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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산 저편 티베트 불교]
룸비니에서 맞이하는 부처님오신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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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현  /  2023 년 6 월 [통권 제122호]  /     /  작성일23-06-05 12:14  /   조회1,512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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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룸비니로~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안나푸르나 설산 기슭에서 네팔 남부 떠라이Terai 평원에 자리를 잡은 룸비니는 거리상으로는 그리 가깝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멀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포카라Pokhara에서 야간버스를 타고 하룻밤을 달리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이기 때문이다.

 

사진 1. 마야데비 사원 앞 붓다 설화 속의 용왕 못에는 실상과 허상이 모두 투영되어 있다.

 

그렇기에 나는 지난 수년 동안 며칠간의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수시로 룸비니로 달려가서 용왕 못가에 앉아 선정에 들기를 즐겨하였다. 그만큼 룸비니 특유의 분위기가 좋았고 특히 샛노란 유채꽃이 피는 겨울철의 떠라이 평야는 더욱 그러하여 한 철을 머물기도 하였다.

 

사진 2. 여명속의 용왕 못에서 선정삼매에 들어 있는 필자.

 

룸비니는 불교의 4대 성지 중에서 유일하게 네팔 땅에 소속되어 있다. 그래서 네팔인들은 ‘Buddha was born in Nepal’이라는 포스터를 여기저기 붙이고 다니며, “붓다는 네팔 사람이다.”라며 자랑하고 다닌다.

 

룸비니가 네팔 땅이 된 배경은 조금 복잡다단하다. 물론 룸비니를 인도 땅에서 네팔로 떼어준 결정적인 역할을 한 나라는 영국이다. 하지만 룸비니의 소속 문제는 시간의 수레바퀴를 한참이나 소급해 올라가서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한다.

 

사진 3. ‘Buddha was born in Nepal’ 포스터.

 

먼저 기원전 마우리아 왕조의 아쇼카 대왕이 룸비니가 샤카모니 붓다의 탄생지라는 석주(Ashokan Pillar)를 세우기는 했지만 고향 인도에서 불교가 쇠퇴해지면서 오랜 세월 무관심 속에서 까마득히 잊혀 갔다.

 

그러나 역사란 망각 뒤에도 부활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지 1896년 독일의 고고학자 알로이스 퓌러 앞에 기적처럼 나타났다. 비록 머리 부분은 손상되어 없어지고, 낙뢰로 인해 반토막이 나고 여러 군데 균열도 생겼지만 한눈에도 분명한 아쇼카 시대의 석주가 분명했다. 게다가 남아 있는 5줄의 브라흐미 문자도 해독이 가능하였다.

 

“많은 신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파야다시(아소카 왕의 별칭)는 즉위 20년 만에 이곳에 와서 경배하노라. 이곳은 붓다가 태어나신 곳이므로 돌을 다듬어 말머리상[馬像]과 돌기둥을 세우노라. 이곳은 성스러운 곳이기에 이곳 주민들의 세금을 1/8만을 부과할 것이다”, 

 

룸비니를 찾은 동방의 순례자들

 

역사상 처음으로 룸비니를 찾은 순례자는 5세기 북위北魏의 법현法顯 율사였다.

 

“성의 동쪽 50리에 정원이 있는데, 바로 룸비니 동산이다. 부인이 연못에 들어가 성욕聖浴을 하고 나와 북쪽으로 연못가를 20보 걷다가 손을 들어 나뭇가지를 잡고 태자를 낳았다. (중략) 두 용왕이 태자에게 첫 목욕물을 끼얹어주었다는 연못이 있는데….”

 

사진 4. 룸비니 유적지에서 바라본 마야데비 사원의 새 건물 전경.

 

8세기 들어 현장법사도 그때까지 남아 있는 석주와 용왕 못에 대하여 역시 자세히 적고 있다. 

