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허, ‘인생불교’의 창시자 > 월간고경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월간 고경홈 > 월간고경 연재기사

월간고경

[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태허, ‘인생불교’의 창시자


페이지 정보

김제란  /  2023 년 2 월 [통권 제118호]  /     /  작성일23-02-03 10:26  /   조회2,524회  /   댓글0건

본문

근대중국의 불교학자들 26 | 태허太虛 ② 

 

태허太虛(1889~1947)는 불교 잡지 『해조음海潮音』에 「중국불교혁명 승려에 대한 훈화」(1928)라는 글을 발표하면서 ‘인생불교人生佛敎’ 개념을 처음 제시하였다. 이 글에서 태허는 근대중국에서 이루어야 할 불교혁명의 원칙과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설명하였다. 

 

불교혁명의 3대 원칙: 교리, 제도, 재산의 혁명

 

첫째, 제거해야 할 대상을 지목하였다. 그 하나는 통치자들이 미신을 이용하여 국민들을 속이는 것이다. 태허는 통치자들이 권력과 이익을 얻기 위해서 종교를 이용하는 것을 통렬히 비판하였고, 그러한 욕망의 추구가 상식적· 윤리적인 종교로 불가능할 경우에는 미신을 이용하는 것도 서슴치 않는다는 사실까지도 언급하였다. 미신은 상식 밖의 일이나 증명되지 않고 할 수도 없는 어떤 사실을 믿는 것으로 종교적으로 초자연적인 일이나 널리 알려지지 않은 절대자를 받드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사진 1. 태허太虛(1889~1947).

 

지금 우리는 한국 사회에서도 종교는 물론 미신까지 권력과 이익을 얻기 위해 이용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생생히 보고 있다. “미신을 이용한다.”는 태허의 비판이 이렇게 중요한 일일 줄 이전에는 미처 몰랐다. 통치자들이 욕망을 위해 종교를 이용하는 것은 시대가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모습인가 보다. 종교의 역할이 통치자들의 이익 추구를 위한 것이라면 종교를 민중의 아편이라고 본 포이에르바하의 말은 진리 이상이다.

 

또 다른 하나는 중국 가족제도가 배양해 온 법맥法脈 제도, 즉 사찰 재산을 개인적으로 상속하는 제도에 대한 것이다. 태허는 불교 사찰 재산을 개인적으로 상속하는 제도를 정면으로 반대하였다. 사찰 재산을 개인적으로 상속한다는 것은 불교가 추구하는 공空의 생활에 정면으로 반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사찰이나 교회를 개인 재산으로 보고 상속하는 것은 애초에 종교를 경제적 이익을 위한 사업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재산의 상속, 경제적 이익의 추구를 목표로 하는 불교가 시대의 변혁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불교 내부의 변혁이 이루어질 때 사회 변혁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고, 변혁의 기본은 경제 문제의 해결일 것이다.

 

둘째, 개혁해야 할 대상을 지목하였다. 불교가 과거처럼 수행의 명목으로 산속에 있으면서 현실 세계에 무관심한 ‘산山 속 불교’의 형태를 취하는 것을 태허는 세상을 등지고 깊은 산속에 숨는 것이라고 단언하였다. 진정한 불교는 산속에 머물며 생생한 현실의 문제를 등지는 것이 아니라 민중을 교화, 지도하고 이익되게 하는 것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불교가 죽음의 문제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귀신을 받드는 일만 생각하는 종교에서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살아있는 사람들의 삶의 현장들을 두루 돌보는 종교로 변화해야 할 것을 주장하였다. 

 

사진 2. 깊은 산 속에 자리 잡은 중국불교 4대 성지 중의 하나인 오대산과 대백탑. 사진 panda.

 

셋째, 건설해야 할 목표를 지목하였다. ① 사람에서 출발하여 보살의 선행을 닦고, 성불로 나아가 인생불교를 건설해야 한다는 것, ② 현대 중국사회의 환경에 알맞은 출가 승단을 건설해야 한다는 것, ③ 재가신도를 조직화하여 현대 중국사회의 환경에 알맞은 단체를 건립해야 한다는 것, ④ 농업, 공업, 상업, 군사, 정치, 예술 등 사회 각층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불교의 ‘열 가지 선’[십선十善]으로 융화시켜 중국 민족을 십선문화의 표본이 되도록 하고 나아가 전 세계가 십선문화가 되도록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손문 삼민주의三民主義와 태허의 삼불주의三佛主義

 

태허가 주장하는 불교혁명은 승단제도와 조직, 의식, 그리고 교리에 대한 개혁을 중심으로 한 것이었다. 그는 1924년 「목표와 실천에 대한 자술」, 만년의 「나의 불교혁명 실패사」라는 제목의 글에서 “나는 승단의 제도 개혁에 뜻을 두었고, 유가보살계본瑜伽菩薩戒本을 실천하고자 하였다.”라고 단언하였다. 이 유가보살계본은 중국 전통불교 중 그가 제일 중요하게 본 선불교 및 천태불교의 선정 수행에 일반 과학적 방법을 보충한 내용이다. 태허는 이를 ‘광의의 과학’이라고 불렀다.

