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의 책 이야기]
중국본 불서의 전래와 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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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수정 / 2022 년 7 월 [통권 제111호] / / 작성일22-07-05 11:20 / 조회3,767회 / 댓글0건본문
성철스님의 책 이야기7 / 번각본과 필사본
중국 불서의 전래는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에 전진前秦 왕 부견苻堅이 사신과 승려 순도順道를 보내 불상과 경전을 전했다는 기록에서 비롯된다. 신라 진흥왕 26년(565)에 진나라 사신 유사劉思가 승려 명관明觀과 함께 경론 1천 7백여 권을 실어 온 기록과 선덕여왕 12년(643) 자장율사가 당에서 돌아오면서 경율론 삼장 4백여 함을 가져와 통도사에 안치한 기록 등 중국의 한역 경전 전래는 삼국시대부터 이어져 왔다. 그리고 고려 성종 10년(991)에 한언공韓彦恭이 송나라 태종으로부터 북송에서 처음으로 목판에 새긴 개보칙판대장경 중 481함 2천 5백여 권을 받아 가져오기도 했다.
삼국시대부터 비롯된 중국 불서의 전래는 근대까지도 줄곧 이어져 왔고, 국내 불교 출판문화와 지식생산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국내에 유입된 중국 불서는 손으로 베껴 쓰는 필사 방식과 목판에 새기거나 활자를 주조해서 찍어내는 방식으로 새롭게 전개되어 갔다. 실제 중국 불서들이 국내에 어떻게 전승되었는지 백련암 소장 책에서 그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중국 가흥장본의 번각
목판의 경우 판에 새길 글씨를 새로 쓴 정서본을 마련하여 한 장씩 목판에 붙여 새기는 방식도 있지만, 중국 간인본刊印本을 풀어서 한 장씩 판목 위에 뒤집어 붙이고 그대로 판각하는 방식도 있다. 흔히 번각飜刻 혹은 복각覆刻이라고 부르는 방식이다.
조선후기 번각본 불서의 대표적인 예는 1681년 국내에 유입된 중국 가흥대장경의 『화엄경소초華嚴經疏鈔』이다. 중국 명나라 평림거사 섭기윤葉祺胤이 80권 『화엄경』에 청량징관이 주석한 『화엄경소』와 『화엄경수소연의초』의 현담玄談 부분을 회편하여 90권 80책으로 엮은 책이다. 1690년에 전라도 낙안 징광사에서 백암성총柏庵性聰(1631~1700)이 주도하여 『화엄경소초』를 번각한 이후, 1775년에 경상도 덕유산 영각사에서 설파상언雪坡尙彦(1707~1791)과 1856년 봉은사에서 남호영기南湖永奇(1820~1872)가 동일한 80책을 두 차례 더 간행하였다. 백련암 소장본에는 1775년 영각사 판본의 전질 80책(사진 1)과 영본零本의 징광사본 1책, 봉은사본 19책 그리고 간인 시기가 확인되지 않은 중국 가흥장본 권3-41책이 있다.
백련암 소장 가흥장본 중 『약사여래본원경藥師如來本願經』은 중국식 제책 방식인 4침안은 그대로 두었지만 국내 표지로 바꾼 후에 원래 표지에 붙어 있던 제첨을 새 표지에 오려 붙여 두었다(사진 2). 이 책은 「불설약사여래본원경」,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藥師瑠璃光如來本願功德經」, 「약사유리광칠불본원공덕경藥師瑠璃光七佛本願功德經」, 「불설아사세왕경佛說阿闍世王經」의 4편의 경전이 합철되어 있다. 약사여래의 본원 공덕과 문수보살의 설법을 담은 경전들이다. 이 책에서 발견되는 흥미로운 점은 「불설약사여래본원경」과 「약사유리광칠불본원공덕경」이 가흥장 판본이 아닌 국내 번각 판본으로 대체되어 있다는 사실이다(사진 3). 가흥장본을 실제 번각한 사례를 보여준다.
1905년에 성담거사 이정신李正信과 김재덕金在德의 시주로 판각 인출된 『불설약사여래본원경』과 동일 판본이다. 가흥장본에는 없는 「약사여래본원경수지명호공과설藥師如來本願經修持名號功課說」을 1904년에 이재거사 유경종이 쓴 것으로 보아, 백련암 전래본을 소장했던 유경종이 주도해서 번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성철스님이 『증여계약서목』에 남겨두신 삽지 속 ‘약사칠불경藥師七佛經’ 2권 16판의 기록이 가흥장본을 번각한 『약사유리광칠불본원공덕경』의 목판수이며, 김병룡 거사가 불서뿐만 아니라 불서 책판까지도 증여한 사실을 밝힐 수 있었던 단서가 되었다. 성철스님께서 생전에 적어 두신 작은 메모 한 장이 아니었다면 드러날 수 없었던 사실이다.
