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禪, 禪과 시]
뻐꾸기의 울음이 큰 대나무를 채웁니다 달밤이 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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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택 / 2023 년 2 월 [통권 제118호] / / 작성일23-02-03 11:37 / 조회3,803회 / 댓글0건본문
영하 8도의 추위가 예고된 가운데 강정의 댓잎소리길과 죽곡산 트래킹을 합니다. 10시 집합에서 11시 집합으로 1시간 늦추어서 그런대로 추위는 견딜 만했습니다. 강창교를 건너 강창 체육시설 주차장에 차를 대고 금호강변을 걸어봅니다. 능선에 늘어선 나무들 사이로 하늘이 보입니다. 능선 뒤에는 계명대학교가 있습니다.
강물에는 얼음이 떠다니고, 물빛은 에메랄드빛이라 그윽하게 아름답습니다. 갈대는 아침햇살을 역광으로 받아 눈부시게 빛납니다.
물닭과 뜸뿍새
강창교 아래에는 검둥오리와 비슷하게 생긴 물닭들이 떼를 지어 다닙니다. 온몸이 검정색이고 이마와 부리가 흰색입니다. 새끼 시절에는 붉은빛과 오렌지빛이 선명하지만 크면 검정색으로 변합니다.
물닭은 뜸부기과입니다. 나는 「옵바 생각」(주1)으로 유명한 뜸뿍새를 보지도 못했고 소리조차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뻐꾹새 소리는 수없이 많이 들었지만 실물을 본 적은 없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월동하고 온다는 뻐꾹새마저 사라진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쓸쓸해질까요. 강창교 아래 금호강에서 수많은 물닭들을 만난 것은 잊을 수 없는 기쁨입니다.
강창교 아래로 내려오면 죽곡리인데 대구에서는 보통 강정이라고 불렀습니다. 60년대는 강창이 80년대에는 강정이 매운탕으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금호강변에 자전거 길과 나란히 댓잎소리길이 조성되어 운치를 더했습니다.
예로부터 대나무는 수많은 사람들이 좋아한 나무였습니다. 선비들에게 가장 사랑을 받은 것도 대나무였습니다. 대나무는 말끔한 자태에 가느다란 몸매, 말쑥하고 멋스런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무한한 아름다움을 선사합니다. 대나무의 꼿꼿함과 겸허함에 깃든 긍지, 그리고 강직하면서도 굽실거리지 않는 모습은 선비들의 입신처세에 많은 깨우침을 주었습니다.
길게 자란 대나무가 바람을 불렀네
소동파(1307~1101)는 “차라리 음식에 고기가 없을지언정 거처에 대나무가 없어서는 안 된다. 고기가 없으면 수척해지지만, 대나무가 없으면 사람이 저속해진다.”(주2)고까지 말했습니다. 홍만선(1643~1715)은 “집 주변에 생기를 돌게 하고 속기를 물리치기 원한다면 소나무와 대나무를 심어라.”(주3)고 했습니다.
대나무는 파초와 함께 사람을 운치 있게 하고 속된 것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선종禪宗에서는 자연계가 가장 불성佛性이 풍부하고 깨달음의 경지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푸르디푸른 대나무는 모두가 법신法身이고, 무성한 노란 꽃은 반야가 아닌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주4)
대나무 숲은 눈을 감고 바람이 댓잎을 스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참된 운치를 느낄 수 있습니다. 석상경제(807~888)는 대나무 숲에 부는 바람 소리를 불법佛法의 대의大義로 보았습니다.
한 사람이 석상에게 묻는다.
“무엇이 불법대의佛法大義입니까?”
“낙화落花가 물 따라 흘러가네.”
“그게 무슨 뜻입니까?”
“길게 자란 대나무가 바람을 불렀네!”(주5)
석상경제는 불법대의를 묻는 질문에 ‘낙화가 물 따라 흘러가네’라고 대답하자 질문을 한 사람은 그게 어째서 불법대의인지 어리둥절해서 다시 반문합니다. 아마 생각했던 것과 너무나 다른 대답이라 놀랐겠지요. 그런데 석상경제는 다시 ‘길게 자란 대나무가 바람을 불렀네’라고 대답합니다. 대나무가 바람을 부르다니 질문을 한 사람은 아마 더욱 놀라지 않았을까요.
석상경제는 이처럼 상대의 상상을 초월한 대답을 함으로써 상대에게 반전反轉과 경이의 감정을 가져다 줍니다.
소크라테스는 상상을 초월한 것을 목격했을 때 생기는 경이의 감정이야말로 지혜를 사랑하는 자의 감정이며, 이 감정에서 철학이 시작된다고 말했습니다.(주6) 석상경제는 “길게 자란 대나무가 바람을 불렀네!”라는 구절로 후학들이 불법을 가까운 데서 찾을 수 있도록 이끌었습니다.
불법을 찾느라고 긴장된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그런 말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대나무 숲에 부는 바람소리를 가만히 들으면 그 소리는 무언가 근원적인 것으로부터 나타났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석상경제는 가까운 자연에서 무한한 깊이를 보았고 거기서 불법의 대의를 본 것입니다. 떨어진 꽃이 물 따라 흘러가고 대나무가 바람을 부르는 이 밝은 개방성과 활달함은 텅 빈 마음, 즉 무아無我로부터 솟아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말들은 깊은 울림을 자아냅니다.
