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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수]
사향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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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성스님  /  2022 년 11 월 [통권 제115호]  /     /  작성일22-11-07 09:42  /   조회1,683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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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향사과四向四果를 사쌍팔배四雙八輩라고도 하는데, 수행의 네 단계를 행도行道(paṭipanna)와 과위果位(phala)로 구분한 것이다. 행도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수행을 말하고, 과위는 수행의 결과로 얻게 되는 지위를 말한다. 이른바 수다원향須陀洹向(sotāpatti-paṭipannaka), 수다원과須陀洹果(sotāpanna), 사다함향斯多含向(sakadāgāmi-paṭipannaka), 사다함과斯多含果(sakadāgāmin), 아나함향阿那含向(anāgāmi-paṭipannaka), 아나함과阿那含果(anāgāmin), 아라한향阿羅漢向(arahatta-paṭipannaka), 아라한과阿羅漢果(arahat)이다. (『망월불교대사전』 제2권, pp.1770c-1771a) 

 

사향사과의 바른 표기

 

『망월불교대사전』의 빨리어 표기는 부정확하다. 대표적인 예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수행을 ‘빠띠빤나까(paṭipannaka)’로 표기한 것은 어색하다. 빨리어 빠띠빤나(paṭipanna)는 ‘길을 따라가는 것[行道]’, ‘길을 향하는 것[向道]’이라는 뜻이고, ‘빠띠빤나까(paṭipannaka)’는 ‘길을 향해 나아가는 자[向道者]’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은 빠띠빤나(paṭipanna) 대신, 수행의 길은 ‘막가(magga, 道)’로 표기하고, 수행의 결과는 ‘팔라(phala)’로 표기한다.

 

이를테면 예류도預流道(sotāpatti-magga), 예류과預流果(sotāpatti-phala), 일래도一來道(sakadāgāmi-magga), 일래과一來果(sakadāgāmi-phala), 불환도不還道(anāgāmi-magga), 불환과不還果(anāgāmi-phala), 아라한도阿羅漢道(arahatta-magga), 아라한과阿羅漢果(arahatta-phala)이다.

 

초기불교와 상좌부에서는 수행의 결과를 네 가지 단계로 구분했다. 네 단계란 예류預流(sotāpanna), 일래一來(sakadāgāmi), 불환不還(anāgāmi), 아라한阿羅漢(arahant)이다. 초기불교에서는 네 단계 중 어느 하나에 속한 사람을 ‘성스러운 사람(ariya-puggala)’, 그 공동체를 ‘성스러운 승가(ariya-saṅgha)’라고 부른다. 「합송경(Saṅgīti-sutta)」(DN33)에서 붓다는 “예류과, 일래과, 불환과, 아라한과는 네 가지 사문의 결실(sāmañña-phala).”(DN.Ⅲ.227)이라고 예찬했다.

 

초기불교에서는 열 가지 족쇄(saṃyojana)를 얼마나 끊었느냐에 따라 예류자, 일래자, 불환자, 아라한으로 구분한다. 수행을 가로막는 열 가지 족쇄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五下分結]와 다섯 가지 높은 단계의 족쇄[五上分結]로 이루어져 있다.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란 ①유신견有身見(sakkāya-diṭṭhi), ②계금취견戒禁取見(sīlabbata-parāmāsa), ③의심疑心(vicikicchā), ④감각적 욕망(愛欲, kāmacchanda), ⑤성냄(瞋恚, byāpāda)이다. 다섯 가지 높은 단계의 족쇄란 ⑥색계에 대한 탐욕(色界欲, rūparāga), ⑦무색계에 대한 탐욕(無色界欲, arūparāga), ⑧자만自慢(māna), ⑨들뜸(掉擧, ddhacca), ⑩무명無明(avijjā)이다.(AN.Ⅴ.17)

 

네 가지 성자의 흐름

 

