 대게마을인 축산면 경정2리(차유마을)로 가서 블루로드 산행을 시작합니다. 오늘 우리가 걷는 길은 축산면 경정2리에서 축산항까지 이어지는 산길입니다. 바다를 끼고 구불구불 이어지는 좁은 오솔길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그림처럼 아름답습니다. 산길을 걸으면서 바로 발 아래로 펼쳐지는 청람색 바다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축복과도 같습니다. 

 

사진 1. 바다가 보이는 영덕의 동해안 산길. 

 

바다와 산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은 대자연의 원대함을 느끼게 합니다. 늘그막에는 어디를 가든 스스로 걸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기쁨의 원천이 됩니다. 물을 보면 무상한 세상을 느끼고, 산을 보면 영원한 생명력을 느낍니다. 바닷가 산길을 걸으면 세상 그 어느 곳보다 자연에 더 가까워집니다. 

이제는 기뻐도 펄쩍 뛰는 그런 기쁨은 아닙니다. 푸른 바다를 봐도, 녹음이 짙은 산을 봐도 그저 잔잔한 기쁨을 느낍니다. 이제는 밖으로 펼치는 일보다는 안으로 접어 포개는 일이 훨씬 더 쉬운 나이가 되었습니다. 

 

사진 2. 기암괴석이 늘어선 백사장. 

 

조금 걸어가자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늘어선 백사장이 나타납니다. 모래와 바위, 산과 바다와 하늘의 대비가 어찌나 선명한지 눈이 부십니다. 파도 소리를 들으며 걷고 있으면 수많은 정감들이 일어났다 사라집니다. 파도가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독특한 소리와 리듬에 우리들 마음도 공명하는가 봅니다.

산과 바위 옆으로 아득한 수평선이 나타납니다. 이런 확고하고 안정된 선이 있으면 우리들 마음도 또한 편안해집니다. 눈앞에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를 바라보면 우리 마음도 그처럼 넓어지기 때문에 바다는 언제나 수많은 사람들이 동경하는 장소입니다. 

 

물거품처럼 덧없는 인생

 

백사장에 누군가 방금 지나간 발자국이 보입니다. 흰 파도가 밀려와서 금방 발자국을 지워버립니다. 파도가 밀려와서 하얀 거품으로 부서질 때 마다 파도가 얼마나 덧없는지 생생하게 체험합니다. 

 

헛된 인연 잘못 알고 살아온 77년의 생애

살아온 일들, 창가에 부딪치는 벌처럼 부질없었네.

홀연히 저 언덕 위로 올라가면서

나의 일생, 바다 위 물거품 같은 줄 이제 알았네.(주1) 

 

사진 3. 동해 바다. 

 

이 시는 범해(1820~1896)가 남긴 임종게臨終偈입니다. 일흔 살이 훌쩍 넘은 범해는 필시 바닷가에 있는 산을 오르며 깊은 생각에 잠겼을 것입니다. 10대 초반에 창호지 행상을 하던 일, 14세 때 출가하여 어렵게 불법을 공부하던 일, 마침내 강사가 되어 많은 후학에게 설법하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을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이 지내놓고 보니 한갓 물거품처럼 아무것도 아니란 것을 홀연 깨달았을 때, 범해는 얼마나 놀랐을까요. 범부들은 이처럼 ‘이크’하고 깨닫는 순간을 좀처럼 마주하기 어렵습니다.

 

인생을 통찰한 사람들은 대체로 사람의 일생은 덧없는 것이고 꿈과 같으며 물거품과 같다고 거듭거듭 말해 왔습니다. 『금강경』 사구게四句偈에도 “이 세상의 모든 일은 꿈과 같고 환상과 같고 물거품과 같으며 그림자와 같고, 이슬이나 번개와도 같다.”(주2)고 했습니다. 모든 것은 순식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린다는 말입니다.

 

일본의 가모노 초메이(1155~1216)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집도 주인도 아침 이슬 속에 피어나는 나팔꽃처럼 금방 사라질 것이다…… 배 한 척이 지나간 뒤에 하얀 파도가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처럼 나 자신의 짧은 생애도 그런 것이 아닐지.”(주3)

우리가 깨닫는다는 것은 결국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란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주4) 깨닫는 것은 인생이란 물거품과 같다는 것을 아는 것이고, 그것은 죽을 수밖에 없는 생명의 본원적 슬픔을 아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안다는 것, 깨닫는다는 것은 슬픈 것이고 괴로운 것이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사진 4. 환상적인 암벽 등반 

 

슬프고 괴롭지만 인생은 덧없다는 사실을 앎으로써 비로소 지금 살아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됩니다. 인간은 죽는다는 사실을 알지 않고서는 진정한 삶을 누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슬픔 뒤에 기쁨이 숨겨져 있다고나 할까요, 덧없음의 비의秘義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쪽 암벽에는 등반가들이 암벽에 붙어 있습니다. 동해 바다를 바라보며 암벽 타기를 하다니, 정말 환상적인 곳입니다. 암벽에 달라붙은 이들이 느끼는 충만감과 손가락으로 쥐는 힘을 우리도 또한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우리는 암벽 타기를 하고 싶은 마음은 일어나지 않는 나이입니다. 그저 바위에 매달린 사람들을 기분 좋게 바라보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하는 일입니다. 혹은 바위 한 귀퉁이에 앉아보거나 바위 사이로 걸어가기만 해도 우리는 바로 바위의 기운을 받아 안정되고 편안해집니다.