뻐꾸기 울음이 / 큰 대나무를 채웁니다 / 달밤이 새도록
석상경제의 경지는 범부가 댓잎소리를 듣는다고 해도 함부로 엿볼 수 없는 경지입니다. 그러나 길재(1353~1419)처럼 평상을 대나무 숲 아래로 옮겨 놓고 누워서 책을 읽는 경지는 범부들도 따라 해 보고 싶은 친근한 경지입니다.
시냇가 띠집에 한가롭게 살고 있으면
달 밝고 바람 맑아 기쁨이 넘쳐나네.
바깥손님 오지 않고 산새 소리만 들리는데
대숲으로 평상 옮겨 누워서 책을 보네.(주7)
시냇가, 띠집, 밝은 달, 맑은 바람, 산새, 대숲, 그야말로 그림 같은 풍경입니다. 사람들이 동경하는 은자隱者의 삶이 이 속에 있습니다. 이 시의 묘미는 ‘누워서 책을 본다’는 데 있습니다. 나도 평생 책을 읽을 때는 대체로 누워서 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책을 오래 읽으려면 아무래도 누워서 읽는 것이 더 편안합니다.
누워서 책을 읽는 거야 범부도 따라 할 수 있겠지만, 시냇가 띠집에 살면서 달과 바람에도 넘치게 기뻐하는 마음은 범부가 따라가기 어려운 경지입니다. 이런 경지는 욕심을 버려야 가능한 청정한 경지입니다. 우리가 만약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청정하게 된다면 선악을 구별하는 장애가 없어지고 선악에 구애되지 않는 대범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일본의 바쇼(1644~1694)도 대나무에 대해 아름다운 시 한 수를 남겼습니다.
뻐꾸기 울움이
큰 대나무를 채웁니다
달밤이 새도록(주8)
바쇼의 하이쿠는 짧은 순간 대자연을 향해 활짝 열려 있는 창과 같습니다. 그 풍경에는 인간도 없고 신도 없고 다만 열려 있는 풍경뿐입니다. 이것은 자신을 던져버린 것이고 걱정이 없는 것이며, 자기에 대한 걱정이 없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 하이쿠에는 깊은 의미가 들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아自我도 없고 내면성도 없는 무아無我의 세계를 보여줍니다. 자연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이 시 역시 자아가 없는 무심한 감촉을 보여줍니다.
모처럼 대나무 숲을 지나가는 바람소리를 들으면서 기분 좋은 반나절을 보냈습니다. 댓잎소리길을 걸은 다음 옆에 있는 죽곡산(195.7m)으로 올라갑니다. 가파르지 않아서 편안하게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자신이 편안해지는 속도로 산길을 걸어갑니다.
인생은 꽃이 아니라 그저 강물에 떠내려가는 잎새 하나
30분 정도 오르면 금호강과 낙동강을 조망하는 강정대가 나옵니다. 조망을 확보하기 위해 정자를 3층으로 올리다 보니 계단이 상당히 가파릅니다. 옛날부터 높은 누각에 오르는 것은 인생의 큰 즐거움입니다. 우리는 더 멀리 조망하기 위해 누각의 한 층을 더 올라가곤 합니다.
인생이란 화려한 꽃이 아니라 그저 강물에 떠내려가는 잎새 하나에 불과합니다. 세월이 흐르면 삶의 우아한 풍경도 하나의 얼룩처럼 흐릿해집니다. 자연은 우리의 삶이 한 길로만 그것도 단 한 번만 지나갈 수 있게 허락합니다.
강물은 저 알 수 없는 곳에서 흘러와 알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갑니다. 그것이 인간의 운명이라고 강물은 흘러가며 말해 줍니다. 성공했든 그렇지 못했든 이 한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감사함이고 경이로움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각주>
1) “뜸뿍 뜸뿍 뜸뿍새 논에서 울고~”로 유명한 「오빠 생각」은 최순애가 11살 때인 1925년, 잡지 『어린이』에 투고해 입선했는데 그 당시 제목은 「옵바 생각」이었다.
2) 蘇軾, 「於潛僧綠筠軒」, “寧可食無肉, 不可居無竹, 無肉令人瘦, 無竹令人俗.”
3) 洪萬選, 『山林經濟』.
4) 『祖庭事苑』 卷第五, “靑靑翠竹 盡是眞如 鬱鬱黃花 無非般若.”
5) 張中行, 『禪外說禪』(普通本, 2012), 第五章 「禪宗史略」 石霜慶諸條, “如人問 如何是佛法大義 他說 落花隨水去 又問這是甚麽意思 他說 脩竹引風來.”
6) 플라톤, 『테아이테토스』.
7) 吉再, 『冶隱集』, 述志, “臨溪茅屋獨閑居 月白風淸興有餘 外客不來山鳥語 移床竹塢臥看書.”
8) 松尾芭蕉, 『嵯峨日記』, 1691. 4.20條 : “ほととぎす大竹藪をもる月夜.”
‘호토토기스’는 두견새를 말한다. 두견새는 뻐꾸기과에 속하며, 일본에서 두견새가 차지하는 국민적 정감, 문화적 위상, 울음소리 등을 고려해서 뻐꾸기로 번역하였다. 두견새는 뻐꾸기보다 조금 작지만 뻐꾸기처럼 아프리카에서 월동하고 오는 철새이며 탁란을 하는 등 뻐꾸기와 거의 비슷하다. 두견새나 뻐꾸기는 밤에는 잘 울지 않아서 소쩍새를 호토토기스로 오인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소쩍새로 번역할까 몇 날 며칠 고민하다가 오인의 가능성까지 살려 두고 싶어서 뻐꾸기로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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