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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禪, 禪과 시]
나는 숨긴 게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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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택  /  2022 년 11 월 [통권 제115호]  /     /  작성일22-11-07 10:25  /   조회2,477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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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래 높은 산보다 낮은 산을 좋아했습니다. 팔공산보다는 염불암, 운문산보다는 사리암 정도가 좋았던 거죠. 이제 나이가 드니 높은 산은커녕 낮은 산도 힘에 부칠 때가 많습니다. 24명의 친구들과 함께 연호역 석가사 주차장에서 두리봉 산행길에 나섭니다.  

 

석가사 주차장에서 출발해서 두리봉 너머 산불초소까지 갑니다. 그냥 만촌동, 범어동, 황금동을 잇는 동네 뒷산입니다. 높은 산은 아니지만 끊어질 듯 이어지는 오솔길이 아름다운 둘레길입니다. 산 아래로 대륜고, 영남공고, 정화여고, 경북고가 차례로 나타났다 사라집니다.

 

나는 낮은 산이 좋다

 

좁은 산길에 우리 일행 24명이 길을 가득 메우면서 올라갑니다. 걷는다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평범한 일입니다. 비록 평범한 행위이지만 제대로 걷는 일은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일입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게 될 때 인생이란 또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되는 걸까요.

 

사진 1. 두리봉 둘레길 지도.

 

우리는 햇살 가득한 산등성이를 올라갑니다. 첫 번째 쉼터입니다. 옥수수, 청계란, 땅콩, 밤, 초콜릿, 약밥, 우롱차, 도라지차 등등을 나눕니다. 간식의 흐름이 대거 자연식, 건강식으로 바뀌었습니다. 누가 빼앗아 가지 않아도 젊은 시절의 호기는 세월이 다 빼앗아 가버렸습니다.

 

산굽이를 돌 때마다 새로운 아름다움이 나타나고 새로운 세계가 펼쳐집니다. 걸을 때마다 모든 근육의 움직임이 우리 내면의 훌륭한 요소를 끄집어냅니다. 산길을 걷는 일은 언제나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내면을 걷는 행위입니다. 아무리 낮은 산도 우리를 숭고한 곳으로 끌어올려 줍니다. 

 

사진 2. 쉼터에서 간식을 나누며.

 

산길 곳곳에 아름다운 보라색 꽃이 길섶을 수놓듯 피었습니다. 이게 무슨 꽃인지 혹시 아시겠습니까? 스마트렌즈로 찍어보니 꽃향유로군요. 잎사귀를 씹으면 향긋한 향이 있다고 하는데 그걸 그때는 몰랐습니다. 단체로 산행을 하면 스마트렌즈도 사용하기 어렵습니다. 사진 찍고 검색하고 하다 보면 순식간에 뒤로 쳐져서 폐를 끼치게 됩니다. 무더기로 핀 꽃향유가 보석처럼 빛납니다. 산행은 항상 아름다움의 탐구이고, 또 산은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가르쳐 줍니다. 나는 우연히 만나고 또 만난 꽃향유를 소홀하게 지나치지는 않았습니다. 꽃향유는 활짝 피어 아무것도 숨긴 것이 없습니다.

 

나는 숨긴 게 없습니다

 

아무것도 숨긴 게 없는 것을 들여다보는 데는 항상 놀라움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근원을 들여다보는 길목에 있는 놀라움 같은 것입니다. 그것을 무엇이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그 놀라움이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순간이 있습니다. 대자연은 한 송이 꽃이라 할지라도 언제나 숨김없이 스스로를 활짝 드러냅니다.

 

대략 천 년쯤 전, 송나라에 황정견(1045~1105)이라는 시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선종의 영향을 깊이 받은 사람인데 저명한 선사인 법수, 조신, 유청, 오신 등과 왕래하면서 많은 일화를 남겼습니다. 그가 회당선사(1025~1100)와 나누었던 아름다운 대화가 전해 옵니다.

 

사진 3. 산비탈을 아름답게 수놓은 꽃향유.

 

처음에 노직魯直(황정견)이 회당선사에게 나아가 도를 물었더니. 선사가 말하기를, 『논어』에 “너희들은 내가 무엇을 숨긴다고 하느냐, 나는 숨기는 것이 없다.”라고 했는데, 공은 평소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라고 하였다. 노직이 해석을 하였더니 선사는 “아니올시다.”

라고 하며 미혹과 혼란이 끝이 없었다.

하루는 회당선사를 모시고 산행山行을 하였는데 때는 나무가 무성할 때였다.

선사 : 나무 향기가 납니까?

노직 : 예, 납니다.

선사 : 나는 숨긴 게 없습니다.

노직이 확 풀리면서 깨닫고 예를 갖추었다.(주1)

 

회당선사가 한 “나는 숨긴 게 없습니다.”라는 말을 듣고 황정견이 깨달은 것은 무엇일까요?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확실치 않지만, 아마도 그 깨달음은 궁극의 실재에 대한 직접적인 대면對面이었을 것입니다. 깨달음의 순간에는 모든 그릇되고 헛된 것들로부터의 해방감이 있게 되며, 결국 잘못된 개념화로 인해 파생된 모든 고통과 불안에 대한 극복이 있게 됩니다. 일단 우리가 ‘실재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깨닫게 되면, 어떠한 의혹도 불합리도 모순도 존재하지 않으며, 당혹이나 불안 또한 존재하지 않습니다. 

석가모니도 여든 살이 되었을 때 생전에 자신이 가르쳐 주지 않고 숨긴 것은 없다는 말을 했습니다. 