 

사진 3. 손문孫文(1866~1925).

 

“나는 우연히 불교혁명사상가들과 가까이 지내게 되었다. 불교계에 혁명이 일어나자, 나는 상해혁명의 흐름에서 ‘불교교리 혁명’, ‘승단제도 혁명’, ‘불교재산 혁명’이라는 깃발을 내걸었고, 나의 혁명에 대한 명성은 이때부터 퍼지기 시작하였다. 그 이후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거나 놀라움과 협박, 동정을 받기도 하였다.”

 - 「나의 불교혁명 실패사」

 

그런데 태허의 교리, 제도, 사찰경제를 중심으로 한 불교혁명은 사실은 손문孫文( 1866~1925)의 ‘삼민주의三民主義’와 궤를 같이 하는 것이었다. 태허 자신도 “중국 혁명에서 세계적 국민혁명으로 나아가는 데에는 삼민주의가 있고, 중국불교의 세계적 불교화와 불교혁명에는 ‘삼불주의三佛主義’가 있다.”라고 하였다.

 

이 말에서 중국혁명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손문의 삼민주의와 불교의 삼불주의가 연관된 개념임을 알 수 있다. 손문의 삼민주의는 민족주의民族主義, 민권주의民權主義, 민생주의民生主義로서, 민족을 중심으로 하고 국민의 권리와 국민의 삶을 중심으로 한다는 원칙에 근거하여 사회 변혁을 이루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불교에 적용된 것이 바로 삼불주의라고 할 수 있다. 

 

사진 4. 손문의 삼민주의를 다룬 책 『삼민주의』.

 

삼불주의는 앞에서 말한 불승주의佛僧主義, 불화주의佛化主義, 불국주의佛國主義에 해당한다. 불교개혁은 승려를 중심으로 해 나가되 불교인들의 교화를 이루어 가고 이 사회에 부처님 나라를 실현하기 위한 사회문화 각 방면의 노력을 해 나가자는 것이다. 태허가 말한 불교혁명의 세 원칙인 이상적인 출가승단의 성립, 이상적인 재가신도 단체의 설립, 그리고 정신과 물질의 생산 발전이 바로 삼민주의의 불교적 적용이다.

 

오승불법五乘佛法, 불교 진화의 단계

 

태허의 불교 발전은 ‘오승불법五乘佛法’ 학설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불교의 모든 법을 세 가지 종류로 총괄할 수 있다고 보았는데, 그것은 대승불법과 삼승불법, 그리고 오승불법이다. 오승불법은 인승人乘과 천승天乘, 성문승聲聞乘, 연각승緣覺乘, 여래승如來乘이다. 이때 인승, 천승은 세간의 세상을 가리키고, 성문승, 연각승, 여래승은 출세간의 경지를 말하는 것이다.

 

태허는 이렇게 인승에서 시작하여 천승을 거쳐 성문승, 연각승, 보살승으로 나아가는 것을 불교의 진화 단계라고 보았고, 특히 인승, 즉 인간의 삶을 중시하며 진화의 기초로 삼았다. 그는 사람들이 불교를 인생의 종교에서 벗어나 있는 비윤리적인 종교라고 비판하는 데 대해, 그것은 그들이 출세出世의 삼승교법만 알고 보편적인 인승과 천승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불교의 근본은 오승불법에 있으며, 이는 불교는 바로 인생의 도덕에 중심이 있음을 설명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선한 생각과 행위를 키울 수 있는지 가르치는 것이야말로 이성적 도덕에 합당한 살아있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의 근본 역할은 사람들의 선한 생각과 행위를 키워서 이성적 도덕이 살아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

태허는 오승불법에서 불교가 인승, 즉 인생에서 시작하여 천승과 성문승, 연각승, 보살승이라는 단계로 나아가는 성불成佛의 진화여야 한다는 것, 그리고 불교는 인생의 도덕에 중심을 두고 있다는 것, 이 두 가지를 강조하였다. 이것이 그의 인생불교의 기초이다.

