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불교는 지금]
침략전쟁에 대한 일본 불교계의 두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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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광 김형근 / 2023 년 8 월 [통권 제124호] / / 작성일23-08-04 21:56 / 조회2,283회 / 댓글0건본문
세계불교는 지금 8 |미국 ⑧
소엔사쿠와 D.T. 스즈키, 야스타니 하쿠운의 일본 선승들은 일본이 침략전쟁을 통해 해외로 팽창하던 시기에 활동하였다. 문제는 이들이 이런 전쟁을 찬양하고 적극 협조하였다는 점이다. 이 전쟁들은 청일전쟁(1894~1985), 러일전쟁(1904~1905), 1910년 조선의 강제 합방,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제2차 세계대전(1939~ 1945)으로 대략 50년에 걸쳐 벌어진 전쟁들이다.
군승으로 참전해 전쟁을 독려한 소엔사쿠
일본의 이익을 위한 침략전쟁이 벌어지던 시기에 일본의 종교계와 위의 세 사람은 여기에 적극 협조하였다. 소엔사쿠(釈宗演, 1860~1919)는 1904년 2월 러일전쟁이 발발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육군 1사단 군승 자격으로 직접 전장으로 나아갔는데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전쟁이 자신의 동료 인류에 대한 살육이 아니라 오히려 악과 싸우는 일이며, 동시에 육체적인 소멸은 진정으로 하늘에서가 아니라 바로 여기 우리 가운데서 [그] 영혼의 재탄생을 의미한다는 진리를 확신하게 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나는 최선을 다해 병사들의 마음속에 그런 생각을 각인시켰다.” - 『전쟁과 선』, 67쪽.
소엔사쿠는 또한 불교와 전쟁 사이의 밀접한 관계에 대한 사상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전쟁은 실로 악이고 중대한 것이다. 그러나 악에 대항하는 전쟁은 우리가 최종적인 목적을 성취할 때까지 단호하게 수행되어야만 한다. 현재 진행 중인 전쟁에 일본은 마지못해 맞서 개전하게 되었지만, 전혀 이기적인 목적을 구하지 않고 오히려 문명과 평화 그리고 깨달음에 적대적인 악의 세력을 굴복시키기를 추구한다.”
- 『전쟁과 선』, 68쪽.
하지만 소엔사쿠의 이런 주장은 역사에 대한 해석을 왜곡하고, 일본의 침략전쟁을 옹호하는 것으로써 실제 상황을 정반대로 설명하는 주장이다.
1876년 조선과 일본 제국 사이에 체결된 강화도 조약은 조선을 식민지화하는 첫걸음이었다. 청일전쟁, 러일전쟁은 조선에서 일본의 지배권 내지 독점권을 위한 전쟁이었다. 즉 침략전쟁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1910년 마침내 조선을 일본에 강제로 병합시켰다. 이것을 보면서 소엔사쿠를 비롯하여 D.T. 스즈키는 이에 대해 무슨 비판적인 말을 한 적이 있었던가?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1828~1910)는 평화주의적 입장에서 전쟁을 비판하는 일에 일본의 저명한 불교지도자들이 함께 연대해 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는 소엔사쿠에게 자신과 연대하자고 요청했지만 소엔은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냈다.
“비록 부처님은 살생을 금하였으나 모든 중생들이 무한한 자비 수행을 통해 함께 연합할 때까지 평화는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가르쳤소이다. 따라서 양립할 수 없는 것들 사이에 조화를 일으키는 수단으로써 살생과 전쟁은 필요한 것이오.” - 『전쟁과 선』, 71쪽.
일관되게 침략전쟁을 옹호한 스즈키 다이세츠
소엔사쿠의 사상을 그대로 이어받은 사람이 바로 D.T. 스즈키(鈴木大拙, 1870~1966)이다. 스즈키는 1945년 일본이 전쟁에 패망할 때까지 일관되게 침략전쟁을 옹호한 사람이다. 그는 1896년에 『신종교론』이라는 책을 출판하였는데, 여기서 그는 ‘종교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긴 글을 썼다. 그의 주장 일부를 소개한다.
