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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어쓴 선문정로]
오매일여와 아뢰야식의 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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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구  /  2022 년 11 월 [통권 제115호]  /     /  작성일22-11-07 11:34  /   조회3,155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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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시절, 나는 한동안 무협지의 세계에 빠져 지낸 적이 있다. 극단적 고행에 가까운 수련, 절대 비급의 습득, 신비한 영약의 복용, 압도적 무기의 발견, 전설적 스승의 가르침, 무술의 이치에 대한 우연하고도 갑작스러운 눈뜸 등은 그 성장기적 충동에 어떤 암시가 되기에 충분했다.  

 

성철스님의 화두 삼관三關

 

그러한 무협지에 하나의 공통된 전형이 있는데 바로 최고의 악당은 꼭 마지막에 등장한다는 배치이다. 그는 군소 악당과는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실력과 세력을 갖추고 장벽처럼 나타난다. 주인공은 스스로 갈고 닦은 최고의 실력을 가지고 최후의 결투에 임하지만 그것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절대적 포기라고 할까, 초월적 달관이라고 할까, 자기의 모든 것을 내려놓는 무장해제가 있고 나서야 최후의 승리자가 된다.

 

이런 쓸데없는 얘기를 하는 것은 오늘 살펴보고자 하는 성철스님의 오매일여론이 겨냥하는 아뢰야식이 꼭 최후의 악당과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성철스님은 진여와의 합일이 이루어진 수준을 점검하면서 화두참구의 심도와 지속성을 잣대로 제시하였다. 여기에는 세 가지의 차원이 제시된다. 첫째, 움직이거나 조용히 있거나 화두가 또렷하게 지속되는 상태가 있다. 이것을 성철스님은 동정일여動靜一如라고 했다. 다음으로 꿈을 꾸어도 화두가 또렷하게 지속되는 상태가 있다. 성철스님은 이것을 몽중일여夢中一如라고 부르면서 7지 보살의 경계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마지막으로 꿈이 없는 숙면 속에서도 화두가 또렷하다면 이것을 숙면일여熟眠一如라고 할 수 있으며 8지 자재보살의 경지라고 규정했다. 이중 동정일여라는 말은 어록이나 경전에 자주 보이지만 몽중일여나 숙면일여라는 말은 보이지 않는다. 성철스님이 창안한 용어인 것이다.

 

어째서 이런 용어를 창안한 것일까? 원래 선가에서는 몽중일여와 동일한 뜻으로 몽교일여夢覺一如라는 용어를 쓴다. 또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숙면일여의 의미가 담긴 오매일여寤寐一如라는 말도 자주 보인다. 완전히 같지는 않다고 한 것은 성철스님이 잠을 잘 때를 몽중시와 숙면시로 나누었기 때문이다. 원래 오매일여는 잠잘 때(몽중시, 숙면시)와 깨어 있을 때가 한결같다는 뜻을 함께 갖는다. 성철스님은 여기에서 몽중일여, 혹은 몽교일여의 차원을 별도로 독립시킨다. 그리하여 오매일여를 오직 숙면시의 항일함만을 가리키는 말로 한정한다. 스님이 이렇게 오매일여의 의미를 한정한 것은 화두의 지속성과 그 깊이의 질적 차이를 말하기 위해서이다.

 

성철스님에 의하면 동정일여나 몽중일여는 제6식 분별의식의 작용이 멈춘 무상정 삼매다. 이에 비해 숙면시에 한결같은 오매일여는 제8식 아뢰야식 차원의 멸진정 삼매다. 원래 무상정이나 멸진정이나 삼매가 지속되는 동안에 무념이 현전한다는 점에서 내용적으로 동일하다. 분별에 의한 갈등이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그러나 무상정의 무념은 제한적이다. 마치 돌로 풀을 눌러놓은 것 같은 상태라서 잠깐 방심하는 사이 독초의 밭이 복원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분별의식을 넘어선 차원을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설암스님은 이러한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매번 잠에 들어 꿈을 꾸거나, 생각하거나, 보거나, 듣는 일이 없어지는 자리가 되면 이때 상대되는 두 기둥이 세워져 의미로 이해되는 공안은 깨달아 알 수 있었지만, 은산철벽과 같이 길이 끊긴 것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측백나무를 보고 생사의 의혹이 끊어진 설암스님

 

설암스님은 ‘꿈이 없는 잠이 들면 상대되는 두 기둥이 세워져’ 숙면시에 여일하지 못한 상태에 있었다. 이 차원에서 의미로 이해되는 공안을 깨달아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의식이 작동하는 차원에서는 문제가 없었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은산철벽과 같이 길이 끊긴 자리는 알 수 없었다’고 했다. 의식을 벗어난 차원에서는 막막할 뿐이었다는 뜻이다. 성철스님이 비판하는 분별적 차원의 깨달음, 즉 해오解悟의 차원이었던 것이다. 

