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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동국대와 한국불교사학의 기반을 다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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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태  /  2022 년 9 월 [통권 제113호]  /     /  작성일22-09-05 09:34  /   조회2,191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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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한국의 불교학자들 21 | 조명기(1905~1988)

 

 

조명기趙明基(1905~1988)는 일본 유학 후 동국대의 교수를 거쳐 총장을 역임한 학자이자 교육자이다. 원효와 원측, 의천을 비롯한 신라와 고려의 학승과 불교사상을 중심으로 선구적 연구를 했고, 동국대와 한국불교사학의 기반을 다졌다. 또한 『원효전집』과 『고려대장경』의 간행과 『한글대장경』 편찬 등 불교 문헌의 집성과 유통, 경론의 한글 번역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화쟁론을 주창한 원효를 한국불교의 건설자이자 완성자로 높이면서 통불교, 총화불교를 그 특질로 강조했다.  

 

사진 1. 효성曉城 조명기趙明基(1905~1988). 

 

 

생활 원리가 될 교학 체계 확립에 주력

 

효성曉城 조명기는 부산에서 태어났고, 1928년에 양산 통도사에서 출가했다. 1931년 서울의 중앙불교전문학교를 졸업했고, 도서관의 사서로 일하기도 했다. 1934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요東洋대학 불교학과에 입학했고, 1937년에 학부를 마친 후 돌아와 1939년 경성제국대학 종교학연구실 전공과(대학원)에 진학했다. 1939년에는 모교인 중앙불전에서 강사를 했고, 1941년 경성제대 법문학부 종교학연구실의 부조수를 거쳐 다음해에 조수가 되었다. 1943년에는 경성제대 만몽학술조사단에 참가하여 만주와 몽골 일대의 유적을 답사했다.  

 

사진 2. 중앙불전 전경. 

 

해방이 되고 1945년 9월 다시 문을 연 혜화전문학교(옛 중앙불전) 불교학과의 교수가 되었다. 식민지 잔재를 벗어내고 자주적 민족국가를 건설하려는 한민족의 염원이 분출된 해방 정국에서 그 또한 상아탑의 울타리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조명기는 1946년 4월에 진보적 성향의 지식인들이 모여 조직한 ‘혁명불교도동맹’의 중앙위원이 되었다. 이 동맹의 강령은 불교교단의 개혁, 조국의 광복과 사회혁명 등이었다. 창립대회에서 제시된 7개 당면 주장은 ‘승니와 교도의 구별, 사찰 토지의 국가사업 제공, 승려의 생업 종사, 본존은 석가불만, 간소 엄숙한 새 의식 실시’가 그 골자였다. 

 

1946년 12월에는 그가 참여한 혁명불교도동맹을 비롯한 불교계 혁신 단체들이 ‘불교혁신총연맹’을 결성했다. 다음해 5월에는 조선불교 총본원이 세워지고 ‘전국불교도총연맹’이 출범했다. 전국불교도총연맹은 10개의 당면과제를 내걸었는 데 그 안에 포함된 “조선 민족의 생활 원리가 될 교학 체계를 확립하자”는 문구는 이후 조명기의 저술 내용에서도 엿보인다. 불교가 나아갈 방향성을 모색할 때 교학에 바탕을 둔 체계적 이념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사진 3. 1963년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소 초대 소장으로 재직할 때 창간한 『불교학보』. 

 

1946년에 혜화전문은 동국대학으로 승격하며 개칭했고, 동국대 교수가 된 조명기는 동국대가 현재의 남산으로 이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후 그는 1954년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장 보직을 맡았고, 교무처장도 겸했다. 또 그가 설립한 조양사범전문학교가 1954년 경기초급대학(현재 경기대)으로 격상되면서 초대 학장을 겸직하며 학교를 운영했다. 1960년에서 1961년까지는 동국대 부총장을 지냈고, 1962년 창립된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소의 초대 소장을 맡아 이듬해 《불교학보》를 창간했다. 

