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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불교에 근거한 세계문화의 방향성 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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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란  /  2022 년 11 월 [통권 제115호]  /     /  작성일22-11-07 09:29  /   조회1,587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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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중국의 불교학자들 23 | 양수명梁漱溟 1893-1988 ②

 

19세기 말 이래 서양의 물리적 침략과 서양문화에 충격을 받았던 지식인들은 이 위기가 주로 문화적 위기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고 문화적 변혁으로 이를 극복하고자 시도하였다. 이것이 5·4 신문화운동의 동력이었다. 

 

5·4 시기 ‘문화적 위기’의 문제 

 

양수명梁漱溟(1893년~1988년) 역시 중국의 위기를 문화의 위기로 규정하고, 문화의 문제를 철학의 범주로 끌어들여 해법을 찾고자 하였다. 그의 『동서문화와 그 철학』(1921)은 바로 문화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과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의 산물이었다. 실제로 양수명은 동양 문화에 대한 강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책임감은 마치 장태염이 “내가 죽으면 중국의 문화는 없어지고 만다.”고 한 자부심에 비견할 만한 것이었다.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가 죽으면 천지의 빛이 변할 것이고 역사의 궤도가 바뀔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평생 중국문화의 계승자로서의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다. 

 

사진 1. 5·4 신문화운동에 참여한 북경대 교수들. 

 

한편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직후 유럽에는 문명 파산이라는 비관적인 분위기가 만연되어 있었다. 양계초는 『구유심영록』에서 미국의 유명한 신문기자와 대화한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다. 사이몬이라는 그 기자가 “당신은 중국으로 돌아가서 무슨 일을 할 작정인가요? 서양문명을 가지고 돌아가려고 하나요?”라고 묻자, 양계초는 “그야 당연하지요.”라고 대답하였다. 

사진 2. 양수명의 『동서문화의 철학』 한글 번역서. 

 

그러자 그 기자는 한숨을 내쉬면서 “아아, 불쌍하네요. 서양문명은 이미 파산했는데요.”라고 말했고, 양계초는 그에게 “당신은 미국으로 돌아가서 무슨 일을 하려고요?”라고 물었다. 그는 “나는 돌아가서 대문을 걸어 잠그고 당신들이 중국 문명을 가져다가 우리를 구해 주기를 그냥 기다리겠소.”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세계대전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인생관에 변화가 일어나고 철학이 흥성하고 종교가 부활하는 결과가 되었다는 결론이다. 이 같은 유럽문명의 비관적 분위기는 당시 중국의 지식인들에게 호소력 있게 다가왔다. 

 

사진 3. 양수명梁漱溟(1893년~1988년). 

 

양수명 역시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에 영향을 받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일생을 지배한 가장 중요한 문제가 인생 문제와 중국 문제라고 하였는데, 그에게 중국 문제는 문화 문제로 귀착되고, 이것이 동서문화를 중심으로 한 당시 지식인들의 논쟁인 동서문화 논쟁으로 이어졌다.  

 

사진 4. 제1차 세계대전. 

 

중국이 문화적 출로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가 당시 가장 긴박한 문제라고 파악하였기 때문이다. 당시에 그는 “새로운 길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동양문화는 종교·형이상학과 함께 문화의 화석이 되어버릴 것.”이라는 문화적 위기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중국인은 중국 문화를 뿌리째 버릴 수 있는가? 다른 민족에게는 동서문화의 문제가 먼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매우 급박한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인류 문화의 3가지 노선

 

양수명은 서양문화와 중국문화를 비교하여 중국이 서양에 미치지 못하는 세 가지 문화적 특징을 들었다. 첫째, 물질문명의 측면에서 서양문화의 자연 정복은 중국에 존재하지 않으며 서양에 미치지 못한다. 둘째, 학술사상의 측면에서 중국에는 과학적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셋째, 사회생활에서 중국에는 서양문화의 ‘민주주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심으로 자처해 온 중국문화가 서양문화의 도전 앞에 패배하여 주변으로 밀려났음을 깨닫고, 현실적으로 서양문화의 우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과거 중국은 훌륭한 성취를 이루었으므로 “중국문화의 정신과 그 우월한 점을 지적할 수 있다.”고 결론을 맺는다.  

 

사진 5. 독일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1788년~1860년). 

 사진 6.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1859년~1941년).

 

양수명은 서양철학, 그중에서도 쇼펜하우어(1788~1860)의 ‘생의 맹목적 의지(blinder Wille zum Leben)’와 베르그송(1859~1941)의 ‘생명의 약동(élan vitale)’ 개념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 영향 하에서 양수명은 문화를 탄생시키는 근본 원인을 ‘의욕(will)’으로 보고, 그 의욕이 표출되는 방향에 따라 문화가 각기 달라진다는 명제를 세웠다. 이러한 문화론에서 ‘의욕’은 우주와 생명의 존재와 그 본질을 설명하는 핵심 개념으로, 정신적 노력, 추세, 동기, 또는 초월적 실체를 의미한다. 이 의욕의 성질과 지향은 인생의 태도를 의미하는 동시에 인류 전체 문명의 노선과 방향을 표현하고 있다고 보았다.

