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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선 이야기] 조사선에 있어서 불성론의 변용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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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무  /  2022 년 6 월 [통권 제110호]  /     /  작성일22-06-07 11:06  /   조회729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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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불교의 사상적 특징, 불성론 

 

중국불교의 가장 커다란 사상적 특징은 바로 불성론佛性論에 있다고 해도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물론 인도와 서역의 불교에 있어서도 ‘불성’의 용어는 등장하고 있지만, 중국불교에서 사용하는 의미와는 다르다. 

 

‘불성’에 대한 논의는 너무도 복잡하고, 서로 다른 견해들이 지나치게 많아서 결코 단순하게 단정할 수 없고, 질곡桎梏에 빠지기 쉬워 가장 난이도가 높은 개념이다. 도가사상 연구로 유명한 어떤 중국학자는 학문적으로 ‘천天’, ‘기氣’, ‘도道’를 중국철학에 있어서 ‘삼대 마물魔物’로 규정하는데, 그 까닭은 이에 대한 개념적 정의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중국불교학에 있어서 ‘불성佛性’, ‘심心’, ‘염念’도 역시 불교의 ‘삼대 마물’이라고까지 평가하고 싶다. 그것은 이들에 대한 개념을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바로 이러한 개념이라고 단정하는 순간 그와 정반대의 논거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종파와 사상의 분기점인 불성론

 

중국불교에서 ‘불성’은 바로 종파宗派들의 분기점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에 불교가 전래된 후 최소한 2백 년이 넘어서 본격적인 ‘불성론’이 제시되었고, 또한 그 후 백오십 년이 넘는 기간에 걸친 치열한 논쟁을 통해 이른바 천태종의 ‘성구론性具論’, 화엄종의 ‘성기론性起論’이 형성되었으며, 그리고 다시 백여 년이 지난 이후에야 비로소 선종의 종전宗典이라고 칭해지는 『육조단경』으로부터 ‘명심견성明心見性’이라는 불성론이 제시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중국불교의 대표적인 천태와 화엄, 선종의 사상적 차별은 바로 ‘불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제시하는가에 있다고 하겠다. 실제로 천태와 화엄, 선종에서는 모두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을 채택하여 사용하지만, 이들에 있어서 결코 ‘심’의 의미가 같다고 할 수 없다. 사용하는 용어가 같다고 동일한 개념이나 사상으로 파악한다면, 그로 인하여 많은 오류들이 발생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예를 들자면, 북종선이나 남종선에서 모두 ‘염불기念不起’, ‘심불기心不起’라는 동일한 용어를 사용하지만, 북종과 남종의 선사상은 결코 동일한 사상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대립적인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불성론은 어떤 의미에서 가장 심층적이고 궁극적인 교의敎義 혹은 선리禪理와 깊은 관계 혹은 그 자체自體라고도 할 수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조사선에 이르러서는 선종의 불성론이 급변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이를 간략하게 고찰하고자 한다.

 

불성론의 두 갈래: 유정유성과 무정유성

 

중국불교에서 ‘불성’에 대한 논의는 불교 전래 초기로부터 진행되어 왔지만, 본격적인 ‘불성론’은 바로 도생道生의 ‘돈오성불론頓悟成佛論’으로부터 진행되었다고 하겠다. 그 이후에 불성론의 전개는 상당히 복잡하지만, 가장 커다란 줄기는 바로 ‘유정유성有情有性’과 ‘무정유성無情有性’의 두 갈래라고 할 수 있다. 본래 불교에 있어서는 ‘유정중생有情衆生’의 ‘심心’으로부터 깨달음을 얻어 성불成佛한다는, 즉 ‘유정’이야말로 불성을 가진 존재라는 ‘유정유성’이 가장 기본적인 입장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중국의 전통사상은 그와는 달리 최고의 상위개념을 ‘천天’이나 ‘자연自然’으로부터 연역된 ‘도道’로 설정하고, 이른바 ‘천인합일天人合一’이나 ‘여도합일與道合一’ 등을 제창한다. 이로부터 보자면 인간이 도달해야할 가장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천’과 ‘도’이기 때문에 오히려 외부의 ‘천리天理’, ‘도성道性’이 인간의 ‘심’이나 ‘염’보다 더욱 중시된다고 하겠다. 더욱이 중국에서 반야般若에 대한 이해는 바로 반야의 논리로 ‘유도융합’을 제창한 현학玄學과 결합하여 진행되었기 때문에 ‘무정’에게도 ‘불성’이 존재한다는 ‘무정유성’의 논리가 중국인들의 사유양식에는 보다 적합하였다고도 볼 수 있다.

 

특히 승조僧肇의 『조론肇論』에 보이는 ‘물아동근物我同根’, ‘물아일체物我一體’, ‘물아위일物我爲一’ 등의 표현은 『장자莊子』의 용어를 인용한 것이지만, 반야사상의 ‘호상관대互相觀對’의 입장에서는 또한 가능한 표현이다. 이는 결국 불교에서 ‘무정유성’의 불성론이 성립하게 된 가장 강력한 근거로 작용하였다고 하겠다. 이러한 논의는 상당히 다양하고 복잡하여 짧은 글로 논할 수는 없지만, 중국불교에서 ‘유정유성’과 ‘무정유성’은 거의 대등한 가치를 가지고 논의되었다고 할 수 있다.

