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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살리는 사찰음식]
1월의 사찰음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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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  /  2023 년 1 월 [통권 제117호]  /     /  작성일23-01-05 10:09  /   조회3,262회  /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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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활동의 기본은 먹는 것입니다. 모든 생명체는 먹는 과정을 통해 개체를 유지하고, 종과 군집의 번영을 이루어 갑니다. 그런 점에서 살아 있다는 것은 곧 먹는 것이기도 합니다. 먹는다는 것은 한 생명이 살아가는 활동이기도 하지만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개체의 생명활동을 넘어서 있습니다. 먹는다는 것은 생명체와 생명 아닌 것과의 관계 맺기이며, 에너지를 주고받는 순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먹는 것 속에도 부처님께서 설파하신 연기의 진리가 들어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기후위기와 사찰음식 

 

사찰음식도 위와 같은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찰음식은 단지 에너지를 공급하고, 생명체를 유지하는 활동 외에 또 다른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한 예로 보조스님은 먹는 것에 대해 “다만 육신의 야윔을 막아 도를 얻기 위함[但療形枯 爲成道業]”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정신에 따라 사찰음식은 단지 에너지를 공급하고 식욕을 충족하는 차원을 넘어서 있습니다. 먹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보다 원대한 도업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사찰음식은 이런 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사진 1. 사찰음식의 비법을 품고 있는 장독대 (영월 망경산사 장독대)

 

사찰음식이란 사찰에서 스님들이 드시는 수행식이자 일상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사찰음식이 산문을 나섰습니다. 사찰음식은 스님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건강에 좋고 지구를 살리는 음식으로 재평가 받기 시작했습니다. 기후위기 시대를 맞아 무엇을 어떻게 먹는가 하는 것은 개인적 취향을 넘어 탄소배출과 직결되는 문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찰음식은 개인의 건강을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지구를 살리는 전통이자 자원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사찰음식을 통해 나와 가족들의 건강은 물론 기후위기 시대에 지구를 살리는 지혜로운 음식으로 식탁에 오를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합니다. 사찰음식에 담긴 선한 영향력을 공유하고, 조리과정에서 배운 다양한 비법들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소울 푸드라는 말이 있듯이 음식은 단지 에너지의 공급이 아니라 마음을 풍요롭게 하고, 삶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때로 음식을 통해 어린 시절을 회상하기도 하며, 엄마의 정성어린 마음까지 느끼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음식은 과거를 회상하는 그리움이기도 하고, 미래의 추억을 만드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이 코너를 통해 시를 쓰듯이, 노래를 부르듯이, 호흡을 가다듬고 명상을 하듯이 사찰음식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고조리서 속의 채소음식과 발효음식

 

음식을 공부하고 사찰음식과 한국전통음식을 익히는 과정에서 우리민족은 식재료를 다루는 방법의 차이에서 아주 민감하게 미각의 차이를 포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썰고, 찧고, 다지고, 부수는 과정에서 맛이 달라지기도 하고 맛이 바뀌기도 하고 조화로워지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모양입니다. 제가 소개하는 음식을 읽다가 입맛이 살아나고 고소한 기름내가 진동하며, 밥 짓는 향기까지 고스란히 전해지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식탁이 향기 나는 밥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진 2. 향반香飯. 향반은 『유마경』에 나오는 표현으로 향기 나는 밥이라는 뜻이다.

 

제철음식을 소개하고자 할 때 저는 가장 먼저 「농가월령가」를 참고하곤 합니다. 「농가월령가」는 1년 열두 달, 다달이 힘써야 할 농사일과 철마다 알아 두어야 할 농사일이나 풍속  

및 예의범절 등을 운문체로 기록한 월별 농가農歌입니다. 조선 후기 정학유의 작품으로 산과 들에 나는 각종 식재료와 음식에 대한 소개가 잘 되어 있어서 절기음식을 쉽게 참고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또한 조선 셰프 서유구 선생님이 쓰신 『정조지』는 우리 음식을 분류하고 분석하는 공부를 할 때 자주 참고하는 고조리서입니다.

 

『임원경제지』 속에 담긴 「정조지」에 따르면 우리 음식은 다양하게 구분되고 있습니다. 즉, 식감촬요食鑑撮要(음식 재료 요점 정리), 취류지류炊溜之類(밥과 떡), 전오지류煎熬之類(죽, 조청, 엿), 구면지류糗麪之類(미숫가루, 면, 만두), 음청지류飮淸之類(탕, 장, 차, 청량 음료, 달인 음료), 과정지류菓飣之類(과일꿀절임, 과일설탕절임, 말린과일, 과일구이, 법제과일, 유과), 교여지류咬茹之類(채소음식), 할팽지류割烹之類(고기를 가르거나 삶아서 조리한 음식), 미료지류味料之類(소금, 장, 두시, 식초, 기름과 타락, 누룩과 엿기름, 양념), 온배지류醖醅之類(술), 절식지류節食之類(절기별 음식) 등이 그것입니다.

 

사진 3. 사찰음식을 위해 준비된 정갈한 식자재.