“만일 무도한 국가가 침입해 와서 우리의 상업을 방해하거나 권리를 깔아뭉갠다면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모든 인류의 진보를 가로막는 짓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종교의 이름으로 이에 굴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기를 드는 것 외에 다른 선택권이 없다. 이는 적들을 살해하기 위한 것도 아니요, 도시들을 약탈하기 위해서도 아니며, 부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정의를 펼치기 위해 부정의를 대표하는 나라의 국민들을 처벌하고자 할 뿐이다. 우리 스스로 무엇이든 구할 수 있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무엇이 어찌 되었든 그것이 소위 종교적 행동이라는 것이다.” - 『전쟁과 선』, 65쪽.
스즈키의 이런 말은 일반론적으로 보면 맞는 말이고 상식적인 주장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는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시아를 침략하고 하와이의 진주만을 폭격할 때 위와 같은 자신의 주장에 부합하는 어떤 일을 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정쟁을 일삼는 일본 정부를 비판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거꾸로 그는 군국주의를 지향하는 일본의 활동에 매우 열광했다. 일본의 침략전쟁에 대해 사과한 것은 일본이 패망한 후 중국이나 한국 혹은 대만 같은 곳에서 벌인 식민지 사업에 대한 것뿐이었다. 전쟁 기간 중에는 일본의 전쟁에 열광했다는 증언들이 많다.
“스즈키가 영어로 선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한 1906년 이래 그는 선과 무사도 사이의 연관성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 병사들에게 이 두 정신이 결합된 것이 제공되었음을 알리려고 노력했다. 그가 일본 군국주의에 적극적으로 찬동한 일은 진주만 공격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던 시기인 1941년 11월에 『무사도의 정수』라는 책을 출판하면서 전직 육군 대신이자 제국 육군대장인 아라키 사다오(1877〜1966)와 제국 해군 함장 히로세 유타카 및 그 밖의 여러 군사 지도자들과 손을 잡았다.” - 『전쟁과 선』, 199쪽.
『전쟁과 선』의 저자 브라이언 빅토리아는 “이 책이 황국 군대의 목표 및 목적과 연관성을 지니는 것은 명백하다.”라고 주장했다. 이런 사실들을 생각한다면 한국 불교계가 스즈키에 대해 좀 더 다양하게 접근하고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침략전쟁을 정당화하고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내몰다
야스타니 하쿠운(安谷白雲, 1885~1973)은 일본의 삼보교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는데, 삼보교단의 수장인 구보타 쥰은 2001년 봄에 야스타니 하쿠운이 전시에 행한 “그롯된 말과 행동”에 대해 사과했다. 나는 취재를 위해 미국에 있는 일본불교 계열의 많은 사찰을 방문하곤 했다. 그런데 이 사찰들에 걸려 있는 야스타니 하쿠운의 사진을 보면 매우 심한 거부감을 느꼈다.
일본의 침략전쟁 시기에 이들이 한 역할을 요약해 말하면, 불교교리를 편의적으로 해석하여 침략전쟁을 악과 싸우는 정의로운 전쟁으로 정당화하는 것이었다. 나아가 잘못된 생사관을 주입하여 젊은이들의 고귀한 생명을 국가를 위해 바치게 한 것이었다. 이들의 역할에 대하여 브라이언 빅토리아는 다음과 같이 요약하여 말했다.
“선불교 교리의 몇몇 주요 측면은 일본 군인정신의 중심부에 있었습니다. 그중에 주요한 것이 바로 생사일여生死一如의 깨달음이었습니다. 삶과 죽음은 동일하며, 생명에 대한 집착을 버림으로써 국가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는 고귀한 정신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선의 생사관은 군인들뿐만 아니라 일본 국민 전체의 생사관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군인들의 목적이 살아남아서 고국에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전장에서 죽는 것이라는 이 사고방식은 군 지휘관들에겐 매력적인 사상이었습니다.”
이처럼 강화도 조약으로부터 시작하여 청일전쟁, 러일전쟁, 1910년 조선에 대한 강제 병합과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전통 불교종단과 스님들, 나아가 스즈키 같은 주요 인물들은 침략전쟁에 대한 확고한 지지자들이었다. 나아가 그들은 젊은이들을 전쟁으로 내모는 왜곡된 불교사상을 제공하는 자들이었다.
전쟁 반대를 외친 일본의 승려들
미국 불교사에 중요하게 등장하는 이들과 달리 일본의 침략전쟁에 반대하는 소수의 일본 스님들도 있었다. 예를 들면 일본 조동종의 우치야마 구도(內山愚童, 1874〜1911) 스님이 있다. 그는 1910년 대역 사건으로 체포된 26명에 포함된 네 명의 스님 중의 한 사람이다. 스즈키와 하라다 다이운 소가쿠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그는 불교정신에 입각하여 침략전쟁을 반대한 행동으로 체포되어 1911년 사형에 처해졌다.