 

“전천箭泉에서 동북쪽으로 80리 가면 룸비니 숲에 이른다. 이곳에는 샤카족들이 목욕하던 연못이 있다. 물은 맑아 거울과 같은데 갖가지 꽃이 다투어 피고 있다. 그 북쪽으로 스무 걸음 정도에 무우화수無憂花樹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없다. 바로 보살이 태어난 곳이다. (중략) 석주가 서 있는데 아쇼카왕이 세운 것이다. 나중에 벼락에 맞아 중간이 부러졌다고 한다.”

 

또한 우리 해동의 혜초스님도 당시 룸비니로 가는 길이 순탄치 않았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5. 룸비니 유적지 위로 떠오르는 찬란한 아침 해.

 

“셋째 탑은 가피라국에 있으니 바로 부처님이 태어난 곳이다. 지금도 무우수를 볼 수 있는데, 성은 다 허물어지고 없고 탑은 있으나 승려는 없고 또 백성도 살지 않는다. (중략) 세 탑 중에 가장 북쪽에 있는데 숲이 거칠게 우거지고 길에 도적이 많아 가서 예배하려는 이들이 이르기가 매우 어렵다.”

 

사진 6. 오늘의 룸비니를 있게 한 고고학적 증거인 야쇼카 석주. 
사진 7. 아쇼카 석주에 새겨진 브라흐미 명문.

 

후일 고타마 붓다가 80세를 일기로 입적하기 직전에 제자들이 “어느 곳을 교단의 기념처로 삼아야 하느냐?”고 묻자 붓다는 태어난 곳을 비롯하여 깨달음을 얻은 곳, 처음 법을 설한 곳, 열반할 곳 등의 네 곳을 꼽았다고 한다. 붓다도 역시 보통 사람처럼 태어남이 중요했던 것으로 여겨지는 대목이다.

 

룸비니의 성역화

 

오랫동안 룸비니는 현지에서 구전되어 내려오는 설화들과 산발적인 유적지들만이 볼품없이 남아 있었다. 룸비니가 현재의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미얀마 출신의 우 탄트 전 UN 사무총장의 역할이 큰 몫을 했다. 1967년 룸비니를 찾은 그는 당시 룸비니의 황폐화를 목격하고는 충격을 받아 ‘룸비니성역화’를 제안했다. 이후 여러 나라가 호응하여 자금을 마련하고, 일본 건축가 단게겐조 같은 전문가들이 참여하면서 개발이 본격화되었다. 마지막 단계인 도로 확장 포장 사업이 최근에 마감되면서 그동안 흙먼지에 덥혀 있던 룸비니가 성지다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는 중이다.  

 

사진 8. 마야데비 사당 안에 모셔져 있는 붓다 우협탄생도 부조.

 

붓다의 탄생지 자리에 새로 세워진 하얀색의 마야데비 사당은 아쇼카 석주와 함께 룸비니의 랜드마크이다. 또한 후문 쪽에 자리 잡은 붓다 설화 속의 용왕 못이 순례자들을 맞이한다. 연못 맞은편으로는 역시 설화 속의 사라카 나무(Saraka, 無憂樹)가 솟아 있어서 모든 순례자들은 마야데비 사당을 참배하고 나와서 용왕 못을 시계방향으로 도는 꼬라를 세 바퀴 정도 도는 순례를 하게 마련이다.

 

사진 9. 용왕 못 건너편 서 있는 설화속의 천년고목 사라카 나무.

 

싯타르타 태자는 인도의 북부 떠라이 평원의 까삘라바스뚜 성을 근거로 살던 농경민족 샤카Sakya족을 부계父系로, 인근의 콜리아Kolia족의 마야Maya 부인을 모계로 하여 태어나셨다. 마야데비 부인은 비몽사몽간에 천신들에게 이끌려 설산을 넘어 티베트고원에 있는 마나사로바Manasarova 호수로 이끌려 갔다. 그곳에서 몸을 씻음으로써 신성을 얻고 흰 코끼리를 품는 꿈을 꾸었다. 이른바 성스러운 태몽이었다. 수많은 경전들이 붓다의 탄생설화에 대하여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찬사를 늘어놓았지만 - 물론 약간의 편차는 있겠지만 - 그 요지는 대략 다음과 같다.

