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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심리학의 만남]
인식주체에 의한 불교인식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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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조  /  2023 년 3 월 [통권 제119호]  /     /  작성일23-03-03 11:57  /   조회1,247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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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론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다룬다면 인식론에서는 인식주체가 개입된다. 인식주체에 의해서 존재가 어떻게 인식되는지가 문제가 된다. 인식론에서 진리론으로 나아갈 때, 이 진 

리는 인간의 진리이기 때문에 인식주체 가운데 인간이라는 인식주체를 중심으로 다룬다. 존재, 인식, 진리로 나아갈수록 인간의 관점으로 수렴한다.

 

불교인식론

 

법론과 연기론의 관점에서 보면 담마는 연기적으로 생멸한다. 이러한 담마는 인식주체에 따라서 분류된다. 법론과 연기론은 담마의 특징에 따라 담마를 분류한다면 인식론은 인식의 종류에 따라서 담마를 분류한다. 붓다는 일체一切(sabba)를 감각기관과 그 대상으로 분류한다. 감각기관에 의한 감각기능을 의미하는 근根은 인식주체에 따라서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다. 인간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라는 감각기관과 그 감각대상인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의 열두 가지로 분류한다. 여기에서 일체를 구분하는 기준은 인식주체이다. 

 

인식주체 개인의 주관적인 기준이 아니라, 인식주체가 종으로서 가지는 보편적인 기준을 말한다. 인식주체가 인간이라면 여섯 가지 감각기관과 그 고유한 대상을 가진다. 보편적이면서 고유한 대상을 가지기 때문에 이들은 분류의 기준이 될 수 있다. 여기서 ‘고유한’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라는 각각의 감각기관은 서로 다른 대상을 감각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눈이 맛을 감각할 수 없고, 귀가 냄새를 감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눈이 맛을 감각할 수 있고 귀가 냄새를 감각할 수 없다면 감각기관은 분류기준으로 성립할 수 없다.

 

사진 1. 꽃향기를 맡고 있는 아이.

 

이는 소박하지만 강력한 분류법이다. 감각기관에 따른 분류이기에 주관적일 수 있다는 의미에서 소박할 수 있지만 모든 인간이 보편적으로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에서 강력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감각기관과 감각대상에 대해서 원래 처處(ayatana)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때 처는 장소를 의미한다. 이는 감각기능이 기능하는 장소와 영역이 고유하고 그 감각기관과 그 감각대상은 그 영역에서 만난다는 의미로 장소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는 감각기관과 감각대상이 분리되어 있지 않고 함께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감각기관과 감각대상의 마지막에 있는 의意와 법法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먼저 마음과 동의어로 사용될 정도로 정신적인 작용을 하는 의意가 일종의 감각기관이라는 것이다.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이라는 외부적인 대상을 감각하는 감각기관과 병렬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는 외부감각이든 내부감각이든 감각이라는 측면에서는 동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질과 정신을 감각할 수 있는 감각기관을 병렬적으로 배치하는 것은 불교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근원적인 시각을 보여준다.

 

물질이든 정신이든 일종의 감각대상이고, 그러한 점에서 동등하다는 것이다. 모든 정신작용은 외부적인 감각과 마찬가지로 감각을 바탕으로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존재론에서는 모든 존재를 의미하는 법法이 인식론에서는 의意라는 감각기관의 감각대상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는 ‘사물’, ‘현상’이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것까지도 포함한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되면 매순간 감각하는 것이 인식이 된다. 매순간 생멸을 감각하는 것이 불교인식론에서의 인식이 된다. 

 

세계론


처處(ayatana)라는 영역에서 계界(dhātu)가 펼쳐진다. 인식주체에 의한 인식이 처處에서 본격적으로 개입하게 된다. 일체를 바탕으로 계界가 만들어진다. 계를 어근적으로 보면 ‘유지되는 것’이다. 즉 유지되는 공간을 말한다. 만약 공간이 실체적으로 존재한다면 유지라는 말이 필요 없을 것이지만 생멸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다투(dhātu)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감각기관 각각의 감각기능에 의해서 펼쳐진 공간이 안계眼界에서 의계意界까지이고, 감각기관의 대상인 감각대상에 의해서 펼쳐진 공간이 색계色界에서 법계法界까지이다. 그리고 이들 각각과 인식주체의 인식에 의해서 생멸하면서 펼쳐진 공간이 안식계眼識界에서 의식계意識界까지이다. 이렇게 열여덟 종류의 십팔계十八界라는 공간이 매순간 펼쳐지고 있다.

 

 사진 2. 극락 구품도(합천 해인사 국일암).

 

처는 놓여져 있는 것을 분류한 것이라면 계는 처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을 분류한 것이다. 즉 처는 인식주체를 분류한 것이라면 계는 인식주체가 만들어 낸 것, 인식한 것을 분류한 것이다. 이 계는 매순간 생멸한다. 인식주체의 식識도 또한 존재이므로 생멸의 특징을 가진다. 이러한 생멸의 특징이 인식주체에 의해서 인식될 때, 이는 시간 즉 세世로 인식된다. 과거, 현재, 미래라는 삼세三世로 인식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계界와 세世가 인식주체에 의해서 만들어지게 된다.

