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백련결사를 통해 고려불교를 밝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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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후 / 2022 년 7 월 [통권 제111호] / / 작성일22-07-05 09:42 / 조회3,477회 / 댓글0건본문
근대불교사서史書 19 | 만덕사지萬德寺誌 ①
1800년대 초반 찬술된 『만덕사지萬德寺誌』는 동시대에 찬술된 해남 대흥사의 『대둔사지』와 함께 실학자들의 역사서 찬술과 역사인식의 영향까지도 반영하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백련결사의 도량 만덕사
『만덕사지』는 오늘날 전라남도 강진 백련사의 조선시대 절 이름이다. 절은 신라 문성왕 때 무염국사無染國師(801~888)가 산 이름을 따라 만덕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다고 한다. 절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은 1211년 원묘국사 요세了世(1163~1245) 스님이 옛터에 중창하고 백련결사白蓮結社를 맺어 수행하면서부터였다.
스님은 몽고와 왜구의 침략으로 고려가 혼란에 휩싸이자 참회와 염불수행을 통해 나라를 평안하게 하고 백성들의 삶을 위로하고자 하였다. 당시의 결사는 불교수행자들뿐만 아니라 유생儒生과 지역 유지와 같은 지배층, 그리고 신심 깊은 백성들이 참여하여 120여 년 동안을 번창하였다. 고려 조정은 당시 수행에 참여하여 결사를 이끌었던 8분의 스님을 국사國師로 모셨다. 절은 고려 말 세 차례에 걸친 왜구의 침입으로 폐허가 되었다. 조선이 건국되고 중창이 이루어졌지만, 불교를 배척했던 시절 인연으로 오랜 기간 동안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우리 불교계나 학계의 『만덕사지』에 관한 관심은 조선시대나 근대 불교사에 대한 관심이 다양한 측면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못한 탓에 거의 전무한 실정이었다. 일제강점기 우리 학자가 아닌 일본인 학자 관야은팔管野銀八이 백련결사白蓮結社를 중심으로 한 고려시대 불교를 연구하면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萬德寺志に就いて」, 『朝鮮』 160, 1928: 「東白蓮考」, 『靑丘學報』 10, 1932.) 1970년대에 와서야 허흥식許興植이 사지에 대한 해제解題를 썼을 정도다.(「萬德寺志의 編纂과 그 價値」, 『萬德寺志』, 亞世亞文化社, 1977.)
황사영 백서 사건과 『만덕사지』
우선 『만덕사지』의 각 권 서두에는 찬술에 참여한 인물들을 밝혀 놓았다.
표는 『만덕사지』와 『대둔사지』의 찬술에 참여했던 인물들을 정리해 놓은 것이다. 『만덕사지』는 우선 다산 정약용이 전권全卷에 대해서 감정을 맡았고, 아암혜장兒菴惠藏의 제자인 만덕사의 승려들이 편집과 교정을 맡았다. 다산의 제자인 학림이청鶴林李淸이 속인俗人으로서는 유일하게 찬술에 참여하였다. 다산을 중심으로 한 찬자들은 이미 해남 대흥사의 『대둔사지』 찬술에 참여한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예컨대 수룡색성袖龍賾性과 기어자홍騎魚慈宏등은 아암의 제자로 『대둔사지』 찬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때문에 두 사지의 체재나 찬술방식, 불교사 인식의 경향이 매우 유사함을 살필 수 있다.
다산이 사지 찬술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게 된 것은 1801년 황사영黃嗣永 백서帛書사건으로 강진으로 유배 간 이후 아암혜장을 비롯한 만덕사와 대흥사 승려들과의 교유에서 비롯되었다. 1801년 9월 주문모 신부의 교도였던 황사영이 베이징의 구베아(Alexandre de Gouvea) 주교에게 보내려던 ‘백서’가 중간에 발각되면서 표면화된 사건이었다. 백서는 압수되고, 그해 11월 황사영은 능지처참 당했다. ‘백서’에는 1785년 이후의 조선 천주교회의 사정, 신유박해의 상세한 전개 과정과 천주교도들에 대한 박해 상황, 주문모 신부의 활동과 죽음, 천주교회를 재건하고 신앙의 자유를 획득할 수 있는 방안 등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다. 조선으로서는 치명적인 사건이었다.
