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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빛의 말씀]
덕산스님의 바리때[德山托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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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  /  2022 년 11 월 [통권 제115호]  /     /  작성일22-11-07 11:40  /   조회504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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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칙 

예부터 조사祖師 가운데 영웅英雄은 임제스님과 덕산스님이라고 모두 말하니, 임제스님과 덕산스님은 실로 천고千古에 큰 안목眼目이라 이는 총림叢林의 정론定論이다. 그중 덕산스님 밑에서 두 사람의 큰 제자가 나왔으니 암두스님과 설봉스님이다. 

 

덕산스님(주1)이 어느 날 공양供養이 늦어지자 손수 바리때를 들고 법당에 이르렀다.

공양주이던 설봉雪峰스님(주2)이 이것을 보고 “이 늙은이가 종도 치지 않고 북도 두드리지 않았는데 바리때는 들고 어디로 가는가?” 하니, 덕산스님은 머리를 푹 숙이고 곧장 방장方丈(주3)으로 돌아갔다.

설봉스님이 이 일을 암두스님(주4)에게 전하니 암두스님이 “보잘것없는 덕산이 말후구末後句도 모르는구나.” 하였다. 

 

덕산스님이 그 말을 듣고 암두스님을 불러 묻되 “네가 나를 긍정치 않느냐?” 하니, 암두스님이 은밀히 그 뜻을 말했다. 그 다음날 덕산스님이 법상에 올라 법문을 하는데 그전과 달랐다. 

암두스님이 손뼉을 치고 크게 웃으면서 “기쁘다, 늙은이가 말후구를 아는구나. 이후로는 천하 사람들이 어떻게 할 수 없으리라. 그러나 다만 삼 년뿐이로다.” 했는데, 과연 삼 년 후에 돌아가셨다.(주5)

이것이 종문宗門의 높고 깊은 법문인 덕산탁발화德山托鉢話이다. 이 공안公案에 네 가지 어려운 점이 있다.

 

첫째는 덕산 대조사가 어째서 설봉스님의 말 한마디에 머리를 숙이고 방장으로 돌아갔는가, 진실로 대답할 능력이 없었는가, 아니면 또 다른 뜻이 있었을까?

둘째는 덕산스님이 과연 말후구를 몰랐는가, 말후구도 모르고서 어떻게 대조사가 되었을까?

셋째는 은밀히 그 뜻을 말하였다 하니 무슨 말을 하였을까?

넷째는 덕산스님이 암두스님의 가르침에 의해 말후구를 알았으며, 또 그 수기授記를 받았을까? 그러면 암두스님이 덕산스님보다 몇 배나 훌륭하였단 말인가?

 

일생에 걸쳐 연구한 『금강경소초』를 불태운 덕산스님

 

덕산德山스님은 20세에 출가하여 처음에는 경과 율을 공부하였습니다. 처음 서촉西蜀에 있으면서 교리연구가 깊었으며 특히 『금강경』에 능통하여 세상에서 ‘주금강周金剛’이라고 칭송을 받았습니다. 스님의 속성俗姓이 주周씨였습니다. 당시 남방에서 교학을 무시하고 오직 ‘견성성불見性成佛’을 주장하는 선종의 무리가 있다는 말을 듣고 분개하여 평생에 심혈을 기울여 연구한 『금강경소초金剛經疏鈔』를 짊어지고 떠났습니다.

 

사진 1. 덕산선감德山宣鑑(782865) 선사.

 

가다가 점심때가 되어서 배가 고픈데 마침 길가에 한 노파가 떡을 팔고 있었습니다. 덕산스님이 그 노파에게 “점심을 먹으려고 하니 그 떡을 좀 주시오.” 하니, 그 노파가 “내 묻는 말에 대답하시면 떡을 드리지만 그렇지 못하면 떡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하여 덕산스님이 그러자고 하였습니다. 

노파가 물었습니다.

“지금 스님의 걸망 속에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금강경소초』가 들어 있소.”

“『금강경』에 ‘과거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 마음도 얻을 수 없고, 미래 마음도 얻을 수 없다’고 하는 말씀이 있는데, 스님은 지금 어느 마음에 점심을 하시려고 하십니까?”

‘점심點心 먹겠다’고 하는 말을 빌려 이렇게 교묘하게 질문했습니다. 이 돌연한 질문에 덕산스님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자기가 지금까지 그렇게도 『금강경』을 거꾸로 외우고 모로 외우고 모르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 떡장수 노파의 한마디에 모든 것이 다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래서 노파에게 물었습니다.

