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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및 특별기고]
성철스님의 차원별 법문과 『선문정로』의 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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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구  /  2023 년 11 월 [통권 제127호]  /     /  작성일23-11-04 21:21  /   조회1,951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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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성철 대종사 열반 30주기 추모 학술대회 : 제4주제

 

강경구•동의대 교수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나 그것을 믿고[信], 이해하고[解], 실천하고[行], 깨닫는[證] 경로를 걷게 된다. 그것은 혹은 순차적으로 혹은 동시에 진행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성철스님의 일련의 법문을 개관해 보면 청법자의 차원에 대한 깊은 고려가 행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하여 믿음을 일으키는 법문에는 불필스님이 출가 전에 성철스님에게서 받은 『기신노트』와 대학생불교연합회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영원한 자유』 등이 있고, 이해를 심화시키는 법문에는 『백일법문』 등이 있으며, 실천을 이끄는 법문으로는 『선문정로』가 있다. 여기에 깨달음의 세계를 가감 없이 드러낸 『본지풍광』의 법문이 더해진다. 물론 이 법문들이 단계별로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니며, 심지어 각 단계는 다른 단계를 포함하기까지 한다. 무엇보다 신해행증의 모든 단계에 화두 참구를 강조하는 법문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성철스님의 법문은 오직 하나의 주제로 통일되어 있다고 할 수도 있다.

 

사진 1. 네 번째 주제 발표를 하고 있는 강경구 동의대교수.

 

그럼에도 성철스님의 법문을 신해행증의 차원으로 나누어 이해하는 것은 스님의 법문을 넓게 수용하는 데 도움이 되고, 『선문정로』의 실천에 앞서 선행해야 할 학습 내용이 있다는 점을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무엇보다도 스님의 법문 상호 간에 일어나는 충돌을 함께 수용할 수 있는 지평이 확보된다. 예컨대 ‘책 보지 마라’는 수좌5계의 항목이 그렇다. 성철스님은 책을 보는 일을 배척하면서도 그것을 인정하는 모순적 태도를 보인다. 믿음 차원의 법문인 『영원한 자유』에서는 “종교가 그 생명을 유지하려면 객관적으로 증명이 되는 뚜렷한 이론 체계를 갖고 있어야만 한다.”는 입장을 취하였고, 이해 차원의 법문인 『백일법문』에서도 ‘말과 문자에 의한 설명’의 필요성을 인정하였다.

 

이에 비해 『선문정로』에는 ‘언어문자에 대한 배척’의 입장이 뚜렷하다. 앞의 두 단계와 그 입장이 충돌한다. 그렇다면 성철스님은 문자를 통한 교리의 학습을 권장한 것인가? 배척한 것인가? 이 상반된 입장을 하나의 동일한 지평에 펼쳐놓으면 내적 충돌을 일으키게 되어 있다. 

이러한 내적 충돌은 청법자의 차원에 따라 설법을 달리했기 때문에 일어난다. 따라서 법문을 차원별로 나누어 보면 그 충돌이 본질적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믿음[信]을 일으키는 법문: 『기신노트』

 

진리에 대한 귀의와 신심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성철스님의 경우, 삶의 유한성에 대한 자각과 영원한 진리에 대한 확신으로 불교에 입문한 뒤 자성을 보는 체험을 하였다. 세간과 출세간의 경계에 서 있는 청법자를 대상으로 그 믿음을 일으키기 위해 집필된 『기신노트』(성팔이 노트)나 『영원한 자유』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법이 삶의 유한성에 대한 설파와 영원한 생명을 실증하는 사례의 제시로 시작되는 이유다.

 

사진 2. 「기신노트」(성팔이노트).

 

『기신노트』는 현상적 분별과 세간적 집착을 벗어나지 못한 차원의 세속인들을 불법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법문이다. 그러므로 사례 중심으로 흥미성을 높이는 한편, 위인전 방식으로 불법에의 성공을 꿈꾸도록 하는 언술전략을 취하고 있다. 나아가 속세적 삶의 유한성과 득도한 삶의 영원성을 대비시키는 방식으로 불법에 대한 믿음과 수행의지를 북돋우고자 하는 의도가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이해[解]를 심화시키는 법문: 『백일법문』

 

불법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기 위한 법문은 주로 출가 수행자를 대상으로 하는데, 그 전형은 해인총림 방장으로서 설한 『백일법문』(1967.12.4.~1968.2.18)이다. 『백일법문』은 그 직전 해인 1966년 운달산 김용사의 조실로서 행한 운달산법회(1966.1.12.~1966.2.8.)의 50일 법문을 전신으로 한다. 운달산법회에서 설한 법문은 그 주제를 통해 볼 때 그 내용이 『백일법문』과 거의 동일하다. 

 

운달산법회의 청법대중은 대학생불교연합회 구도부 학생들이었다. 믿음 차원에서 행해진 법문인 『영원한 자유』의 청법대상도 대학생불교연합회 학생들이었다. 어째서 성철스님은 똑같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차원을 달리한 설법을 했던 것일까? 그것은 대불련 산하 구도부의 성격 때문이었다. 구도부는 1965년대 봉은사 대학생수도원에 입소하여 사찰에서 생활하며 낮에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새벽과 저녁에는 절에서 수도하던 대학생 수행 공동체였다.

