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문화의 장인을 찾아서]
누비, 한 땀씩 지어가는 수행의 바느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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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리 / 2023 년 2 월 [통권 제118호] / / 작성일23-02-03 14:19 / 조회2,762회 / 댓글0건본문
불교문화의 장인을 찾아서14 | 국가무형문화재 누비장 김해자
‘누비’는 겨울이라는 계절감이 뚜렷하다. 두 겹의 천 사이에 솜을 넣고 촘촘하게 홈질을 넣어 결결이 줄지게 하는 방식의 바느질법이다. 누비는 닿고 해진 옷을 누덕누덕 기운 스님들의 옷인 납의衲衣에서 시작한다.
스님들의 납의에서 기원한 누비
수십 조각 잇고 덧씌워 누빈 납의는 모든 것을 내려놓으려는 수행의 과정과 그 모습이 닮아있다. 누비는 홈질이라는 가장 간단한 바느질로 같은 행위를 반복하면서 내려놓음과 비움을 실현할 수 있는 방편이 되기도 한다.
예전에는 손이 많이 가는 귀한 겨울 옷감이였지만 지금은 편하고 가벼운 다른 대체품들이 많아서 아쉽게도 잊혀져 가고 있는 중이다. 반면 누비와 유사한 면을 지닌 퀼트를 취미로 배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작은 조각천을 이어서 옷이나 이불을 만들 만큼 크게 만드는 서양의 바느질 기법이다.
비슷한 듯 보이지만 방식이나 정서상으로 차이가 있다. 전체를 시종일관 균일한 땀과 간격을 유지하며 떠낸 누비는 한국의 바느질법이다. 어떤 장식이나 특수한 바느질 기교 없이 홈질 한 가지로 천과 천, 천과 솜을 이어 하나로 만든다. 단순하지만 한 땀 한 땀 공을 들여야 한다.
바늘땀의 간격이 어찌나 정교한지 0.3㎝, 0.5㎝, 1㎝의 잔누비, 세누비, 중누비는 여덟 땀, 아홉 땀, 열 땀을 떠야 비로소 1㎝ 나간다. 8폭 치마 한 폭을 세누비로 만들려면 600줄이 넘게 누비질을 해야 하는 고된 일이다. 솜을 넣어 누비면 ‘솜누비’라 하고, 옷감 두 겹만을 누비면 ‘겹누비’라 한다. 줄을 굵게 잡아 골이 깊으면 ‘오목누비’, 솜을 얇게 두고 넓게 누벼 납작하면 ‘납작누비’라고 한다.
옷감에 따라, 실에 따라 여러 다양한 누비가 있겠으나 한 벌의 누비옷을 짓기 위해서는 수개월에 걸친 정성어린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긴 시간이 필요한 만큼 바쁜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점차 이 옷을 찾지 않게 되었다. 맥이 끊어지게 된 누비의 숨을 놓지 않고 지금까지 그 맥을 잇고 제자들을 양성하고 있는 이는 김해자 선생이다. 가장 단순한 바느질을 수행의 도구로, 일생의 벗으로 삼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김해자 선생을 찾아보았다. 한 올도 건너뛸 수 없고 한 올도 옆으로 갈 수 없는 누비를 통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성철 큰스님께 받은 마삼근 화두
누비는 추운 겨울 방한을 주목적으로 하지만 누비 소재의 옷감을 보고 있노라면 그 나름의 멋과 손맛이 있다. 요즘 시중의 누비제품은 대부분 기계를 사용해서 일률적이라 재미가 덜하지만 프린터로 뽑은 자판글씨와 사람의 손길로 쓴 손글씨의 차이가 명확하게 다르듯, 손으로 지은 누비옷에서는 그 사람의 손맵씨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글에도 명필名筆이 있듯 바느질에도 명침名針이 있는 것이다. 경상북도 경주시 한옥마을(식혜골길 33)에 위치한 누비공방에서 바늘로 획을 긋는 김해자 선생을 만날 수 있었다. 공방은 정갈하고 단아한 누비옷 차림의 선생은 온화한 표정으로 객을 맞이하였다.
우선 탕관에 찻물을 올리고 돌확에 녹차를 곱게 간다. 드륵드륵 찻잎 갈리는 소리가 듣기 좋다. 탕관에 물이 적당히 끓으면 곱게 갈은 차를 넣어 우려 따라낸다. 점다법點茶法으로 차의 깊은 맛을 낸 것이다. 봄이 되면 차를 직접 덖어 만든다 하니 차에 대한 조예가 예사가 아니다. 손님에게 차를 내는 처음부터 전과정에 정성과 집중을 다하듯 선생의 삶 또한 그러하다. 수행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는 누비의 인연은 어쩌면 성철스님과의 인연이 그 중심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젊은 시절 선생은 마음 내려놓을 곳이 없었다. 그래서 이 산 저 산 많은 곳을 올랐다고 한다. 한라산에서 지내던 어느 날이었다. 우연히 30인 고승 서화전에 들렀다. 거기서 경봉스님의 글을 보게 되고 깊은 감흥에 곧장 노장을 찾아갔다.
“큰스님, 저 좀 여기에 있게 해주세요.”
“안 된다.”
노장은 단호했다. 그렇다고 물러설 그가 아니었다. 수차례 청을 넣어 결국 허락을 받았다. 일을 돕고 공부하며 1년 동안 노장을 시봉하면서 불교에 대한 의문이 일었다. 성철스님을 친견한 것은 그때였다.
“니 뭐하노?”
성철스님은 대뜸 그에게 물었다.
“글 좀 할까 합니다.”