중국 각경처본의 번각
금릉각경처본의 국내 번각은 앞서 『고경』 제105호에서 잠시 소개한 바 있다. 앞표지 제첨 형식이나 4침안의 선장 방식, 10행 20자의 판식 크기 등으로 중국 각경처본으로 착각할 수 있으나, 백련암 소장의 아래 책들은 모두 국내에서 번각한 판본이다. 원효의 『대승기신론소기회본』(6권2책), 영명연수의 『주심부』(4권4책), 원가員珂가 회역한 『능가아발다라보경회역』(4권4책)과 『대승입능가경』(「다라니품」과 「게송품」) 등 4종이다. 해인사 사간판전에 『대승기신론소기회본』 75판, 『주심부』 135판, 『능가아발다라보경회역』 212판, 『대승입능가경』 12판의 책판이 소장되어 있다.
1910년부터 1920년 사이에 해인사 사간판전 소장판의 인출에서 위의 번각본이 확인된 적이 없었고, 오야 도쿠죠大屋德城(1926)와 후지타 료사쿠藤田亮策(1944)의 연구에도 이들 책판에 대해 언급한 바가 없었다. 이후 서수생(1973)과 박상국(1987)의 연구에서 판의 존재가 확인되었고, 이들 책판이 1944년에서 1973년 사이에 해인사로 옮겨 와 보관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었다. 이러한 의문들도 성철스님의 메모 속 기록을 통해 금릉각경처본의 번각이며 증여받은 책판임이 밝혀지게 되었다.
가흥장본과 각경처본의 필사
필사본은 붓이나 펜으로 직접 손으로 쓴 것을 통칭한다. 성격에 따라 고본稿本·전사본傳寫本·사경寫經으로 나눌 수 있다. 저자나 편자가 처음으로 쓴 책을 고본 혹은 원고본原稿本이라고도 한다. 특히 저자 자신이 직접 쓴 책의 경우 수고본手稿本이라 하여 더욱 중요시한다. 고본과는 달리 베껴 쓴 책을 전사본傳寫本이라 한다. 사료적인 가치는 크지 않으나 원고본이나 간인본이 없는 경우에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사경은 일반 필사와는 달리 신앙의 차원에서 경문이나 그림을 그려 쓴 것이다. 주로 백지白紙·감지紺紙·상지橡紙 등에 먹물이나 금·은가루를 가지고 썼기에 그 가치가 매우 높게 평가된다. 이와 같이 필사본은 결코 같은 것이 생성될 수 없기에 내용이나 형태가 좋든 나쁘든 유일본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백련암 소장본에는 30여 종 90여 책의 필사본이 확인된다. 현재까지 확인한 바로는 국내 간인본이나 중국본을 소장했던 혜월거사 유성종과 이재거사 유경종이 쓴 전사본으로 판단된다. 이를 뒷받침해 줄 만한 단서가 되는 책이 『관보현보살행법경觀普賢菩薩行法經』이다. 이 책에는 담마밀다曇摩蜜多 번역의 「불설관보현보살행법경」과 혜사惠思가 설한 「법화경안락행의法華經安樂行義」가 함께 필사되어 있다. 특히 「법화경안락행의」 제2장과 제3장 사이에 ‘유경종劉敬鐘’이라고 적힌 작은 종이가 붙어 있기에 그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필사본임을 알 수 있다(사진 4).
「불설관보현보살행법경」은 가흥장본(사진 5)을 그리고 「법화경안락행의」는 1877년 강북각경처본(사진 6)을 필사한 사실을 백련암 책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 간인본이 국내에는 거의 전승되지 않았고, 전래된 중국 책을 베껴 쓴 전사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백련암에 소장된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주해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註解』는 당나라 대전요통大顚了通 선사가 『반야심경』을 주해한 책이다. 이 필사본에는 ‘혜월거사慧月居士’와 ‘유성종인劉聖鍾印’의 장서인이 찍혀 있다. 특히 원문을 교정한 내용의 종이가 여러 곳 붙어 있다(사진 7). 1883년에 감로사甘露社에서 이 책과 동일한 내용을 10행 20자의 전사자全史字로 인쇄하였는데, 필사본에 교정된 내용이 감로사본에 반영되어 있다. 유성종이 정원사와 감로사 불서 간행을 직접 주도했던 만큼 이 필사본이 감로사에서 활자로 간인하기 전에 쓴 원고본일 가능성이 크다.
백련암 소장의 중국본 불서는 국내에 전래되어 번각이나 필사로 새로 전승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직접적인 자료들이다. 지금까지 백련암 성철스님의 책을 통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판각 불서, 중국의 판각 불서 그리고 중국본 불서의 전래에 따른 번각본과 필사본의 전승까지 간략히 살펴보았다. 이제부터 이러한 일련 과정에서 만난 인물들을 한 분 한 분 찾아보려 한다.
참고문헌
임기영, 「해인사 사간판전 소장 목판 연구」, 경북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9.
천혜봉, 『(개정판)한국 서지학』, 민음사,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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