“이 근방에 큰스님이 어디 계십니까?” 

“이리로 가면 용담원龍潭院에 숭신崇信선사가 계십니다.”

점심도 먹지 못하고 곧 용담으로 숭신선사를 찾아갔습니다.

“오래 전부터 용담龍潭이라고 말을 들었더니 지금 와서 보니 용龍도 없고 못[潭]도 없구만요.” 하고 용담숭신 선사에게 말하니 숭신스님이 말했습니다. 

 

사진 2. 용담숭신龍潭崇信(??) 선사.

 

“참으로 자네가 용담에 왔구먼.”

그러자 또 주금강은 할 말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때부터 숭신스님 밑에서 공부를 하였는데, 하루는 밤이 깊도록 숭신스님 방에서 공부하다가 자기 방으로 돌아오려고 방문을 나서니 밖이 너무 어두워 방 안으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그러니 숭신스님이 초에 불을 켜서 주고 덕산스님이 받으려고 하자 곧 숭신스님이 촛불을 훅 불어 꺼 버렸습니다. 이때 덕산스님은 활연히 깨쳤습니다. 숭신스님께 절을 올리니 용담스님이 물었습니다.

“너는 어째서 나에게 절을 하느냐?”

“이제부터는 다시 천하 노화상들의 말을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그 다음날 덕산스님이 『금강경소초』를 법당 앞에서 불살라 버리며 말했습니다.

“모든 현변玄辯을 다하여도 마치 터럭 하나를 허공에 둔 것 같고, 세상의 추기樞機를 다한다 하여도 한 방울 물을 큰 바다에 던진 것 같다.” 

 

제자 암두에게 말후구를 듣다

 

그 후 후배들을 제접할 때는 누구든지 보이기만 하면 가서 몽둥이[棒]로 때려 주었습니다. 그래서 덕산스님이 법 쓰는 것을 비유하여 ‘비 오듯이 몽둥이로 때린다’고 평하였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대중방을 뒤져 책이란 책은 모조리 찾아내어 불살라 버리곤 하였습니다. 그 당시 중국의 두 가지 대표적 선풍을 ‘덕산방德山棒, 임제할臨濟喝’이라고 하는데 임제스님의 할과 함께 덕산스님의 몽둥이질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제자로는 설봉의존 스님, 암두전활 스님 등이 있습니다.

 

그런 덕산스님 회상에서 두 제자가 함께 계실 때였습니다. 한번은 공양시간이 늦어졌습니다. 하도 때가 늦어지니까 덕산스님이 ‘공양이 왜 이리 늦는가?’ 해서 바리때를 들고 식당으로 나아갔어요. 당시 설봉스님이 반두飯頭 즉 지금으로 말하자면 공양주 소임을 살고 있었습니다. 설봉스님이 그 모습을 보고는 “이 늙은이야, 아직 북도 두드리지 않고 종도 치지 않았는데 바리때는 무엇 하러 들고 나오느냐?” 하고 소리를 질렀어요. 그러자 천하의 덕산스님이 아무 말씀도 않고 머리를 푹 숙이고는 방장方丈으로 돌아갔습니다.

 

사진 3. 암두전활岩頭全奯(828887 선사.

 

설봉스님이 이 일을 암두스님에게 말했습니다. 암두스님이 그 말을 듣고는 “덕산인지 뭔지 조실에 앉아 있으면서 말후구末後句도 모르는구만.” 하였습니다. 말후구란 선종 최후의 관문입니다.

그 말이 덕산스님 귀에 전해졌어요. 그래 덕산스님이 암두를 불러 물었습니다.

“네가 나를 긍정치 않느냐?”

그러자 암두스님이 은밀히 덕산스님에게 그 뜻을 말씀드렸습니다. 그 다음날 덕산스님이 법상에 올라 법문을 하시는데 과연 그 전과는 달랐습니다. 그러자 암두스님이 손뼉을 치고 크게 웃으며 “기쁘다, 늙은이가 참으로 말후구를 알았구나. 이후로는 천하의 누구도 이 늙은이를 어떻게 할 수 없으리라. 그러나 삼 년 더는 못 살 것이다.”했는데, 과연 삼 년 뒤에 돌아가셨습니다.