 

사진 4. 아무것도 숨긴 게 없는 산길.

 

“아난다여! 비구들은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느냐? 아난다여! 나는 안과 밖이 다르지 않은 가르침을 설하였느니라. 아난다여! 여래의 가르침에는 중요한 것은 비밀로 한다는 ‘스승의 주먹[師拳]’이라는 것은 없느니라.”(주2)

 

석가모니(B.C.560?~ B.C.480?)와 공자(B.C.551~B.C.479)가 거의 비슷한 시기에 거의 비슷한 말을 했다는 것은 참으로 기이합니다. 그 시절 제자들은 스승이 뭔가를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윌리엄 제임스(1842~1910)에 의하면 우리가 진리를 향해 적어도 중간까지라도 나가지 않은 한, 그 진리가 우리에게 감춰진 채로 있는 영역들이 있다고 합니다.(주3) ‘감춰진 채로 있는 영역’으로 말미암아 제자들은 스승이 뭔가를 숨긴다고 의심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 일화는 배우는 사람들이 스승에 대해 갖는 영원한 의심을 반영합니다.

석가모니는 비전秘傳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당당하게 눈이 있는 자는 “와서 보라”고 숨김없이 설하였습니다.

 

와서 보라

 

“비구들이여, 이 법은 스스로 보아 알 수 있고. 시간이 걸리지 않고, 와서 보라는 것이고, 향상으로 인도하고, 지자들이 각자 알아야 하는 것이다.”(주4)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현실적으로 증명되는 것[現見]이며, 때를 격하지 않고 과보가 있는 것[不待時節]이며,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것[來見]이며, 잘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親近涅槃]이며, 지혜 있는 사람이라면 각기 알 수 있는 것[應自覺知]입니다. 예수(B.C.4?~A.D.30?)도 비슷한 맥락에서 “와서 보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주5)

 

석가모니와 예수가 이처럼 비슷한 맥락에서 똑같은 말을 했다는 것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와서 보라”는 것은 본래의 고유한 모습을 스스로 내보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 실체의 궁극적 본질, 다시 말해서 깨달은 사람이 살아가는 인간적 삶의 본질은 말로써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 보는 것에 의해서만 파악될 수 있는 것이란 의미도 숨어 있는 것입니다.

 

평범하고 편안한 산의 즐거움

 

2시간을 걸어 해발 194m에 있는 산불감시 초소까지 왔습니다. 두리봉(216m) 정상은 군사시설이라 올라갈 수 없어서 빙 둘러온 셈입니다. 뭐, 말이 났으니까 하는 말이지만 정상에 오르고자 하는 욕심은 원래 없었습니다. 그냥 이렇게 등산복을 차려 입는 것이 좋고, 산속에 있는 것이 좋을 뿐입니다.

 

나이가 들면 높은 산, 험한 산, 이름 있는 산보다 평범하고 편안한 산이 좋습니다. 호젓한 산길을 걸으면 저 멀리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듯합니다. 남 보기에 하찮아 보여도 육체를 움직이는 일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어쩌면 가장 큰 즐거움은 가장 평범한 산을 오르는 데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진 5. 이고들빼기. 사진 야사모.

 

산행길에 작고 아름다운 노란색 꽃도 많이 만났습니다. 샛노란 색깔이 뭔가 호소하는 듯합니다. 스마트렌즈로 찾아보니 아, 이 꽃이 바로 고들빼기 꽃이로군요. 옛날부터 고들빼기김치를 좋아했지만, 그 꽃을 본 것은 오늘이 처음입니다. 고들빼기는 봄나물인데 꽃은 왜 가을에 피는가 싶어 좀 더 검색해 봅니다. 음, 가을에 피는 이 꽃은 '이고들빼기'로군요. 이고들빼기 뿌리로도 김치를 담그는데 깔끔한 쓴맛에 향기까지 더해진다는군요. 언젠가 이고들빼기로 담근 김치를 먹어 보리라 마음속에 적어둡니다.

 

3시간 30분, 15,000보의 산행을 마치고 나니 뿌듯합니다. 탁 트인 전망은 볼 수 없었지만 정신적인 기쁨과 영혼의 자극은 받았습니다. 일상의 제약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다른 형태의 삶을 맛본 하루입니다. 산비탈 조용한 곳에서 꽃과 함께 한 시간은 산행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각주>

(주1) 彭際淸 編, 『居士傳』, 1775, 卷26 黃魯直條 : “初魯直詣晦堂禪師問道 晦堂曰 論語云 二三子以吾爲隱乎 吾無隱乎爾 公居常如何理論 魯直呈解 晦堂曰不是不是 魯直迷悶不已 一日侍晦堂山行時 木樨盛放 晦堂曰聞木樨香否 曰聞 晦堂曰吾無隱乎爾 魯直釋然 卽拜之.”

(주2) 『디가니까야』, 각묵스님 역, 초기불전연구원, 2006 : 16 「대반열반경」.

(주3) 찰스 테일러, 『현대 종교의 다양성』, 문예출판사, 2015.

(주4) 『맛지마니까야』 2, 대림스님 역, 초기불전연구원, 2012.

(주5) 『요한복음』 1:3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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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택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1976년 시). 전 대구시인협회 회장. 대구대학교 사범대 겸임교수, 전 영신중학교 교장.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저서로 『보물찾기』(시와시학사, 2000), 『납작바위』(시와반시사, 2012), 『글쓰기 노트』(집현전, 2018) 등이 있다.
jtsuh@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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