 

 

사진 1. 설아마조흠 선사

 

이러한 분별의식의 간섭을 완전히 벗어나야 분별의 굴레를 벗어나 자기 존재를 바꾸는 일이 일어난다. 이때 설암스님은 새로운 화두참구에 들어가 10년의 세월을 보낸다. 그러던 중 하루는 천목산天目山의 불전 앞을 거닐다가 오래된 측백나무 한 그루를 보고 문득 성찰이 일어난다. 그리하여 모든 분별의 경계가 무너져 진여에 계합하는 자리에 나아가게 된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 설암스님은 “그때까지 얻었던 모든 경계와 가슴에 막혔던 것들이 산산조각 흩어져 버리면서 마치 어두운 방에서 밝은 햇빛 아래로 나온 것과 같았고, 그때부터 생과 사에 대한 의혹이 없어졌다.”고 회고한다.

 

여기에 숙면일여를 성취했다는 직접적인 표현은 발견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후 설암스님이 숙면시의 오매일여를 가지고 수행자들을 점검한 것을 보면 생과 사에 대한 의혹이 사라지는 궁극의 깨달음을 얻기 전에 그것을 체험한 것이 분명하다. 고봉스님을 이끌 때도 그랬다.

 

사진 2. 고봉원묘 선사.

 

설암스님이 물으셨다. “낮에 활발할 때 여전히 주인공이 있는가?” 내가 대답하였다. “주인공이 있습니다.” 또 물으셨다. “잠에 들어 꿈을 꿀 때에도 주인공이 있는가?” 내가 대답하였다. “주인공이 있습니다.” 또 질문하셨다. “완전히 잠이 들었을 때 그렇게 꿈도 없고, 생각도 없고, 봄도 없고, 들음도 없을 때 주인공은 어디에 있는가?” 여기에 이르니 참으로 대답할 수 있는 말이 없고, 펼칠 수 있는 이치가 없었다.

 

성철스님의 삼관에 의한 점검과 완전히 겹치는 장면이다. 여기에서 ‘나’는 고봉스님이다. 고봉스님은 20살에 3년의 기한으로 참선을 시작한 뒤 치열한 수행을 거쳐 24살에 주체와 대상의 경계가 사라지는 견처를 얻었다. 스스로 기왕의 화두들을 점검해 보아도 틀림이 없는 자리였다. 그런데도 스승인 설암스님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다. 위 예문에 든 것과 같이 ‘꿈도 없는 숙면시에 주인공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에 막혔기 때문이다. 고봉스님은 이에 새롭게 공부를 시작하여 5년간 화두 속에서 살다가 도반의 목침이 떨어지는 소리에 깨달았다.

 

숙면시에 항일한 오매일여가 왜 그토록 중요한 것일까? 의식 차원의 삼매는 의식 차원의 깨달음을 이끈다. 그렇지만 우리를 흔드는 파도의 물결은 의식의 차원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잠재의식도 있고 무의식도 있다. 다만 성철스님은 제7식의 잠재의식을 분별의식의 범주에 포함하여 함께 다룬다. 그래서 성철스님에게 있어서 동정일여와 몽중일여는 분별의식의 범주라는 점에서 크게 같고[大同], 그 한결같음에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작게 다르다[小異].

 

모든 번뇌의 근원 아뢰야식

 

이에 비해 의식을 넘어선 숙면일여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무의식의 차원으로 규정할 수 있는 아뢰야식은 모든 번뇌의 원류에 해당한다. 아뢰야식의 차원에서 일어나는 분별의 작용은 미세하여 의식의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다. 의식의 차원에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존재를 지배하는 그것의 영향력은 막강하고 뿌리가 깊다. 이 아뢰야식, 더 정확히 말해 아뢰야식 최심층의 무명이야말로 만악의 원천이고 뿌리이다. 그런 점에서 아뢰야식이 말끔히 해결되어야 한다. 그것은 무협지의 주인공이 동굴 깊이 숨은 최후의 악당 두목을 무찌르는 일과 같다. 악당 두목을 해결하지 않는 한 그 분투는 끝날 수 없다. 그 최후의 결투가 벌어지는 현상이 숙면일여의 차원이다.

