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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유학과 불교의 융합을 통한 도덕적 형이상학의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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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란  /  2023 년 9 월 [통권 제125호]  /     /  작성일23-09-04 20:35  /   조회1,661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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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중국의 불교학자들 33 | 모종삼 ①

 

모종삼牟宗三(1909~1995)은 웅십력熊十力(1884~1968)의 제자로서 서양 근현대철학의 원천인 칸트(I.Kant, 1724~1804) 철학을 수용한 뒤 이를 유학과 불교철학, 그중에서도 천태학과 융합하여 새로운 철학을 제시한 사상가이다.

 

웅십력 철학의 완성자 모종삼

 

모종삼은 웅십력이 시작한 현대신유학, 내지 현대신불교 사상을 완성한 사상가로 평가받으며, 웅십력의 2대 제자 중 다른 제자인 당군의와 서로 다른 방향의 철학을 시도하였다. 

현대신유학의 완성자로 평가되는 만큼 모종삼 철학에 대한 연구는 대부분 유학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고, 불교사상과의 관련성은 생략되거나 상대적으로 과소평가 되어왔다. 그러나 근현대 시기 서양사상이 새로운 시대사조로 대두하게 되자, 근대 이전에 주자학에 눌리고 있던 불교와 양명학이 발전의 계기를 맞았다.

 

사진 1. 모종삼牟宗三(1909~1995).

 

이때 불교 내부에서는 유식종이나 천태·화엄종 등 불교사상을 양명학 계열의 유학사상과 결합하여 새로운 철학을 건설하려는 시도가 진행되었다. 그 대표적인 흐름이 웅십력熊十力에서 시작하여 모종삼에서 완성되었다고 평가되는 ‘현대신유학現代新儒學’, 또는 ‘현대신불학現代新佛學’이다.

 

내면의 도덕적 결단을 중시하는 불교와 양명학이 도덕면에서 동양의 우위를 주장하려는 현대신유학의 의도에 더 적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불교와 유학, 특히 양명학은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철학을 형성해 나가게 된다. 모종삼은 이러한 사상적 발전의 가장 정점에 선 철학자이다.

 

사진 2. 1991년 홍콩 신아서원에서 임안오林安梧 교수와 함께한 모종삼.

 

모종삼은 웅십력에게 직접 교육을 받았고, 두 사람 모두 양명학을 종주로 본심本心·인체仁體의 의미를 밝혔다는 점에서 동일한 학문 경로를 걸었다고 할 수 있다. 유학의 ‘도덕적 형이상학’ 정립에 웅십력이 기초를 놓았다면 모종삼은 최종적으로 완성하였다고 평가된다. 유학은 인간의 내재적 도덕성으로 본성을 설명하고, 이러한 본성이 『중용』에서 말하는 천도天道, 천명天命과 통한다고 설명하였다.

 

 

사진 3. 전 32권으로 구성된 『모종삼선생전집』.

 

이것은 인간의 내재적인 본성이 도덕적일 뿐 아니라 본체, 우주론적이기도 하다는 것으로, 모종삼은 이를 ‘내재적이고 초월적인 성체性體’라고 표현하였다. 따라서 성체는 한편으로는 도덕 실천의 내재적 근거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천명, 천도가 인간 자신에게 실현된 것이므로 초월적인 우주 실체이기도 하다. 모종삼은 이러한 ‘도덕적 형이상학’을 건립하기 위해 불교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도덕적 형이상학의 기본적인 특징은 내재성과 초월성의 완전한 통일인데, 그는 중국불교의 불성佛性을 핵심으로 한 진여연기론이 유학과 일치하는 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모종삼 학문의 초기 단계 (20대~30대)

 

모종삼은 산동성山東省 서하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청소년기까지 고향에서 성장하였다. 북경대학에 진학하여 서양철학과 중국철학을 공부하던 중 평생의 스승인 웅십력을 만났는데, 이것이 그의 생애 및 학문에 가장 결정적인 계기를 준 일이었다. 그를 만난 뒤 중국 전통철학에 뿌리를 둔 신유가 및 신불가로서의 정체성을 자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쉬지 않고 학문 연구에 전념하였고, 특히 양명학을 중심으로 서양철학, 그중에서도 칸트의 비판철학 및 도덕철학을 흡수하여 새로운 동양의 형이상학을 세우고자 시도하였다.

