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살리는 사찰음식]
봄철 되살림의 음식, 야생초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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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 / 2023 년 4 월 [통권 제120호] / / 작성일23-04-05 10:30 / 조회2,835회 / 댓글0건본문
빈 그릇 속에 봄볕으로만 가득 채워보았습니다. 수채화처럼 번져 나가는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보니 맑고 싱그러운 자연풍경이 최고의 보약이란 생각이 듭니다. 둘러보니 봄볕을 고봉으로 받아 마신 봄나물이 지천이고, 봄의 향기를 가득 머금은 꽃들이 활짝 웃고 있습니다.산사의 봄은 생각만 하여도 보약 같은 풍경입니다. 떠오르기만 하여도, 그저 걷기만 하여도, 봄이 전하는 메시지가 오감으로 전해집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봄을 노래하자니 한 꼭지만 읽고 씹어도 들풀의 싱그러움과 들꽃의 향기가 온몸으로 퍼지게 하는 글솜씨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깁니다. 현장에서 말로 하는 강의보다 글을 통해 음식을 전하는 일은 늘 조심스럽고 어렵습니다. 다양한 환경, 염도, 당도, 발효과정에 따라 달라지는 맛의 차이를 글로 표현하고 만들어 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식재료의 특성과 자연의 맛을 통해 많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해 주고 치유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정성을 들여 봅니다.
되살림의 계절, 봄
파릇파릇 들판의 야생초들이 약이 되는 계절입니다. 추억과 함께 먹는 음식, 읽으면 읽을수록 만들고 싶은 음식, 사찰음식의 지혜로 배우는 지구를 살리는 음식을 전하는 데 봄나물은 최고의 선물입니다. 야생초는 생각만으로도 온몸이 상쾌해지는 소재이고 평화로움으로 가득합니다. 되살림의 의미로도 와 닿는 사찰음식의 지혜입니다.
현대에 와서 식생활문화가 많이 달라졌지만 제철 식재료에 대한 소중함은 변함이 없길 바랍니다. 밥상에 담긴 계절을 읽고, 마음을 읽는 일은 축복이고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청정한 자연으로 버무린 봄날의 사찰음식을 통해 여러분의 식탁 위로 아름다운 봄을 살포시 내려놓으시길 바랍니다.
원고를 쓰는 동안 저는 그동안 현장에서 사찰음식을 경험하고 연구하며 신행 생활에 전념했던 순간을 떠올립니다. 계절감을 느끼고 식재료를 떠올리며 수행 아닌 것이 없음을 강조하는 스님들의 일상을 그려 봅니다. 재가자로서 저도 그 자리에 함께하는 마음으로 수행자로서의 일상식을 떠올리게 됩니다. 사찰음식이 비건이나 채소 음식의 범주와 다르다는 사실을 글을 통해 진솔하게 이야기 나누고자 함도 여기에 있습니다.
잔풀나기 야생초
눈부신 봄날입니다. 꽃이 없는 봄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한 송이 꽃이 피려면 모진 추위와 혹독한 무더위도 이겨야 하고 가뭄과 장마도 이겨 내야 합니다. 그런 뒤에야 화사한 꽃이나 초록의 잎으로 자신을 펼칩니다. 법정스님께서는 이 봄날에 나는 어떤 꽃과 잎을 펼치고 있는가를 반드시 살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법문 말미에서는 이 자리에서 미처 말하지 못한 것들은 새로 돋아나는 꽃과 잎들이 전하는 거룩한 침묵을 통해서 듣길 바란다고 당부하십니다.
봄의 음식을 소개하자니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그 어느 계절보다 소개하고 싶은 식재료들이 많다 보니 문득 법정스님의 법문이 떠올랐습니다. 어쩔 수 없이 이곳에 몇 가지 음식을 소개해 보지만 지극히 일부일 뿐. 제가 소개하는 몇 가지 음식은 참고만 하시고 자연의 향연 속에서 향기로운 맛을 직접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향기로운 것들은 들에서 삽니다. 자연의 품으로 들어가 향기 나는 자연과 마주하다 보면 자그마한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가 큰 감동을 선사합니다. 섬진강이 봄 햇살을 가득 머금은 날에 명지바람 맞으며 들길을 걷다 보면 여러 번 발길을 멈추게 됩니다. 뒤돌아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은 기특한 야생초를 자주 만나기 때문입니다.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들풀을 보며 추억으로 버무린 맛을 그려 보면서 잔풀나기를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① 화전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는 음력 삼월삼짇날은 답청절踏靑節이라 부릅니다. 신윤복의 풍속화인 ‘연소답청年少踏靑’에 잘 묘사되어 있듯이 들판에 나가 꽃놀이를 하고 새 풀을 밟으며 봄을 즐기는 절기인데, 이날은 여러 음식을 나눠 먹으며 풍류를 즐겼다고 합니다. 3월 3일 삼짇날은 양수陽數 중복일 풍속의 하나로 음양설陰陽說로 짝수가 음기이고, 홀수가 양기陽氣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날짜에 양기가 겹치는 날은 왕성한 양陽의 기운이 넘치는 날이므로 매우 중요한 날로 여겼다고 합니다.