 

양수명은 이러한 의욕이 표출되는 방향에 따라서 세계와 인류의 생활은 3가지 노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첫째는 자신이 바라는 것을 추구하고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전진적인 추구 방법’, 둘째는 문제에 부딪혔을 때 해결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변환, 조화, 조절하는 방법’, 셋째는 문제에 부딪히면 욕구를 근본적으로 취소하려 하는 ‘뒤로 물러서는 추구’이다. 그는 문화가 이 세 가지 서로 다른 ‘노선[路向]’에 근거한다고 보았다. “생활양식의 최초의 근본 원인인 의욕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분출되어 다른 모습으로 발휘되었기에 문화마다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한 문화의 근본을 탐구하려면, 그 문화의 근원인 의욕을 고찰하여 그 문화의 방향이 다른 문화와 어떻게 다른지 파악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유식불교, 동서문화 해석의 인식론적 기초

 

나아가 양수명은 유식불교 사상을 수용하여 동서문화를 해석하는 인식론적 기초로 삼았다. 그가 보기에 문화는 한 민족의 생활양식이며, 또 그 생활양식은 ‘의욕’이 분출되어 나온 모습이다. “문화란 무엇인가? 한 민족의 생활양식일 뿐이다. 생활은 또 무엇인가? 생활은 바로 다함이 없는 의욕(will)과 그것의 부단한 충족과 불충족일 뿐이다.” 그는 이러한 시각에서 베르그송의 ‘직각直覺’ 개념을 활용하여 유식불교를 재해석하고 서양·중국·인도 세 문화를 비교 고찰하였다. 

 

사진 7. 『양수명 방담록』(2017). 
 

유식불교 용어인 현량現量, 비량比量, 비량非量을 사용하여 인식 과정을 설명하면서, 인식은 현량現量(감각)과 비량比量(구별과 종합)만으로는 부족하고 중간 역할로서 비량非量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 ‘비량非量’을 베르그송의 ‘직각直覺’(직관)으로 바꾸어놓고, 이 직각 개념을 활용하여 서양·중국·인도의 세 문화를 비교하였던 것이다. 이는 서양철학 개념을 활용하여 유식불교 인식론의 범위를 더 확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서양인의 생활은 직각이 이지理智를 운용하고, 중국인의 생활은 이지가 직각을 운용하며, 인도인의 생활은 이지가 현량現量, 즉 감각을 운용한다.”고 보는 것이 그의 동서문화론의 핵심이다. 여기에서 서양인과 중국인의 생활을 직각과 이지로 구분하고 있는 것은 창의적이며 흥미롭다.

 

양수명의 설명에 의하면, 서양문화는 생각마다 ‘자아’를 인식하여 전진적으로 추구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 ‘자아’에 대한 인식은 감각이나 이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직각으로 얻은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서양인의 생활에서 직각은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이때 사용하는 도구가 이지이므로, 서양인의 생활은 직각이 이지를 운용한다고 말한 것이다.

 

반면에 중국문화는 역사의 이른 시기부터 매우 높은 수준의 문화에 도달하여 성인이 이지로 직각을 운용하는 생활로 나갔으므로, 이지가 직각을 운용한다고 한 것이다. 이를 통해 그는 중국문화가 서양문화보다 더 우월한 문화 단계임을 논증하려 하였다. 또한 미래세계에서 사람들의 생활이 성공하려면 이지로 직각을 조절하는 방식이 되어야 하므로, 중국문화가 자연스럽게 부흥할 것이라는 논리가 성립하게 된다.

 

“동양인의 철학적 연구는 다 생명을 추구하는 것이고, 서양인은 단지 지식을 획득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제 모두 생명을 추구하는 길로 들어섰다.”

 

중국문화의 가치 재정립 

 

양수명은 동서문화 문제에 천착하여 ‘문화의 방향성(문화향로文化向路)’에 따라 인류 문화를 세 가지 방향으로 정립하였고, 미래 세계문화의 방향이 중국문화가 될 것임을 주장하였던 것이다. 이는 위기에 처한 중국문화의 정체성 확립이 시급하다고 보고, 중국문화의 가치를 학술적으로 재정립하려고 하였던 의도였다. 

 

사진 8. 『양수명전』(2019). 

 

양수명의 이러한 동서문화론에 대해서는 당시에도 ‘주관적 편견’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특히 세 가지 문화가 순차적으로 발전하여 인도문화가 인류의 귀속이 된다는 말은 “불교에 근거하여 서양의 방향과 중국의 방향을 평론한 것이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가 표면적으로 유학을 내세우고 있지만 인식론적 근거를 유식불교에 두고 있고, 세계문화가 제1로향→ 제2로향→ 제3로향으로 나아가 결국 인도문화로 귀결된다는 것은 불교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임을 지적한 것이다. 제1로향은 고대 서양과 근세의 부흥에 해당하고, 제2로향은 고대 중국과 가까운 미래의 부흥, 제3로향은 고대 인도와 먼 미래의 부흥을 가리킨다고 보았다. 지금은 근대에서 가장 가까운 미래로 넘어가는 과도기이므로, 중국문화를 발전시켜야 할 시기라는 것이다. 

 

사진 9. 『양수명 전집』. 

 

한편 그는 서양 근대 생철학의 흥기를 보고 서양문화 전환의 징후를 포착하면서, 그것이 중국문화의 방향과 일치하는 것으로 판단하였다. 경제 체제 면에서도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변화 역시 서양문화 전환의 징후로 포착하였다. 이러한 양수명의 문화론은 객관적, 합리적으로 보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지만, 중국문화의 가치를 재정립하려는 시대적 고민에서 나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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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란
철학박사. 현재 고려대학교 강의교수. 고려대학교 철학과 석·박사 졸업. 같은 대학 철학과에서 강의, 동국대 불교학술원 HK연구초빙교수를 지냈다. 지곡서당 한문연수과정 수료. 조계종 불학연구소 전문연구원 역임. 『웅십력 철학사상 연구』, 『신유식론』, 『원효의 대승기신론 소·별기』 등 다수의 저서 및 번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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