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禪, 禪과 시]
그냥 물이죠, 뭐. 물이 엄청 많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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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택 / 2023 년 8 월 [통권 제124호] / / 작성일23-08-04 22:41 / 조회2,875회 / 댓글0건본문
욱수골 산행에 나섭니다. 외곽순환도로 덕분에 욱수골까지 시간이 많이 단축되었습니다. 욱수골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의 보닛에 노란측범잠자리가 꼼짝도 않고 앉아 있습니다. 늦게 오는 친구들을 기다리며 잡담하는 동안에도 전혀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습니다. 친구가 손으로 잡아도 꼼짝도 안 해서 ‘죽었나 보다’ 하며 던졌습니다. 그러자 노란측범잠자리는 보란 듯이 훨훨 날아갑니다. 아하, 살아 있었군요. 다행입니다.
오늘은 조그만 개울을 따라 산길과 포장도로를 번갈아가며 걷습니다. 산길에는 밤꽃이 수북하게 떨어져 있습니다. 흐르는 물소리와 산속으로 난 오솔길은 언제나 우리를 아늑하게 합니다. 끊임없이 들리는 새소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행복하게 합니다. 무덤들을 지나고 개울을 지나 ‘소바우 쉼터’에서 잠시 앉아 쉽니다.
쉼터 앞 텃밭은 이 일대에서 가장 오래된 텃밭 가운데 하나입니다. 텃밭을 빙 둘러 가며 돌담을 쌓았는데 돌담 쌓은 솜씨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돌담의 규모도 작지 않거니와 구멍이 숭숭 뚫리게 쌓은 솜씨가 프로급입니다. 텃밭에는 싱싱하고 맑은 향기가 가득합니다. 이런 텃밭은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산듯해집니다.
산길이 끊어지면 포장도로를 걷기도 합니다. 욱수지 쉼터에서도 잠시 앉아 쉽니다. 성암산 자락이 못물 위에 얼비칩니다. 저수지 저쪽에 커다란 알바위가 드러나 있습니다.
로드킬
좁은 포장도로 위로는 자동차가 예상외로 많이 다닙니다. 비켜주면서 걷느라고 신경이 쓰입니다. 자동차가 뭔지도 모르는 야생동물에게 이 길은 위험한 길입니다. 과연 야생동물이 로드킬 당한 흔적이 수없이 많습니다. 다람쥐, 두꺼비의 사체가 LP 판처럼 납작하게 굳어서 추상화되고 있습니다. 최근에 로드킬 당한 다람쥐 사체는 한 폭의 추상화처럼 우리 마음을 할퀴면서 풍화되어 갑니다. 비명횡사한 사체이지만 이 추상화에는 아직 생명의 힘과 아름다움이 남아 있습니다.
유기물이 어느 순간 무기물로 변해 버리는 대자연의 섭리 앞에서 한 개인의 가장 눈부신 업적마저도 한 줌의 재가 될 뿐이라는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임종의 순간, 한 개체가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를 임종의 눈으로 보여줍니다.
살면서 한 게 없으니
임종게를 남길 이유가 없네
오직 인연에 따를 뿐이니
모두들 잘 있게(주1)
이 임종게를 남긴 사람은 천 년 전, 당대 제일의 승려였던 원오극근(1063~1135)입니다. 문자선의 정화라고 할 수 있는 『벽암록』(주2)이 원오의 강의록이라는 사실을 생각할 때 한 게 없다는 말은 다소 충격적입니다. 나아가 선승은 임종게를 남겨야 한다는 형식적 관념에도 일격을 가한 것입니다.
그가 남긴 말은 “모두들 잘 있게[珍重]”라는 한마디입니다. ‘진중珍重’의 속뜻은 몸을 아끼라는 말입니다. 개인의 한계를 절실하게 느끼면서 자신을 낮추고 남은 사람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모습에는 범접할 수 없는 위상이 있습니다. ‘진중’을 거듭 말함으로써 말의 의미뿐 아니라 말의 질감과 감촉에 한없이 다정하면서도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무게감을 더했습니다.
우리가 주의 깊게 주변을 살피며 산길을 걸을 때마다 생명의 변화무쌍과 죽음을 생생하게 느낍니다. 살아 있으면서 삶의 덧없음을 생생하게 경험하는 것은 대단한 축복입니다. 우리가 생명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것은 오직 이 덧없는 인생 속에서뿐입니다. 죽음이 없다면 살아 있다는 기쁨 또한 사라질 것입니다.
위베르 알렌 깁페른 / 이스트 루
250년 전, 서양에서도 산길을 걸으며 대자연의 변화무쌍과 인생의 덧없음을 절절하게 체험한 사람이 있습니다. 1774년 25세의 나이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써서 유럽을 뒤흔든 괴테(1749~1832)는 그 다음해에 당시 인구 20만 정도였던 바이마르 공국에 초청됩니다. 그리고 추밀원 참사관, 장관, 추밀원 고문관으로 고속 승진합니다.
1780년 31세의 괴테는 당시 바이마르 궁정의 인기 사냥터였던 키켈한 산(861m)에 올라가서 정상 북쪽에 있는 사냥터지기의 오두막에서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그날 밤, 그는 즉흥적으로 「나그네의 밤 노래」라는 시를 오두막의 나무에 연필로 적었습니다.