 

1962년 3월에는 그가 유학했던 일본 도요대학에서 「고려대각국사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4년 3월 동국대 총장에 취임했고, 1968년에 설립된 사단법인 한국불교문화연구원의 초대 원장으로 부임하여 학술 사업과 불교의 사회적 확산에 힘썼다.

 

그는 정년을 한 뒤에도 동국대 명예교수, 원광대 대우교수, 일본 교토 불교대학 객원교수, 학교법인 경기학원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1973년에는 동국제강 장경호 회장이 세운 교양대학인 

대원불교대학의 학장을 맡아서 불교 대중화에도 앞장섰다. 이러한 활발한 활동과 공로를 인정받아 제1회 동국문화상과 국민훈장 동백장 등을 수상했다. 

 

이처럼 그는 평생 교직에 몸담으면서 불교학의 제도적 기반 조성과 후학 양성에 매진했다. 그런 한편 연구에도 손을 놓지 않았는데, 『신라불교의 이념과 역사』, 『고려 대각국사와 천태사상』 등의 저서, 「원측의 저서와 사상」 등 수십 편의 논문을 남겼다. 이를 통해 신라와 고려를 중심으로 한 한국불교사의 기본 구도를 그려보고자 했고, 특히 원효의 위상을 재조명하는 데 앞장섰다. 

 

조명기의 한국불교사 인식과 원효 현창

 

조명기는 한국불교 문헌을 모으고 편찬하는 데 큰 관심을 가졌다. 일본 등에 산재하고 있는 원효 저술을 발굴하여 『원효전집』을 내거나 『고려대장경』을 영인·간행하는 일에도 한몫을 했고, 『한글대장경』의 기획에도 관여했다. 또 만해 한용운의 『한용운전집』을 펴내기도 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원효와 의상, 원측, 의천 등 신라와 고려의 학승과 불교사상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여 해방 후 초창기 한국불교사상 연구의 토대를 구축했다. 

 

사진 4. 분황사 원효 진영. 

 

그는 원효학 연구에서 중요한 성과를 도출했는데, 불교의 중도론을 화和와 쟁諍과 연동해 총화사상, 통화사상으로 이해했고, 이를 다시 원효 화쟁의 해석에 활용했다. 나아가 총화론과 화쟁론을 근거로 해서 한국불교를 ‘대·소승을 초월한 통불교’로 바라보려 했다. 통불교론은 1930년에 최남선이 제기한 이래 한국불교의 특성을 논할 때 주로 활용되는 개념으로 조명기는 물론 김동화, 이기영 등에 의해 계승되었다. 

 

사진 5. 고려대장경 영인본. 1974년 동양출판사에서 간행되었다. 

 

조명기는 한국불교사를 시기별로 나누어 그 특징을 ‘삼국시대는 불교 전래기, 통일신라는 연구기, 고려시대는 보급기, 조선시대는 은둔기’로 보았다. 그의 주저인 『신라불교의 이념과 역사』와 『고려 대각국사와 천태사상』은 이 가운데 연구기와 보급기의 핵심 인물과 사상에 주목한 것이다.

『신라불교의 이념과 역사』(1962)에서는 인도, 중국, 일본의 불교를 붓다의 교화와 대승으로의 발전, 교리의 조직적 체계화와 일승으로의 진전, 중국과 한국불교의 보급과 보존 및 실천을 각각의 장점으로 꼽았다. 한편 한국불교는 처음부터 일승으로 출발하여 일대승一大乘의 이론으로 발전했고, 대·소승을 초월한 통불교(회통·화쟁)의 특징을 가진다고 보았다. 특히 이론과 실천을 융합한 원효사상에서 한국불교의 특성을 찾을 수 있다고 파악했다.

 

원효 외에도 의상, 원측, 태현, 경흥의 사상에 대해 서술했는데, 의상은 일승원교의 깨달음의 경지를 드러낸 「법계도」를 지었고, 원측은 대승의 관점에서 특정 주장에 치우치지 않고 모든 학설을 망라해 논의를 이끌어냈음을 강조했다. 또 태현은 규기와 원측 유식사상의 장점을 취사선택해 집대성했고 화엄학과 원효 화쟁 사상의 영향도 받았으며, 경흥도 다양한 사상적 편력을 남기면서 원효의 통불교 사상을 수용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사진 6. 『신라불교의 이념과 역사』(1962, 신태양사). 

