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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종교와 불교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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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  /  2023 년 9 월 [통권 제125호]  /     /  작성일23-09-04 21:16  /   조회2,114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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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층종교는 주로 개인의 안녕에 중점을 둔다면 심층종교는 사회 전반의 행복을 위해 힘쓴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불교를 본래 ‘상좌불교’와 ‘대승불교’로 나누는 것이 보통인데, 상좌불교는 개개인의 깨달음을 통해 ‘아라한’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대승불교는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큰 수레를 타고 피안에 이르도록 하려는 보살정신을 이상으로 삼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런 대승불교의 기본 정신도 충분히 발현되고 있지 않음을 안타깝게 여기는 불자들이 많습니다. 여기서 사회 전체의 안녕과 행복을 추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자는 사회 운동을 시작했는데, 이를 일컬어 ‘참여불교’라고 하고 영어로는 ‘Engaged Buddhism’이라고 합니다. 

 

참여불교의 시작과 확산

 

‘참여불교’라는 말은 베트남 출신 승려 틱낫한(1926~2022) 스님이 만든 말로서, 참여불교 운동도 그에 의해 촉발되었습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틱낫한 스님은 옆에서 폭탄이 떨어져 사람들이 죽어 가고 있어도 그것을 모른 체 하고 선방에서 참선만 하고 있다는 것은 일종의 직무유기 같은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틱낫한 스님은 “참선은 우리 몸이나 우리 감정에서뿐만 아니라 우리 주위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의식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불교의 가르침과 참선 수행에서 얻은 통찰과 안목을 개인의 내적 안녕만이 아니라 직접 사회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반전 평화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습니다. 말하자면 개인의 고통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고통에도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것은 사실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 의존하고 있다는 연기사상을 근거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틱낫한 스님은 이처럼 어우러져 있음을 자기 고유의 용어로 ‘interbeing’이라 했습니다.

 

사진 1. 2007년 미얀마의 샤프란 혁명(Saffron Revolution) 기간 동안 랑군 시내를 행진하는 스님들. 사진: 데일리메일.

 

이렇게 해서 시작된 운동이 지구화와 통신기술의 발달로 아시아뿐만 아니라 서양에도 퍼져 나갔습니다. 지역적으로 확대되었을 뿐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반전 평화 운동에서 나아가 현재 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정치문제, 사회문제, 환경문제, 기후문제, 인권문제, 경제문제, 폭력문제, 인종차별, 성차별 문제 등에도 적용하려는 운동으로 전개된 것입니다. 그러나 틱낫한 스님은 이런 사회 활동에만 몰입하는 것을 경계합니다. “행동은 동시에 참선이 되어야 한다(Action should be meditation at the same time).”는 것을 강조합니다.

 

참여불교를 위한 내적 준비

 

인간 고苦의 근본 원인은 인간의 마음에 있으니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내 자신이 내적으로 준비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참여불교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지켜야 할 열네 가지 실행 조항을 제시했는데, 그것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어떤 교리나 이론이나 이념, 심지어 그런 것들이 불교에서 나온 것이라 하더라도 그런 것들을 우상화하지도 말고 거기 매이지도 마십시오.

 

사진 2. 1966년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목사와 함께 시카고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젊은 날의 틱낫한 스님.

 

2. 지금 그대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 불변의 절대적 진리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옹졸한 마음을 갖거나 현재의 견해에 구속되지도 마십시오. 다른 이들의 견해를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개방적이기 위해 어떤 견해에도 집착하지 않는 법을 배우고 실천하십시오. 진리는 삶에서 발견되는 것이지 단순히 개념적 지식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대의 전 생애를 통해서 배우고 항상 그대 자신과 세계에서 발견되는 현실을 관찰할 준비를 하십시오.

 

3. 아이들을 포함하여 누구라도, 그리고 무슨 수단을 쓰면서까지, 그대의 견해를 받아들이도록 강제하지 마십시오. 권위나 위협이나 금전이나 선전이나 심지어 교육을 가지고도 그런 일을 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오히려 자비로운 대화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광신이나 옹졸한 생각을 버릴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4. 고난을 피하지도 말고 고난 앞에서 그대의 눈을 감지도 마십시오.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어쩔 수 없이 고난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고난당하는 사람들과 개인적 접촉이나 방문이나 영상이나 소리를 통해 함께 하는 길을 찾으십시오. 이런 방법을 통해서 세상에 고난이 있다는 현실에 그대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을 일깨우도록 하십시오.

 

사진 3. 걷기 명상을 하고 있는 플럼빌리지의 수행자들. 사진: 플럼빌리지.

 

5. 수많은 사람들이 굶고 있는데, 재산을 축적하려 하지 마십시오. 명예나 재산이나 감각적 쾌락을 그대 삶의 목표로 삼지 마십시오. 단순한 삶을 살고 시간과 정력과 물질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나누도록 하십시오.

 

6. 분노와 미움을 품고 있지 마십시오. 그런 것이 그대 의식 속에 씨앗으로 남아 있으면 그것을 꿰뚫어보고 변화시키는 법을 배우십시오. 그런 것들이 올라오는 즉시 그것이 어떤 종류의 미움인가 그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 그대의 호흡에 주의를 집중하도록 하십시오.