 

조선시대 음식문화를 매우 체계적이면서도 과학적으로 정리하여 기술하고 있어서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전통음식의 뿌리가 많이 약해진 우리 한식을 복원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책입니다. 할팽지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사찰음식과 연결되는 음식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어서 채소음식과 발효음식을 활용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럼 선재동자가 53 선지식을 찾아 법을 구하듯 그동안 배우고 익힌 불가의 내림음식, 사찰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다정다감하게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소금나무 열매를 활용한 두부 만들기(염부자 두부)

 

산속 깊숙한 곳에서 수행을 하시던 스님들은 바다 소금을 구하기가 어려웠으나 숲속에 소금이 열리는 붉나무가 있었기에 대체할 수 있었습니다. 눈이 보배라는 말처럼 식재료를 공부하다 보면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영락없이 맞습니다. 낙엽이 지고 열매가 여물어 갈수록 열매 주변으로 소금이 달리기 시작하는 붉나무는 염부목이라 부르기도 하고 소금나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바닷물을 활용한 간수로 두부를 제조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내륙지방이나 깊은 산속에서 수행하시던 스님들은 소금나무 열매(염부자)로 두부를 만들어 단백질을 보충하셨다고 합니다. 소금나무로 만든 두부는 바닷물로 만든 두부보다 보관 기간이 길고 단단한 특징이 있습니다. 찌개를 끓여도 두부가 퍼지지 않고 탄력감이 살아 있습니다. 붉나무의 특성상 붉은 기가 살짝 돌며 특유의 감칠맛이 있습니다. 들기름에 구워 우엉채를 올려 드시거나 산초장아찌를 올려서 드시면 소화도 잘 되고 단백질 보충에 탁월합니다.

 


 

<염부자 두부 재료와 만드는 법>


재료 대두 1kg, 소금나무 열매 500g, 두부틀

 

만드는법

1. 대두 불리기 - 대두 1kg을 8시간 이상 물에 불려 주세요.

2. 불린 콩 갈기 - 잘 불린 콩을 물을 넉넉히 넣고 덩어리 없이 믹서기에 곱게 갈아 주세요.

3. 콩물 거르기 - 곱게 간 콩물을 천 주머니에 넣고 꾹 짜 주세요. 걸죽한 국물이 남아 있다면 물을 부어 가며 잘 짜 주세요. 콩물을 짜고 남은 비지는 된장찌개 또는 부침개를 만들어 드세요.

4. 콩물 끓이기 - 큰 냄비에 콩물 1/3 가량만 넣고 끓여 주세요. 끓기 시작하면 바로 넘칠 수 있으니 거품을 제거하며 저어 주세요.

5. 간수 넣기(순두부완성) - 냄비에 물 600ml와 소금나무 열매 500g을 넣고 팔팔 끓여 진한 간수를 만들어 둡니다. 콩물이 끓어오르면 불을 끄고 소금나무 열매를 끓였던 물을 서서히 부어 줍니다. 주걱으로 한 바퀴만 저어 주고 멈춥니다. 몽글몽글 덩어리가 만들어지면 순두부 완성입니다.

5. 굳히기(모두부 완성) - 두부틀에 무명천을 깔고 순두부를 부어 주고 무명천을 덮어 주세요. 무명천 위에 무거운 덮개를 올려주고 물이 빠질 수 있도록 하세요. 물을 잘 빼 줄수록 단단한 두부가 됩니다. 소금나무 열매를 끓여서 간수를 만들어 사용한 두부는 착색이 있을 수 있지만 이 현상은 붉나무 열매에서 나오는 자연의 색이니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황실 무김치

 

이맘때 무는 가을 무보다는 못하지만 제주지방에서 생산되는 노지 무가 출하되기 시작하고 다양한 종류의 무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한국 사찰음식의 기본은 오신채를 넣지 않고 고기와 생선을 사용하지 않는 것을 기본으로 합니다. 오신채는 파, 마늘, 부추, 달래, 흥거를 말합니다. 가끔 마늘과 생강을 같은 부류로 생각하셔서 사찰음식에 생강도 넣으면 안 되냐는 질문을 받곤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생강은 오신채에 해당되는 식재료가 아니기 때문에 사용하셔도 좋습니다. 요즘 무는 색감과 식감이 다양하게 생산되고 있습니다. 시장에서 보라색 무를 발견하시면 꼭 사서 김치를 담가 보시기 바랍니다. 

 

기장으로 풀을 쒀 만든 김치로 기장을 황실黃實이라 부르기도 하여 김치 이름을 황실 무김치라고 부릅니다. 기장으로 죽을 쑤어 갈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에 떠먹는 깍두기로 담그거나 국물이 자작한 김치로 만들어 드시면 시원하고 맛이 참 좋습니다. 지금부터 사찰식 비건 김치로 담그는 방법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황실 무김치 재료와 만드는 법>


재료  

주재료: 무 3kg, 청갓(미나리) 300g.

양념재료: 갈아 놓은 건고추 1cup, 소금 3T, 한식간장 2T, 홍시 2개, 생강 1/2T, 

채수 2cup 기타(표고버섯, 다시마, 무, 가죽순), 기장 2cup.