『만덕사지』 찬술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기어자굉騎魚慈宏·철경응언掣鯨應彦 등은 모두 아암의 제자들이다. 이 가운데 기어자굉은 다산의 문집에 ‘자홍慈弘’으로 기록되고 있는데, ‘굉宏’은 홍력弘曆의 피휘避諱일 것으로 추측된다.(허흥식, 「만덕사의 편찬과 그 가치」, 『만덕사지』, 아세아문화사, 1977, 455쪽) 자굉은 『대둔사지』 찬술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 인물이다. 자굉은 그 생몰년과 행적이 자세하지 않다. 다만 『다산시문집』에 기어에 대한 글이 단편적으로 수록되어 있다.
고래보다 더 큰 생물은 없으리
이빨은 설산雪山 같고 지느러미는 금성金城 같네.
코를 들어 숨 내쉬니 바다가 들끓고
지느러미 펄떡이매 벼락소리 나누나
우주에 가득한 소리, 바다도 놀란 듯
산 같은 파도에 땅도 기우는 듯
수척한 대장부, 모습 청수한데
언덕 위에 홀로 서서 수심에 잠기네
머리칼 같은 눈썹을 얼레에 감아
바람결에 불으니 살갗이 나르네
고래 꼬리에 붙어도 얽어매진 않았으나
고래는 아이처럼 묶여 끌려오네.
용을 사로잡고 호랑이 묶는 것이 비교될 것인가
호파瓠巴와 장경長庚에 손색이 없네.
(범해 각안, 「철경강사전掣鯨講師傳」, 『동사열전東師列傳』 卷4)
다산이 아암의 제자 철경을 장하게 여겨 지어준 게송이다. 철경은 아암의 의발과 가통家統을 전해 받은 이후 그에게 배우고자 한 학인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대중들에게 “우리 스승께서는 고래 같은 미혹의 속성을 바로잡을 수 있는 비결이 있다. 내가 그 비법을 전수 받았으므로 나는 그것을 이끌어 올 수 있다.”고 하였다. 대중들은 이때부터 그를 고래를 이끌어 되돌아 올 수 있다는 뜻을 가진 ‘철경掣鯨’으로 법호를 불렀다.
고려 중·후기 불교사정을 담은 자료
그는 『만덕사지』의 권4와 권6의 교정을 맡았으며, 사지 찬술의 과정에서 10여 차례 자신의 입장을 피력했고, 오류를 교정하였다. 학림이청은 권1~3까지의 편집을 맡았는데, 다산이 강진 유배 시 그에게 글을 배우고 함께 글을 읽었던 다신계茶信契의 일원이기도 하다. 「다신계」는 다산을 스승으로 모신 서생들이 다산이 유배를 마치고 돌아간 이후에도 서로를 잊지 않기 위해 결성한 계다. 만덕사의 승려 수룡색성과 철경응언도 방외方外의 연고자로 수록되어 계원으로 활동한 것으로 보아 이들의 관계를 알 수 있다.
이청은 『만덕사지』를 찬술하는 과정에서 광범위한 자료를 수집하는 데도 기여하였는데, 특히 『동문선東文選』에 백련사 실려 있는 무외국사無畏國師의 글을 검토하고 고증하여 관련 있는 것들을 수록하였다. 이밖에 백하근학白下謹學과 별악승찬鼈岳勝粲의 생애와 『만덕사지』 찬술을 중심으로 한 활동은 알기 어렵다.
요컨대 『만덕사지』는 다산이 강진으로 유배 간 이후 그와 사제지간의 인연을 맺은 아암과 제자들이 중심이 되어 찬술되었다. 이들은 이미 『대둔사지』 찬술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자료 수집과 교감 작업 등의 경험을 토대로 체계적인 찬술과 주체적인 불교사 인식을 시도할 수 있었다. 때문에 『만덕사지』는 단순한 사찰에 대한 기록이 아닌 것이다. 동시대 불교계의 동향이나 정체성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예컨대 『만덕사지』는 원묘요세를 중심으로 한 백련결사와 고려 중후기 불교사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자 불교사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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