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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禪, 禪과 시]
소염시小艶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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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택  /  2022 년 7 월 [통권 제111호]  /     /  작성일22-07-05 10:33  /   조회3,569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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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는 우리나라 절집 가운데 가장 깊고 따스한 이야기가 있는 곳 중 하나입니다. 부석사는 봉황산(819.9m) 중턱에 기슭을 따라 여러 층을 이루며 가람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일주문, 천왕문을 지나 긴 돌계단을 올라갑니다. 3층 석탑, 범종각을 지나 또 돌계단을 올라가면 안양루安養樓가 나타납니다. 밑에서 보면 2층이지만 무량수전에서 보면 1층 누각입니다. 석단은 신라시대의 것이고 안양루 건물은 조선시대 후기의 건물입니다. 이 하나의 아름다운 건축물에는 천년의 역사가 공존합니다. 

 

안양루와 무량수전의 아름다움과 신비

 

안양루 2층에 황금색 가사를 걸치고 앉아 있는 듯이 보이는 여섯 부처님 모습이 보이십니까? 여기에는 두 가지 비밀이 있습니다. 우선 안양루의 공포栱包(주1)와 기둥 사이의 빈 공간이 부처님처럼 보이도록 공포를 조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빈 공간으로 무량수전의 황금색 벽면이 비쳐 보이는 것입니다(사진 1). 무량수전의 문틀 위 벽면은 황금색으로 칠해져 있습니다. 안양루 아래 약간 동쪽에서 보면 안양루의 공포와 기둥 사이의 빈 공간에 무량수전의 황금색 벽면이 비쳐서 황금 불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를 공포불栱包佛이라 합니다. 불상은 비록 단순한 형태지만 나란히 나타나는 여섯 황금 불상은 우리를 아름다움과 신비의 세계로 데려갑니다. 

 

사진 1. 부석사 안양루. 2층 누각에 있는 여섯 황금 부처님이 보이십니까? 

 

안양루를 지은 목수가 이 지점에서 한 생각은 얼마나 깊었을까요? 여백에 불상이 나타나도록 공포를 조각한 선조들의 기술과 지혜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안양루를 지나면 그 위는 전부 극락정토입니다. 무량수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로 13세기 초의 건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사진 2).

 

무량수전의 겹처마와 공포는 정갈하면서도 아름답습니다. 각 자재가 지닌 간결함과 전체적 비례는 물론 공포와 주심포의 아름다움이 보는 사람을 상쾌하게 합니다.

무량수전 왼쪽 뒤편에 몇 개의 바위가 서로 엇비슷하게 쌓여 있습니다. 이 바위가 바로 부석浮石, 즉 떠 있는 바위입니다. 부석사의 유래를 말하는 부석에는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전해져 옵니다. 

 

사진 2. 부석사 무량수전. 

 

신라의 의상이 당나라에 공부하러 갔을 때 부유한 집 딸인 선묘가 의상의 준수한 용모를 보고 사랑에 빠집니다. 의상이 『화엄경』 공부를 마치고 귀국길에 오르자 함께 올 수 없는 선묘는 의상이 무사히 귀국하기를 기원하며 바다에 투신합니다. 그리고 용이 되어 의상이 탄 배를 보호하여 신라까지 오게 됩니다. 의상이 부석사 자리에 절을 지으려고 하자 토착세력이 방해합니다. 선묘가 커다란 바위로 변해 떨어질 듯 떨어지지 않고 떠다니자 방해하던 무리들이 무서워서 달아납니다. 그렇게 해서 의상이 여기에 절을 세웠다는 것이 부석사의 창건설화입니다.(주2)

 

저 바위 몇 개에 투영된 고대인의 가슴에 아로새겨진 사랑의 힘이 느껴지나요? 이 애틋한 설화는 『송고승전宋高僧傳』에 실려 있는데 일본에서 이 설화를 두루마리 그림으로 그려 교토 고잔지에서 국보로 보관하고 있습니다(주3)(사진 3).

