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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한위양진 남북조불교사』의 역사 실증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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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란  /  2022 년 8 월 [통권 제112호]  /     /  작성일22-08-05 09:16  /   조회2,116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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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중국의 불교학자들 20 | 탕용동湯用彤 1893-1964 ②

 

 

중국불교는 인도불교가 중국에 들어와 천 년간의 시행착오 끝에 성공적으로 중국화한 불교를 가리킨다. 구체적으로 수·당 시대의 천태·화엄·선불교가 대표적인 중국 불교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불교의 역사적 발전과정

 

그런데 이때 불교가 중국화하였다는 의미는 바로 인도불교가 중국불교의 진상심眞常心, 또는 진심眞心,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 사상으로 변화하는 과정에 해당한다. 진상심 사상에서는 해탈과 구원의 근거를 불성이라고 달리 부르기도 하는 진상심의 관념에 초점을 둔다. 현상계의 모든 현상이 진심, 또는 진여에 의거하여 생겨난다고 보고, 이를 진여연기眞如緣起라고 하였다. 불교가 중국화하는 과정은 인도불교의 연기관이 중국불교의 진여연기로 변화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생멸하는 현상세계와 불생불멸의 본체세계가 모두 이 진심이라는 하나의 마음에서 통일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처럼 진여연기는 중국불교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이러한 사상에는 사물의 실재와 활동성을 중시하는 중국인의 특성이 잘 나타나 있다. 현상계의 사물은 진여의 표현으로서 그 사물로서의 존재가치를 획득하게 되며, 현상의 본체라고 할 진여는 부동의 측면뿐 아니라 현상을 생성하는 활동성까지도 소유하게 되기 때문이다.

 

인도불교에는 원래 공종空宗인 중관학과 유종有宗인 유식학이라는 두 전통이 있을 뿐, 중국불교가 갖는 진여연기를 바탕으로 한 사상은 종파로서 존재하지 않았다. 그랬던 진여연기론이 화려하게 꽃을 피운 것은 천태·화엄·선불교로 대표되는 중국불교에서였고, 불교가 중국에 도입된 시점부터 이 정점의 단계에 도달하기까지는 중국 역사에서 길고도 지난한 변화와 발전이 필요하였다.

 

불교사상사에서는 인도불교가 중국에 들어와 정착되기까지 의탁불교依託佛敎 시대, 격의불교格義佛敎 시대, 본의불교本義佛敎 시대라는 세 단계를 거쳐서 마지막으로 중국불교(동아시아불교)로 정착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의탁불교 시대는 불교가 도교 사상의 한 일파로 이해되던 시기이고, 격의불교 시대는 불교와 비슷한 도가 사상의 개념인 노자의 ‘무無’나 장자의 ‘소요逍遙’ 개념 등을 빌어서 불교의 ‘공空’ 사상을 이해하던 시기이다. 본의불교는 불교 사상이 본격적으로 이해되기 시작한 시기로서, 반야학과 중관학을 의미한다.

 

종착점인 중국불교는 원래의 인도불교와는 아주 다르게 중국인의 입맛에 맞추어 새롭게 창조된 불교, 천태·화엄·선불교이다. 탕용동의 『한위양진남북조불교사』에서는 이러한 불교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따라 서술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앞의 발전 단계와 역사적, 사상적으로 잘 맞아떨어진다. 특히 인도불교가 중국에 도입되어 중국불교로 완성되기까지의 변화과정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시기인 한대부터 위진남북조 시대를 검토하고 이를 역사 실증적으로 증명해 낸 명저라고 할 수 있다.

 

『사십이장경』의 후대 개찬설 제시

 

탕용동은 한명제의 영평구법설을 전하고 있는 『사십이장경』이 후대에 개찬되었다는 새로운 설을 제시하였다. 이것은 당시 저명한 계몽사상가인 양계초의 학설과 대응되는 것으로, 탕용동의 실증주의적 역사관이 잘 나타난 예라고 할 수 있다.

