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종교와 불교의 미래]
생태계 위기와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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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 / 2023 년 10 월 [통권 제126호] / / 작성일23-10-05 10:02 / 조회1,916회 / 댓글0건본문
대체적으로 표층종교는 내세 지향적이고 심층종교는 ‘지금 여기’라는 현실을 중시한다는 이야기는 지난 글에서 대략 이야기했습니다. 심층종교의 현실 중심주의의 표현 중 하나가 불교의 경우 ‘참여불교’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도 지난 호에서 언급했습니다. 오늘은 불교를 포함하여 모든 종교가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 분야가 바로 기후 변화나 자연 파괴 등과 관계된 생태계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일상화된 대재난
지난 여름에는 유난히 지구가 심하게 몸살을 앓았습니다. 한국, 중국, 일본을 비롯하여 유럽 여러 나라에서 유례 없는 호우나 홍수 사태로 귀중한 생명과 재산을 잃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가뭄으로 인한 물 부족으로 농사를 망치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홍수나 가뭄뿐 아니라 여기저기 화재도 발생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미국 하와이의 마우이섬에서 일어난 초대형 산불로 사망자만 수백 명이고 실종자도 천 명 정도라고 합니다.
특이한 현상은 미국 루이지애나에서는 해마다 겪었던 홍수 피해 대신 이번에는 전례 없는 산불이 덮쳤습니다. 캐나다도 6백여 곳의 산불로 삼림이 소실되었을 뿐 아니라 인명 피해까지 있었고 더구나 캐나다뿐 아니라 미국 여러 곳까지 번져나간 연기로 숨쉬기마저 힘들 지경이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도 좀 잠잠해지는가 했더니 다시 창궐하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매일 뉴스에서는 세계 각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폭우, 폭풍, 폭염, 해일, 화재, 홍수, 허리케인, 지진에 대한 보고가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껏 지구의 종말이라는 말은 일부 종교에서 즐겨 쓰던 말인데, 지금은 오히려 과학자들 중에 인류의 멸절이나 지구의 종말을 말하고 있는 이들이 등장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후쿠시마 핵 오염수 해양 방류 같은 사례를 보면 어느 정도 실감나는 이야기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연재해의 발생 원인
왜 이런 일이 근래에 와서 더욱 빈번해졌을까요? 많은 경우 인간이 자연을 함부로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기후 변화만 가지고 따져 보면, 탄소 배출을 함부로 하여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특히 남아메리카 페루와 칠레 연안에서 일어나는 해수 온난화라는 ‘엘리뇨 현상’, 그리고 이와 함께 수온을 내리게 하는 ‘라니냐 현상’이 주원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학자들 중에는 이런 자연 파괴 현상의 사상적·정신적 배경으로 지금껏 서양을 움직인 유대교와 기독교의 인간 중심적 창조신앙 때문이라고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받들고 있는 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 이야기에 보면 태초에 신이 인간을 창조한 다음 그들에게 명하여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8)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또 『시편』에 보면 신이 인간을 신보다 조금 못하게 짓고 인간에게 “존귀와 영광의 관”을 씌어 준 다음, 신이 직접 손으로 만든 것을 “다스리게 하고 만물을 그의 발아래 두게” 했다(시8:5,6)고 했습니다.