풍류문화의 꽃, 꽃달임(꽃첼럽)
이처럼 음력으로 3월 3일 삼짇날, 5월 5일 단오, 7월 7일 칠석, 9월 9일 중양절은 우리 민족에게 아주 중요한 날이었습니다. 그중에 삼짇날은 설날 다음으로 맞이하는 큰 명절로 여겨 꽃달임을 하며 소박하게 음식을 나누면서 이웃과 정을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꽃달임이란 진달래꽃이 필 때 꽃을 따서 전을 부치거나 떡에 넣어 여럿이 모여 먹는 놀이를 말하며 평북지방 방언으로 ‘꽃첼럽’이라 부르기도 하였답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화면花麵과 화전花煎을 삼짇날의 시절음식이라고 했습니다. 녹두가루를 반죽하여 익힌 것을 가늘게 썰어 오미자 국에 띄우고, 꿀을 섞고 잣을 곁들인 것을 화면이라 하는데, 진달래꽃을 넣은 녹두가루로 국수를 만들어 붉은색으로 물을 들여 그것을 꿀물에 띄워 먹는다 하여 수면水麵이라 부릅니다.
화전과 함께 즐기는 화면花麵은 제철에 나는 꽃잎에 녹말을 묻혀서 끓는 물에 살짝 익힌 것을 오미자 국물에 띄우거나 녹말가루에 꽃잎을 섞어서 반죽하여 국수를 만들어 오미자 국물에 띄우는 방식으로 화전과 잘 어울리는 전통 음료 중 하나입니다. 먼저 봄의 향기가 물씬 나는 화전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재료
습식 찹쌀가루150g, 뜨거운 물, 식물성 기름, 꿀(조청), 진달래꽃.
만드는 법
1. 소금간이 된 습식 찹쌀가루에 뜨거운 물로 익반죽해 줍니다.
2. 반죽을 15g씩 나누어 동그랗게 빚은 후 직경 5cm 정도로 만들어 주세요.
3. 기름을 두른 팬이 달궈지면 약불로 줄이고 반죽을 올려 주세요.
4. 아래쪽이 말갛게 익으면 뒤집어 주시고 익은 면에 바로 꽃을 올려 줍니다.
5. 완성된 화전은 그릇에 담고 꿀을 묻혀 그릇에 담습니다.
TIP
- 반죽은 동그랗게 굴렸을 때 갈라지지 않고 촉촉한 정도로 수분감을 줍니다.
- 쑥을 활용하여 잎사귀를 표현해 주어도 좋습니다.
- 노란 골담초꽃이나 보라색 제비꽃을 활용해 화전을 만들어도 좋습니다.
- 계절에 따라 다양한 식용꽃을 활용해 화전을 만들어 보세요.
- 반드시 약불로 천천히 구워 주고 충분히 익도록 합니다.
② 사월초파일의 절식 석남시루떡(느티떡)
유득공이 서울의 세시풍습을 정리한 『경도잡지京都雜志』와 조선시대 가사인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에는 느티떡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느티나무 잎을 쌀가루에 넣어서 찐 떡으로, 충청남도 아산의 향토 떡이지만 부처님오신날에 먹는 사찰음식이기도 합니다. 다른 말로 유엽병楡葉餠 또는 석남엽증병石楠葉甑餠이라고 부르는데 쉽게 말해서 석남잎(느티나무 잎)으로 만든 시루떡이란 뜻입니다.
석남시루떡은 음력 사월 초파일 부처님오신날의 절식입니다. 해마다 초파일이 다가오면 저는 느티나무를 점검하며 느티떡 만들 생각으로 설레지 만 기후변화에 따라 느티잎도 초파일이 다가오면 쇠어지는 경향이 있어 정작 부처님오신날에는 느티떡을 만들어 먹기 어려울 지경입니다. 절기 음식이 절기에 어긋남이 없이 유지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지구를 살리는 일에 동참해야겠습니다. 올해 부처님오신날에는 절마다 느티떡을 만들어 함께 나누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재료
멥쌀가루 500g, 물 1~2T, 설탕 5T, 느티잎 200g, 거피팥고물 3cup.
만드는 법
1. 소금으로 간이 된 습식 멥쌀가루를 준비합니다.
2. 느티잎은 깨끗이 손질하여 씻고 물기를 뺍니다.
