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문화의 장인을 찾아서]
나무, 부처님으로 다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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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리 / 2022 년 11 월 [통권 제115호] / / 작성일22-11-07 11:00 / 조회3,786회 / 댓글0건본문
불교목조각장 고윤학
작은 씨앗에서부터 새 생명으로 발아되어 태양과 토양, 온갖 자연의 힘으로 성장한 나무들은 저마다 각자 다른 삶을 살게 된다. 결이 곱고 치밀하게 자라 목재로써 가치가 좋으면 일찌감치 솜씨 좋은 목수의 손길을 통해 어느 댁의 든든한 기둥이 되기도 하고, 멋진 가구로 태어나기도 한다.
아낌없이 내어주는 나무
때로는 반듯한 바둑판이 되어 한가한 시간을 보내게 되기도 하고, 누군가의 고픈 배를 채워주는 시간을 함께 하는 밥상이 되기도 한다. 곧게 자라지 못한 나무들은 오히려 더 긴 시간을 살아내며 사람들과 세상풍파를 함께해서일까 어떤 나무는 그 수형樹形이 더욱 크고 아름다워지고 넓고 짙은 그늘을 제공하면서 정자목亭子木·풍치목風致木 등으로 애용되면서 사람들의 안식처가 된다(사진 1).
예로부터 마을입구를 지켜주는 오래된 느티나무·팽나무, 사찰과 향교에 늠름하게 서 있는 은행나무·소나무들이 그러하다. 사람들은 수백·수천년 이상을 살아낸 나무들을 신령스럽게 생각해 잎이 싹트는 모양에 따라 그 해 농사의 풍흉을 점쳤고, 나무가 밤에 울면 마을에 재앙이 온다고 믿기도 했다. 전염병이 돌면 나무에 가서 신심을 다해 기도 드리기도 하고, 자식이 없으면 치성 드려 자식을 얻을 수 있다고 믿어 신목神木이라 여기기도 하였다. 물론 이도저도 쓸모가 없어지면 아궁이에 넣어져 마지막까지 활활 불사르니 나무는 인간을 위해 뜨겁게 살다간다. 그 수많은 각양각색의 변신 중 부처님으로 다시 태어나는 나무 이야기를 들어보자(사진 2, 3).
사진 2. 조각을 위한 도구들(좌). 사진 3. 조각하는 장인의 손길(우).
불교목조각장 고윤학
나무를 깎고 다듬는 생활과 관련된 조각도 있지만 삼국시대에 불교가 들어온 이후 사찰 건축과 불상 조각을 중심으로 발전하여 현재 문화재로 지정, 관리되고 있을 정도로 불교목조각 작품들이 많다. 한평생 베어진 나무에 불교의 정서를 담아 새 생명을 불어넣는 데 매진하고 있는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29호 고윤학 불교목조각장을 만나보았다(사진 4).
충남 태안이 고향인 고윤학 장인은 이미 태어났을 때부터 나무와는 뗄 수 없는 숙명적인 관계였다. 목수였던 아버지 덕분에 나무 만지는 일은 자연스러웠고 일상이었다. 그는 6남매 중 나무 다루고 다듬는 일에 월등한 손재주를 타고 났다. 심부름처럼, 놀이처럼 시작했던 나무 작업은 어느덧 그의 생업이 되었고 평생이 되었다.
“학교에 다녀오면 아버지가 연장 손질을 하라고 했어요. 다른 형제들이 하면 마음에 드시지 않은지 별말씀이 없으신데, 저만큼은 칭찬을 유독 많이 해주셨죠. 담배도 곰방대에 피우던 시절이라 쌈지에서 담배 냄새 나는 돈을 꺼내 살며시 용돈으로 주시면 과자 사 먹고 그랬죠. 없는 시절에 엄청나게 귀하고 행복한 일인 거예요. 아버지가 끌 구멍이라고 그림을 그려주면 그걸 팠어요. 연필 선 밖으로 파면 구멍이 커지고, 연필 선 안으로 파면 구멍이 좁아져 빡빡해져 은근히 예민한 작업인데, 나는 그대로 곧잘 파냈지요. 그렇게 시간 날 때마다 아버지 일을 도와드리다가 자연스럽게 이 길을 온 것 같아요.”
