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허의 ‘인생불교’와 인순의 ‘인간불교’ > 월간고경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월간 고경홈 > 전체 기사 >

월간고경

[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태허의 ‘인생불교’와 인순의 ‘인간불교’


페이지 정보

김제란  /  2023 년 3 월 [통권 제119호]  /     /  작성일23-03-03 10:22  /   조회1,738회  /   댓글0건

본문

근대중국의 불교학자들 27 | 태허太虛 ③ 

 

태허太虛(1889~1947)가 살았던 근대시기는 사회 전체에 걸쳐 전반적인 개혁이 필요한 시기였다. 이때 태허는 정치사회 혁명이 단기간에 정권을 바꿔놓을 수는 있지만 인간이 가진 무시무명無始無明 등 근본적인 변화는 불교를 통한 심성의 혁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정치사회 혁명과 불교 혁명의 사이

 

이 점이 사회정치적 혁명을 추구하는 이들이 종교철학적인 변화를 앞세우는 이들은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사회주의 혁명을 통하여 사회변화가 일시에 가능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러한 변화는 외적인 변화만 가져올 뿐이지 인간 생명 그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생각하였다.

 

사진 1. 1900년대 초 상해 항구의 모습. 서양문화의 도입으로 급변한 중국도시.

 

자아의 집착과 업業의 문제 등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고 현상적인 문제만을 해결하는 것은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악의 과보에 관심을 두고 현상세계의 잘못을 고치면서 선善한 종자를 심지 않는다면 순식간에 군벌이 전횡하거나 폭력이 전횡하게 되기 때문에 악을 근절시키는 것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선의 활동이 이뤄져야만 한다고 보았다. 그는 이러한 사회 변화를 전통불교의 ‘대승보살’ 실천행으로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태허의 불교개혁은 이처럼 불교를 통한 사회변화를 모색하는 것이고, 보살정신으로 현실사회를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자유, 평등, 민권의 실현이라는 점에서는 서구의 틀을 따르면서도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전통불교의 이론체계를 따라 이뤄졌다.

 

사진 2. 격동의 시대에 꽃피운 중국 근대불교. 1936년 스촨성 구산서방九山書房의 졸업식. 사진: 불교신문.

 

그는 사회활동의 기초를 계율수지에 두었다. 그의 인간불교 사상은 진정한 사회변화를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인격을 완성해야 한다는 실천이념에 의거한 것이다. 불교에서 현상세계는 결국 벗어나야 할 세계이지만 태허의 ‘인생불교’에서는 내가 누릴 수 있는 자유를 표현하고 실현할 수 있는 대상으로 인식한다. 사회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고, 그 정신이 바로 ‘보살정신’이라는 것이다.

 

태허는 인간이 살아가는 이 사회 속에서 인격의 완성을 바탕으로 보살행의 실천을 이루는 것을 불교의 목표로 삼았다. 점진적인 수행을 통하여 개인적 차원의 변화에서 출발하여 사회와 국가의 변화로 범위를 확대시켜 나갔다. 인생불교의 특징은 출세出世의 정신으로 입세入世하는 실천적 불교라고 할 수 있다. 

 

태허 ‘인생불교’를 계승한 인순의 ‘인간불교’

 

태허 ‘인생불교’ 사상의 대표적인 계승자는 제자 인순仁順(1906~2005)이고, 그의 인간 중심의 불교, ‘인간불교’이다. 인순은 자신의 인간불교와 태허의 인생불교를 비교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태허가 말한 인생불교는 귀신과 죽음을 중시하는 중국불교를 염두에 두고 제기된 것이다. 나는 인도불교의 천화天化, 즉 신화神化의 정도가 심각하고 또 중국불교에 깊은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인생’이 아니라 ‘인간’을 말하였다. 중국불교가 신화에서 탈피하여 현실의 인간에게 돌아오기를 바란다.”

 

인순은 특히 인도불교가 처음에는 일신一神 경향의 범천梵天으로 기울다가 뒤에는 범신론 경향의 제석천帝釋天으로 기울어졌다고 하였다. 태허는 중국불교가 가진 귀신과 죽음을 중시하는 성향을 인간의 삶(‘인생’)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바꿀 것을 주장하였고, 인순은 인간 자신을 중심에 둔 종교로서의 불교를 주장하였다.

 

사진 3. 범천권청에 등장하는 범천(왼쪽)과 제석천(오른쪽). 1세기, 국립베를린박물관. 

 

인순은 불교가 신선이나 귀신을 받들게 되는 것은 인간이 아닌 천이나 신의 존재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므로, 신神과 영생永生을 중시하는 서양 기독교와 같은 초월적 종교와 다를 바가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기독교의 ‘신’과 신화된 불교의 ‘귀신’, 인도불교의 ‘범천’, ‘제석천’ 등은 인간이 아닌 초월적인 존재로서 사실상 다르지 않다고 보고, 신격화 또는 무속화된 불교가 될 위험성과 불교의 일신론적 내지 범신론적 경향을 비판하였다. 

 

태허와 인순의 불신관의 차이: 역사적 붓다와 종교적 붓다

 

태허는 불교의 각종 종파와 불신관佛身觀을 모두 받아들이는 입장을 취하였는데, 이 중에는 역사적 붓다 외에도 붓다를 이상화하고 인격적 요소를 내포하는 천신화된 붓다, 종교적 붓다도 포함되어 있다. 반면에 인순이 긍정하는 붓다는 역사상의 붓다이고 인간의 불신佛身이었다.