 

사진 1.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첫째, 양계초는 『장방록』의 기록에 근거하여 『사십이장경』이 산스크리트 원본이 있어서 번역한 것이 아니라 중국인이 『효경』, 『도덕경』 등에 근거하여 편찬한 일종의 위서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반해 탕용동은 『장방록』 안에 “외국의 경전을 초록한 것”이라는 구절이 있으므로 중국의 편찬서는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오늘날 존재하는 팔리어 불경을 보아도 『효경』 같은 문체가 적지 않다는 점도 한 근거가 된다고 보았다.

 

둘째, 양계초가 『사십이장경』을 위서僞書라고 본 이유는 번역 문체답지 않게 그 문장이 우아하고 아름답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실제로 번역에는 번역 문체가 있기 마련이고, 번역자는 정확한 번역을 위해서 문체를 희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탕용동은 『사십이장경』에 한나라 번역과 삼국시대 오나라 지겸의 번역 두 가지가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지겸의 번역은 문장이 아름다운데, 후대 사람들은 이를 한나라 번역으로 오인하였기 때문에 위서라고 보게 되었다고 밝혔다.

 

사진 2. 실크로드. 한 나라 무제가 서역 진출 정책을 펴서 동서의 교통로를 열었는데, 후대에 이 길을 실크로드라고 부른다. 실크로드를 타고 불교가 중국에 수입된 것은 기원후 1세기 전후한 시기였다.

 

셋째, 양계초는 『사십이장경』에 대승불교 교리가 있다는 점에 근거하여 저자가 불교와 도가사상을 조화시킬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 탕용동은 『사십이장경』이 고려본, 송나라 진종眞宗의 주석본, 송나라 수수守遂의 주석본이라는 세 가지 판본이 있음에 근거하여, 『사십이장경』에 보이는 대승불교 교리와 도가사상은 후대 사람들이 추가한 것이고 당나라 이전 판본이 아니라는 학설을 제시하였다. 이처럼 탕용동의 주장은 철저하게 역사 실증주의적 입장에 근거한 것임을 이 예에서도 알 수 있다. 

 

한대漢代 불교, 도교의 대립과 교섭

 

탕용동은 한대 불교 파트에서는 지배계급과 사대부가 불교를 추종하는 상황을 분석하였고, 주요 번역가와 불교에 관한 전문적 저술에 대해 서술하였다. 서한 시대에 불교가 중앙아시아 각국에 전파되고, 한무제가 서역을 개척하자 불교가 그 기회를 타고 각지로 전파되었던 상황을 실감 있게 기술하였다. 

 

사진 3. 『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

 

벽곡僻谷(곡식을 금하는 일)을 하고 기氣를 길러서 장생불사長生不死의 신선이 되는 술법은 도교에서 비롯되었고, 당시 불교는 도교의 일종으로 간주되고 있었다. 그리하여 탕용동은 당시 유행하는 불교사상의 내용을 분석하고 붓다의 제사와 승가에 대해 서술하였고, 아울러 『태평경』과 불교의 관련을 고증하였다.

 

당시 유행하던 『사십이장경』에서는 사문이라면 계戒를 행해서 애착과 욕망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일반적으로 욕망을 극복하는 방법은 선정과 계율이다. 한나라와 위나라 두 시대에는 안세고安世高의 선법禪法이 유행하였는데, 안세고가 번역한 『안반수의경』은 중국 최초의 불교경전인 동시에 호흡법을 다룬 내용이었다. 이렇게 호흡법을 다룬 불교경전의 번역으로 불교는 도교에 속한 것으로 오해되었고, 이 시기가 바로 불교가 도교에 의탁해서 받아들여졌던 ‘의탁불교’ 시대이다.

 

사진 4. 모자 『이혹론理惑論』. 모융牟融이 지은 『이혹론理惑論』은 3세기경 저술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후 탕용동은 모자 『이혹론』의 분석을 시작으로 위나라에 『도덕경』, 『장자』의 현학玄學이 융성했던 것과 불교와의 연관성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 시기가 불교를 도교사상의 관념으로 재해석하고자 한 시도하였던 ‘격의불교’ 시대이다. 『이혹론』에 나타난 도가사상과 불교사상의 계합을 말하면서 위진 시대 불교사상이 대승불교로 발전하는 변화의 단초를 추적한 것은 탕용동의 중요한 업적이다.