“글 해가지고 뭐할래? 니는 도 닦으면 성불할 수 있는데 내한테 와서 공부해라.”
“성불은 해서 뭐합니까. 아 놓고 필녀筆女로 사는 게 좋지. 전 안 해요.”
“그라지 말고 내한테 와서 화두 받아 공부해라.”
“안 한다니까요.”
“묵죽墨竹으로 유명한 옥봉 비구니도 날 찾아와서 화두를 달라고 했는데 안 줬다. 그런 대가도 나이 육칠십에 공부할라고 그러는데 니가 그래가지고 뭐할끼고?”
“그러면 화두가 뭔지 저한테 말씀을 해주세요.”
그렇게 해서 받은 게 마삼근麻三斤 화두였다. 초발심으로 기도를 했던 그에게 성철스님은 “기도도 하지 말고 오로지 이 한 생각만 지극히 하라.”고 당부했다. 그는 또 토를 달았다.
“큰스님,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라서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무 생각도 안 하면 바보가 됩니다. 그래도 죄가 안 됩니까?”
“아 그럼, 괜찮다.”
“큰스님, 그러면 저는 해방입니다. 요새 생각이 많아 가지고 머리가 복잡해 밤이면 기와집 열 채를 더 짓는데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살면 그게 해방입니다. 오늘부터 큰스님 말씀대로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이 생각만 하고 살겁니데이.”
수행자의 마음으로 시작한 누비 인연
성철스님은 크게 소리 내어 웃으며 좋아하셨다. 성철스님을 친견한 뒤 수덕사로 거처를 옮겼다. 일주문에서 화주를 하면서 3년 동안 정진을 했다. 비록 성철스님 밑에서 탁마하지 않았지만 지나고 보니 그것이 곧 탁마였다. 마음공부 하는 사람이 지녀야 할 대신심大信心·대분심大憤心·대의심大疑心 중 대분심을 일으켜줬기 때문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예불을 드리고 참선을 했다. 결제철에도 화두를 참구했다. 숭산스님의 제자들과 함께였다.
이후 수행의 방편으로 삼은 것은 누비였다. 한 땀의 공을 들이고 숨을 챙기는 과정에 집중하는 것 자체가 수행이다. 누비는 단순한 작업이라 자칫 망상에 들기 쉽다. 그래서 알아차려야 한다. 일념으로 실의 뒤틀림과 꼬임을 신경 쓰고 망상을 놓고 끊임없이 집중해야 한다.
“바느질할 때 뭘 자꾸 생각을 일으키면 안 돼요. 생각을 비우고 무심하게 하면 쉬운데. 무슨 조건을 붙이고 일을 하면 물건이 변해요. 조건 없이 행위를 했다는 자체로 지족하는 게 좋아. 그래야 묻어나는 게 없으니까.”
주로 박물관에 있는 유물과 도록을 보고 공부하던 선생은 1992년 전승공예대전에 누비 간격이 3㎜와 5㎜인 누비 직령포와 액주름포를 출품하게 된다. 단국대 석주선 교수가 소장하고 있던 중요민속문화재 제114호 과천 출토 광주이씨 의복을 재현한 것이다. 결과가 공개되자 사람들은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솜씨’라며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첫 출품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조선 말기 재봉틀이 들어온 이후 서서히 사라진 손누비의 재현은 당시 전승공예계의 과제이기도 했다. 그리고 수상 후 4년 만인 1996년에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로 인정받아 무형문화재가 된다. 40대의 최연소 문화재였고, 최초의 누비장이었다. 100년 가까이 맥이 끊겼던 문화이니 누구에게 배운 것은 아니었다. 선생은 박물관 유물을 스승삼아 문화를 이은 것이다.
단순함의 깊은 울림
선생이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국제퀼트박람회’에 참가했을 때 세계의 화려한 퀼트 작품이 모두 참가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가장 무심하고 단조로워 보이는 선생의 전시실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었다. “다른 전시실은 너무 화려해 정신이 없었는데 여기서 누비를 보니 비로소 숨이 트입니다.” 기교나 화려함은 단번에 이목을 끌지만 오래도록 발길이 머무는 곳은 단순하되 편안한 마음을 주는 곳이다.
당시 일본인들은 선생의 작업에 큰 관심을 가졌고 누비 전시를 1위로 뽑았다. ‘단순함의 울림’은 그렇게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이후에도 초대전에 초청되었고 선생의 시연에 사람들은 구름같이 몰렸다. 군중들은 바늘땀을 뜨는 미세한 동작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열중하였다. 국내에서보다 해외에서 더 알아보았다.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누비강연이 있을 때면 선생도 외국인 교육생들도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다. 우리의 문화를 제대로 잘 알려주기 위해, 한국의 문화를 잘 배우기 위해 서로의 교감이 증폭되는 시간이다.
선생은 누비의 세계화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해석과 변화에 대해서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옛것을 재현하는 인간문화재이지만 옛 누비옷의 재현뿐 아니라 새로운 디자인에도 꾸준히 도전을 한다. 세련된 디자인의 정장스타일, 드레스며 아이 옷도 만든다. 지갑이나 명함꽂이·클러치 등 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들도 작업한다. 누비작업이라 더 까다롭지만 더 가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제는 퀼트를 배우는 사람들이 다시 누비를 배우기 위해 찾아온다. 제자들과 크게 말을 나누지 않아도 바느질의 모양새를 보면 그 마음을 읽어낼 수 있다. 처음에는 누비의 방법을 배우러 찾아왔을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누비의 수행을 배워 가는 제자들을 바라보며 김해자 선생의 한 땀은 더 여물어 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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