 

내맡김의 비의秘義

 

옛날이나 지금이나 대자연을 벗 삼아 자신의 운명을 관조하며 즐겁게 살아간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8세기경, 당나라 시절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한산과 습득은 탈속한 사람들로 300여 편의 시를 남겼습니다. 그들은 남루한 차림으로 승려들이 먹다 남긴 밥을 얻어먹곤 하면서도 조금도 비굴한 기색은 없었다고 합니다. 길에서 주워서 길렀다고 전해지는 습득의 시입니다.

 

평생 무얼 그리 걱정만 하나?

한세상 인연 따라 살면 되는 거지

시간은 시냇물처럼 끊임없이 흘러가고

세월은 돌이 부딪쳐 내는 불꽃처럼 짧으니

천지야 변하면 변하는 대로 맡겨 두고

나는 즐겁게 바위 속에 앉아 있네.(주5)

 

인생은 석중화石中火처럼 짧지만 자신은 천지가 변하더라도 개의치 않고 행복하게 바위 속에 앉아 있다고 노래합니다. 그는 모든 걸 내려놓고 세상일은 천지에 내맡겼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이 내맡김이야말로 삶의 커다란 비밀 가운데 하나입니다. 모든 걸 내려놓고 내맡길 때 수많은 일들이 저절로 일어납니다. 여기서 말하는 내맡김이란 자신을 천지에 내맡기는 초연함이자, 그릇된 분별들이 마음속에서 소멸되어 자아를 내던지는 깨달음을 의미합니다.(주6)

 

습득은 바위의 중심, 다른 말로 하자면 존재의 중심에서 세상을 관조하며 살아갑니다. 그는 모든 것을 천지에 내맡겼기 때문에 근심, 걱정이 없습니다. 한산과 습득은 언제나 웃고 떠들며 흥겹게 춤을 추며 살았다고 하니 참으로 걸림 없는 삶이었다 하겠습니다. 몽테뉴(1553~1592)는 『수상록』 마지막 장의 맺음말 부근에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사진 5. 바위 사잇길. 

 

“자기 존재를 있는 그대로 누리는 것이야말로 절대적인 완성이며, 신적인 완성이다.”(주7)

몽테뉴의 기준으로 보더라도 습득은 절간에서 청소나 잔심부름을 하는 바보가 아니라 어엿한 한 사람의 선사禪師였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쾌활하게 누리며 살아간 선사입니다. 딱딱하고 현학적인 선사가 아니라 유쾌한 농담과 즐거운 춤, 아름다운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은 삶을 한산과 습득은 펼쳐보였습니다.

 

바닷가에는 해당화가 붉게 피어 있습니다. 저 선명한 붉은 색은 마치 붉은 신호등처럼 우리를 멈춰 서게 합니다. 꼭 한 시간을 걸었습니다. 초여름 햇볕에 땀은 흐르지만 마음만은 상쾌합니다. 

우리는 한나절 동안 걸으면서 길들을 살아나게 하고, 자잘한 세부사항을 추억의 노트에 채워 넣었습니다. 곰곰이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혼잣말을 하거나 가끔 먼 바다를 바라보면서 우리들 마음속에 있지만 가 닿을 수 없었던 삶의 비의秘義를 생각해 보는 하루였습니다. 

 

<각주> 

(주1) 『梵海禪師詩集』, 1916 : “妄認諸緣希七年 窓蜂事業摠茫然 忽登彼岸騰騰運 始覺浮漚海上圓.”

(주2) 『金剛經』. 第三十二 應化非眞分 :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주3) 鴨長明, 『方丈記』, 1212.

(주4) 우드펜스키, 『위대한 가르침을 찾아서』, 2005.

(주5) 『寒山子詩集』, 1229 : “平生何所憂 此世隨緣過 日月如逝川 光陰石中火 任你天地移 我暢巖中坐.”

(주6) 『서양철학과 선』(존 스테프니 외, 1993)에 실린 피터 크리프트의 「하이데거의 『내맡김』에 나타나는 선」.

(주7) 미셸 드 몽테뉴, 『수상록』, 1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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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택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1976년 시). 전 대구시인협회 회장. 대구대학교 사범대 겸임교수, 전 영신중학교 교장.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저서로 『보물찾기』(시와시학사, 2000), 『납작바위』(시와반시사, 2012), 『글쓰기 노트』(집현전, 2018) 등이 있다.
jtsuh@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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