 

인생불교는 ‘산 사람의 불교’

 

인생불교는 한마디로 ‘산 사람의 불교’라는 의미이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현실의 나를 중심으로 한 것이지 죽은 사람이나 이 세상이 아닌 어떤 초월적인 세계의 나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인생’이란 소극적으로 본다면 불교의 누적된 폐단에 대항하는 말로서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의 불교는 ‘죽음의 불교’와 ‘귀신의 불교’였다. 죽을 때 잘 죽는 것과 죽은 다음에 좋은 곳으로 가는 것을 중시하였다. 그러나 내가 죽을 때 잘 죽으려면 잘 살아야 하며, 좋은 귀신이 되려면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죽은 귀신을 중시하는 것은 산 사람을 중시하는 것만 못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내가 지금까지 죽은 귀신의 불교에 대항하여 산 사람의 불교를 이야기하는 이유이다.”

 

태허의 인생불교는 지금 여기에서 생생히 살아가는 산 사람인 나의 불교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임을 알 수 있다. 죽은 뒤나 귀신에 중심을 두었던 중국 전통불교의 폐단을 철저히 없애고자 하는 운동이 바로 인생불교였던 것이다.

 

태허의 이러한 입장은 중국 전통철학 전반에 깔린 현실 위주의 인문주의 사상과 연관된다. 태허의 사상이 전통불교는 물론 유학사상과도 일맥상통하고 있기에 더 그렇다. 유학의 창시자 공자 역시 현실 위주의 사상을 강조하였고, 형이상학이나 현실을 떠난 초현실적인 것들에 무관심하였다.

 

공자는 제자인 자로가 “선생님, 죽음에 대해 알려주십시오.”라고 하자 “삶도 잘 모르는데 어떻게 죽음을 알겠는가?”라고 답하였고, “어떻게 귀신을 잘 섬길 수 있습니까?”라고 묻자 “사람 섬기는 법도 잘 모르는데 어떻게 귀신 섬기는 법을 알겠는가?”라고 대답하였다. 자신의 관심이 초현실적인 것이나 형이상학적인 존재에 있지 않음을 분명히 하였던 것이다. 중국 전통철학은 지금 이 곳, 눈앞의 현실에 발 디디고 있는 살아있는 사람의 삶에 관심을 두고, 그 현실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이 사회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가, 내가 어떻게 선한 존재가 되어 이 사회의 선함에 공헌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사상이었다.

 

중국불교 역시 이 같은 현실주의에 바탕을 둔 것이 원래의 정신이다. 따라서 평범한 사람들에게 잘 죽어야 하며 죽은 뒤에 좋은 곳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혹 죽어서 귀신이 된 조상신이라든지 귀신을 섬기는 방편으로 불교 신앙을 말하는 것은 태허가 보기에는 불교 원래의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다. 그럼에도 죽음과 귀신 등 현실을 넘어선 세계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당장의 불교 포교를 위해서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진정한 불교 정신이 될 수 없음을 태허는 천명하였다.

 

근대라는 절체절명의 시기에 반봉건· 반제국주의를 실천하는 불교인이 되기 위해서는 그러한 현실에 바탕을 둔 인문주의가 반드시 받아들여야 할 정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저 세상이나 죽음의 세계가 아닌 현실의 살아있는 불교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참여하고 실천하는 사상이 가능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것이 태허의 ‘인생불교’의 핵심이다. 산 사람의 불교, 인생불교가 불교혁명에서 가장 중요한 근본이라는 주장이다.

 

* 이 글은 원필성의 「太虛, 仁順의 중국불교 개혁사상과 悔堂思想」, 필자의 「太虛와 歐陽竟無의 논쟁을 통해본 중국 불교의 성격」을 참조하였습니다.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김제란
철학박사. 현재 고려대학교 강의교수. 고려대학교 철학과 석·박사 졸업. 같은 대학 철학과에서 강의, 동국대 불교학술원 HK연구초빙교수를 지냈다. 지곡서당 한문연수과정 수료. 조계종 불학연구소 전문연구원 역임. 『웅십력 철학사상 연구』, 『신유식론』, 『원효의 대승기신론 소·별기』 등 다수의 저서 및 번역서가 있다.
김제란님의 모든글 보기

많이 본 뉴스

추천 0 비추천 0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로그인 하시면 추천과 댓글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우) 03150 서울 종로구 삼봉로 81, 두산위브파빌리온 1232호

발행인 겸 편집인 : 벽해원택발행처: 성철사상연구원

편집자문위원 : 원해, 원행, 원영, 원소, 원천, 원당 스님 편집 : 성철사상연구원

편집부 : 02-2198-5100, 영업부 : 02-2198-5375FAX : 050-5116-5374

이메일 : whitelotus100@daum.net

Copyright © 2020 월간고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