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 스님의 화두 참선 이야기]
감옥살이와 심원사의 공空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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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승 / 2022 년 9 월 [통권 제113호] / / 작성일22-09-05 11:32 / 조회3,739회 / 댓글0건본문
1969년 33세의 고우스님은 수좌 도반들과 봉암사에서 선원을 재건하고 사찰림을 지키기 위해 산판업자들과 갈등을 빚다가 그들의 음모로 느닷없이 상주교도소에 갇히게 되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정부의 산림정책이 엄격하여 사찰 소유의 나무라도 함부로 베면 관의 처벌을 받아야 했다.
고우스님의 감옥살이 체험
봉암사 백련암에서 정진하던 혜암스님께서 겨울 땔감으로 암자 주변의 나무를 베어 장작을 쌓아놓았다. 이것을 산판업자들이 보고는 관에 고발하자 문경경찰서에서 봉암사 주지를 불렀다. 당시 주지는 지유스님이었지만, 실질적인 주지 소임은 총무이던 고우스님이 하고 있었기에 스님이 문경경찰서에 갔다. 고우스님은 백련암 주변 나무를 벌목한 책임은 자기에게 있다며 죄가 있으면 벌을 받겠다고 했다. 그리하여 고우스님은 난생 처음으로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고우스님이 상주교도소에 구속된 기간은 보름이었다. 세간을 떠난 출가 수행자가 세상의 가장 밑바닥이라고 하는 감옥에 가기가 참 어려운 일인데, 스님은 보름 동안 감옥 생활을 체험했다. 감옥소에는 한 방에 여러 사람들이 같이 갇혀 있는데, 죄수복으로 갈아입고 처음 교도소 방에 들어가니 죄수들이 머리를 깎은 것을 보고는 스님이냐고 물었다. 스님께서 그렇다고 답하니 “스님이 어떻게 여기에 왔느냐?”며 캐물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같은 죄수들이 불쌍하게 봐주었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그 방에 갇힌 죄수들과 가까워져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리고 스님은 당신 죄가 가장 무겁고 다른 죄수들은 죄도 안 되는 이유로 감옥에 와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한마디로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였다. 죄를 지어도 돈과 배경이 있는 사람들은 감옥에 오지 않았고, 죄도 아닌 일인데 돈과 배경이 없다고 감옥에 갇힌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감옥은 세속의 가장 밑바닥으로 사회 모순과 부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공간이었다. 그중에서도 고등학생 나이의 청소년이 있었는데, 가난하여 학교도 가지 못하고 배가 고파 무엇을 훔쳐 먹은 죄로 감옥에 들어와 있었다. 스님은 그 청소년이 안쓰러워 당신께 들어온 사식이나 빵 같은 것이 생기면 나눠주었다. 소년은 스님께 고마워하며 의지하였다.
고우스님이 감옥에 갇히자 봉암사 수좌 스님들과 가은, 문경 일대 신도들이 구명운동에 나섰다. 봉암사 스님과 신도들이 사방으로 호소한 끝에 죄를 뒤집어쓴 고우스님은 감옥에 갇힌 지 보름 만에 다시 풀려 나오게 되었다. 같은 감방에서 고생하던 죄수들은 스님이 보름 만에 풀려나자 의아해 하면서도 잘 됐다고 축하해 줬다. 하지만, 스님께 의지하던 소년은 눈물을 흘리며 슬퍼했다. 고우스님도 그 소년이 안쓰러워 그동안 면회온 분들이 맡기고 한 영치금과 사식 등을 몽땅 주고 나왔다.
이렇게 하여 고우스님은 뜻밖에 보름 동안 감옥에 갇혔다가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보름 만에 나오게 되었다. 비록 보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스님은 세속사회의 가장 밑바닥인 감옥살이를 체험하였다. 감옥은 세상살이가 얼마나 모순인지, 세속의 삶이 왜 괴로움이라 하는지 실감하게 되었다. 출가 수행자로서는 쉽지 않은 감옥살이 체험으로 고우스님은 가난하고 소외받은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사회의 모순을 극복하고 인간다운 사회를 회복하는 데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스님은 법문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중생이 본래 부처이고, 사람의 죄와 업도 본래는 공하다는 불교의 진리를 설하면서 깨달음의 대자유를 강조하게 되었다.
