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살리는 사찰음식]
감로도, 불교음식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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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 / 2023 년 11 월 [통권 제127호] / / 작성일23-11-04 20:17 / 조회2,974회 / 댓글0건본문
스승이신 조선왕조궁중음식무형문화재 제38호 궁중음식기능 보유자이신 한복려 원장님과 수원 용주사에 참배하러 갔던 적이 있습니다. 법당에서 3배를 올리고 신중단 쪽을 보니 감로도가 걸려 있었고, 중단에 그려진 공양물을 보게 되었습니다. 평소 사찰음식을 좀 더 깊이 있게 공부하기를 바라셨던 스승님의 조언에 따라 공부를 결심했고 감로도 50여점을 두고 연구를 시작하였습니다.
부처님의 가피를 실감할 정도로 고마운 인연들을 만나 지난 10월에 감로도에 그려진 그림을 현실로 재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영단을 씌우는 비단 탁의와 봉은사 지화장엄연구회가 후원해 주신 난등으로 더욱 여법한 전시를 열 수 있었고, 신세계푸드의 후원으로 육바라밀연꽃빵과 목탁빵이 시대에 걸맞게 공양물이 되었습니다.
모든 음식을 직접 만들고 전통방식 그대로 고임을 재현할 수 있었던 것은 궁중음식연구원에서 공부하고 후학들을 양성하고 계시는 3분의 선생님들이 함께해 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지구를 살리는 사찰음식이 탄생하기까지 불교음식이라는 거대한 카테고리가 있었음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었고, 불심이 돈독하신 어머니를 위한 성반盛飯이었습니다.
불교음식 뿌리찾기
불교음식과 사찰음식은 불가의 음식문화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불교음식’은 사전의 표제어에 올라와 있지 않지만 조선왕실의 의례음식과 같이 소선素膳으로 떡, 과실, 유밀과 등으로 차리는 불교음식문화가 존재했습니다.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왕실에 이르기까지 속절제俗節祭에 올렸던 의례음식과 임금님의 수라상에서 볼 수 있는 일상식이 있듯이, 불교의례에 사용되었던 음식은 ‘불교음식’으로 지칭하고, 사찰에서의 일상식을 ‘사찰음식’으로 구분하여 사용되어야 함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불교문화가 융성했던 고려시대를 거쳐 숭유억불 정책을 내세웠던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불교의례에 사용되었던 유밀과의 전통은 속절제 음식으로 이어져 갔으며 조선시대의 고조리서를 통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15세기까지 수륙재를 왕실에서 주도했다면 17세기에서 18세기 전반까지는 사찰에서 수륙재가 거행되었습니다. 18세기 후반부터는 수륙재 관련 기록이 급격히 줄어드는데, 이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왕실 주도의 천도의식이 사찰과 민가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수륙재는 하늘 위, 땅 아래, 인간, 영혼, 미물까지 평등하게 누리는 축제를 의미합니다. 수륙재水陸齋는 온 천지와 수륙에 존재하는 모든 고혼孤魂의 천도를 위하여 지내는 의례로 개인 천도의 성격을 띤 영산재에 비해 공익성이 두드러지는 불교의례입니다. 또한 음악, 무용, 미술, 음식이 어우러진 불교예술의 총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조선 초기부터 국행수륙재로써 대규모로 설행되어 왔던 사실이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문헌에 나타나 있습니다.
감로도를 통해 알아본 불교음식
감로도는 아귀도餓鬼道에 떨어진 영혼들을 구제하기 위해 의식을 베푸는 장면을 그린 불화입니다. 조선시대에 성행한 우란분재盂蘭盆齋, 수륙재水陸齋, 천도재薦度齋 등 다양한 의식에 사용되었으며, 죽은 사람의 영혼이 극락에 가기를 기원하며 그려졌습니다. 상단에는 여러 부처님과 보살이 강림하는 장면을, 중단에는 아귀에게 시식施食 의식을 행하는 장면을, 하단에는 현실 속 갖가지 재난災難의 장면을 묘사하였습니다.