 

사진 4. 『신유식론新唯識論』.

 

모종삼의 제자인 채인후는 모종삼 철학을 크게 다섯 단계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첫 단계는 ‘직관적 깨달음’의 시기로서, 모종삼이 30세 이전에 북경대학 철학과에서 공부하던 시기이다. 그는 처음에는 논리학과 칸트의 지식론에 관심이 많았고 『주자어류』를 읽으며 직관적 깨달음을 통해 심원한 의리를 알게 되었다. 그는 본과에서 철학과를 선택하였고, 러셀의 철학을 듣고 『주역』, 화이트헤드 철학은 스스로 공부했다고 한다. 

 

이 시기 모종삼은 학과 교수 등고경의 소개로 웅십력의 저서 『신유식론新唯識論』을 읽고 감동을 받아 웅십력을 찾아가 배우기 시작하였다. “나는 처음으로 참된 인간[眞人]을 만났고, 처음으로 학문과 생명의 의미를 접하였다.”라는 회고처럼 모종삼에게 웅십력과의 만남은 운명적 사건이었다. 

그는 어느 날 웅십력과 풍우란 사이의 논쟁을 엿들었는데, 그 일은 그의 학문 생애에서 중요한 화두를 던졌다. 양명학의 ‘양지良知’가 ‘가정’이라고 보는 풍우란에 대하여 웅십력은 “양지는 진실로 드러나는 것인데, 당신은 어떻게 이를 가정이라고 하는가!”라고 언성을 높였다. 이 대화를 들은 모종삼은 풍우란의 주장이 칸트 철학에 근거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 자리에서 웅십력의 뜻을 완전히 깨달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천지가 진동하듯 눈과 귀가 번쩍 열리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그 후 모종삼은 평생 “양지는 저절로 드러나는 것”이라는 스승의 사자후를 가슴에 품고 철학에 매진하였다. 이 말이 이후 모종삼의 ‘도덕적 형이상학’의 근본적 사상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모종삼 학문의 중간 단계 (30대~50대)

 

두 번째 단계는 ‘교량적 사변’의 시기로서, 모종삼이 30세에서 40세까지의 시기이다. 이 시기에 모종삼은 러셀·화이트헤드 공저 『수학원리』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근대 서구 학문의 2대 핵심 저서로 간주하였고, 이 저서들로부터 “인류의 지적 능력의 최고의 성취를 알 수 있었다.”고 생각하였다.

 

그의 논리학 연구는 『수학원리』에서 시작되었고, 그 결과는 『논리범주論理範疇』(1941)와 대만 이주 이후 쓴 『논리학論理學』(1954)이다. 또한 그는 대만 이주 후 1950년대 중반에 칸트 철학에 대한 『인식심 비판』이라는 저서를 썼다. 여기에서 그는 “논리에 대한 해석에서부터 지성 주체에 이르기까지 칸트의 정신적 노선과 깊은 만남을 가졌다.”고 서술하고 있다. 도덕 주체가 환하게 모습을 나타냈다는 것이다.

 

사진 5. 『역사철학歷史哲學』. 사진 6. 『도덕적 이상주의道德的理想主義』. 사진 7. 『정치의 도와 통치의도政道與治道』.