고우스님의 석방과 봉암사 청정 수행도량의 회복
봉암사 총무인 고우스님이 감옥에 갔다가 보름 만에 석방되어 나오자 산판업자들은 깜짝 놀랐다. 그들은 산판을 사사건건 감시 감독하며 사업 추진에 큰 장애를 안겼던 고우스님을 감옥에 보냈으니 이제 마음대로 산판을 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런데 한 달도 안 되어 석방되어 나오니 충격이 컸다. 고우스님은 자신이 감옥에 가게 된 것이 산판업자들과 문경시 산림 공무원들의 농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스님은 감옥에서 나온 뒤 산판업자들을 만났다. 그러자 산판업자들은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지금까지 벌여 놓은 산판을 마무리할 시간을 얼마간 주면 다 정리하고 봉암사를 떠나겠다고 하였다. 고우스님은 봉암사 대중들과 의논하여 업자들의 제안을 수용하여 1971년에야 봉암사 산판 문제는 마무리되었다.
고우스님을 비롯한 봉암사 수좌들의 각고의 노력과 열의로 봉암사의 울창한 사찰림은 더 이상 유실을 막게 된 것이다. 먼지 날리며 하루에도 몇 차례나 지나다니던 사륜 트럭들도 출입을 멈추니 봉암사는 본래 청정한 수행도량의 모습을 회복하게 되었다.
1971년 문경 심원사 공 체험
1971년 봉암사 산판 문제가 마무리되자 고우스님은 큰 짐을 내려놓은 듯 했다. 봉암사에 들어와 총무 소임이었지만 주지직을 대리하여 가장 골치 아팠고, 속을 썩이던 산판 문제가 해결되자 고우스님은 봉암사를 떠나 오로지 공부만 해보고 싶어졌다. 당시 봉암사에는 방사가 부족하여 총무 고우스님과 교무 법화스님이 한 방을 쓰고 있었다. 법화스님은 어느 날 새벽에 일어나 보니 고우스님이 아무런 말도 없이 홀연히 바랑을 챙겨 떠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2년 동안 봉암사에 들어가 산판 문제를 해결하고 도량을 안정시킨 고우스님은 1971년 문경 농암 도장산 심원사로 갔다. 심원사深源寺는 이름 그대로 깊은 산속 암자와 같은 작은 절이다. 심원사는 문경과 상주의 경계인 도장산에 있다. 도장산道藏山은 백두대간의 소백산 자락에 있는 높이 828미터의 명산이다.
이중환의 『택리지擇理志』에는 “청화산과 속리산 사이에 경치 좋고 사람 살기 그만인 복지가 있다.”는 기록이 있는데 바로 여기를 말한다. 도장산 높은 곳에 심원사가 있다. 신라 태종무열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는데, 당시에는 도장암이라 하였다. 천년 고찰의 심원사는 고우스님이 갔을 때는 법당과 요사채만 있는 작은 암자였다. 심원사는 지금도 차가 닿지 않아 험한 산길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 심원사가 있는 도장산은 쌍룡계곡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청화산 원적사가 있다. 원적사는 고우스님이 따르던 서암스님이 주석하는 도량이다. 그 무렵 혜국스님도 원적사에서 정진했는데, 한번은 심원사에 가니 고우스님께서 식량을 마련하려고 벌을 키우며 정진하고 있었다.
심원사에서 고우스님이 정진하자 범어사의 지유스님과 대효스님도 와서 함께 정진하게 되었다(무비스님께서는 당신도 심원사에서 함께 정진했다고 하셨다). 고우스님의 회고에 따르면, 두 분이 큰방을 쓰고 작은 방엔 고우스님이 거처하면서 따로 정해 놓은 시간 없이 각자 새벽이면 일어나 정진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고우스님은 참선 중에 처음으로 큰 체험을 한다. 당신은 뒷날 이 심원사 깨달음을 ‘공 체험’이라 하였는데, 고우스님께서 직접 남기신 말씀을 보자.
“하루는 아침에 좌선을 하고 있는데 불현듯 ‘무시이래無始以來... ’ 하는 구절이 떠오르더니 ‘그 무시이래가 비롯함이 없는 아득한 옛날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이구나!’ 하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강한 느낌이 왔어요. 엄청나게 환한 느낌이 와서 기분이 너무 좋았지요. 그래서 『서장』을 찾아 살펴보니 그 전에는 이해 안 되던 대목이 화두 빼고는 다 이해가 돼요. 화두도 이젠 시간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는 아주 좋았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공에서 공을 여의었어야 했는데 ... ”
- 박희승, 『선지식에게 길을 묻다』 은행나무 중.
35세에 고우스님은 심원사에서 공에 대한 체험을 한 것이다. 그동안 강원에서 불교를 공부하면서 공空에 대하여 이론적으로만 알았는데, 이제는 마음으로 체험하게 되어 확신이 들었다. 마치 다 깨달은 것 같았다. 그때 같이 정진하던 대효스님도 비슷한 체험을 한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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