 

인식에 의해서 세계世界가 만들어지게 된다. 이때의 세계는 하나의 뜻을 가진 단어가 아니라 인식주체에 의해서 만들어진 시간과 공간을 함께 말한다. 그러므로 인식과 세계는 같은 외연을 가진다. 인식론과 세계론은 동등한 외연을 가진다. 이는 존재론과 연기론이 동등한 외연을 가진 것과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존재 자체의 특징에 의해서 연기라는 운동법칙이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식이라는 특징에 의해서 세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인간은 어떤 고정불변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세계는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우리는 매순간 세계를 감각하고 창조해 나가는 것이다. 나아가 모든 유정물이 감각기관을 통해서 감각대상을 인식하면 계界가 만들어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인간만의 세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유정물에게 세계가 존재하게 된다. 다중세계가 가능해진다. 어떠한 세계가 존재할 수 있는지를 불교에서는 대표적인 여섯 가지 세계[六道]로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또한 보시와 지계로 인해서 천신의 세계로 나아가고, 색계사선을 닦음으로 인해서 범천의 세계에 태어나고, 아미타불을 염불함으로써 정토로 나아가는 것을 제시하는 것도 동일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육도, 천상계, 정토 등의 세계를 감각하고 창조하는 것은 이와 같은 세계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감각기관을 통해서 감각대상을 어떠한 방식으로 감각하는가에 따라서 창조되는 계가 달라지기 때문에 육도, 천상계, 정토 등의 세계를 감각할 수 있다.

 

세계는 감각기능과 감각대상에 의해서 생성되고, 그 다음 순간 새로운 식이 생성되는, 즉 식의 생멸을 말한다. 그러므로 불교의 세계는 생멸하는 식의 세계이다. 결국 식識에 의한 세계이다. 세계는 존재와 구분된다. 존재를 인식함으로 인해서 세계가 개현되는 것이다. 인식에 의해서 세계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처럼 인식과 세계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게 된다. 생멸하는 존재가 운동의 법칙인 연기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듯이, 인식에 의해서 세계가 생멸하므로 인식과 세계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 존재와 연기는 붓다도 ‘발견’했다고 할 만큼 원래의 모습일 뿐이지만 인식과 세계는 유정의 인식이 개입된다. 유정의 감각기능에 의해서 각각의 세계가 개현하게 된다.

 

불교심리치료적 함축

 

모든 존재가 인간에 의해서 구분된다는 것은 치유적 함의를 가진다. 인간을 넘어선 기준에 따른 분류라고 한다면, 그 기준은 인간이 바꿀 수 없다. 즉 그 기준에 의해서는 치유가 불가능할 수 있다. 인간에 의해서 존재가 분류되므로 인간에 의한 변화가 가능해진다. 변화가 가능하다는 근본적인 전제 위에 인간에 의한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세계관에 의하면 우리가 어떤 세계를 감각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다양한 세계가 인간의 감각에 의해서 매순간 펼쳐지고 있다. 이러한 세계가 펼쳐지는 것은 근본 원인인 인식에서 시작된다. 이처럼 세계는 불교의 존재론인 담마로지, 곧 법론에서 출발하고, 법의 특징을 전제하는 가운데 세계는 감각에 의해서 매순간, 무궁무진하게 펼쳐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신의 인식에 의해서 세계가 다양하게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자신에게 세계를 펼쳐나갈 수 있는 근원적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이를 실현하고자 할 것이다. 

 

매순간 개현되는 식 자체가 하나의 세계이므로 매순간 어떤 식識을 낼 것인지가 중요해진다. 단순하게 하나의 생각을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가 창조되는 것이다. 매순간 내는 한 생각, 한 생각이 중요해진다. 나아가서는 식일원론識一元論으로 나아간다. 왜냐하면 개현되는 세계가 모두 식識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식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가 문제가 된다.

 

육근청정六根淸淨이라는 수행방법론이 가능해진다. 육근청정은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통해서 감각대상을 감각할 때 어떠한 방식으로 감각하는지에 따라서 감각할 수 있는 세계가 달라진다는 것에 근거한다. 육근의 청정, 육근에서 번뇌 없음이 핵심이 된다. 육근은 감각기관이므로, 감각기관에서의 청정이 관건이 된다. 이는 무아無我로 나아가는 실질적인 방법을 보여준다.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 등 감각에서 탐진치 없음 또는 왜곡 없음 또는 여실如實로 인해서 무아로 나아간다. 이러한 탐진치와 왜곡의 작용이 일어나는 곳이 감각기관 즉 육근이다. 육근은 인식주체인 인간에 의한 것이므로 인간이 이러한 번뇌를 제거할 수 있는 것이다. 즉 모든 번뇌의 유무는 각자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존재론에서는 존재의 특징을 보는 것, 즉 관觀이 전부라고 한다면 인식론에서는 육근청정이 제시될 수 있다. 존재에 대해서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 발견하는 것만이 있을 수 있다면 인식론에서는 인식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가 문제가 되므로 청정이라는 지향점을 제시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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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조
서울대학교 철학과 학ㆍ석사.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불교학과 석ㆍ박사.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불교학과 불교상담학전공 지도교수. 한국불교상담학회 부회장, 슈퍼바이저. 한국불교학회 부회장. 저역서로 『불교심리학연구』, 『불교의 언어관』, 『불교심리학사전』 등이 있다.
heecho121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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