특히 이 감로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아귀들과 시식단의 모습입니다. 화면 중앙의 입에서 불을 뿜어내는 두 아귀는 천도받아야 할 고혼孤魂을 상징적으로 나타냈습니다. 오른편에는 감로를 받기 위해 발우를 들이대고 아우성을 치는 작은 아귀들의 모습도 보입니다. 그 위로는 떡, 과일, 흰 쌀 등의 각종 공양물과 향완, 촛대, 등잔 등 기물로 화려하게 장엄한 시식단이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시식단이 실제로 차려진 제단이 아니라 병풍처럼 접었다 펼 수 있는 걸개그림이라는 점입니다. 이것은 현실적으로 공양물을 올릴 수 없는 곳이거나 그림으로써 실제 공양물을 대신할 수 있는 의식에 적용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감로도는 수륙재와 같은 영혼 천도의식을 가시화한 그림 기록입니다. 또한 감로도는 이야기와 교훈이 담겨 있는 불화이기도 합니다. 감로도의 핵심 주제는 감로왕에서 화면 중앙을 가득 메운 성찬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커다란 상 위에 차려진 성반盛飯(공양을 올리는 음식)을 통해 알아 본 불교음식에 대해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고조리서를 통해 알아본 불교음식
조선시대에 국행수륙재에서 음식을 만드는 소임을 기록한 ‘육색장축원六色掌祝願’을 바탕으로 『조선왕조실록』에 세종·문종·세조 3대에 걸쳐 어의御醫로 살았던 전순의全循義가 기록한 『산가요록山家要錄』을 참고하여 조리법을 접목시켜 보았습니다. 『산가요록』은 우리나라 최초의 농서이기 이전에 최고로 오래된 고조리서로 알려져 있습니다. 『수운잡방』과 더불어 조선시대 고조리서를 통해 유밀과를 만드는 법을 익히고 사찰의 의례음식의 조리법을 추정해 보았습니다.
삼국시대부터 문헌에 나타나는 수륙재는 천지와 수륙에 존재하는 모든 고혼들에게 음식을 베풀어서 달래 주고 위로하는 불교의례입니다. 감로도에도 나타나 있듯이, 이 의례에는 반드시 음식이 있어야 하고 베풀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어떤 음식이 올라갔는지에 대한 기록을 아직까지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현재 보존되고 있는 감로도 50여 점을 분석하였고, 동시대에 써진 『산가요록』을 중심으로 식재료와 조리법을 반영해 한국 불교음식을 연구해 보았습니다.
축원문 속에서 발견된 불교의례 소임
승려 침굉이 모아 놓은 시문에 나온 내용을 살펴봅니다. 『침굉집』에 수록된 상당급육색장축원上堂及六色掌祝願 시제에 주목해 봅니다. 『침굉집』에는 어산·범음·범패·화원畫員·별좌·숙두熟頭·다각茶角 등 총 33여 종의 다양한 축원문을 싣고 있습니다. 축원문에서 소임명은 별도로 표기하지 않고 있으나, 축원문 속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수륙재에서 음식은 범음의 가지작법加持作法을 통해서 불법의 법력이 수륙재의 대상에게 전달됩니다. 음식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범음의 작법으로 감로수로 변하게 하여 목적하는 곳으로 흘려보냅니다. 그래서 음식은 중생의 영혼을 위무하여 해탈하게 하는 매개체로 중요합니다.
여러 가지 감로도를 참고하였고, 지환의 『천지명양수륙재의범음산보집』 육색장축원문에 나타나는 불교음식을 고조리서를 바탕으로 재현해 보았으며, 상차림은 감로도 50여 점 속에 나타난 담음새 중에 마음에 드는 스타일 몇 점을 선택하여 재현해 보았습니다.