구도 스님처럼 침략전쟁을 반대하는 명목은 다르지만 창가학회를 창립하고 초대 회장을 맡았던 마키구치 쓰네사부로(牧口常三郎, 1871~1944)와 그 제자인 도다 조세이(戸田城聖, 1900~1958)는 니치렌 불법의 사상에 따라 신념을 굽히지 않고 군국주의 정책인 국가신토 정책에 철저히 저항하며 거부했다. 따라서 ‘치안유지법 위반’이라는 혐의와 천황에 대한 ‘불경죄’라는 두 가지 명목으로 투옥(1943년 7월 경)되었다.
마키구치 쓰네사부로는 투옥 후 약 1년 4개월 후인 1944년 11월 18일 옥사했다. 전쟁이 끝나기 직전인 1945년 7월 3일에 병약한 몸으로 혼자 출옥한 도다 조세이는 창가교육학회를 ‘창가학회’라고 개명하였다.
침략전쟁을 반대한 구도 스님만이 아니라 작가 헤르만 헤세의 생애도 이들과 비교해 볼 만하다. 헤세는 스즈키와 하라다 다이운 소가쿠 그리고 야스타니 하쿠운과 비슷한 시기에 전쟁을 일으킨 독일에서 살았다.
헤르만 헤세(Hermann Karl Hesse, 1877〜1962)는 개신교 선교사인 부친 요하네스 헤세와 모친 마리 군데르트 사이에서 장남으로 독일 소도시 칼브에서 태어났다. 부친이 선교사여서 그런지 엄격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하고 어머니 또한 독실한 신자였다고 한다. 나치 치하에서 나치즘을 비판하는 행보를 보였다가 나치한테 탄압당하기도 했다.
헤세는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조국 독일을 신랄하게 비판하여 매국노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결국 고뇌하며 조국을 버리고 스위스로 망명하고 1923년 스위스 국적을 취득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는 인쇄에 필요한 종이를 배당하지 못하게 하여 그의 책에 대한 출판을 막기도 했다. 1946년에 『유리알 유희』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스위스인으로 살아가다 1962년 8월 9일 스위스의 몬타뇰라에서 사망했다.
스즈키와 하쿠운이 미국불교 포교에 일정한 역할을 한 것은 그들이 배출한 미국인 제자들의 행적과 스즈키가 남긴 영어 저서와 미국 내 여러 사찰에 걸려 있는 야스타니 사진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미국 불교인들은 일본 침략전쟁 시기에 이들이 여기에 적극적으로 찬동하고 참여한 것은 알지 못한다. 앞으로 미국 불교계에서는 이러한 것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불교사에서의 이들의 위상을 평가해야 할 것이다.
야나기다 세이잔(柳田聖山, 1921~2006)은 임제종 스님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교토대학의 인문학연구소 소장이 되었고, 은퇴 후에 하나조노대학에 국제선불교연구소를 설립하고 초대 소장이 되었다. 그는 “일본의 모든 종단들은 전쟁사업에 기여했고, 전쟁을 선동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바쳤지만 마치 손바닥 뒤집듯 자연스럽게 태도를 바꾸어 평화의 종을 울리는 데에까지 나아갔다.”고 비판했다.
전쟁을 외쳤던 자신의 행동을 모른 체하고, ‘평화의 일꾼’이 된 방식에 대한 경멸과 불만이 겹쳐서 1955년 승복을 벗었다. 세이잔 외에 또 한 사람은 이치카와 하쿠겐(市川白弦, 1902~1986)이다. 그는 임제종의 스님이자 학자였다. 하쿠겐이 생각하기에 황국 선의 발전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사람은 D.T 스즈키였다. 또 야스쿠니 하쿠운에 대해서는 “광적인 군국주의자이고 반공주의자였다.”고 지적한 바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권에서 스즈키가 높이 평가받는 것은 영어로 번역한『대승기신론』을 비롯해 여러 권의 저서들이 높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한국 불교인들도 이런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수준 높은 영어 저서를 많이 내놓고, 아울러 스즈키와 야스타니 하쿠운 등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통해 국제적 발언권을 얻을 수 있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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