 

만드는법

1. 무와 청갓은 깨끗이 씻어서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소금에 절여 주세요.

2. 1시간 가량 소금에 절인 무와 갓은 헹구지 않고 그대로 사용합니다.

3. 냄비에 물을 붓고 표고버섯, 다시마, 무, 가죽순을 넣고 끓여 줍니다. 가죽순은 봄에 말려서 준비해 두셨다가 사용하면 좋습니다. 가죽순이 없으면 생략하고 채수를 만들어 사용하세요.

4. 기장은 잘 씻어서 눌러붙지 않게 밥을 지어 주세요. 고두밥을 지어 사용해도 좋고, 묽은 

죽으로 사용해도 괜찮습니다.

5. 건고추는 깨끗이 씻어서 채수와 함께 갈아 주세요.

6. 홍시는 꼭지와 씨를 제거하고 껍질째 곱게 갈아 둡니다.

7. 소금에 절여 놓은 무와 청갓에 준비해 둔 모든 양념을 넣고 버무려 줍니다. 간을 보면서 

한식 간장을 가감하며 넣습니다. 단맛을 더 가미하고 싶을 때는 배를 갈아 넣거나 매실청을 넣어 입맛에 맞춰 줍니다.

 

TIP

버섯을 반건조하여 소금에 버무려 버섯 젓갈을 만들어 김치의 간을 맞출 때 활용하시면 좋습니다. 청각을 말려서 보관하고 김치 만들 때 조금씩 사용하면 풍미를 더해 줍니다. 기장을 대신하여 좁쌀을 활용하기도 합니다.

 

유자화채

유자를 주재료로 한 음식에는 유자화채 외에도 유자청, 유자차, 유자정과, 유자단자, 유자 된장이 있습니다. 『이조궁정요리통고李朝宮廷料理通攷』에 소개되어 있는 유자화채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시원하고 깔끔한 맛과 더불어 유자는 피로회복에 좋고 감기에 대한 저항력을 길러주며, 소화액의 분비를 촉진시켜 주고 중풍 예방에도 효과가 있는 겨울철 건강음식입니다. 독특한 유자향과 달콤하고 시원한 배의 맛이 잘 어울리는 겨울 음료입니다. 여기에 빨간 석류알을 고명으로 올리면 맛과 멋이 살아나는 겨울철 건강음료가 만들어집니다. 키위나 알밤을 채 썰어 넣으면 풍미를 더해 줍니다.

 



<유자화채 재료와 만드는 법>


재료 유자 1개(120g), 배 ½개(300g), 석류알 2큰술.

  화채국물: 물 4컵(1L), 설탕 1컵(200g)

 

만드는법

1. 유자는 껍질 부분만 4등분하여 속이 다치지 않게 조심스레 껍질을 벗깁니다. 유자 껍질을 한 조각씩 도마에 놓고 안쪽의 흰 부분을 얇게 저며 썰어 노란 부분과 흰 부분을 따로따로 가늘게 채 썰어 주세요.

2. 유자 속은 깨끗한 면포에 싸서 즙을 짭니다.

3. 배는 껍질을 벗겨서 곱게 채 썰어 주세요.

4. 석류는 속을 알알이 떼어놓습니다.

5. 물에 설탕을 넣고 잘 녹인 후 유자즙을 섞어 화채 국물을 만들어 주세요.

6. 화채 그릇에 채 썬 유자와 배를 가지런히 담아 줍니다. 색감과 식감을 더하고 싶을 때는 키위와 밤을 채 썰어 함께 담아 줍니다. 화채 그릇은 백자나 유리그릇을 사용하면 좋습니다.

7. 화채 국물을 살며시 부어 유자향이 화채 국물에 우러나도록 30분 정도 냉장고에 차게 두어 보관하면 좋습니다.

8. 석류알을 띄운 후 다과상을 차립니다. 석류알을 대신해 블루베리 등 베리류를 고명으로 올려도 좋습니다.

 

TIP

외국에서는 생유자를 구하기가 어려우므로, 생유자가 없을 경우에는 당절임한 유자청을 사용하면 좋습니다. 이는 동양 식료품점(Asian grocery)의 차茶 코너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유자청을 활용하면 찬물이나 뜨거운 물만 부어 바로 마실 수 있어서 편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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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
한국전통음식연구가. 경기대학교에서 국문학과 교육학을 전공하였고,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음식과 명상을 연구하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38호 궁중음식연구원 과정을 이수하였으며, 사찰음식전문지도사, 한식진흥원 교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식물기반음식과 발효음식을 연구하는 살림음식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논문으로 「사찰음식의 지혜」가 있다. 현재 대학에서 한식전공 학생들에게 한국전통식문화와 전통음식을 강의하고 있다.
natureswa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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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안명호님의 댓글

안명호 작성일

자연과 인간 또는 동물과 인간
공생을 위한 유일한 대안이 사찰의 음식문화라 생각합니다
山門밖에서 절밥을 차리는 분들의 노고가 자연과 인류를 함께 지켜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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