 

이 책에서 조명기는 “화합하여 현실 문제에 역량이 있는 불교, 삶의 문제를 고민하는 불교,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불교”를 말하면서, 사찰과 승려를 벗어난 제3자의 객관적 불교를 지향하면서 새로운 시대에 맞는 대중불교를 추구했다. 또 종파 사이의 담을 뛰어넘고 합리화하자는 ‘불교총화론(총화불교론)’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는 불교총화론을 주장한 대표적 인물로 일본 근대불교사학을 연 무라카미 센쇼村上傳精를 들었다. 무라카미는 『불교통일론』에서 종파불교의 분열상을 극복하고 통일적 합동조화를 통한 불교의 부흥을 제안한 바 있다. 조명기는 종파와 교리의 대립성을 극복하고 과학적 비판연구를 통해 교의에 대한 집착을 버리면 그 속에 총화불교가 들어 있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면서 선정수행을 통한 본성의 직관, 진여로 귀결되는 새로운 대승불교, 화쟁사상 등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고려 대각국사와 천태사상』(1964)은 1962년 일본 도요대학에 제출한 박사학위 논문을 토대로 쓴 책이다. 1편에서 의천의 생애와 사상을 기술했고, 2편에서는 천태지의의 생애, 『법화경』과 천태종 전적, 천태교판론과 교리, 실천론 등 천태사상의 전반을 다루었다. 그는 의천의 사상에 대해 “화엄과 천태를 일불승一佛乘으로 하여 정혜쌍수의 방법으로 실천한 것이다. 이것으로 전체의 사상계를 통일하여 하나로 돌아가고자 했다.”라고 요약했다.

 

또 천태학에 대해서는 “사상으로서는 반야공관에 기초를 두고, 종파로서는 삼론종보다 한 걸음 더 나갔다. 천태지의는 체험에 기반하여 공관空觀을 강조했고, 남북조의 불교사상을 통일해 『법화경』을 중심으로 천태학을 전개했다.”고 설명했다. 이 책은 중국 천태종의 성립과 천태사상의 동아시아적 전개와 영향을 다루었는데, 당시 척박했던 한국불교학계의 현실에서 『신라불교의 이념과 역사』와 함께 수준 높은 개론서로서 주가를 높였다.

 

조명기는 태고보우와 보조지눌을 둘러싸고 펼쳐진 한국불교의 종조 논란에 대해서도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기존의 논의가 선종 내의 종파적 관점에서 이루어졌음을 비판하고 한국불교의 종조로 원효를 내세웠다. 중국에서 선교융합을 처음 주창한 종밀과 비교하여 총화불교를 이룩한 원효의 우월성을 강조했고, 고려의 조계종(지눌)이나 중국의 임제종(보우)은 모두 지엽적이며 원효의 총화불교야말로 한국불교의 온전한 특성을 담고 있다고 이해했다.

 

또 비교철학의 관점에서 볼 때도 원효사상은 서양과 동양철학의 장점을 아우르고 있다고 보았다. 원효의 저술은 인식론과 논리학이 발달한 서양철학처럼 논리가 명확할 뿐 아니라 동양철학 나름의 이치가 그 안에 담겨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동서양 철학의 정수를 내포한 원효사상의 핵심을 화쟁주의에 근거한 귀일이라고 규정했다. 동아시아 불교의 독창적 사상가이자 승과 속이 다르지 않은 화쟁의 삶을 몸소 실천한 원효를 한국불교의 건설자이자 완성자라고 높이 평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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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태
서울대 국사학과 문학박사 학위 취득(2008). 저서로 『韓國佛敎史』(2017, 東京:春秋社), 『토픽 한국사12』(2016, 여문책), 『조선후기 불교사 연구-임제 법통과 교학전통』(2010, 신구문화사) 등이 있고,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현재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및 한문불전 번역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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