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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동서 문화철학에 근거한 화엄사상의 재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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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란  /  2023 년 6 월 [통권 제122호]  /     /  작성일23-06-05 09:31  /   조회1,159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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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중국의 불교학자들 30 | 당군의 ① 

 

당군의唐君毅(1909~1978)는 웅십력熊十力(1884~1968)의 제자로서 서양 근현대철학의 원천인 헤겔(G. W. F. Hegel, 1770~1831) 철학을 수용한 뒤 이를 유학과 불교철학, 그중에서도 화엄사상을 융합하여 새로운 철학을 제시한 사상가이다. 

 

당군의 철학, 헤겔과 유학, 화엄사상의 융합

 

당군의는 웅십력의 2대 제자 중 한 명으로 다른 제자인 모종삼牟宗三(1909~1992)과 서로 다른 방향의 철학을 시도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다른 한편 웅십력 철학이 모종삼 철학이라는 완성으로 가기까지의 중간 역할을 한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도덕적 자아’를 중심으로 한 당군의의 도덕 이상주의는 웅십력의 ‘체용불이體用不二’ 사상의 발전이며, 이것이 그대로 모종삼의 ‘도덕적 형이상학’으로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사진 1. 당군의唐君毅(1909~1978).

 

도덕적 자아를 중시하는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당군의를 불교사상가로 보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불교철학은 그의 전체 사상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화엄불교 사상가로서 서양 헤겔철학과 유학을 수용하여 새로운 불교의 길을 모색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당군의의 불교사상은 생략되거나 상대적으로 과소평가되어 왔던 것이다.

 

사진 2. 1963년 당군의와 그의 아내 사정광谢廷光의 모습.

 

동양의 모든 근·현대 사상은 동서 문화의 충돌이라는 시대적 산물이다. 중국 근·현대 사상가들은 불교와 유학 등 동양 전통철학과 서양철학을 융합하거나 현대화하여 새로운 철학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이때 당군의는 웅십력이 유식불교의 사상과 용어를 빌어 신유식 사상의 틀을 세우고, 모종삼이 중국불교 중 천태사상을 중시한 것과 달리, 화엄사상을 자기 철학의 모태로 삼았다. 또한 모종삼이 칸트 철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과 달리, 당군의는 헤겔 철학을 높이 평가하고 새로운 불교의 내재적 정신을 밝히는 데 활용하였다.

 

초월론적 동서문화 연구와 ‘중국문화 선언’

 

당군의는 중국 사천성 의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청나라에서 수재로 이름난 사람이었고, 그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이끌려 유학 경전을 공부하였다고 한다. 10살이 넘어서 성도성립 제1사범학교 부속중학교에 입학하였고, 12살에는 중경의 연합중학에서 공부하였다. 17살에 북경으로 가서 중아中俄 대학에 입학하였다가 뒤에 북경대학교로 옮겼다.

 

북경대학교에 있을 때 호적, 양계초, 양수명 등의 강의를 들었고, 특히 양수명 선생에 대한 존경심을 마음에 새기고 제자의 예를 갖추었다. 2년 뒤에 남경의 중앙대학교 철학과로 옮겨서 공부하였는데, 이때 방동미方東美(1899~1977), 종백화宗白華(1897~1986) 등의 가르침을 받았다. 웅십력, 탕용동도 그곳에서 단기강좌를 맡고 있어 강의를 들었고, 웅십력에게도 예를 갖추고 제자가 되었다. 1932년 중앙대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곧 중앙대학, 화서대학, 강남대학 등에서 가르쳤다.

 

1949년에 당군의는 홍콩으로 가서 전목錢穆(1895~1990), 장비개張丕介(1905~1970)와 같이 신아서원을 창립하고 신아대학의 교수로 임명되었다. 1964년 홍콩 중문대학이 성립되고 신아서원이 중문대학의 한 부분이 되자 당군의는 중문대학의 강좌 교수로 초빙받았고, 문학원 원장과 철학과 주임 등을 겸임하였다. 1974년 중문대학에서 은퇴하고 신아연구소의 소장이 되었다가 1978년 2월 암으로 홍콩에서 작고하였다. 당군의는 평생 다른 길을 간 적이 없이 오직 철학 연구를 지속한 학자로서의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사진 3. 홍콩 중문대학.

 

당군의는 “나는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면서 실재론을 좋아하고 관념론은 좋아하지 않았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가 말하는 실재론은 영미의 신실재론 철학을 의미하였다. “신실재론은 나에게 경험에 의한 것이나 경험에 의하지 않은 잠재된 공상共相이 반드시 있고, 우주에는 무수한 가능적 존재가 잠재하고 있는 공상이 있어 그중에 진·선·미의 가치를 포함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었을 때, 무한한 환희를 느꼈다.”는 것이다.

 

그러나 초기에 가진 이런 생각은 후기 철학으로 가면 관념론으로 변화한다. 이러한 변화는 영국 철학자 브래들리(Francis Herbert Bradley, 1846~1924)의 『현상과 진실재』(Appearance and Reality, 1893)를 읽으면서부터라고 한다. 브래들리의 저작은 당시 신실재론자인 러셀(Bertrand A.W.Russell, 1872~1970) 등이 가장 즐겨 공격한 대상이었는데, 당군의는 읽어 가는 도중에 무한한 흥미가 생겼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칸트와 헤겔의 저작을 읽게 되었다고 하였다. 

 

사진 4. 영국철학자 브래들리(F. H. Bradley, 1846~1924). 사진 5. 브래들리의 저서 Appearance and Reality(1893).