 

초기 선종의 ‘유정유성’의 채택과 ‘무정유성’의 비판

 

그러나 선종의 사상과 종단의 본격적인 토대를 구축한 동산법문東山法門에서는 명확하게 ‘유정유성’의 불성론을 채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산법문을 개창한 도신道信은 자신의 선사상적 핵심을 ‘오문선요五門禪要’로 제시하는데, 그것은 “지심체知心體, 지심용知心用, 상각부정常覺不停, 상관신공적常觀身空寂, 수일불이守一不移”(주1)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심’의 체용體用에 대한 체득體得으로부터 선사상을 구성하고 있음을 여실하게 알 수 있다. 

 

사진 1. 사조도신四祖道信 선사.  

 

더욱이 ‘수일불이’에 대하여 “『장자莊子』에서는 ‘천하는 일지一指이고, 만물은 일一이다’라고 설한다. 『법구경法句經』에서는 ‘일’이 또한 ‘일’이 되지 않음이니, 제수諸數를 논파하기 위함이다. 얕은 지혜를 가진 이는 ‘일’을 듣고서 ‘일’을 ‘일’로만 여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장자』에서는 오히려 ‘하나’에 빠져 있다.”(주2)라고 하여 자신의 ‘수일’이 『장자』에서 온 것이 아니라 불법에서 온 것임을 여실하게 밝히고 있다.

 

이를 계승한 홍인弘忍은 ‘수일불이’를 ‘수본진심守本眞心’으로 하여 보다 ‘심’을 강조하고 있으며, 또한 직접적으로 “네가 사찰에서 좌선坐禪하는 중에 산림의 나무 아래에 또한 너의 몸이 있어 좌선하는가? 모든 흙과 나무와 기와, 돌 등이 또한 능히 좌선하는가?”(주3)라고 ‘무정불성’을 비판하고 있다. 

 

 

사진 2. 오조홍인五祖弘忍 선사 

 

『육조단경』에서는 ‘불성’을 ‘자성自性’으로 설정하고, 나아가 이를 다시 ‘자심自心’과 ‘세인성世人性’으로 확대하고 있음은 앞에서 논한 바이다. 이러한 ‘자성’과 ‘자심’에 있어서는 결코 외부의 무정물이 불성으로서 성립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고 하겠다. 더욱이 『단경』에는 “무정에는 부처의 종자가 없음[無情無佛種]”(주4)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으며, 홍인선사가 혜능에게 “유정으로 와서 종자를 뿌리면 땅[地]을 인因하여 과果가 다시 생하지만, 무정은 이미 종자가 없음으로 성품도 없고 생함도 없다.”(주5)라는 게송을 전해 주었다고 하고, 혜능도 “심지心地는 유정의 종자를 함유하여 법의 비가 내리면 바로 꽃처럼 피어나니, 스스로 꽃과 같은 유정의 종자를 깨달으며 보리菩提의 과일이 스스로 맺히도다.”(주6)라는 전법게가 실려 있고, 이전의 조사들의 게송에서도 모두 ‘유정불성’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주7)

 

‘청청취죽 진시법신’에 대한 비판

 

이와 같이 『단경』에서는 철저하게 ‘무정불성’에 대하여 부정적 입장임을 여실하게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적극적으로 혜능의 남종현창운동을 펼쳤던 하택신회荷澤神會의 『신회화상선화록神會和尙禪話錄』에는 다음과 같은 문답이 실려 있다.

 

우두산牛頭山 원선사遠禪師 문: 불성이 일체처一切處에 편재遍在하는가?

답: 불성은 일체의 유정有情에 편재하고 일체의 무정無情에 편재하는 것은 아니다.

문: 선배 대덕이 모두 도를 말하기를, ‘푸르고 푸른 대나무가 모두 법신이며, 활짝 핀 노란 꽃이 반야 아님이 없음’이라고 하는데, 지금 선사는 무슨 까닭으로 도를 말하면서 불성이 오직 일체의 유정에만 통하고 일체의 무정에는 편재하지 않는다고 하는가?

 

답: 어찌 푸른 대나무가 공덕법신功德法身과 같으며, 어찌 활짝 핀 꽃이 반야의 지혜와 동등하리요? 만약 푸른 대나무와 노란 꽃이 법신, 반야와 같다면 여래가 어떤 경전에서 푸른 대나무와 노란 꽃에 수기를 주었는가? 만약 푸른 대나무와 노란 꽃으로 법신, 반야와 동등하게 한다면, 이는 곧 외도外道의 설이다. 무슨 까닭인가? 『열반경涅槃經』에 불성이 없는 것은 이른바 무정물無情物이라고 밝힌 글이 있다.(주8)

 