1970년대 수공예품 수출이 한창 붐을 이룰 때 그는 고향을 떠나 아세아공예사, 토우공예사를 거쳐 1978년 서울공예사 석우일 선생을 만나게 된다. 석우일 선생은 당시 목재를 가공해서 일본으로 전량 수출하는 기업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고윤학 장인은 선생의 철저한 지도를 받으면서 그를 평생의 스승으로 모시게 된다. 그곳에서 처음 초를 치는 법을 배우고 창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지금의 반려자이며 불교목조각 장인의 길을 걷는 데 있어 든든한 조력자인 아내 김향자 씨를 만난다. 그의 아내 또한 나무 다듬는 일이 좋아 같은 길을 걷고 있기에 누구보다 일에 대해서 잘 이해해 주고 손발이 척척 맞으니 천생배필이 따로 없다.
“부처님 조성하는 것을 그곳에서 배웠어요. 초(밑그림)뜨고 하는 것에서부터 조각은 물론이고, 우리 은사님은 조각하는 사람들은 나무뿐 아니라 흙으로 뗐다 붙였다 하는 소조까지 할 줄 알아야 한다며 그것도 가르쳐 주셨죠. 선생님은 하나가 아닌 여러 개를 알려줘서 우리가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넓혀 주셨어요. 그 당시 한 집에 백 명씩 있던 조각하던 사람들은 다 도태되어 없어졌지만, 우리처럼 교육을 제대로 받은 사람들은 지금껏 맥을 유지하고 있는 거죠.”
나무장인, 나무를 선택하다
수많은 지역 중에서 고윤학 장인은 왜 강릉에 정착하게 되었을까? 그의 말에 의하면 단연 나무가 좋아서라고 한다. 나무가 중요한 재료인데 강원도 나무의 나뭇결은 다른 지방과 달리 그 운치와 경계가 달라 조각하는 맛도 다르다고 한다. 강원도 나무는 신기하리만치 손에 감겨 한번 빠져들면 끼니를 거르고 작품에 몰두하게 된다는데, 나무를 생업으로 하는 이에게 얼마나 매력적인 지역성인건가.
특히 강릉의 나무가 참 마음에 든다고 한다. 나무가 가지고 있는 기상, 힘, 정서가 특별하다고 한다. 나무가 좋아서 강릉에 정착한 고 장인은 불교목조각이다 보니 절 일을 많이 해야 해서 절에 가서 며칠씩 먹고 자며 생활하다 보니 타지에 와 외로워할 시간도 없었다고 한다. 경전을 보아야만 부처님 상호라든가 작품관련 정보가 나오기 때문에 불교에 관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작업 과정에서 스님들과 대화나 책을 통해 웬만한 불심 깊은 불자에 뒤지지 않게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그렇게 강원도의 불상과 사찰, 닫집(불단 위에 목조건물의 처마 구조물처럼 만든 조형물)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사실 불상을 조각하는 영역과 닫집을 만드는 영역은 소목과 대목이라는 큰 차이가 나서 소목하는 사람은 대목 일을 못 하고, 대목하는 사람은 소목 일을 못 하는 게 당연한 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고 목조각장은 어릴 때 대목이셨던 아버지 일을 한 경험이 있기에 양쪽 두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어 영역이 넓다. 절에서 살다시피 하며 몸으로 배우고 익혀 50여 년을 불교목조각이라는 외길을 걸은 결과 마침내 2016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사진 9).
<불상 제작과정>
1. 나무준비 및 밑그림 그리기
목불을 만드는 과정의 첫 단계는 나무 준비다. 불상을 만드는 나무로는 느티나무, 홍송, 침향목, 박달나무 등이 있는데 은행나무를 최고로 친다. 만들고자 하는 불상이 결정되면 밑그림을 그린다(사진 5).