 

세 번째 단계는 ‘객관적인 슬픔의 감정과 구체적 깨달음’의 시기로서 모종삼이 40세에서 50세까지로 사회주의 정권이 수립된 1949년 이후로 중국 본토를 떠나 대만에 정착한 이후의 시기이다. 1950년대에 그는 중국의 앞날에 대한 우환 의식을 가지고 중국의 역사와 문화에 몰입하여 중국의 미래를 모색하였다. 그 성과는 『역사철학歷史哲學』, 『도덕적 이상주의道德的理想主義』, 『정치의 도와 통치의 도政道與治道』 3부작이었다.

 

이들 저서에서 그는 중국의 내성內聖의 학문에 근거하여 외왕外王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문제의식을 드러내었다. 1950년에서 1960년까지 모종삼은 대만에서 교학에 힘썼고, 이 시기는 그의 학문 이력이 성숙한 단계에 도달하였던 시기이다. 이전까지 혼자 공부하던 순수 논리학과 지식론을 접어두고, 현실에 대한 비감으로 중국 문화 연구에 매진했던 것이다. 그는 1950년대에 대만에서 ‘인문우회’를 설치하고, 중국문화 중심의 전통적 서원을 계승하는 강학 정신을 주장하였다.

 

모종삼 학문의 최고 단계 (50대~ 60대 이후)

 

네 번째 단계는 ‘구학문의 치밀한 평가’ 단계로서, 모종삼이 50세에서 60세까지의 시기이다. 이 시기 모종삼은 중국전통의 심성학心性學, 즉 유학과 불교, 도교 사상을 철저히 재해석하고 정리하였다. 이때 『중국철학의 특징』, 『재성과 현리才性與玄理』(1983), 『심체와 성체心體與性體』(1968), 『명가와 순자』, 『육상산에서 유즙산까지從陸象山到劉蕺山』, 『불성과 반야佛性與般若』(1977)를 저술하였다.

 

사진 8. 『불성과 반야佛性與般若』

 

이 시기 그의 문제의식은 위진 현학을 연구한 도가의 『재성과 현리』, 남북조 및 수당 시기 불교사상을 연구한 『불성과 반야』, 유학, 특히 송명 성리학을 연구한 『심체와 성체』(1,2,3)라는 3부작을 통해 나타났다. 이들 3부작은 모종삼 만년의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을 제시한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불교 연구에서 중요한 『불성과 반야』는 그의 나이 60세가 넘은 1969년에서 1975년까지 저술한 중국 근현대철학사의 기념비적인 저서이다. 초판은 1977년 대만 학생서국에서 출판되었고, 분량이 1200 쪽이 넘는 대작이다.

 

마지막 단계는 ‘새로운 지식의 배양과 심화’ 단계로서, 1970년대 이후 모종삼 나이 60세 이후의 시기이다. 이때 그는 존재론 문제를 다룬 『지적 직관과 중국철학智的直覺與中國哲學』(1971), 중국철학과 칸트철학을 융합한 『현상과 물자체現象與物自身』(1971), 『칸트의 도덕철학』, 『칸트 순수이성비판 역주』, 『원선론圓善論』을 저술하였다.

 

사진 9. 『현상과 물자체現象與物自身』.

 

채인후는 모종삼의 저작들 중 『불성과 반야』, 『현상과 물자체』 등을 모종삼 철학의 최고 단계로 보고 있다. 그는 특히 모종삼이 『불성과 반야』를 저술한 뒤에 이 학술적 성취를 바탕으로 하여 『지적 직각과 중국철학』, 『현상과 물자체』라는 동서철학을 회통시키는 마지막 작업이 가능하였다고 하였다. 이러한 평가에서 모종삼 철학에 불교의 영향이 크게 미쳤음을 가늠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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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란
철학박사. 현재 고려대학교 강의교수. 고려대학교 철학과 석·박사 졸업. 같은 대학 철학과에서 강의, 동국대 불교학술원 HK연구초빙교수를 지냈다. 지곡서당 한문연수과정 수료. 조계종 불학연구소 전문연구원 역임. 『웅십력 철학사상 연구』, 『신유식론』, 『원효의 대승기신론 소·별기』 등 다수의 저서 및 번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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