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다도]
차茶로 고유告由를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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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룡 / 2022 년 10 월 [통권 제114호] / / 작성일22-10-05 10:45 / 조회3,602회 / 댓글0건본문
하늘이나 죽은 사람의 넋에 음식을 바쳐 정성을 나타내는 의식을 제사祭祀라 한다. 제사는 과거를 이어받는 구체적인 행위의 하나이다. 우리의 옛 선조들은 자신의 과거가 집단의 과거이고, 다시 선조의 과거로 끝없이 연결시키면서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정산定算, 결산, 참회懺悔, 반성反省을 하는 하나의 의식을 제사라는 형태로 이어 왔던 것이다. 수많은 세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방편으로 짜낸 지혜의 하나가 제사라 할 수 있다.
제사祭祀, 고사告祀, 고유제告由祭
고사告祀는 액운을 없애고 행운이 오도록 신령에게 음식을 차려 놓고 비는 일로, 음력 시월 상달에 집안의 안녕을 위하여 가신家神에게 올리는 차례이다. 특히, 새 집을 짓고 드리는 성주고사城主告祀, 조상의 묘를 쓸 때의 명당고사明堂告祀, 비석을 세울 때 지내는 입비고사立碑告祀, 문과에 급제하여 붉은 교지를 받았을 경우 집에 돌아와 조상의 사당에서 지내는 홍패고사紅牌告祀, 무과에 급제하여 백색 교지를 받은 이가 지내는 백패고사白牌告祀, 배를 새로 지었거나 출어 전에 뱃길의 무사와 풍어를 기원하여 지내는 배고사 등 상황에 따라 여러 이름이 붙여지기도 한다.
고유제告由祭란 국가나 가정에서 큰일이 있어서 종묘나 사당에 아뢰는 차례를 이르는데, 예전에는 가정에서 국가고시에 합격하거나 자손이 결혼을 하게 되면 사당에 고유告由를 하였다. 이처럼 고유는 고사와 유사한 뜻을 가지나 그 차림이 비교적 간소화한 것을 말한다.
오늘날 고사가 막걸리를 헌작하는 것으로 변질되면서, 고유차례告由茶禮 역시 차를 올리는 것으로 구분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차를 우려 마시는 방법이 차법茶法이다. 이것은 녹차문화권인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이 다를 수 없다. 그러나 차례법茶禮法은 그 나라의 문화가 포함된 차를 마실 때의 예의범절, 즉 차를 행하는 예의다. 차실에서 차를 마실 때나 일반 가정에서 손님에게 차를 대접할 때 혹은 어떤 의식에 차를 사용할 때는 그에 걸맞는 예의가 필요한데, 이때에 행해지는 모든 범절은 하늘에 제사지내는 것과 같이 지극한 마음으로 행하여졌다. 즉 차로 지극한 예를 행하는 것이 차례茶禮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부터 궁중의 여러 의식이 있을 때 차례가 행해졌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제례祭禮에서도 차를 올리는 일(차례)이 행해졌다. 즉, 제례의식 때는 다른 음식과 함께 차와 다식도 올렸다. 제례가 곧 차례였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글에서는 차를 올림으로써 고유의 의식을 봉행하는 고유차례告由茶禮의 실례를 소개해 드릴까 한다. 지난 2004년 필자가 봉직하고 있던 국립 상주대학교 제2공학관 앞뜰에서 이 건물 낙성 고유차례가 평생교육원 차도과정 제7기생들에 의해 봉행되었다.(주1)
2007년에는 경북대학교와 상주대학교가 통합되어 통합고유차례를 차도과정 제10기생들에 의해 봉행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2013년에는 상주캠퍼스의 식품응용공학전공이 대구캠퍼스로 이전하는 고유차례가 복현동 캠퍼스 농생대 2호관 현관에서 차도과정 제16기생과 차무과정 제5기생들에 의해 거행되었다.
아래는 2013년에 봉행하였던 이전 고유차례의 진행 및 축문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자료적 측면에서 실제 봉행의 모습을 실감나게 전해 드리고자, 또한 혹시 어느 때라도 차례茶禮를 지내시게 될 때 도움이 되셨으면 하는 마음에 짤막하나마 알려드릴까 한다.
