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禪, 禪과 시]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잠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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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택 / 2022 년 8 월 [통권 제112호] / / 작성일22-08-05 10:27 / 조회5,027회 / 댓글0건본문
팔공산 뒷쪽에 있는 운부암으로 산행을 갑니다. 은해사 입구의 소나무숲은 조선조 숙종 연간에 심어진 소나무입니다(사진 1). 300년이 넘은 소나무 숲 아래로 걸어가면 인간은 보잘것없는 존재가 됩니다. 은해사 입구에서 운부암까지는 3.5km입니다. 치일천을 따라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구름이 머무는 그곳에 운부암이 있습니다.
암자로 가는 길, 구도求道의 길
니체가 말했듯이 우리는 아주 작은 것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습니다. 지극히 작은 것, 지극히 조용한 것, 지극히 가벼운 것이 최상의 행복을 만듭니다.(주1) 이리저리 하늘하늘 날아다니는 나비가 손등에 앉는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작은표범나비 한 마리가 아내의 손등 위에 앉아 오랫동안 날아가지 않습니다(사진 2).
난생 처음 아름다운 나비가 손등에 앉자 그 행복감에 웃음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어제 내린 비로 날개가 무거워진 것일까요, 아니면 방금 우화한 나비일까요, 수명을 다하고 죽어가는 나비일까요. 나비가 손등에 앉은 행복한 감촉만은 앞으로 나비를 볼 때마다 되살아나겠죠.
우리가 잠시 앉아 쉬는 신일지는 은해사에서 1km 정도 거리에 있습니다. 신일지 앞에 인종의 태실봉(462.8m)이 있습니다. 인종의 태胎를 묻은 후에 해안사를 은해사로 개명하고 수호사찰로 삼았습니다. 은해사 앞에 하마비가 있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2.5km 더 올라가면 운부암입니다.
시냇물이 흐르고 숲으로 둘러싸인 오솔길은 치유의 장소입니다. 물길을 따라 이어지는 오솔길은 걷는 사람을 물소리로 토닥이며 위로해 줍니다. 이처럼 아름답고 호젓한 길을 걷노라면 깊은 감동이 온몸을 에워쌉니다. 감동이란 인간의 마음을 깨끗이 씻어주는 것입니다(사진 3).
깊은 산 속의 절을 찾아 걸어가는 것은 하나의 축복이며 때로는 치유나 기도가 되기도 합니다. 그 길을 빠르게 지나가면 풍부한 의미는 사라지고 맙니다. 걷는 것이 의미를 지니려면 천천히 음미하며 걸어야 합니다. 바람에 나뭇잎 하나가 흔들려도 아름다움을 느끼고 구름이 흘러가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구도求道의 길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잠잔다
8세기 경 당나라 시절에 유원율사가 마조의 제자인 혜해를 찾아가 질문합니다. 율사律師는 경서와 계율에 해박한 승려를 가리킵니다. 혜해는 참선을 주로 하는 선사禪師입니다. 율사들이 보기에 선사들은 그냥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는데 그게 도대체 무슨 공부냐고 생각한 것입니다.
유원율사가 와서 혜해에게 물었다.
“당신네 선사들의 수도에도 공부하시는 게 있습니까?”
“물론이죠.”
“어떻게 공부하시는데요?”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잠잡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그러한데, 일반인과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그들은 밥 먹을 때에도 백 가지 생각을 하고 잠잘 때는 천 가지 계산을 한답니다. 이것이 다릅니다.”(주2)
책 읽는 것만 공부인 줄 아는 그 율사에게 혜해는 깨우침을 주었습니다. 중생의 미혹은 밥을 먹어도 잘 먹지 못하고 잠을 자도 잘 자지 못하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혜해는 평범해 보이지만 고도로 다듬어진 시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쉬운 말로 직접 호소합니다. 혜해의 언어는 경건하고 신성합니다. 밥 먹고, 잠자는 것, 평범한 일상에서 그 누구도 보지 못했던 것을 깨우쳐 줍니다.
일상에서 어떤 일을 할 때 대부분 정신은 딴 데 가서 헤맵니다. 이를 마음의 방황, 마음속 수다라고 하고 현대 심리학에서는 마인드 원더링mind wandering이라고 합니다. 혜해는 이미 1200년 전에 마인드 원더링이 인간의 보편적 심리상태인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사진 4. 운부암 보화루.
혜해는 지금 하고 있는 활동에 주의를 기울이면 우리는 마음속 수다에서 해방되어 걱정이 줄어들고 평온하고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혜해보다 800년쯤 후에 서양에서도 몽테뉴(1533~1592)가 비슷한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춤출 때는 춤추고, 잠잘 때는 잠잔다. 아름다운 과수원을 홀로 거닐 때, 내 생각들이 쓸데없이 헤매기도 하지만 나는 곧 그 생각들을 산책으로, 과수원으로, 기분 좋은 고독과 나 자신에게로 돌아오게 한다.”(주3)
이 문장은 『수상록』의 마지막 장인 「경험에 대하여」에 나오는 문장인데 어떤 삶이건 주어진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춤출 때는 춤추고 잠잘 때에는 잠잔다.” 이렇게 말하면 아주 단순한 것 같지만,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몽테뉴는 자신이 마음속 수다로 헤매고 있음을 깨달을 때마다 ‘지금, 여기’에 의식적으로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의식적인 주의’를 다른 말로 바꾸면 ‘알아차림mindfulness’입니다. 몽테뉴도 선禪을 수련하는 사람처럼 이러한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 평생 수행을 했던 것입니다.