 

 

사진 3. 무협영화 고전 신용문객잔의 포스터

 

원칙적으로 보자면 깨어 있는 일상에서도 거친 분별 의식이 사라지면 부처님과 조사님이 제시한 자리를 보게 된다. 그 눈뜸은 궁극의 깨달음과 내용적으로 동일하다. 그렇기는 하지만 아는 일과 직접 그렇게 되는 일은 다르다. 이것을 동일시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박성배 같은 학자는 불교적 눈뜸을 깨달음(아는 일)과 깨침(존재가 바뀌는 일)으로 나누어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당장 꿈속의 일을 돌아보자. 이미 사라졌다고 생각되던 시비호오가 분연히 되살아나 눈뜨기 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 황금을 얻으면 기뻐하고 정든 사람과 헤어지면 슬프다. 표층 의식 차원의 눈뜸으로는 이것을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새롭게 화두를 들어 다시 심층의 공부에 들어가야 한다. 그리하여 몽중에도 밝은 화두가 지속되는 차원에 진입한다. 이 단계가 되면 의식의 레이더에 잡히는 망념이 없다. 그렇지만 악당 두목의 소문이 어디선가 들려오듯 미진한 것이 남아 있다. 무엇보다도 꿈 없는 숙면 중에 주재하는 주인공이 사라져 캄캄함에 빠져 버리는 일이 있다. 이 캄캄한 흑암의 굴속에서 도대체 무슨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지를 밝게 알아야 한다. 그래야 그 어두움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숙면시에도 밝은 화두가 지속되어야 한다는 오매일여의 주장이 제시되는 지점이다.

 

유식에서는 아뢰야식의 전환, 혹은 타파를 주장한다. 이 아뢰야식은 숙면의 상태까지 지배한다. 그러니까 숙면시에 밝은 관찰이 유지된다면 그것은 곧 아뢰야식의 극복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말이 된다. 아뢰야식의 전환이나 타파는 유식의 논리가 지향하는 궁극적 목적지에 해당한다. 또 그 전환이 일어나는 숙면일여는 선의 역사에서 보면 설암스님, 고봉스님, 대혜스님, 몽산스님 등은 물론 우리나라의 태고스님이나 나옹스님들이 두루 제시한 기준이다. 

 

오매일여론에 대한 비판

 

그런데 이러한 성철스님의 오매일여론에 대해 상당한 비판이 제기되곤 한다. 그것은 대체로 문헌적 근거가 박약하다는 주장, 실제로 구현될 수 있는 경계가 아니라는 주장으로 묶어질 수 있을 것 같다. 문헌적 근거가 박약하다는 주장은 성철스님의 편의적 문장 인용을 문제 삼는다. 전체적 맥락을 무시한 단장취의적 인용과 아전인수적 해석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성철스님의 문장 인용은 편의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맥락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 더 큰 맥락을 읽는 안목에 의한 것이다. 앞에 예로 든 설암스님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해당 문장만을 가지고 보자면 설암스님이 오매일여를 성취했다고 말했다는 증거를 콕 집어 말할 수 없다. 그렇지만 뒤이어 제시한 바, 고봉스님을 경책하는 문장을 함께 고려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설암스님이 깨닫기 전에 성취한 경계가 숙면시에 항일한 경계였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체험한 바를 가지고 제자들을 점검하고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태고스님이나 나옹스님의 경우는 숙면일여를 구체적인 점검항목으로 제시하고 있어서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편 오매일여가 실현 가능한 경계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의식의 차원을 넘는 정신활동이 어떻게 가능하냐는 것이다. 그래서 옛 선사들이 언급했던 오매일여는 불이론의 수사적 표현이었거나, 망상이었거나, 하나의 화두였거나, 공부의 방편이었거나, 심지어 거짓이었을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이다. 그런데 불이론의 원칙에 대한 수사적 표현이 따로 있고 실경계가 따로 있다는 말이 과연 성립 가능한 것일까? 일상시와 숙면시가 둘이 아님을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숙면시를 직접 확인하는 밝은 관찰이 없다면 그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생과 사가 일여하다고 말하려면 죽음의 차원을 직접 확인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

 

성철스님은 사경을 헤매는 병중에도 화두가 여일함을 확인하고 그 ‘똑같음’을 증언한 바 있다. 오매일여의 주장 역시 직접 숙면시를 확인하는 밝은 알아차림이 있었으므로 그 ‘똑같음’을 그토록 자신 있는 어투로 거듭 말한 것이라고 믿어야 할 근거가 충분하다. 요컨대 성철스님의 오매일여론은 이론적 근거가 분명하고 실천적 사례의 제시가 충분하다. 사족에 가깝지만 다른 문화권의 명상가인 켄 윌버의 다음과 같은 기술을 더하여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깨어 있는, 꿈꾸는, 그리고 잠자는 상태 모두를 관통하는 이 항상적 의식은 다년간의 명상 이후에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그러고 나서는 깊은 꿈 없는 잠의 상태로 들어가면서도 여전히 의식이 있다.

 

어떤가? 혹시 고개가 끄덕여지는가? 그렇지만 잠깐만! 이 모든 논의는 우리의(우리가) 성철스님의 오매일여론이 이끄는 공부 길을 따라 매진함으로써 성철스님을 따라잡을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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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구
현재 동의대학교 중국어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중앙도서관장을 맡고 있다. 교수로서 강의와 연구에 최대한 충실하고자 노력하는 한편 수행자로서의 본분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
kkkang@de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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