여기에서 이른바 “푸르고 푸른 대나무가 모두 법신이며, 활짝 핀 노란 꽃이 반야 아님이 없음[靑靑翠竹 盡是法身 郁郁黃花 無非般若]”은 바로 삼론종三論宗에서 ‘무정불성’을 논증하면서 유명해진 문구로서 역대의 수많은 전적典籍들에서 ‘무정불성’을 언급할 때 항상 인용되는 구절이다. 또한 이 구절은 바로 남종선이 유행할 때 동시에 유행했던 우두선牛頭禪 계열에서 자주 사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사실상 동산법문으로부터 ‘무정불성’을 비판했던 원인을 바로 우두선의 유행을 견제하려는 의도에서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또한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28에 실린 마조도일馬祖道一의 제자인 대주혜해大珠慧海의 전기에서 어떤 승려가 “어떤 까닭으로 푸르고 푸른 대나무가 모두 다 법신이고, 울창한 노란 꽃이 반야 아님이 없음을 인정하지 않는가?”라고 묻자 다음과 같이 답한다.

 

법신은 형상이 없는데, 푸른 대나무는 형상으로 이루어졌다. 반야는 지知가 없는데, 노란 꽃으로 상相을 현현했다. 저 노란 꽃과 푸른 대나무에 반야법신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경전에서 말하기를, 부처의 진법신眞法身은 마치 허공과 같고, 물物에 감응하여 형形을 나타냄이 마치 물 가운데 달이 담긴 것 같다 하였다. 노란 꽃이 만약 반야라면 반야는 곧 무정물과 동일해야 하고, 푸른 대나무가 만약 법신이라면 푸른 대나무 또한 능히 응용應用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주9)

 

이러한 혜해의 말도 신회의 견해와 완전히 일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실상 이는 바로 ‘명심견성’을 ‘즉심즉불卽心卽佛’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단경』에서 설하는 ‘마음’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접하는 유정중생의 ‘마음’을 가리킨다. 만약 이른바 노장老莊에서 말하는 ‘도’의 ‘무소부재無所不在’와 같이 편재하는 ‘진심眞心’을 말한다면, 신회나 혜해는 위와 같이 해석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편재하는 ‘진심’이 되어버린다면 그 결론은 당연히 ‘무정유성’으로 진행되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본격적인 조사선이 유행하면서 점차 ‘무정유성’의 불성론이 삼투渗透하게 되는데, 그 과정과 소이연所以然을 이어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각주> 

(주1) [唐]淨覺, 『楞伽師資記』(大正藏85, 1288a), “一者, 知心體. 體性淸淨, 體與佛同. 二者, 知心用. 用生法寶, 起作恒寂, 萬惑皆如. 三者, 常覺不停. 覺心在前, 覺法無相. 四者, 常觀身空寂. 內外通同, 入身於法界之中, 未曾有碍. 五者, 守一不移. 動靜常住, 能令學者明見佛性, 早入定門.” 

(주2) 앞의 책(大正藏85, 1289b), “莊子說: 天地一指, 萬物一焉. 法句經云: 一亦不爲一, 爲欲破諸數. 淺智之所聞, 謂一以爲一. 故莊子猶滯一也.”

(주3) 앞의 책(大正藏85, 1290a), “汝正在寺中坐禪時, 山林樹下亦有汝身坐禪不? 一切土木瓦石亦能坐禪不?”

(주4) 敦煌本, 『壇經』(大正藏48, 344a).

(주5) 앞의 책(大正藏48, 344b), “有情來下種, 因地果還生. 無情旣無種, 無性亦無生.”

(주6) 앞의 책(大正藏48, 344b), “心地含情種, 法雨卽花生, 自悟花情種, 菩提菓自成.

(주7) 앞의 책(大正藏48, 344a-b), “第一祖達摩和尙頌曰: 吾本來東土, 傳敎救迷情, 一花開五葉, 結菓自然成. 第二祖惠可和尙頌曰: 本來緣有地, 從地種花生, 當本元無地, 花從何處生? 第三祖僧璨和尙頌曰: 花種須因地,  地上種花生, 花種無生性, 於地亦無生. 第四祖道信和尙頌曰: 花種有生性, 因地種花生, 先緣不和合, 一切盡無生.”

(주8) 楊曾文編校, 『神會和尙禪話錄』(中華書局, 1996, pp.86-87), “牛頭山遠禪師問: 佛性遍一切處? 答: 佛性遍一切有情, 不遍一切無情. 問: 先輩大德皆言道, 靑靑翠竹, 盡是法身, 郁郁黃花, 無非般若. 今禪師何故言道, 佛性獨通一切有情, 不遍一切無情? 答: 豈將靑靑翠竹同于功德法身? 豈將郁郁黃花等于般若之智? 若靑竹黃花同于法身般若, 如來于何經中說與靑竹黃花授菩提記? 若是將靑竹黃花同于法身般若, 此卽外道說也. 何以故? 涅槃經具有明文, 無佛性者, 所謂無情物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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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무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중국 남경대학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부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한국연구재단 학술연구교수. 저서로 『중국불교거사들』, 『중국불교사상사』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 『조선불교통사』(공역), 『불교와 유학』, 『선학과 현학』, 『선과 노장』, 『분등선』, 『조사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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