 

그는 “서른 살 전후에 나는 서양 관념론을 좋아하는 길로 가게 되었는데, 이는 애초에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중국의 선진 유학, 송명 성리학, 불교 사상이 서양 관념론을 뛰어넘는 점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하여, 불교 등 중국 전통철학의 가치에 눈을 뜨게 되었다. 서양으로 유학 간 적이 없었지만 그의 서양철학에 대한 깊은 이해는 누구도 비교할 사람이 없었다.

 

당군의의 3단계 철학 사상

 

당군의의 철학 사상은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 단계는 ‘도덕 자아’를 자신의 철학의 핵심 개념으로 세우기까지의 시기이다. 1949년 이전 그가 금릉대학에서 강의하던 기간까지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는 18세에 북경대학에서 양계초, 양수명, 호적 등의 강의를 들었고, 다음해 남경 중앙대학에서 방동미, 탕용동에게 배웠으며 웅십력의 『신유식론』 강의를 청강하였다.

 

이 시기에 그는 순수 철학사상 및 동서철학의 차이에 대한 비교연구를 하였으며, 인생 문제에 대한 철학적 반성이라는 주제로 『동서철학사상의 비교연구집中西哲學思想之比較硏究集』 『인생의 체험人生之體驗』, 『도덕자아의 건립道德自我之建立』, 『마음·물질 그리고 인생心物與人生』, 『문화의식과 도덕이성文化意識與道德理性』 등의 저작을 써서 초월자아로서의 도덕 자아를 핵심으로 삼는 사상을 확립하였다.

 

사진 6. 신아서원 시절의 당군의.

 

두 번째 단계는 중국혁명이 일어난 후 1949년 홍콩으로 건너가 신아서원新亞書院을 창립하고 중문대학 등 홍콩에서 활동하였던 시기이다. 그는 혁명으로 인해 중국 전통사상이 단절될 위기가 왔다고 보고, 순수철학에 대한 관심과 비교연구에서 벗어나 동서문화의 융합을 통하여 중국 전통철학의 정신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게 되었다. 이 10년의 시기 동안 당군의는 『중국문화의 정신 가치中國文化之精神價値』, 『인문정신의 재건人文精神之重建』, 『중국 인문정신의 발전中國人文精神之發展』 등의 저작을 썼다.

 

이들 저작에서 그는 중국문화의 독특한 정신을 표현하고, 중국문화가 서양문화를 수용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함으로써 중국 미래의 인문세계를 전개해야 한다고 보았다. 또한 인류의 모든 문화 활동은 도덕 자아, 또는 정신 자아, 초월 자아가 다양하게 나뉘어져 표현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1957년에는 모종삼, 사유위 등과 함께 동양인문학회를 세우고 유학의 부흥을 시도하였고, 1958년 장군매, 모종삼, 서복관 등 대표적인 현대신유학자, 현대신불가들과 공동으로 ‘중국문화선언’을 발표하였다. 

 

사진 7. 중국문화선언 당시의 인물들. 모종삼, 서복관, 장군매, 당군의.

 

세 번째 단계는 전적으로 중국철학에 천착하여 훈고적 고증, 역사적 연구, 의미의 분석 등을 통해 중국철학의 계승과 발전을 추구하였던 시기이다. 분명한 철학 개념을 확립함으로써 중국문화의 독특한 정신을 표현하고, 중국문화가 서양문화를 섭취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였고, 그로써 중국 미래의 인문세계를 전개해야 한다고 보았다. 1958년 『문화의식과 도덕이성』을 저술하여 인류의 모든 문화 활동인 도덕 자아, 또는 정신 자아, 초월자아가 다양하게 나뉘어져 표현된 것에 속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1966년에서 1975년 동안 대작인 『중국철학원론』 6권을 완성하였다. 1976년 마지막 저서이자 대표작인 『생명존재와 심령경계生命存在與心靈境界』에서 그는 불교의 교판 방법을 활용하여 변증법적 체계를 완성하고, 유학의 ‘천인진성, 천인합일’의 가르침을 최고의 경지에 놓았다. 이 단계가 당군의 철학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인데, 그는 서양 헤겔 철학과 화엄사상의 체계를 받아들여 ‘일심통구경一心通九境’이라는 문화철학 체계를 구성하였다.

 

최후의 저서인 『생명존재와 심령경계』에서 ‘생명 존재’는 ‘도덕 자아’를 포괄하지만 도덕 자아와는 달리 더 풍부한 내용을 포함한다. 생명 존재는 갖가지 심령 활동으로 나타나며, 다른 심령 활동에 비해 서로 다른 경지를 이룬다. 동서양의 다른 학파와 종교· 종파가 모두 동일한 생명 존재가 전개된 것이라는 그의 사상의 핵심이다.

 

사진 8. 당군의 전집.

 

중국의 현대철학자 채인후蔡仁厚(1930~2019)는 당군의 저술에 대해 “넓은 의미에서 일종의 교판 작업”이라고 평가하였다. 문화 심령 활동의 전체 내용을 살펴봄으로써 9가지 경지를 나누어 보았고, 동서양 학문· 학파와 종교·종파를 분석하고 서열을 정해 해석하였다. 그리고 그 모든 분석들을 종합하여 원융무애의 상태에 도달하게 하는 것이 자신의 학문의 목적이라고 여겼다. 당군의의 제자인 오삼吳森은 스승에 대해 “당군의의 철학은 우리가 이전에 없었던 동서양 사상의 전체적 종합을 발견할 수 있게 해준다.”고 평가하였던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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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란
철학박사. 현재 고려대학교 강의교수. 고려대학교 철학과 석·박사 졸업. 같은 대학 철학과에서 강의, 동국대 불교학술원 HK연구초빙교수를 지냈다. 지곡서당 한문연수과정 수료. 조계종 불학연구소 전문연구원 역임. 『웅십력 철학사상 연구』, 『신유식론』, 『원효의 대승기신론 소·별기』 등 다수의 저서 및 번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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