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화엄사상과 유학의 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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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란 / 2023 년 7 월 [통권 제123호] / / 작성일23-07-04 09:36 / 조회2,102회 / 댓글0건본문
근대중국의 불교학자들 31 | 당군의 ②
웅십력은 말년에 “성인聖人의 도를 살릴 책임은 당군의唐君毅(1909~1978), 모종삼牟宗三(1909~1995)에게 있다.”고 말하였다. 이는 자신의 철학이 제자들 중 당군의, 모종삼에게로 이어지고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두 사람은 동갑내기였는데, 모종삼은 당군의보다 거의 20년을 더 살았다.
현대신불교 제2세대
당군의와 모종삼은 웅십력의 신유식론을 각각 다른 방향으로 발전시킨 대표적인 학자들인데, 사상적인 측면에서는 대조적이었다. 당군의는 불교에서는 화엄사상을, 모종삼은 천태사상을 선택하였다. 또 서양철학에서는 당군의는 헤겔 철학을, 모종삼은 칸트 철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그리고 유학에서는 당군의는 양명학을, 모종삼은 주자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당군의 철학의 기본 구도와 사상은 전적으로 스승인 웅십력 철학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웅십력을 현대신불교 제1세대라고 한다면, 당군의는 제2세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당군의는 또한 동양철학과 서양철학를 자세히 연구하고 평가하여 유학에 대한 견해로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웅십력과 동일한 길을 취하였다.
당군의 철학의 사상적 변천에도 스승인 웅십력의 영향이 컸다. 당군의는 청년 시절 자연과학과 서양 신실재론에 관심이 있었으나 웅십력의 『신유식론新唯識論』을 읽고 생긴 의문을 몇 년간 웅십력과의 편지 교류를 통해 토론하였다. 당시 당군의의 주장은 과학으로 철학을 통섭하는 것만이 철학의 올바른 길이라는 것이었다. 그들에겐 주로 마음心과 본성性, 과학 진리와 형이상학 진리, 사유와 깨달음 간의 관계가 주된 논의 대상이었다.
웅십력과의 토론과 지도로 인해 그 이후 당군의의 학문 방향은 결정적으로 바뀌게 된다. 『중서철학사상의 비교연구집』이 당군의의 초기 사상을 대표한다면, 『인생의 체험』, 『도덕자아의 건립』은 새로운 사상으로 나아가게 된 기념비적인 저작이다. 이 과정에서 세계와 자연, 우주의 관념은 세계를 깨달음을 통해 이해하고 ‘도덕자아道德自我’라는 중심 관념을 확립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웅십력의 체용불이설과 당군의의 성도일원설
웅십력은 학문의 변천 과정에서 보면 불교에서 유학으로 전환하는 길을 갔고, 그 길은 중국불교와 유학의 합일, 즉 불교의 진여연기론과 유학의 성선론의 결합이 핵심이다. 그는 중국불교를 한편으로 긍정하고 한편으로 비판하는 이중적 입장을 취하였지만, 결국 중국불교와 유학이 동일한 정신을 함축하고 있음을 주장하였다.
유학과 불교의 공통점에 대하여 웅십력은 이렇게 말하였다. “유학과 불교 두 사상을 살펴보면, 견성見性, 본성의 파악이 핵심이 된다. 스스로의 본성을 체득할 수 있으면, 일상생활에서 항상 주재함이 있어서 외부 대상에 따라 전환하지 않게 된다. 이 점이 유학과 불교가 일치하는 이유이다.”
웅십력은 유학과 불교가 똑같이 ‘본성本性’, 바로 본체本體를 파악하는 것이 핵심이며, 이 점이 유학과 불교가 근본적으로 일치하는 이유라고 보았던 것이다. 본성이 인간과 객관 사물들의 본체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유학에서는 사단지심四端之心으로 대표되는 본심本心이라고 하고, 불교에서는 ‘하나의 마음=일심一心’, 진심眞心이라고 하였다.
중국불교인 천태·화엄·선禪은 ‘마음’을 절대적인 정신 본체라고 보았다. ‘견성見性’이라고 할 때의 ‘성性’이 바로 본성이며, 이는 본심이자 본체로서 사람이 되는 내재적 근거가 된다. 이런 측면에서 유학과 불교는 일치한다고 본 것이다. 중국불교의 소의경전인 『화엄경』, 『열반경』 등은 그 사상이 유학에 가깝다고 단언한 것도 이같은 근거에서였다.
중국불교와 유학의 관련성은 이처럼 본심·본체를 중심에 두고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은 중국불교의 진여연기론과 유학성선론이 결합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보았다. 중국불교는 진여연기론을 통해 본체인 ‘진여’와 본체의 현현인 ‘현상’의 일치를 주장함으로써 현상세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유학은 성선론을 통해 현실세계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있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일 뿐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중국불교와 유학의 정신에 동일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중국불교가 진심, 또는 자성청정심을 중심으로 한 진상심眞常心 사상이라는 점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현상계가 본체인 진심의 현현임을 말하는 진상심 사상은 현상계의 모든 존재들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유학의 성선론과 일치한다.