 

소염시小艶詩

 

승려들의 염문艶聞은 좀체 밖으로 알려지지 않지만 그렇다고 염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간혹 전해지더라도 드러내놓고 말할 수 없어서 완곡하게 표현됩니다. 

 

사진 3. 교토 고잔지高山寺, 화엄종조사회전華嚴宗祖師繪傳 부분. 

 

승려들도 즐겨 읽었던 소염시小艶詩는 당송시대에 민간에서 널리 유행했던 시입니다. 감춘 듯 드러내놓은 그 애틋한 마음이 읽는 사람의 마음을 관통하여 깊은 곳을 건드립니다.

 

아름다운 그 모습은 그림으로도 그릴 수 없네요

깊고 깊은 규방에서 내 마음 알리려고

자꾸만 소옥이를 부르지만 원래 소옥에게는 일이 없고

단지 님이 내 목소리를 알아듣기를 바랄 따름입니다.(주4)

 

수행은 물론 문학에도 조예가 깊었던 법연(1024?~1104)이 인용함으로써 소염시는 엄숙하던 선가仙家에 당당하게 등장합니다. 한낱 유행가였던 시가 법연에 의해 선적禪的 해석이 더해짐으로써 서사적 긴장감과 함께 깊이와 향기를 얻었습니다. 

 

사진 4. 오조법연五祖法演 선사. 

 

송나라의 진제형陣提刑(주5)이 벼슬을 그만두고 촉蜀으로 돌아가는 길에 법연에게 들러 도道를 물었습니다. 법연이 이렇게 말합니다(사진 4). 

“제형께서는 소년시절에 소염시小艶詩를 읽어보셨겠지요? 두 구절이 자못 도道에 가깝습니다. 

‘자꾸만 소옥이를 부르지만 원래 소옥에게는 일이 없고 단지 님이 내 목소리를 알아듣기를 바랄 따름입니다.’”(주6)

 

이 시는 잘 생긴 남자가 어느 집에 손님으로 왔는데, 그 집 아가씨가 얼굴을 내밀기가 불편해서 계속 하녀를 불러댄다는 내용입니다. 사실 그녀는 소옥에게는 아무 용무도 없습니다. 그저 좋아하는 남자에게 자기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었을 뿐입니다.

 

이 일화는 집착을 깨뜨리는 전형적인 사례로서 난해해 보이지만 사실은 단순합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말뜻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당장 이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마음을 아는 것이 바로 부처를 아는 것이고 깨닫는 것입니다. 진제형은 과연 법연의 말을 듣고 ‘마음’을 알았을까요?

 

(법연의 말을 듣고) 제형이 “예, 예, 그렇지요.” 하자, 법연이 “그렇지만 조심하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마침 원오(1063~1135)가 밖에서 돌아와 이 이야기를 듣고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화상和尙께서 소염시를 들어 말씀하셨는데, 제형이 이해했습니까?”

“그는 다만 소리를 알아들었을 뿐이다.”

“스승님은 ‘그저 님이 내 목소리를 알아듣기를 바랄 따름’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이미 그가 목소리를 알아들었다면, 어찌하여 옳지 않다 하십니까?”

(아마도 이 대목에서 법연은 제자의 억양이나 표정을 보고 원오가 거의 깨달았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다그치는 것입니다.)

 

법연이 소리쳤습니다

“달마가 서쪽에서 온 뜻은 뜰 앞의 잣나무냐? 말해 보아라!”

원오가(사진 5) 이 말에 홀연히 깨치고 급히 밖으로 나갔다가 닭이 난간 위로 날아올라 깃을 치며 우는 소리를 듣고, ‘이것이 어찌 소리가 아니겠는가?’ 하고 다시 혼자 말했습니다.(주7) 

 

사진 5. 원오극근圜悟克勤 선사. 