 

태허와 인순의 이러한 불신관의 차이는 기독교에서 예수를 역사상의 존재이며 신의 아들이라는 신적인 요소를 모두 인정하는 입장과 역사상의 존재를 더 중심에 놓는 신학적 차이에 비견할 만하다. 현대신학은 신으로서의 예수보다는 인간으로서의 예수를 더 강조하고, “신학은 인간학이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신학의 불교적 등가물이 바로 태허의 인생불교와 인순의 인간불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삶에 중심을 둔 불교를 말하는 태허 사상에 대해서 인순은 인간 자신을 중심에 두는 불교를 주장했던 것이다. 이것이 스승 태허의 인생불교를 제자 인순의 인간불교가 발전시킨 것이면서도 대조적이라고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진 4. 한역 『잡아함경』. 사진: 불교기록문화유산아카이브.  

 

인순은 “모든 부처들이 인간에게서 나왔고, 결국 천天의 영역에서는 성불하지 않는다.”(『아함경』)는 글을 읽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시방세계 중에서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이 땅을 중시하고 삼세三世에서도 현재를 중시하며, 일체 유정 중 특히 인류의 구제를 근본으로 삼고 있다는 것에 큰 감동을 받았던 것이다.

 

사진 5. 지장보살도(고려후기, 뉴욕 메트로포리탄박물관). 부처가 되기를 포기한 지장보살은 보살정신의 대표적인 예로 볼수 있다.

 

그는 깨달음을 얻어 중생세계를 벗어날 수 있더라도 중생을 다 구제하기 전에는 이 세계를 떠나지 않겠다는 대승불교의 자비가 당시의 사회를 바로잡을 기본 동력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선정에 깊이 빠져들면 대승이 아닌 자기만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소승에 그치게 될 것을 우려하였고, 나의 깨달음을 자랑하는 자만으로 이어질 것을 경계하였다. 인순의 이러한 생각은 사실상 태허 사상과 일치한다. 태허 역시 인간이 사는 이곳에서 성불한다[卽人成佛]는 입장을 철저히 하였고, 인간을 벗어난 초현실적인 어떤 세계에도 깊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리하여 “인간에서 보살로, 그리고 부처로 나아가는 인생불교를 건설하자.”(「중국불교를 개혁하려는 혁명승들에게 주는 가르침」)고 주장하였고, 여기에서 인순의 범부보살 사상이 나오게 되었다. 

 

새로운 정토종의 이해: ‘인간정토’와 ‘창조정토’

 

현재 살아있는 인간에 관심을 둔 태허 사상에서 보면 정토종의 ‘정토’에 대한 인식이 좋을 수는 없다. 정토는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아니라 ‘저 세상’에 대한 관념이기 때문이다. 정토종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더러운 땅[穢土]’, ‘탁하고 오염된 세계’라고 부르며 황금으로 이루어진 서방 극락세계야말로 우리가 죽은 뒤에 왕생해야 할 ‘깨끗한 땅[淨土]’이라고 보았다.

 

태허는 이러한 정토종을 현실화하려고 시도하였다. “오늘 오염된 중국을 중국의 깨끗한 땅인 정토로 바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그러나 인간은 이러한 마음의 힘과 정토를 만들 능력이 있으니, 이 세상을 순수한 땅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자.”고 제안하였다. 이러한 실천적, 제도적 개혁 시도는 정부의 종교 정책이나 불교계 내부의 의견 통합의 어려움 등 여러 요인들로 인해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죽음과 귀신 등 저 세상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지금 이 땅에서의 인간의 삶을 중시하는 그의 ‘인생불교’ 사상은 이후 인간을 중심으로 인간이 사는 이 세상의 개혁과 혁명을 시도하려는 인순의 ‘인간불교’ 사상으로 발전해 갔다.

 

사진 6. 정토교의 주불 아미타불(일본 가나가와현 소재 가마쿠라 대불).

 

인순 역시 ‘정토’ 관념을 강하게 비판하였는데, 정토종의 아미타불 신앙은 서양 종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현실의 ‘이 곳’을 버리고 환상의 ‘저 곳’을 추구하는 신앙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입장은 그의 인간 중심의 불교와 정면으로 대치되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특히 서방정토를 중시하며, 현실의 인간정토의 신행을 소흘히 한다. 아미타 정토는 ‘죽음을 기다리고’ ‘삶을 도피하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이것이 어찌 정토의 진정한 뜻이겠는가?”

 

인순은 정토종이 말하는 ‘극락정토’ 외에 ‘인간정토’와 ‘창조정토’ 개념을 새로 제기하였다. 이 인간정토와 창조정토는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과 보살, 부처가 함께 열악한 인간 세상을 개혁하고 창조하는 정토를 가리킨다. 이 새로운 정토 개념은 지금 이 땅에서의 삶을 중시하는 인생불교, 그리고 인간을 중심으로 인간이 사는 이 세상의 개혁과 혁명을 추구하는 인간불교에 근거한 해석인 것이다.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김제란
철학박사. 현재 고려대학교 강의교수. 고려대학교 철학과 석·박사 졸업. 같은 대학 철학과에서 강의, 동국대 불교학술원 HK연구초빙교수를 지냈다. 지곡서당 한문연수과정 수료. 조계종 불학연구소 전문연구원 역임. 『웅십력 철학사상 연구』, 『신유식론』, 『원효의 대승기신론 소·별기』 등 다수의 저서 및 번역서가 있다.
김제란님의 모든글 보기

많이 본 뉴스

추천 0 비추천 0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로그인 하시면 추천과 댓글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우) 03150 서울 종로구 삼봉로 81, 두산위브파빌리온 1232호

발행인 겸 편집인 : 벽해원택발행처: 성철사상연구원

편집자문위원 : 원해, 원행, 원영, 원소, 원천, 원당 스님 편집 : 성철사상연구원

편집부 : 02-2198-5100, 영업부 : 02-2198-5375FAX : 050-5116-5374

이메일 : whitelotus100@daum.net

Copyright © 2020 월간고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