2. 제작하기
- 걷목: 재목을 우선 크게 쳐내는 작업을 걷목이라 한다. 걷목 작업은 공정이 단순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조각상의 전체 형태를 결정짓는 중요한 과정이다.
- 속비우기: 걷목이 끝나면 균열 방지를 위해 불상의 속을 걷어낸 다음 접목한다. 확실하게 접합시키기 위해 아교와 어교를 쓴다.
- 조각: 걷목과 접목이 끝난 상태에서 실제 조각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이 조각 과정도 크게 다듬는 부분과 세부를 다듬는 부분의 두 경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때는 앞서는 자귀나 큰 칼보다는 더 다양하고 예리한 조각용의 칼들이 사용된다(사진 6, 7).
3. 완성
반년 동안 말리면서 수정할 부분을 수정보완하고, 옻칠이 제대로 먹히도록 하기 위한 바탕 작업으로 배접을 한 뒤 매끈하게 사포질을 해준다. 배접을 마친 불상에 전문가가 옻칠과 개금하고 눈동자를 그려 넣는 작업을 하면 완성된다(사진 8).
목불 조성에 최적의 목재는 은행나무
고윤학 장인은 경외의 대상인 부처님을 조성하는 데는 은행나무를 최고로 친다. 우리나라 은행나무를 사용하는 것은 기본이고 경상도에 들어갈 불상이면 경상도에서 자란 나무로, 경기도에 들어가는 불상이면 경기도에서 자란 나무로 조성해 주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다. 자라난 기후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그 지역에서 살아온 나무를 앉히는 게 맞다는 논리다. 하긴 남쪽에서 자란 나무를 북쪽에 가지고 가면 틀어지거나 변화할 가능성이 높을 것 같긴 하다. 그만큼 어떤 나무를 어디에 어디로 어떻게 쓸 것인지 예민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재료인 목재 고르는 일에서부터 깐깐하기 이를 데 없는 그의 손을 거쳐간 불상은 수도 없이 많다. 상원사 문수동자와 월정사 약왕보상좌상, 용연사와 현덕사의 불상을 비롯해 영동지역의 불상들은 거의 고윤학 장인의 손끝에서 빚어졌다. 불상은 제작하는 데 1년 정도 걸리고, 충분히 건조하는 기간만 최하 반년을 잡아야 하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다. 가뜩이나 새로운 사찰이 매년 생기는 것도 아니어서 제작은 한정적이다. 최근 그는 삼척 삼화사 수륙제 의식구 일체를 제작했다.
고윤학 장인에게 있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일까?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모두가 똑같이 귀하고 정성으로 빚은 부처님들이지만 그래도 특별하다면 수타사에 모신 부처님이라고 한다(사진 11). 수타사에서 평생 자란 은행나무를 수타사의 부처님으로 모시게 되었는데 그건 좀 의미가 남달랐다고 한다.
“수타사에서 생겨난 은행나무는 매일 그곳에서 부처님 경전 들으며 절밥 먹으며 자라다가 만년을 갈 부처가 된 거예요. 하! 나무로서 이 이상의 행운이 어디 있겠어요.” 수타사의 은행나무에 한 조각 한 조각 망치질로 비로소 부처님의 형상을 드러냈을 고윤학 목조각장의 두 손이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이리저리 상처 나고 거친 손등이 그간의 고단한 세월을 말해 준다(사진 12).
그의 작업장 마당에는 크고 작은 목재들이 쌓여 있다. 자연에서 와서 불전佛殿으로 돌아가는 나무의 일생이 제일 행복하지 않겠느냐는 장인의 맑은 미소가 편안해 보인다. 평생을 나무와 함께한 장인에게서 나무향이 배어난다. 그의 손에 상처가 많아질수록 고운 부처님이 탄생하고, 그가 빚어내는 부처님이 많아질수록 그는 더욱 부처님의 향기를 닮아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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