나그네의 밤 노래 2
모든 산 정상에는
안식이 있고
모든 가지 끝에는
바람 한 점
불지 않네
숲속의 새들마저 지저귐을 멈추었네
기다리게, 머지않아
그대 또한 쉬게 되리니(주3)
키켈한 산에 오르면서 괴테는 깊이 모를 기쁨을 느낍니다. 하찮은 인간의 지혜가 아닌 인간을 초월한 커다란 대자연의 파동 같은 것을 온몸으로 느꼈을 것입니다. 산 정상의 깊고 고요한 정적 속에서 “위베르 알렌 깁페른 / 이스트 루”라는 첫 구절이 괴테의 입술에서 흘러나옵니다. 그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기쁨으로 시의 나머지 부분도 써내려갑니다. 순식간에 산 정상으로부터 깊은 가락이 괴테의 영혼을 관통하며 흘러나왔습니다.
괴테는 키켈한 산 정상에서 자신의 조그맣고 사적인 자아를 쉬게 해주는 더 큰 자아가 있음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 시는 평범한 말 속에 무한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대자연의 정신 혹은 우주의 정신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입니다. 이 시는 후일 가장 순수한 독일 서정시로 평가받게 되고, 1823년에는 슈베르트가 곡을 붙였습니다.
50년 후, 1831년(82세), 죽기 약 6개월 전에 괴테는 다시 오두막에 올랐습니다. 그는 자신이 적은 시를 알아보고 마지막 구절을 되뇌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폭포
로드킬 흔적을 보며 포장도로를 걷다가 봉암폭포로 가는 산길로 접어듭니다. 이 길로 쭉 올라가면 진밭골과 연결됩니다. 산길은 비록 처음 걷는 길일지라도 언제나 고향에 온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봉암폭포 앞에는 정자를 새로 지어놓았군요. 정자에 앉으니 역시 풍류가 있습니다. 헛됨과 빈틈이 없는 생활에는 여정이 없습니다. 인생이란 당연히 쓸데없는 짓도 해야 하고 풍류도 즐겨야 합니다. 정자 위에서 파노라마로 단체 촬영도 합니다.
봉암폭포는 비가 좀 내리면 7m 높이의 바위에서 떨어지는 두 줄기 폭포가 볼 만합니다. 어떤 폭포든 폭포는 독특하고 미묘한 흐름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깁니다. 쏟아지는 폭포를 보면서 소동파(1037~1101)의 시를 생각합니다. 소동파의 오도송悟道頌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시는 불도를 닦는 많은 사람들이 애송하는 시입니다.
시냇물 소리 그대로 부처님 설법이니
산빛은 어찌 부처님 법신이 아니랴
밤새도록 들은 무량한 법문을
훗날 어찌 남에게 다 전하랴(주4)
소동파는 1084년(47세) 동림사에서 상총선사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상총선사는 사람이 설해 주는 말만이 법문이 아니라 우주 만상이 모두 법을 설하고 있으니 그 법을 들을 줄 알아야 된다고 말해 줍니다. 이른바 무정설법無情說法을 들으라는 말입니다.
동파가 절을 나와 돌아오는데 마침 골짜기 계곡 밑을 지나자 폭포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세차게 들렸습니다. 순간 동파는 무정설법이 무엇인지 깨닫고 이 시를 지어 상총선사에게 바쳤습니다. 동파의 시는 역시 훌륭하지만, 무정설법에 모범 답안일 뿐 ‘이거다!’ 싶은 구절은 없지 않나 싶습니다.
나는 오히려 디킨스(1812~1870)의 하녀가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고 한 말이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1842년, 30세의 나이로 미국을 방문하여 거국적 환영을 받은 디킨스는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고 그만 넋을 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단번에 아름다움의 이미지로 아로새겨졌고, 심장이 멎을 때까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이아가라 폭포가 디킨스의 아내 케이트의 하녀에게 준 인상은 전혀 달랐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을 뿐입니다.
“그냥 물이죠, 뭐. 물이 엄청 많더라고요.”(주5)
사람들은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에 가면 무슨 대단한 것을 보는 줄 압니다. 막상 가 보면 그저 물을 볼 뿐 특별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녀의 말은 말 하나하나가 자신의 가슴에서 나온 말이라 뭔가 ‘진짜’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지식에 속박되지 않고 마음의 자유를 잃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도 산길을 걸으면서 세상과 인생을 바라보는 어떤 깊은 시각을 하나 얻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 발로 걸었으니 산과 바람의 감촉만은 생생하게 느낀 하루였습니다.
<각주>
(주1) 『僧寶正續傳』 券四 圜悟勤禪師條 : 已徹無功 不必留頌 聊爾應緣 珍重珍重
(주2) 설두중현의 『송고백칙頌古百則』에 원오극근이 수시(垂示)·착어(著語)·평창(評唱)을 덧붙여 저술한 책이 『벽암록』이다.
(주3) Wandrers Nachtlied 2 (‘2’는 먼저 발표한 같은 제목의 시가 있기 때문에 편의상 붙인 숫자임)Über allen Gipfeln / Ist Ruh, / In allen Wipfeln / Spürest du / Kaum einen Hauch; / Die Vögelein schweigen im Walde. / Warte nur, balde / Ruhest du auch.
(주4) 蘇東坡, 「贈東林常總長老」:溪聲便是廣長舌,山色豈非淸淨身,夜來八萬四千偈,他日如何擧似人.
(주5) 헤스케드 피어슨, 『찰스 디킨스 런던의 열정』, 뗀데데로,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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