 

이것이 그 천고에 유명한 종문宗門의 높고도 깊은 법문 덕산탁발화德山托鉢話입니다. 어떻게 보면 꼭 어린애들 장난 같지만 삼세제불과 역대 조사의 골수가 이 법문 속에 다 있습니다. 만약 누구든 이 법문 속에서 바로 눈을 뜬다면 천상천하天上天下에 임의자재任意自在해서 모든 살활殺活과 권실權實이 자유자재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덕산탁발화에 담긴 네 가지 문제

 

이 공안公案6)에 네 가지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덕산대조사德山大祖師가 어째서 설봉스님의 말 한마디에 머리를 숙이고 방장方丈으로 돌아갔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진실로 대답할 능력이 없었을까요, 아니면 또 다른 뜻이 있었을까요? 천고에 이름난 조사 덕산스님이 “종도 치지 않고 북도 치지 않았는데 바리때는 들고 어디 가는가?” 하는 설봉스님의 말 한마디에 어째서 한마디 말도 못하고 머리를 푹 숙인 채 방장으로 돌아갔을까요? 실지로 몰라서 그랬다면 덕산스님을 어떻게 천고에 뛰어난 대조사라 할 수 있겠습니까? 

 

둘째는 ‘덕산스님이 과연 말후구末後句를 몰랐을까, 말후구도 모르고서 어떻게 대조사가 되었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암두스님이 덕산스님을 두고 “말후구도 모른다.”고 했으니 과연 그 뜻이 어느 곳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덕산스님이 실지로 대답을 못하고 돌아갔으므로 “말후구도 모른다.”고 했는지, 아니면 그 뜻이 다른 곳에 있는지 그것도 의문이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은밀히 그 뜻을 말하였다 하니 무슨 말을 하였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비밀히 그 뜻을 말씀드렸다는데 무슨 말을 했는지는 전해 내려오지 않습니다. 과연 암두스님은 덕산스님에게 무슨 말을 하였을까요?

 

넷째는 ‘덕산스님이 암두스님의 가르침에 의해 말후구를 알았으며, 또 그 수기授記를 받았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암두스님이 덕산스님을 비밀히 만난 후 덕산스님의 법문이 예전과 달랐다 했고, 암두스님이 “기쁘다, 늙은이가 말후구를 알았구나. 이젠 천하의 누구도 이 늙은이를 어떻게 할 수 없으리라. 그러나 삼 년뿐이다.” 했는데 암두스님 예견대로 과연 삼 년 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럼 암두스님이 덕산스님보다 몇 배나 훌륭하였단 말인가요?

 

이것이 덕산탁발화의 네 가지 풀기 어려운 문제점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실지에 있어서 화두話頭 공부를 부지런히 해 확철히 깨쳐 정안을 바로 갖추기 전에는 절대로 모르는 것입니다. 혹 여러분도 이리도 생각해 보고 저리도 생각해 볼는지 모르지만 그런 사량복탁思量卜度으로는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자성을 바로 깨치기 전에는 덕산과 암두와 설봉, 세 분 말씀의 근본 뜻은 절대로 모릅니다.

- 성철스님의 『무엇이 너의 본래면목이냐』(2020)에서 발췌

 

<각주>

(주1) 덕산선감德山宣鑑(782∼865). 용담숭신龍潭崇信의 법제자로 청원靑原스님의 4세손. 

(주2) 설봉의존雪峰義存(823∼908). 덕산선감德山宣鑑의 법제자로 청원靑原스님의 5세손.

(주3) 총림의 최고 지도자 또는 그가 기거하는 방을 말함.

(주4) 암두전활岩頭全奯(828∼887). 덕산선감德山宣鑑의 법제자로 청원靑原스님의 5세손.

(주5) 『선문염송』 제668칙 (한국불교전서5, 512쪽).

(주6) 관청의 법칙조문法則條文을 말함. 선문禪門에서는 부처님과 조사들께서 밝히신 불법의 도리를 깨치기 위해 학인이 참구하는 문제를 가리킴. 흔히 1700칙則 공안을 거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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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
성철스님은 1936년 해인사로 출가하여 1947년 문경 봉암사에서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기치를 내걸고 ‘봉암사 결사’를 주도하였다. 1955년 대구 팔공산 성전암으로 들어가 10여 년 동안 절문 밖을 나서지 않았는데 세상에서는 ‘10년 동구불출’의 수행으로 칭송하였다. 1967년 해인총림 초대 방장으로 취임하여 ‘백일법문’을 하였다. 1981년 1월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에 추대되어 “산은 산, 물은 물”이라는 법어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1993년 11월 4일 해인사에서 열반하였다. 20세기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우리 곁에 왔던 부처’로서 많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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