 

사진 10. 5월에 꽃이 피는 사라카 나무 꽃.

 

마야데비 왕비가 당시의 관습에 따라 출산을 위해 친정집이 있는 꼴리아성으로 향하던 중 아름다운 룸비니 동산에 이르러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 아름다운 경치에 취해 한동안 서 있는 동안 갑자기 출산의 고통이 찾아왔기에 그녀는 사라카 나무의 늘어진 가지를 붙잡고 힘을 써서 아이를 낳았다. 이에 브라흐마신이 출현하여 두 손으로 아이를 받았고, 그 외 많은 하늘 여인들이 산모를 돌봤다. 이때 하늘 용왕의 입에서 더운 물과 차가운 물 두 줄기가 내려와 아이를 씻어 주었기에 그 물이 고여 연못이 생겨났다.

 

룸비니는 위대한 탄생이 있었던 불교의 첫 번째 성지이지만 인도에서 불교가 쇠퇴하면서 오랫동안 망각의 강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그러다가 아쇼카 석주의 발견을 계기로 다시 제자리를 되찾게 되었다.

 

부처님 생일, 붓다 자얀띠

 

부처님오신날의 네팔식 이름은 붓다 자얀띠이다. 글자 그대로 ‘붓다의 생일’을 뜻하지만 그 외에도 ‘뿌르니마(보름달)’라는 단어가 들어간 명칭도 많다. 제스타 뿌르니마(Jestha Purnima), 붓다 뿌르니마(Buddha P.), 바이샤카 뿌르니마(Vaishakh P.) 등이다. 또한 티베트 계열의 민족들은 탄생일을 포함해서 성도일, 열반일을 합처서 4월 한 달을 통째로 ‘사캬다와(Sakha Dawa, 佛誕月)’라고 강조하며 성대한 행사를 벌이고 있다. 

 

사진 11. 태국 스님들의 붓다 자얀띠 행사.

 

이름이야 나라마다 고유 명칭이 다르니 그렇다 쳐도 문제는 생일축하의 기준이 되는 날짜가 나라마다 다르다는 점이다. 올해(2023년) 네팔과 인도는 5월 5일이 붓다 자얀띠이지만, 남방불교권 국가들은 5월 19일이 ‘베삭 뿌르니마(4월 보름달)(주1)가 된다. 이 베삭은 달을 기준으로 하는 태음력이기에 그레고리안 태양력으로서는 ‘Apr/Jun’ 으로 쓰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사진 12. 붓다 자얀띠 당일 저녁에 촛불을 밝혀 무명을 몰아낸다.

 

말하자면 부처님의 생신축하 잔치를 하는데 이렇게 나라마다 서로 이름과 날짜가 다르니 생신공양을 받으시는 당사자께서는 헷갈리실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게다가 얼마 전까지는 태어나신 연도까지 북방설이니 남방설이니 서로 고집을 피우고 난리였으니 더욱 그러하실 것이다.

 

사진 13. 천년된 무우수 아래에서 하는 기도.

 

그래서 이런 혼란을 막고 공통된 기념일을 제정하기 위해 1956년과 1998년, 두 차례 세계불교도대회에서 양력 5월 15일을 ‘베삭 데이(Vesak day)’로 통일하자고 했다. 하지만 나라마다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아직도 우리나라를 비롯한 북방계 불교국가들은 음력 4월 8일에서 조금도 물러나지 않고 있다.

 

<각주>

(주1) 이 ‘베삭’은 빨리어 비사카Visākha, 베사카Vesakha, 바이샤카Vaiśākha 등으로 표기된다. 남방불교 전통에 의하면 붓다는 이달의 보름에 탄생하셨고, 깨달음을 얻으셨고, 열반에 드셨다. 그래서 한 달을 통째로 신성한 달로 인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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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현
현재 8년째 ‘인생 4주기’ 중의 ‘유행기遊行期’를 보내려고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로 들어와 네팔학교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틈틈이 히말라야 권역의 불교유적을 순례하고 있다.
suri116@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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