 

원오가 깨달음을 얻고 뛸 듯이 기뻐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지 않습니까. 다 같은 의미를 지닌 ‘소옥아!’와 ‘잣나무’와 ‘꼬끼오’를 삼각측량하면 원오의 깨달음을 짐작할 수는 있습니다. 원오는 그 순간 그릇된 분별에서 벗어나 참다운 본성을 직접 대면한 것입니다. 그것은 개념이나 논리가 아니라 그냥 환하게 열려진 세계입니다. 원오는 자아自我라는 한계로부터 해방되었던 것입니다.

 

법연과 원오의 대화는 임기응변적이고 기묘한 논리를 구사하는 일종의 대화예술입니다. 원오는 법연에게 자신의 깨달음을 게송으로 지어 바치고, 법연은 원오가 선禪을 얻었음을 산중의 여러 승려들에게 알립니다.

 

원오의 오도송悟道頌

 

비단 장막에 밤이 깊어 향은 다 타고

피리와 노래 속에 잔뜩 취해 돌아오네

젊은 시절 한 가락 풍류 이야기는

단지 함께 한 사람만 알 뿐이네.(주8)

 

이 시는 원오가 스승인 법연에게 바친 오도송입니다. 전체의 요지는 결구인 “단지 함께 한 사람만 알 뿐이네!” 이 한 구에 있습니다. 원오는 이미 깨달았지만 그릇된 분별이 사라졌기에 그것을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오직 경탄이 있을 뿐입니다. 마치 젊은 시절에 풍류를 즐긴 일은 자신과 그녀만 알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 시는 출발점에 있는 소염시와 대對를 이루며 절묘하게 사랑과 선禪을 넘나듭니다.

 

소염시를 읽고 누구나 다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범부는 이 일련의 대화를 아무리 숙고하더라도 당연히 깨달음에는 이르지 못합니다. 

 

“이 대목에서 원오는 무엇을 깨달은 것일까?” 하고 의심해 보는 것은 깨달음을 얻는 것만큼이나 즐겁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진 6)

부석사는 건물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절에서 내려다보는 경치 또한 산줄기가 켜켜이 겹쳐져서 깊은 감동을 선사합니다. 환하게 열려진 이 풍경은 언제나 순수하게 바라보는 기쁨의 세계입니다. 이런 풍경 앞에 서면 이 세상 모든 것이 분리되지 않는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진 6. 부석사 안양루에서 바라보는 경치. 

 

<각주>

(주1) 공포栱包 : 처마 끝의 무게를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 같은 곳에 짜 맞추어 댄 나무쪽들.

(주2) 『宋高僧傳』, 唐新羅國義湘傳.

(주3) 京都 高山寺, 華嚴宗祖師繪傳(13세기 작품).

(주4) 『五燈會元』, 卷第十九 昭覺克勤禪師條, “一段風光畵難成 洞房深處陳愁情 頻呼小玉元無事 秪要檀郞認得聲”.

(주5) 제형提刑 : 송나라 초기에 있었던 사법, 형벌, 감옥의 일을 담당했던 관직명.

(주6) 『五燈會元』, 卷第十九 昭覺克勤禪師條, “會部使者解印還蜀 詣祖問道 祖曰 提刑少年曾讀小艷詩否 有兩句頗相近 頻呼小玉元無事 祇要檀郎認得聲.”

(주7) 『五燈會元』, 卷第十九 昭覺克勤禪師條, “祖曰 如何是祖師西來意 庭前柏樹子 師忽有省 遽出 見雞飛上欄干 鼓翅而鳴 復自謂曰 此豈不是聲.”

(주8) 『五燈會元』, 卷第十九 昭覺克勤禪師條, “金鴨香銷錦繡幃 笙歌叢裏醉扶歸 少年一段風流事 祇許佳人獨自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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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택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1976년 시). 전 대구시인협회 회장. 대구대학교 사범대 겸임교수, 전 영신중학교 교장.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저서로 『보물찾기』(시와시학사, 2000), 『납작바위』(시와반시사, 2012), 『글쓰기 노트』(집현전, 2018) 등이 있다.
jtsuh@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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