이전移轉 고유차례告由茶禮 의식儀式
일시; 2013. 4. 16. 화. 13:30~15:20
장소; 경북대학교 농생대 제2호관 현관
저는 오늘 사회를 맡은 평생교육원 분원 차도과정 16기 김주서, 김미정입니다. 우수 경칩을 지나 언 땅을 녹이고 봄을 알리는 4월의 화신들이 하르르 웃으며 세상을 아름답게 수놓은 화사한 계절에, 경북대학교 식품응용학과 전공의 복현동 캠퍼스로의 이전에 즈음하여 사라져 가는 우리 전통문화를 발굴 재현하는 고유차례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고유차례에는 경북대학교 평생교육원 분원 차도과정 16기생과 차와 전통춤과정 5기로 공부한 수료생들이 실습을 통해 그동안 연마한 과정을 점검하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이전을 축하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 그럼 지금부터 경북대학교 식품응용공학과 이전 고유차례 의식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 먼저 국민의례가 있겠습니다.
- 다음은 참석하신 내빈소개가 있겠습니다.
- 다음은 차도과정 16기 장미향 회장님의 개회사가 있겠습니다.
- 이어서 상주캠퍼스 과학기술대학 학장님의 환송사가 있겠습니다.
- 다음은 복현동캠퍼스 농업생명과학대학 학장님의 환영사가 있겠습니다.
- 다음은 평생교육원장님의 격려사가 있겠습니다.
- 다음은 손예섬 차도과정 총동문회장님의 축사가 있겠습니다.
- 인사말씀 순을 마치고 이어서 김자혜 차무과정 교수의 ‘시방정화’를 위한 살풀이춤 공연이 이어지겠습니다. (큰 박수)
- 이어서 고유차례 의식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고유차례를 올리기 위해 우선 제상에 진설을 하겠습니다. 진설은 육법공양을 원용했습니다. 올릴 것은 향기로운 향, 밝은 등불, 아름다운 꽃, 맛있는 과일, 농부의 땀의 결실인 쌀로 빚은 떡, 그리고 감로의 차입니다.
- 다음은 초헌례가 있겠습니다. 초헌관 식품응용공학 주임교수 앞으로 나와 주십시오.
- 축관인 오상룡 지도교수 고축 해 주십시오.
- 이어서 아헌례가 있겠습니다. 아헌관은 식품응용공학 학생회장이십니다.
- 이어서 종헌례 및 참석하신 내빈이 나오셔서 차를 올리겠습니다.
- 이어서 차무과정 5기생 전원이 땅을 다지고 오늘 고유차례를 축하하는 춤으로 ‘김종수류 소고춤’을 보여주겠습니다.
- 이것으로 고유차례 의식은 모두 마치고 잠시 후, 식품응용공학 전공의 강의실과 연구실이 있는 농생대 2호관 4층에서 음복 및 두레차회가 있겠습니다. 평생교육원 차도과정 16기생이 각기 다른 5종의 차와 차도구로 들차회 형태로 진행하려 합니다. 모두 참여하여 차 한 잔 나눔의 여유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이전移轉 고유차례告由茶禮 축문祝文과 다게茶偈
유세차維歲次 단군기원 4346년 계사년 3월 병오삭 초이레 임자일에,
경북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식품공학부 식품응용공학전공 주임교수 연안 차인 ‘원섭’은 모든 참례자를 대표하여 천지신명께 감히 차를 올리고 엎드려 밝게 고하나이다.
식품공학과가 그간 날로 발전하여 많은 영재준걸들을 배출하며 학문적 역량을 키워올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천지신명의 한결같은 보우保佑에 힘입었기에 가능하였음을 깊이 깨닫고 전심全心으로 사례謝禮하나이다.
그간 상주에서 태동하여 성장하고 깊어져 온 본 학과가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대구 복현동캠퍼스로 이전하였습니다. 이 또한 천지신명의 음우陰佑에 의한 것으로 압니다. 이것이 식품대학과 같은 단과대학으로 더 큰 발전을 위한 새로운 토대가 되어, 구만 리 장천을 비상하는 대붕大鵬의 날개짓이 되도록 끝없이 도와주시어, 만사가 순조롭고 동량재棟梁材의 산실이 되어, 식품공학의 발전이 이 사회와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보람을 얻게 하여 주소서.
이에 오늘 길신吉辰을 가려 우리 모두의 정성으로 마련한 감로차甘露茶와 선열식禪悅食을 올리며 아뢰어 삼가 고유의 예를 거행하나이다. 이를 굽어 살피소서.
상향尙饗.
청정명차약淸淨茗茶藥
능제병혼침能除病昏沈
유기옹호중唯冀擁護衆
원수애납수願垂哀納受
원수애납수願垂哀納受
원수자비애납수願垂慈悲哀納受
<각주>
1) 오상룡, 『차도학茶道學』, pp. 196-202, 국립 상주대학교 출판부(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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