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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육조단경』을 높이 평가하고 애독했던 혁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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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란  /  2023 년 11 월 [통권 제127호]  /     /  작성일23-11-04 19:55  /   조회2,003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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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중국의 불교학자들 35 | 모택동 ①

 

모택동毛澤東(1893~1976)은 사회주의 사상인 맑스주의의 중국화를 완성한 혁명가이자 정치가이다. 이론가, 군사 전략가로는 물론 ‘모택동 사상’을 창시한 사상가, 시인, 서예가로도 알려져 있다. 논쟁의 여지가 있는 인물이지만 세계사적으로 20세기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으로 평가된다. 

 

혁명가이자 사상가로서의 모택동

 

모택동은 호남성에서 부유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신해혁명과 5·4운동의 영향을 받아 평생 반제국주의를 견지하였다. 북경대학에서 사서로 일하면서 맑스주의를 받아들였고, 1927년 중국공산당의 창립 멤버가 되었다. 이후 국민당과의 국공 내전에서 홍군을 지도하였고, 결국 중국을 통일하고 중국 공산당의 지도자가 되었다. 이후 독재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정권을 통해 중국을 통치했으며, 종교 및 문화 유물과 유적지의 파괴는 물론 문화대혁명, 대량 탄압에 책임이 있는 반면, 서민 생활을 향상시키고 중국을 강국으로 탈바꿈시켰다. 

 

사진 1. 젊은 시절(1920년)의 모택동.

 

모택동은 맑스 철학과 중국혁명의 경험, 그리고 중국 전통철학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결합하여 성과를 이루었다. 중국 근대, 특히 일본이 중국을 전면적으로 침략하던 1937년부터 공유제를 기초로 한 사회주의 개조가 완성된 1957년까지는 맑스주의가 중국 전통사상과 충돌하면서도 결합하던 시기이다. 이때 모택동은 중국 전통사상을 무조건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할 만한 요소가 있음을 인정하였다.

 

사진 2. 1934년 대장정 시절 말을 타고 있는 초라한 행색의 모택동.

 

청년 시기에 공자孔子와 진독수陳獨秀(1879~1942)를 높이 평가하였고, 1919년 5·4운동 이후 맑스주의자가 된 뒤에는 ‘비판계승’의 원칙을 제시하여 유학과 중국 전통사상 중 민족적·과학적 사유를 받아들였다. 맑스주의와 중국 전통사상의 결합을 주장하여 교조적인 러시아 맑스주의에서 벗어났던 것이다. 예컨대 1938년 중국공산당 전당대회에서 그는 “우리는 역사를 끊어서는 안 된다. 공자부터 손문孫文(1866~1925)에 이르기까지 총괄해서 이 진귀한 유산을 계승해야 한다.”고 연설하며 “봉건계급과 자산계급의 것이라도 옛 문화를 계승하는 일은 결코 거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개방정신에 의거한 불교 평가

 

사회주의에서는 기본적으로 철학사가 유물론과 유심론, 변증법과 형이상학의 투쟁사이고, 두 진영의 철학적 대결은 사회의 적대하는 계급 간의 이해 충돌을 철저히 반영한다고 본다. 유물론·변증법은 진보계급의 세계관으로서 항상 보수계급과의 투쟁에서 철학적 무기로 사용되었고, 이에 반하여 유심론·형이상학은 지배계층의 세계관으로서 피지배층에 대한 지배를 공고히 하고 민중의 탄압 도구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사진 3. 국공합작 시기의 모택동. 도는 의미가 있게 되는 것이다.

 

모택동은 “마르크스주의자는 인류 사회의 생산 활동이 점차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발전해 나아가며, 이에 따라 인간의 인식도 자연계나 사회를 막론하고 한 걸음씩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발전한다고 생각한다. 즉 모든 것은 얕은 곳에서 깊은 곳으로, 단순한 곳에서 복잡한 것으로 발전해 나아간다.”(『毛澤東選集』 第一卷, 「實踐論」)고 보았다. 이러한 입장은 철학사의 발전을 인식의 발전 과정으로 파악하는 것이며, 이때 과거의 모든 철학사상이나 문화유산은 그 다음 단계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단계가 된다. 전적인 비판 대상인 사상이라도 정반합의 변증법적 발전을 위해 어느 정이러한 입장은 불교 등 전통사상을 대할 때 무조건적인 비판이나 부정을 피할 수 있는 중요한 논거를 제시한다.

 

사진 4. 1945년 충칭에서 국민당 지도자 장개석과 함께.