첫째, 예류預流(sotāpanna)란 성자의 흐름(ariya-sota)에 들어섰다는 뜻이다. 흐름이란 팔정도의 수행에 들어갔다는 뜻이다. 이른바 성인의 무리에 합류한 사람을 말한다. 이처럼 성자의 반열에 처음으로 들어갔다고 해서 예류預流·입류入流라고 한다. 예류자란 열 가지 족쇄 가운데 유신견, 계금취견, 의심의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끊은 성자라는 뜻이다. 유신견이란 오온五蘊에 불변하는 자아나 영혼이 있다고 믿는 잘못된 견해이다. 계금취견이란 잘못된 계율과 의례 의식에 관한 잘못된 견해이다. 의심이란 불·법·승·계·연기법 등에 대한 회의적인 의심을 말한다. 이 경지에 도달한 단계를 예류과預流果 혹은 수다원과須陀洹果라고 한다.

 

「합송경」(DN33)에서는 예류도를 얻기 위한 구성요소로 네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즉 “바른 사람을 섬김, 바른 법을 경청함, 지혜로운 주의,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음”(DN.Ⅲ.227)이다. 여기서 ‘지혜로운 주의(如理作意, yoniso manasikāra)’란 무상無常 등을 통해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예류과를 얻기 위한 구성요소는 불佛·법法·승僧·계戒에 대한 무너지지 않는 확고한 믿음을 확립해야 한다.(DN.Ⅲ.227)

 

둘째, 일래一來(sakadāgāmi)란 ‘한 번 돌아옴’이라는 뜻인데, 사다함斯陀含이라고 음역하기도 한다. 예류도에서 끊은 세 가지에 두 가지를 추가한 감각적 욕망과 성냄의 두 가지 족쇄가 아주 엷어진 성자를 말한다. 그러나 이 성자는 그 번뇌를 완전히 끊지 못했기 때문에, 한 번 천상의 경지에 이르렀다가 다시 인간계에 이르러 완전한 열반을 성취한다고 하여 ‘일래’라고 한다. 이 경지에 도달한 단계를 일래과一來果 혹은 사다함과斯陀含果라고 한다.

 

셋째, 불환不還(anāgāmi)이란 ‘돌아오지 않음’이라는 뜻인데, 아나함阿那含이라고 음역하기도 한다. 불환자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가 완전히 다 끊어진 성자이다. 이 성자는 미래에 색계·무색계의 경지에 이르고 다시 욕계로 되돌아오지 않는다고 하여 불환不還이라 한다. 이 경지에 도달한 단계를 불환과不還果 혹은 아나함과阿那含果라고 한다.

 

넷째, 아라한阿羅漢(arahan)이란 열 가지 모든 족쇄를 다 제거해 버려 더 이상 태어남이 없어 윤회하지 않는 성자를 말한다. 아라한은 욕계·색계·무색계의 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이기에 ‘공양받을 만한 분’이라는 뜻으로 ‘응공應供’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이 경지에 도달한 단계를 아라한과阿羅漢果라고 한다.

 

생사에 떠돌지만 생사에 머무르지 않는 사람 

 

『증일아함경』 제39권에 “생사에 떠돌지만, 생사에 머무르지 않는 여덟 종류의 사람이 있다. 어떤 것이 그 여덟 종류의 사람인가? 수다원으로 나아가는 자, 수다원을 얻은 자, 사다함으로 나아가는 자, 사다함을 얻은 자, 아나함으로 나아가는 자, 아나함을 얻은 자, 아라한으로 나아가는 자, 아라한을 얻은 자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일러 ‘여덟 종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생사에 떠돌지만, 생사에 머무르지는 않는다’라고 한다.”(T2, 764c, “有八種之人, 流轉生死, 不住生死. 云何為八? 趣須陀洹, 得須陀洹, 趣斯陀含, 得斯陀含, 趣阿那含, 得阿那含, 趣阿羅漢, 得阿羅漢. 是謂, 比丘! 有此八人流轉生死, 不住生死.”)