 

한 나라 말엽 낙양의 불교는 삼국시대에 남방으로 전파되었는데, 첫째는 소승을 위주로 하는 안세고의 선학이고, 둘째는 지루가참의 『반야경』으로 대표되는 대승의 교학이다. 전자는 주로 도교의 양생을 위주로 하여 한 나라 때의 불교를 계승하였고, 후자는 양진 시대 이후 발전한 불교학으로 반야를 중시하였다.

 

진 나라 때 반야학의 흥기는 남방에서 지루가참, 지겸의 학설을 확대한 것이었고, 북방에서는 주사행이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주사행은 서역으로 불법을 구하러 갔고 『방광반야경』을 번역하였다. 이 시기는 불교가 ‘본의불교’ 단계로 들어가는 시작에 해당한다. 탕용동은 이를 역사적 고증을 더하여 살펴보았다.

 

양진兩晉 시기 반야학 발전의 고증

 

탕용동은 우선 『반야경』의 전파 과정을 상세히 고증하였다. 그는 양진 시기 반야학의 유행을 분석하고, 축법호, 축숙란 등의 불경 번역, 백법조의 활동, 축도잠, 지둔 등 고승과 명사의 교류를 살펴보았다. 또한 동진 시대 황제들과 불교의 관계까지 상세히 고증하였다. 그는 당시 주사행부터 구마라집까지 이어진 『반야경』의 추구가 불교의 대세가 된 상황을 살피고, 구마라집이 『대품』, 『소품』을 번역하고 본성이 공함을 주장하면서 법성종이 번창한 역사적 과정을 탐구하였다. 그리고 충분한 역사 자료에 근거하여 석도안釋道安의 일생을 고증하였고, 그를 고승으로 추앙하였다. 

탕용동은 위진 시대에 불교가 번창하게 된 원인을 몇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첫째, 불도징이 행한 신이한 술법에서 보듯이, 불교가 민간에 전파된 데는 도교의 방술에 의존해 추진된 것이 큰 도움을 주었다고 보았다. 둘째, 위진 시대에 유행하였던 청담에 큰 도움을 받았다고 보았다. 셋째, 중국의 중원과 변방의 경계가 점차 사라져서 외부에서 온 종교가 성행할 수 있는 조건을 형성했다고 보았다. 넷째, 도안道安이라는 고승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보았다.

 

사진 5. 석도안.

 

도안은 안세고가 번역한 경전에 주석을 붙이고 『반야경』을 가장 오래 연구하였으며, 축법호가 번역한 대승경전을 전파함으로써 양진 시기 때 실제로 불교의 중심이 되었다. 그는 처음에 북방의 불도징을 따라서 공부하였고, 나중에는 북방의 구마라집이 도안을 따랐고 남방의 혜원은 실제로 그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도안 법사는 불교의 전파와 경전 번역, 교리 발명, 불교 규범의 개정, 경전 보존 등에서 큰 공적이 있었다. 역경의 규모와 인재 양성에서 구마라집이 등장할 수 있는 토대를 형성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인물이라고 평가하였다.

 

도안의 사상은 처음에는 ‘격의불교’에 해당하였지만, 『도덕경』, 『장자』 등을 불교와 견강부회하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고 보고 대승불교, 즉 ‘본의불교’로 가는 길을 열었다. “경전의 뜻이 명확해진 것으로 도안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탕용동의 평가이다. 도안은 여러 경전들을 수집해서 『종리중경목록』을 지었는데, 경전의 판본을 직접 본 것만 목록에 넣었다고 한다. 또한 미륵사상을 받아들여 후대에 사람들은 그를 미륵사상의 시조라고 인정하였다. 한 나라 이후 선불교와 반야학으로 나뉘어 간 불교를 도안이 두 계통을 집대성하였고, 탕용동이 이를 역사적, 사상적으로 고증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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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란
철학박사. 현재 고려대학교 강의교수. 고려대학교 철학과 석·박사 졸업. 같은 대학 철학과에서 강의, 동국대 불교학술원 HK연구초빙교수를 지냈다. 지곡서당 한문연수과정 수료. 조계종 불학연구소 전문연구원 역임. 『웅십력 철학사상 연구』, 『신유식론』, 『원효의 대승기신론 소·별기』 등 다수의 저서 및 번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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