사람은 누구나 진심眞心,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 불성佛性을 소유하고 있으므로 모든 사람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중국불교의 학설은 사람은 본래 선성善性, 양지良知, 사단지심四端之心을 가지고 있으므로 모든 사람이 성인聖人이 될 수 있다는 유학의 사유와 완전히 일치한다. 그 때문에 웅십력의 제자 모종삼은 중국불교의 도생道生( 360~434)이나 혜능慧能(638~713)은 유학의 성인인 맹자가 불교에서 재현된 인물이라고까지 말하였다.
이렇게 변화한 당군의 사상은 웅십력의 형이상학과 거의 일치한다. 웅십력의 핵심적인 사상은 ‘인仁의 본체’이고, ‘체용불이體用不二’, 즉 본체와 현상의 일치이다. 이러한 웅십력 철학의 의미는 인간의 도덕 본성이 우주 생명과 인류 문화의 끊임없이 생성하는 궁극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철학에서는 천天과 인人을 동태적으로 통일하는 것이 목적이 된다.
당군의의 핵심 사상은 ‘형이상학적 자아’, 또는 ‘도덕자아’이다. 이것이 웅십력이 말하는 ‘본래의 마음[本心]’, ‘본성’, ‘인仁의 본체’에 해당한다. 당군의는 인류 문화는 모두 도덕 이성, 또는 초월적 자아의 다양한 표현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도덕적 이상주의 문화 체계의 근본적인 출발점은 도덕자아 의식을 근본[體]으로 하고, 인류의 각종 문화 활동을 작용[用]으로 보는 것이다. 이때 도덕자아와 문화 활동이 동일한 근원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성도일원론性道一元論, 동태적 통일의 관계를 형성한다. 웅십력의 ‘체용불이體用不二’ 사상이 당군의의 성도일원이라는 도덕 이상주의 사상으로 발전되었다고 할 수 있다.
화엄사상의 성기설과 유학의 도덕자아의 계합
당군의 철학은 불교, 특히 화엄불교와 부합한다. 화엄종의 진여연기론인 ‘성기性起’설과 당군의의 ‘도덕자아’ 학설은 대단히 유사하고, 화엄종의 ‘법계연기法界緣起’설과 당군의의 ‘심통구경설心通九境說’은 거의 일치한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인간과 현상계의 모든 존재들을 진여의 표현으로 보는 진여연기론은 역시 모든 존재들을 인仁의 실현으로 보는 신유학과 그대로 일치한다.
그런데 당군의는 진여연기론에 근거한 중국불교 중에서 화엄불교의 ‘성기性起’설과 천태불교의 ‘성구性具’설을 확실히 구분하고 이 중 화엄불교를 선택하였다. 당군의 철학에서 주관 경지인 인간의 마음, 즉 도덕자아·도덕본체는 실체가 없는 천태사상의 성구설보다 실체로서 존재하는 화엄사상의 성기설과 더 잘 계합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당군의 자신도 ‘심통구경설’에 화엄사상의 법계관과 교판론이 반영되었다는 점을 인정하였다. “이 두 학설이 계합할 수 있는 것은 중생 내부에 진심眞心이 있어서 부처가 깨달은 본성과 다른 점이 없기 때문이다.”고 말하였던 것이다. 대만의 현대철학자 노사광勞思光(1927~2012)은 당군의 철학을 ‘화엄철학’이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당군의 외에도 당시 신불가, 신유학가들은 불교에서 다른 이론보다 화엄사상을 중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방동미方東美(1899~1977)는 “최고의 철학은 불교이고, 최고의 불교철학은 화엄이다.”라고 선언하였고, 현대신유학의 대부로 불리던 마일부馬一浮(1883~1967)도 화엄철학으로 자신의 철학 체계를 완성하였다.
근·현대 지식인들이 이처럼 화엄사상을 중시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화엄사상이 그들의 ‘혁명’이라는 이상과 계합하는 측면이 많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담사동, 장태염은 보살구세 사상이나 평등·자유 등 근대 계몽주의, 사회변혁 사상의 근거를 화엄철학에서 찾고자 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화엄사상의 진여연기적 성격이 신유학과 일치한다는 측면이 가장 중요하였을 것이다.
단지 당군의가 똑같이 진심연기론을 주장하는 동아시아불교 중에서 천태사상이 아닌 화엄사상을 선택한 이유는 그가 화엄사상의 성기설性起說과 천태사상의 성구설性具說을 구분하고, 천태사상에서 말하는 본성에 실체의 의미가 전혀 없다는 점을 비판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화엄사상의 성기설이 현상계의 모든 존재에 근원이 되는 실체를 부여함으로써 존재론적 근거를 제시한다고 생각하였다. 천태사상과 달리 화엄사상은 본성만이 실체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천태사상과 화엄사상 중 어떤 것이 현상계의 모든 존재들에게 탄탄한 근거를 주고 그 존재를 인정하는가라는 문제에서 당군의와 모종삼의 견해는 정반대이다. 당군의는 화엄사상을 선택하고, 모종삼은 천태사상을 선택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선택이 가진 이유는 동일하였다.
당군의는 유학과 화엄불교를 활용하여 새로운 철학을 세우고자 하였고, 그 철학은 웅십력과 마찬가지로 유학과 불교의 융합을 통한 산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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