 

모택동은 ‘개방정신’이 중국철학사를 추동하는 힘이라고 파악하였다. 중국 철학사가 갖는 생명력 역시 불교라는 외래사상을 흡수하여 변화시킨 데 기원한다. 그는 전통사상에서 유학은 물론 불교와 도가사상과의 상호교섭을 중시하였는데, 이 점이 그의 개방적 태도를 보여준다. “우리 민족은 종래 외국의 뛰어난 문화를 수용하였다. 당대 삼장법사는 만리장정하여 곤란이 많았지만, 서방 인도로 가서 불경을 얻었다.”라고 불교에 대해 개방적 태도로 임한 것을 칭찬하였다. “우리가 외국의 장점을 받아들이면 우리 문화에 발전이 있게 된다. 중국적인 것과 외국적인 것이 결합하면 상투적이 아니게 된다.”고 하며 모택동은 개방정신을 강조하였다.

 

그는 역사에서 불교의 영향이 크다는 점을 확실히 인식하고 있었으며, 단지 사회주의에 근거한 종교 연구가 없었다는 점을 아쉬워하고 종교의 ‘신학神學’성을 비판하는 것이 종교 연구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철학을 인식의 발전사로 파악할 때, 불교는 중국 철학사가 발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상이 된다.

 

선불교의 주관적 능동성과 혁명정신의 결합

 

맑스주의를 학문 평가의 절대 기준으로 받아들이는 학자들은 선불교가 주관유심주의·종교적 신비주의·직관주의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반과학·반상식으로 이어진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주로 하였다. 예컨대 임계유는 선불교의 목적은 선禪이라는 방법으로 객관세계의 진실성을 부인하고, 그에 따라 사람들에게 현실사회에서의 투쟁을 팽개쳐 버리게 하는 데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하여 모택동은 선불교의 목적은 현실 사회에서의 투쟁을 무화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사회에서의 투쟁을 강화하고 적극적·능동적으로 선택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사진 5. 중국 공산당의 제1대 중앙위원회 주석 시절(1959년).

 

1958년 한 강연에서 그는 “『육조단경六祖壇經』에서 혜능은 주관 능동성을 확연히 드러내었고, 이것은 중국 철학사상에서의 일대 전진이다.”라고 혜능의 선불교를 평가하였다. 혜능의 선불교 사상에 대한 중국 불교계의 평가에서 곽붕郭朋은 일체를 공空으로 보는 것은 대승 공종空宗이지만, 혜능은 대승 유종有宗에 속하고 진여연기론을 주장한 것이라고 보았다.(『壇經校釋』,「序言」)

 

임계유는 혜능의 초기 선종의 특징은 『능가경』을 중심으로 하는 대승 유종이지만, 『금강경』을 중심으로 하는 대승 공종이기도 하다고 보았다.(『中國哲學史』) 선불교를 주관유심론으로 볼 것인가, 객관유심론으로 볼 것인가에는 논쟁의 여지가 있으나, 어떤 입장이든 유심주의라는 판단에는 차이가 없다. 모택동 역시 선불교를 주관유심론으로 파악하였다. 그러나 그는 혜능이 북종의 돈오점수 방법을 반대하고 ‘돈오’만을 강조하고, 모든 외부 조건의 제약을 부인하고 내심에서의 해탈을 강조한 점에 주목하였다. 외부 조건이 어떠하든 중요한 것은 자신의 주관 안에서의 깨달음이며 이를 통해 자신이 본래 가지고 태어난 불성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관적 능동성’은 중국 근대혁명 과정에서 필요한 가장 중요한 덕목의 하나였고, 모택동은 이를 불교 속에서 발견하고 높이 평가하였던 것이다. 

 

실제로 혜능은 자성自性, 자기 내부의 정토淨土를 강조하였다. “동방에서 사람들은 죄를 지으면 염불해서 서방에서 왕생하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서방에서 사람들은 죄를 지으면 어느 나라에 왕생하기를 빌어야 하는가? 어리석은 범부가 자기 성품을 깨닫지 못해 자신 속의 정토를 알지 못하여, 동쪽을 바라거나 서쪽을 바라기도 한다. 깨달은 사람은 어느 곳이든 한 가지이다. 이 때문에 부처님도 ‘머무른 곳에 따라 늘 안락하다’고 하였다.”(『六祖壇經』)

 

혜능의 선불교는 객관세계를 부정하거나 서방정토의 부재를 주장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깨달은 사람은 어느 곳이든 한 가지이다.”는 깨달음의 주관적 능동성에 대한 강조에 초점이 있다는 것이다. 선불교가 지향하는 것은 자기 속의 불성, 자기 안의 정토를 깨닫는 것이지 서방정토나 외부의 유토피아로 가려는 것이 아니다. 이 점을 모택동은 높이 평가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진 6. 근대의 시행착오, 문화대혁명(1966~1976).