 

초기경전에서는 ‘법을 따르고 법으로 향하는 것[法次法向]’을 강조한다. 『잡아함경』 제1권 제27경 「향법경向法經」에서 붓다는 “비구여, 색色에 대해서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탐욕을 떠나며, 번뇌를 완전히 없애는 곳을 향하면, 이것을 이름하여 법을 따르고 법으로 향하는 것이라 한다. 이처럼 수受·상想·행行·식識에 대해서도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탐욕을 떠나며, 번뇌를 완전히 없애는 곳으로 향하면, 이것을 이름하여 법을 따르고 법으로 향하는 것이라 한다.”(T2, 5c)라고 했다.

 

이른바 오온에 대한 염오厭惡(nibbidā), 이욕離欲(virāga), 번뇌의 소멸消滅(nirodha)이야말로 ‘법을 따르고 법으로 향하는 것[法次法向]’이라는 뜻이다. ‘법차법향’의 법차法次란 법의 순서를 말하는데, 마치 십이연기十二緣起에 선후의 순서가 있듯이 모든 법[諸法]에는 순서가 있어서 법차라고 한다. 법향法向이란 법의 나아가는 방향[趣向]을 말하는데, 곧 열반법涅槃法으로 향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유위법有爲法은 생사의 법으로써 생사를 향한다. 반면 열반법은 생사를 떠나기 위해 열반을 향해 매진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법차法次와 법향法向을 합하면, 법의 선후 순서에 따라 열반법을 향해 나아간다는 뜻이다.

 

한역의 ‘법차법향’은 빨리어 ‘담마누담마빠띠빤나(dhammānudhamma-paṭipanna)를 번역한 것인데, ‘법을 따라 법을 실천하는’이라는 뜻이다. 주석서에서는 ‘담마누담마빠띠빤나’를 “아홉 가지 출세간법들과 일치하는 법인 예비단계의 길[道, paṭipadā]을 실천한다.”라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아홉 가지 출세간법이란 네 가지 도道와 네 가지 과果에 열반을 추가한 것이다. 열반을 제외한 네 가지 도道, 혹은 향向과 네 가지 과를 ‘사향사과四向四果’ 혹은 ‘사쌍팔배四雙八輩’라고 부른다. 이것은 성자의 수행단계를 네 가지로 나눈 것이다. 부파불교 시대에는 수행의 단계가 더욱 정교하게 체계화되었다.

 

상좌부 수행론과 점수

 

이처럼 수행의 결과인 아라한과는 단번에 실현할 수 없고, 단계적으로 닦아 마지막으로 아라한과를 얻게 된다고 한다. 즉 예류향에서부터 아라한과까지 여덟 단계를 반드시 거치게 된다는 것이다. 분별설부分別說部(Sthaviravāda)와 상좌부上座部(Theravāda)에서는 점수漸修의 전통을 굳게 지키고 있다.

 

그러나 대중부大衆部(Mahāsāṇ̇ghika)에서는 ‘일찰나심一刹那心(ekakṣaṇa-citt)’, 즉 “붓다는 한순간에 모든 것을 안다.”라는 교리를 갖고 있었다. 이러한 사상의 영향으로 대승불교의 선종에서는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 즉 ‘한 번 뛰어 여래如來의 경지에 바로 들어간다’라고 주장한다. 초기불교의 사향사과는 점교漸敎에 해당하고, 선종의 종지는 돈교頓敎에 해당한다. 영가永嘉의 『증도가證道歌』에 따르면, 선문禪門의 수행은 계단을 올라가듯 점차로 올라가는 점교의 문[漸門]이 아니고, 단번에 뛰어넘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돈교의 문[頓門]이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수행에 관한 돈오·점수의 논쟁은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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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성스님
스리랑카 팔리불교대학교에서 학사와 철학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에서 「삼법인설의 기원과 전개」라는 논문으로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국대학교 불교문화대학원 겸임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팔리문헌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샤카무니 붓다』, 『잡아함경 강의』 등 다수의 논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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