그러면 중흥사본 『산보집』에서 직접 손으로 음식을 만드는 일을 담당하는 육색장六色掌의 축원문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내용은 동국대학교 태경스님의 논문인 「조선후기 수륙재문水陸齋文」에 나타난 불교음식 연구를 참고하여 정리하였습니다. 육색장축원문을 통해 음식과 직접 관련된 육색장과 별좌 소임을 중심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육색장축원
•반두 : 금우金牛와 앙산仰山이 옥같은 쌀알과 진주같은 오곡을 백번 깨끗하게 씻어서 삼덕육미를 유출한다. 여래의 향적반을 봉헌하는 모某 비구여.
•조과 : 남해에서 일곱 가지 보물과 산호골 등을 용출하고 과자로 큰 탁자를 깨끗이 한다. 재주齋主를 청정하게 하는 모某 비구여.
•조병 : 구름과 같고 눈과 같이 묘하고 깨끗한 진미이니 가늘고 희고 가는 떡이다. 은과 같고 달과 같이 쌀알은 물에서 찌어지니 운문雲門의 호병이며 덕산德山의 점심이다. 원융하게 떡을 만드는 모某 비구여.
•다각 : 용궁에서는 만년의 세월이 흐르고 설산에서는 향기 있는 우유가 흐르니, 백 가지 풀과 숲에서는 일미一味가 새로워진다. 옥사발과 은솥으로 대가大家(선문을 말함)에서 차를 끊이니, 조주趙州는 여러 기연과 만인에게 항상 권하여 제호와 감로는 자미를 휘몰아친다. 청정한 다각 모某 비구여.
•숙두 : 진주鎭州의 생강, 영조靈照의 씻은 채소, 생강, 숙강, 산삼, 서삼은 가늘게 자르고 얇게 저미고 감장과 양장은 기름을 잘 섞어 짠맛과 담백한 맛을 내어 입에 알맞고 배를 채운다. 공경숙두 모某 비구여.
•채로 : 명수와 대갱, 젖지 않는 선갱, 청매와 백염으로 부열傳說은 국을 끊여 모든 맛을 화합하려고 아침저녁으로 수고로이 한다. 일미채로 모某 비구여.
•별좌 : 위로는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고, 가운데는 천선에게 공양하고, 아래로는 뭇 중생에게 미치게 하는 평등법회이다. 모든 일을 잘 살펴서 각각 색色(육색장의 재료)이 가리키는 것을 잘 내어 부처님을 향하게 하고 마음을 기울게 한다. 갖가지를 준비하고 갈고 두드리기를 분명하게 하여 만사를 모두 가지게 한다. 도대별좌 자비도인 모某 비구여.
사찰음식과 불교음식
육색장의 분류는 재료의 선택과 조리법에 기준을 둡니다. 반두는 곡식 낱알을 찌고, 조과는 반죽한 곡식 가루를 튀기고, 조병은 곡식 가루를 찌고, 다각은 차를 끓이고, 숙두는 근·줄기·열매를 꿀과 기름을 넣어 졸이고, 채로는 물을 끓입니다. 음식으로는 밥, 유밀과, 떡, 차, 정과, 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국 식생활의 기본 요소인 밥과 국을 제외한 떡과 유밀과는 수륙재에서 중심이 되는 음식이 됩니다. 이는 경전에서 최고의 공양물로 여기는 유밀과가 수륙재에 전승되고 있음을 의미하므로 불교의례 음식으로 자리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고증을 거쳐 감로도에 나타난 그림을 바탕으로 음식을 재현해 보았고, 사찰에서의 일상식은 ‘사찰음식’으로 정의하고, 감로도에 나타난 불교의례음식을 ‘불교음식’으로 정의해 봅니다. 또한 불은으로 맺어진 저의 인연들로 오늘날 육색장을 구성하여 감로도에 나타난 성반을 재현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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