작은 암자의 아름다움
이렇게 구도의 길을 생각하며 한 시간쯤 올라가면 구름과 맞닿은 곳에 운부암이 나타납니다. 운부암의 출입문격인 불이문은 작지만 정취가 있는 문이로군요. 으스대지 않아서 보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불이문을 지나 계단을 올라가면 보화루가 나타납니다. 1900년에 지어진 보화루 건물은 고풍스러우면서도 위풍당당합니다(사진4).
운부암은 보화루의 중앙에 있는 누하 계단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밑에서 보면 2층 누각이지만 절 마당에서 보면 단층으로 보이는 구조입니다. 축대 앞에 누각을 지어 시각적 단차를 없애 주고 누각을 하늘 높이 치켜 올립니다.
보화루 누하 계단에서 바라본 원통전은 1862년에 세워진 건물입니다. 왼쪽에는 요사채인 우의당, 오른쪽은 선방인 운부난야입니다(사진5). 운부암은 작은 절집이지만 천하명당에 자리 잡은 영근 암자입니다.
보화루에는 특이하게도 길손을 위한 찻자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맷돌을 다판으로 연출한 미의식이 돋보입니다. 오늘의 팽주烹主(주4)는 한승세 원장님 부인입니다. 마침 철관음을 갖고 오셨기에 우리를 위해 흔쾌히 차를 우렸습니다. 관세음보살을 모신 원통전을 바라보며 철관음을 마신다니 호사로군요(사진6). 팽주의 미소 띤 얼굴과 단정한 자세, 정중한 손놀림이 찻자리를 따뜻하게 합니다. 팽주가 뽐내지 않고 쓸데없는 과장을 하지 않았으니 그것은 하나의 풍격입니다. 보화루 탁 트인 누각에 앉아 차를 마실 수 있었다는 것은 뜻밖의 행운이었습니다.
내려오는 길은 올라가는 길과 같은 길이지만 운치는 전혀 다릅니다(사진7).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것이 내려올 때는 보이기도 합니다. 걷는 것이 때로는 종교적인 행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물론 우리 자신을 위해서 걷지만 다른 사람을 위하여 걷기도 합니다. 왜 우리는 걸을 때 걷기만 하지 못하고 잡념이 많은 걸까요. 흥선유관(755~817)은 이렇게 말해 줍니다.
도道는 눈앞에 있지만 나[我]가 있으면 못 본다
언젠가 한 승려가 흥선유관에게 가르침을 청했다.
“대화상, 도는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눈앞에 있소.”
“눈앞에 있다면 왜 저는 보지 못합니까?”
“당신한테 나[我]가 있어서 그렇소.”
“그러면, 대화상, 당신한테는 보입니까?”
“너도 있고 나도 있으면 더 안 보인다오.”
“나도 없고 너도 없으면 보이겠군요?”
“나도 없고 너도 없으면 누가 보겠소?”(주5)
인간은 원래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존재입니다. 마음속 수다도 모두 ‘나’와 관련된 생각들입니다. 이는 자연 선택이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이익에 집중하도록 뇌를 설계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무아無我를 머리로 이해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태국의 승려 아잔 차(1918~1992)는 무아를 단지 머리로 이해하려고 하면 머리가 터질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주6) 무아는 범부의 영역이 아닙니다. 다만 ‘나’를 없애거나 나를 잊는 것은 어렵지만 ‘나’를 적게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보다 더 많이 생각하는 것은 범부에게도 가능한 일입니다.
여러 깨달은 사람의 말에 따르면, 마음의 안정을 가질 수 있는 비결은 다른 사람의 행복을 우리 자신의 행복보다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몸이 아플 때, 그렇게 아픈 다른 누군가를 생각하면 공포와 두려움은 작아집니다.(주7) 다른 사람을 더 많이 생각하면 ‘나’는 그만큼 더 작아 보입니다. 남을 위해 무언가를 하게 되면 마음이 풍요로워집니다.
‘나’에 대해서 조금 적게 생각하면서 산길을 내려오노라면 시냇물은 소리 내어 흐르고, 새들은 숲속에서 노래하며 뺨에 닿는 바람은 우리들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 줍니다.
각주)
주1)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892.
주2) 『五燈會元』 卷第三, 大珠慧海禪師條 : 有源律師問 “和尙修道,還用功否?” 師曰 “用功” 曰 “如何用功?” 師曰 “饑來吃飯,困來卽眠” 曰 “一切人總如是,同師用功否?” 師曰 “不同” 曰 “何故不同?” 師曰 “他吃飯時不肯吃飯,百種須索 睡時不肯睡,千般計較.所以不同也” 律師杜口.
주3) 몽테뉴, 『수상록』, 1588.
주4) 찻자리에서 차를 우려서 내놓는 사람.
주5) 『五燈會元』 卷第三, 興善惟寬禪師條 : 僧問 “道在何處?” 師曰 “秖在目前” 曰 “我何不見?” 師曰 “汝有我故,所以不見” 曰 “我有我故卽不見,和尙還見否?” 師曰 “有汝有我,展轉不見” 曰 “無我無汝還見否?” 師曰 “無汝無我,阿誰求見?”
주6) 로버트 라이트, 『불교는 왜 진실인가』, 마음친구, 2019.
주7) 사쿙 미팜, 『내가 누구인가라는 가장 깊고 오랜, 질문에 대하여』, 판미동,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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