 

일반적인 사회주의자들의 선불교에 대한 비판은 한마디로 당시 지배계층이 필요로 하는 논증, 즉 존재하는 것은 모두 합리적이라는 점을 논증하여 사회변혁의 의지를 무화시켰다는 데 있다. 선불교가 이론적으로 봉건질서의 합리성을 뒷받침하고, 유심론적 입장에서 기본범주를 해석했다는 것이다. 선불교에 대한 모택동의 이 같은 평가는 기존의 평가와는 상반된다. 오히려 사회변혁과 현실에의 투쟁에 선불교가 가진 주관적 능동성을 강조하여 선불교가 긍정적 역할을 하였음을 강조한 것이다. 이것은 ‘혁명정신’과 선불교가 가진 ‘주관적 능동성’, 즉 자기 의지를 연결시켜 실제 혁명과정에 필요한 힘을 더하려는 모택동의 의도가 전제된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선불교의 불성론에 담긴 평등사상 긍정

 

모택동이 『육조단경』을 높이 평가하여 애독하였다는 에피소드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육조단경』과 『금강경』, 『화엄경』 등의 불경을 자주 읽었다고 한다. “종교를 믿는 인민이 많은데, 종교에 대한 이해 없이 어떻게 그들을 위해 일할 수 있겠는가?”라고 종교 서적을 읽는 이유를 설명하였다. 특히 『육조단경』은 ‘노동 인민의 불경’이라고 부르며 자주 인용하고 여행할 때는 늘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이 책이 노동을 중시하는 민중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고, 이 점이 다른 사상가와 다른 독창적인 견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모택동이 『육조단경』을 민중적이라고 평가한 근거 중 하나는 혜능이 노동자 계층 출신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선불교는 서민적인 종교였다. 수·당 시대에 선불교를 제외한 그 밖의 종파는 번잡한 주석과 승원철학식의 이론적 논쟁에 기울어져 있었다. 한편으로 그들은 광대한 토지를 점유하고 숱한 노비들을 거느리는 화려한 생활을 하였다. 불교가 한편으로는 세속의 부귀를 버리고 물질적 향락을 버려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사원경제가 급격히 발전하게 되자 승려들은 사치하고 타락해 갔다.

 

당시 불교가 마주친 이러한 위기를 만회하기 위해 내부에서 선불교가 일어났던 것이다. 그들의 유일한 무기는 선불교가 주관유심론이었다는 점이다. 주관유심론이 갖는 의미는 그들의 주장은 논증할 것도 없고 경전에서 논거를 가져올 필요도 없이, 다만 개인의 주관적인 신심에 의거하면 된다는 것이다.(任繼愈)

 

모택동이 『육조단경』을 높이 평가한 큰 이유도 혜능이 불성론을 통하여 평등사상을 긍정하였다는 점에 있다. 불성론은 중생이라면 모두 불성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모두 성불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이러한 불성론은 선불교를 포함한 중국불교 전체의 특색이기도 하다. 혜능은 불성이 지역이나 민족을 나누지 않고 동일하게 모든 사람 자신에게 주어져 있다고 보았고, 그런 근거에서 하층 민중의 성불 가능성을 강조하였다. 『육조단경』에도 혜능이 오조홍인을 만났을 때 홍인이 그를 남해인이라고 무시하자, 그가 “사람은 남인과 북인이 있지만, 불성에는 남북이 없습니다. 저는 남쪽의 오랑캐라 스님과 다르지만, 불성에 어찌 차별이 있겠습니까?”라고 반박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이러한 불성론의 사회 정치적 의미는 모든 인간의 평등이다. 모든 사람이 불성을 가지고 있고 계급·지역에 관계없이 성불할 수 있다는 이론은 바로 모든 인간의 평등주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불성론의 평등주의를 모택동이 사회주의 사상과 연관하여 받아들였다고 할 수 있다. 중국 근대혁명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가치의 하나가 바로 민중의 평등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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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란
철학박사. 현재 고려대학교 강의교수. 고려대학교 철학과 석·박사 졸업. 같은 대학 철학과에서 강의, 동국대 불교학술원 HK연구초빙교수를 지냈다. 지곡서당 한문연수과정 수료. 조계종 불학연구소 전문연구원 역임. 『웅십력 철학사상 연구』, 『신유식론』, 『원효의 대승기신론 소·별기』 등 다수의 저서 및 번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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