지금껏 서양에서는 이런 인간 중심적 창조신앙을 자기들 편리한 대로 확대해석하여 땅을 정복하고 물고기와 새들을 함부로 포획하고 자연을 발로 짓밟는 일을 서슴지 않고 자행해 왔습니다. 그 결과 땅과 바다와 공중에 오염이 극심한 지경에 이르렀고, 이런 생태계와 환경파괴의 결과가 기후 변화로 나타나고 이어서 홍수와 가뭄 등의 자연재해로 이어진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그러나 오로지 이런 유대교와 기독교의 인간 중심적 창조신앙만이 현재의 이런 재해의 근본 원인이었을까 물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통적으로 유대교나 기독교의 창조신앙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중국이나 일본 같은 나라들도 어느 면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환경 파괴에 동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런 기후 위기의 더욱 근본적이고 현실적인 원인은 무엇일까요? 기후 위기의 적敵은 탄소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더욱 근본적인 원인은 탄소를 배출하게 하는 자본주의 경제 구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더욱 근본적인 원인은 인간의 이기적 탐욕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부 기독교에서는 세상의 종말이 임박하여 곧 멸망하게 되었는데 환경 같은 것에 신경 쓸 필요가 무엇인가 하는 태도를 보이기 쉬습니다. 하지만 이런 재난 사태를 보면서 종말이 오더라도 우선은 숨 쉬고, 먹고 살아야 할 것 아닌가 하는 의식의 전환을 통해 자연과 환경에 더 큰 경외심을 가지는 계기를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이른바 종말론(eschatology)에서 생태학(ecololgy)으로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이제 신이 인간을 향해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만물을 발 아래 두라”고 한 명령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은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말은 “보호하고 보살피라”는 말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자연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신의 명령을 어기는 죄라고 했습니다. 이제 자연에 대해 함부로 하는 대신 자연에 대해 경외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경외심’이라고 하니 슈바이처 박사가 주장하는 “생명 경외(Reverence for Life)”라는 말이 연상됩니다. 슈바이처 박사는 인간은 살려고 하는 의지에 둘러싸인 생명 의지이기에 모든 생명이 가지고 있는 천부적 권리를 존중하여 함부로 해를 가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는 아프리카 밀림에서 의사로 일할 때 아무리 더워도 밤에 창문을 열어놓지 못했다고 합니다. 날파리들이 들어와 켜놓은 불에 부딪혀 죽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한국의 동학東學에서는 이보다 한 걸음 더 나갑니다. 동학은 삼경三敬이라고 하여 하늘을 공경하는 경천敬天, 사람을 공경하는 경인敬人, 사물을 공경하는 경물敬物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기후 위기를 감안하면 하늘과 사람뿐 아니라 동물, 식물, 그리고 특히 석탄이나 석유 등 광물 자원, 수자원, 풍력이나 태양광까지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기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깨닫게 됩니다.
기후 위기 시대 불교의 역할은?
이런 환경 파괴나 기후 위기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인간의 이기적 탐욕이라고 한다면 여기에 불교가 해야 할 일이 뚜렷해집니다. 많은 종교에서 인간의 이기적 탐욕을 줄이라고 가르치지만 불교만큼 이를 힘 있게 조직적으로 가르치는 종교는 찾기 힘듭니다. 불교에서 기본적으로 가르치는 사성제四聖諦는 목마름[渴愛], 곧 집착과 탐욕이 모든 괴로움[苦]의 근본 원인이라 지적하고 이를 없애기 위해서 팔정도八正道라는 구체적인 길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또 불교에서는 우리가 피해야 할 세 가지 요소가 탐욕貪慾·진에瞋恚·우치愚癡라고 합니다.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인데, 이를 줄여서 탐진치貪瞋痴라고 하고, 이는 우리를 해롭게 하는 독약과 같다고 하여 삼독三毒이라고 합니다. 이 세 가지 독약 중 특히 탐욕이 바로 기후 위기를 가져오는 원흉이라 한다면 불교는 그 원흉을 없애라고 가르치는 셈입니다.
특히 화엄의 가르침을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만물이 서로 연관되고 서로 의존되어 있다는 상즉相卽 상입相入의 사상은 자연을 함부로 대하는 것이 결국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 지구 어느 한 곳에서 나비가 날개짓을 하면 반대편 어디에서 태풍이 된다는 나비효과라는 것도 화엄의 인드라망 사상을 생각하면 가능한 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부디 풀 한 포기를 뽑더라도, 쓰레기 하나를 버리더라도 그것이 결국 환경오염 등 생태계 변화와 관계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주1)
환경오염을 예방할 수 있는 이런 아름다운 불교의 가르침을 더욱 힘 있게 널리 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불자들에게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그 정신을 받아 실천하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불교가 표층신앙에서 탈피해서 더욱 의미 있게 수행할 수 있고 수행해야 할 시대적 사명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각주>
1)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할 수칙을 영어로 3R이라 하기도 합니다. Reduce(줄이라), Reuse(재사용하라), Recycle(재활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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