3. 거피팥 120g을 불려 껍질을 깨끗이 손질한 후 찜통에 찐 다음 소금을 넣고 잘 빻아서
중간 어레미로 한 번 내려 줍니다.
4. 쌀가루에 물을 주어 골고루 비벼서 섞은 다음 설탕을 넣고 중간체에 내려서 느티잎과
섞어 주세요.
5. 찜통의 물이 끓으면 시루밑을 깔고 팥고물을 고루 펴주고 그 위에 느티잎과 섞은 쌀가
루를 순서대로 번갈아 올려 주세요.
6. 가루 위로 김이 골고루 오르면 20분 정도 쪄 주세요.
7. 불을 끄고 5분간 뜸을 들여 주세요.
TIP
- 연한 느티잎을 사용해야 부드럽고 맛이 좋습니다.
- 느티잎은 음력 3월 말~ 음력 4월 1일경에 여린 잎을 채취하여 살짝 말려서 사용하면 좋
습니다.
③ 참죽나무순 장떡
사찰음식에서 가장 소중한 식재료가 참죽나무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참죽나무순은 매우 중요한 식재료 중에 하나입니다. 멀구슬나무과에 속하는 참죽나무는 중국에서 도입된 나무로 중국명은 ‘향춘香椿’ 또는 ‘춘椿’이라고 합니다. 산림청 국가표준식물목록에서 추천명으로 하고 있는 국명 ‘참죽나무’를 ‘가죽나무’와 헛갈려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바로 잡을 필요성을 느낍니다.
문헌에 보면 참죽나무와 가죽나무는 엄연히 다른 나무로 구분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사찰음식은 임산물을 활용한 식재료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나무 이름과 약초 이름에 지역색이 드러나거나 방언에 의해 통용되는 경우가 있지만 식물의 표준명을 정한 식물도감인 『조선식물향명집朝鮮植物鄕名集』 등을 참고하여 국명으로 정확히 불러 사용해야 하겠습니다. 혼돈하여 사용하는 대표적인 예로 재피와 산초, 참죽나무와 가죽나무를 들 수 있습니다.
사찰음식의 필수템이자 자연조미료 참죽나무순
사찰음식의 기본재료는 거의 대부분 임산물에 속합니다. 그래서 약성이 강한 본초들이 사찰음식에 사용되는 경우가 많아서 약성을 가라앉혀서 식용하거나 법제하여 사용하는 법, 식재료를 보관하는 법 등이 사찰후원의 문화사를 통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찰음식의 기본재료 중에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식재료가 바로 참죽나무입니다.
실제로 참죽나무 잎에 들어 있는 성분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본 결과, 인체의 독성분을 배출시키고 신진대사를 촉진시키는 ‘플라보노이드’라고 하는 항산화 물질이 함유되어 있다는 것이 입증되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양력 4월이면 싹을 틔우는 참죽나무의 여린 잎은 여러 가지 쓸모가 많습니다. 새순을 데쳐 참죽나물을 해 먹기도 하고. 새순을 데쳐서 말려 두었다가 묵나물로 먹기도 합니다. 또 된장이나 고추장에 박아 두었다가 장아찌로도 먹고, 찹쌀 반죽을 발라 말려 두었다가 튀겨서 부각으로 만들어 먹기도 합니다. 특히 참죽나무 새순이 조금 단단해져서 나물로 먹기에 질긴 정도로 자란 순은 말려서 채수용으로 유용하게 사용합니다. 김치를 담가 먹기도 하고 데쳐서 바로 초장에 찍어서 먹기도 하는 등 다양한 쓰임새가 있는 참죽나무순이지만 제가 오늘 소개해 드릴 음식은 참죽나무순 장떡입니다.
재료
통밀가루, 참죽나무순, 청홍고추, 고추장, 물, 포도씨유.
만들기
1. 참죽나무순의 끝부분을 잘 손질하여 준비해 주세요.
2. 참죽나무순과 청·홍고추를 송송 썰어 준비합니다.
3. 썰어 놓은 재료를 볼에 넣고 적당량의 고추장을 넣고 버무려 줍니다.
4. 통밀가루에 적당량의 물을 넣고 반죽을 만들어 주세요.
5. 고추장 양념을 한 참죽나무순을 밀가루 반죽에 넣어 골고루 섞어 줍니다.
6. 간이 부족할 경우에는 한식 간장으로 간을 맞춥니다.
7. 팬에 기름을 두고 중간불에서 맛있게 구워 줍니다.
TIP
- 고추장을 많이 넣으면 장떡의 색상이 지나치게 탁해집니다.
- 참죽나무순을 끓는 소금물에 살짝 데쳐서 반건조 상태로 보관하여 사용하면 식감도 좋
고 향기도 아주 좋습니다.
- 참죽나무는 사찰음식에 빼놓을 수 없는 필수템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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