 

7. 산만한 분위기나 환경에 그대 자신을 노출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에 되돌아오기 위해 마음 챙김 호흡(mindful breathing)을 실천하십시오. 그대 내면이나 주위에서 놀랍고 신선하고 힐링하는 것과 접촉하도록 하십시오. 그대 의식 깊이에 변혁의 역사가 쉽게 일어나도록 그대 자신 안에 기쁨과 평화와 이해의 씨앗을 심으십시오. 

 

8. 불화를 일으키거나 공동체를 망가뜨릴 수 있는 말을 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아무리 작은 갈등이라도 그것을 화해하고 해결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하도록 하십시오.

 

9. 개인적인 이해관계를 위해서거나 남에게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진실하지 않은 것을 말하지 마십시오. 분열이나 증오를 야기시킬 말을 하지 마십시오. 확실히 알지 않는 뉴스를 퍼뜨리지 말고, 그대가 잘 모르는 것을 비판하거나 정죄하지 마십시오. 언제나 진실되고 건설적인 말을 하도록 하십시오.

 

10. 불교공동체를 개인의 이익이나 이득을 위해서, 혹은 그대의 공동체를 정치적 정당으로 변질시키기 위해 사용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종교공동체도 억압과 불의에 저항하여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정파적 갈등에 휩쓸림이 없이 상황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11. 인간이나 자연에 피해를 주는 직업을 가지고 살지 마십시오. 다른 이들로부터 생존의 기회를 빼앗아가는 회사에 투자하지 마십시오. 그대가 가지고 있는 자비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되는 직업을 선택하십시오.

 

12. 살인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도 살인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생명을 보호하고 전쟁을 방지할 수단을 최대한 찾도록 하십시오.

 

13. 다른 사람에게 속해야 할 것을 소유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의 재산을 존중하십시오. 그러나 인간의 고통이나 지상에 있는 다른 동식물들의 고통으로부터 이익을 취하려는 사람들을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하십시오.

 

14. 그대의 몸을 함부로 취급하지 말고 존경심을 가지고 다루십시오. 그대의 몸을 단순히 하나의 도구로 보지 마십시오. 도를 실현시키기 위해 생명 에너지(성, 호흡, 정신)를 보존하십시오. 사랑과 헌신이 없이 성적인 표현을 해서는 안 됩니다. 성적 관계에서 앞으로 있을 수 있는 고통을 자각하십시오. 다른 이의 행복을 보전하고 다른 이의 권리와 책무를 존중하십시오. 새로운 생명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 데 대한 책임을 완전히 자각하고 있으십시오. 새로운 존재가 나올 이 세상에 대해 명상하십시오(주1)

 

참여불교의 확대

 

팃낫한 스님이 처음 불교의 기본 가르침 외에도 인도 간디의 비폭력 운동과 미국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시민운동을 참고하였다는 의미에서 이들도 참여불교에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암베드카(B. R. Ambedkar, 1891~1956)입니다. 그는 인도의 불가촉천민 출신으로 인도 제헌국회에서 헌법제정에 참여하고 법무장관과 경제부 장관의 자리에까지 오른 인물입니다. 암베드카는 1956년 40만 명을 이끌고 불교로 개종해서 ‘불가촉천민’이라는 뜻의 ‘달릿(Dalit)’이라는 이름의 불교부흥 운동을 전개합니다. 그의 이런 운동은 불교의 가르침으로 인도의 카스트 제도나 경제적 불의 등을 개선하려고 한 것이기에 일종의 ‘참여불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진 4. 암베드카.

 

불교의 십우도十牛圖에서 열 번째 그림은 ‘입전수수入鄽垂手’ 입니다. 깨친 이는 결국 도움의 손길을 가지고 저자거리로 나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비록 이름은 다르지만 영적 수행은 사회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완성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일종의 참여불교와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남미에서 일어난 해방신학(Liberation Theology)도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억압받는 남미의 그리스도인들을 해방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의미에서 참여불교와 같은 방향이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달라이 라마도 1998년 인도 보드가야에서 있은 불교-기독교 대화 모임에서 불자들이 사회·정치적 문제를 열성적으로 다루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이 점에 있어서 불자들은 그리스도인들로부터 배울 점이 많다.”고 했습니다.

 

사진 5. 티베트 불교의 정신적 스승 달라이 라마. 사진: 위키피디아.

 

한국 불교도 이전에 비해 한국 현실에 관여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불교 자체의 정치·경제적 사익을 위한 타협이나 야합이 아니라 진정으로 국가와 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참된 의미의 참여불교에 좀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각주>

(주1) Thích Nhất Hạnh, ‘The Fourteen Precepts of Engaged Buddhism.’ Lion's Roar.(12 April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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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
서울대학교 종교학 석사, 캐나다 맥매스터 대학교 종교학과에서 ‘화엄 법계연기에 대한 연구’로 Ph.D. 학위취득.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종교학 명예교수. 저서로는 『불교 이웃 종교로 읽다』, 『오강남의 그리스도교 이야기』, 『도덕경』, 『장자』, 『세계종교 둘러보기』, 『진짜 종교는 무엇이 다른가』『종교란 무엇인가』, 『예수는 없다』, 『나를 찾아가는 십우도 여행』, 『살아계신 예수의 비밀의 말씀』, 『오강남의 생각』 등. 번역서로는 『살아계신 붓다, 살아계신 예수』, 『예수의 기도』, 『예언자』 등.
soft10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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