 

사진 3. 1965년 김용사에 모인 대학생 구도부 학생들과 함께한 성철 큰스님(뒷줄 가운데).

 

그러니까 당시 구도부의 학생들은 출가승을 뛰어넘는 강한 수행의지와 실천력을 갖춘 본격적인 수행자였다. 그런 점에서 이들에게 『백일법문』과 동일한 수준, 혹은 그것을 뛰어넘는 참선 실천을 요구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편 『백일법문』의 설법대상은 1967년 해인총림의 동안거 결제에 참가한 대중들이었다. 우리는 그 청법대중이 갖는 몇 가지의 특징에 주목하게 된다. 

 

첫째, 많은 대중이다. 당시의 신문기사에는 160여 명의 대중이었다고 하지만 300여 명이 청법대중으로 참여한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이것은 당시 비구승이 급증하고 있던 상황과 관련이 있다. 그런 점에서 『백일법문』은 자질이 부족한 출가대중의 소양을 확립하기 위한 법문이었다.

둘째, 청법대중은 20대에서 30대까지의 젊은 출가자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들은 한국 불교의 현대화를 열어갈 새로운 세대들이었다. 성철스님이 불교 전통의 복구를 기약하면서도 그에 대한 해석과 이해에 있어서 현대성, 과학성, 합리성, 현대 학문과의 동질성을 강조한 이유이다. 

 

사진 4. 성철큰스님의 백일법문을 책으로 엮은 『백일법문』(장경각, 2014).

 

셋째, 청법대중은 해인총림을 구성하는 선방의 수좌들과 강원의 학인들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 법문은 선방의 수좌들을 향해서는 전체 교학의 흐름을 중도로 꿰고 그 중도의 실천이 참선의 생명임을 알도록 요구하고 있고, 강원의 학인들을 향해서는 화두 참구 없이 교리 공부에만 빠지면 그것은 생명이 없는 것으로서 ‘신주 없는 제사’와 같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화두 참구와 함께하는 경전 공부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을 갖는 법문이었기 때문에 『백일법문』은 깨달음의 종지, 과학성과 합리성의 강조, 교리로서의 중도와 깨달음으로서의 중도를 함께 보여주는 법문을 전개한 것이다. 특히 각 교리에서 제시하는 연기, 불성, 진여 등과 같은 궁극의 차원을 중도로 꿰었다는 점에서 그 이理적 평등성에 대한 강조가 뚜렷하다.

 

수행[行]을 책려하는 법문: 『선문정로』

 

불법에 대한 믿음과 이해는 필연적으로 힘 있는 바른 수행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성철스님은 믿음을 일으키고 이해를 심화시키는 선행법문을 전제로 하여 본격적인 화두 참구의 실천에 들어간 청법자들을 위해 『선문정로』를 설했다.

성철스님의 법문은 기본적으로 모두 선 법문에 속하지만 내적으로 다시 나눠 보면 『기신노트』나 『백일법문』은 교학적 법문에 가깝고, 『선문정로』와 『본지풍광』은 일체의 교학적 지해를 털어내고 전념으로 선을 실천하면서 스스로를 점검하도록 책려하는 본격적인 참선 법문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선문정로』는 다음과 같은 점들에 있어서 앞의 차원에서 행해진 법문과 차별화되는 특징들을 갖는다. 

 

첫째, 교학적 지식과 이해, 즉 지해를 철저하게 배격하는 입장을 분명히 한다. 알고 이해하는 일과 실제로 생사에 자유자재한 해탈의 차원에 도달하는 일은 전혀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선 수행에 전념하는 입장에서 보면 그것이 번뇌 망상이든 수승한 지해이든 모두 삿된 것이고 악한 것이다. 

 

사진 5. “부처님께 밥값 했다.”고 자평한 『선문정로』(장경각, 1981).

 

둘째, 『선문정로』는 불법교리의 의미 범주를 극단적으로 축소하는 법문으로 일관한다. 무심의 실천과 무심의 완성이 아닌 일체의 이론과 과정과 지위와 입장에 대한 최소한의 의미 부여조차 거부한다. 『선문정로』는 선의 근본이 아닌 모든 것을 남김없이 부정하고 배제하는 법문이다. 그것은 노장사상가나 도교의 도사들까지 포용하여 세속을 벗어난 수행의 의의를 밝히고자 했던 『기신노트』와도 다르고, 대승경전은 물론 아함부까지 포함하여 그 공통된 의의를 설파한 『백일법문』과도 다르다.

 

『선문정로』에서 행하는 부정은 안과 밖을 향해 함께 일어난다. 안을 향해 일어나는 부정이란 선수행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중간적 성취에 대한 부정이다. 이러한 내적 부정과 함께 불교의 핵심교리에 대한 교학적 해석을 부정하는 외적 부정을 실천한다. 예컨대 견성이 일어나는 지점에 대한 교설의 부정이 그렇다. 천태교학이나 이통현李通玄 장자의 화엄교학에서는 견성이 10주초에 일어난다는 입장을 취한다. 이에 대해 성철스님은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10주초의 견성은 원인이지 결과는 아니므로 진정한 견성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살펴보면 『선문정로』의 전체 법문이 핵심교리와 관련된 교학적 논의에 대한 선적 차원의 재검토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이론과 체험 사이의 운명적 간극을 생각할 때 그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로 인해 『백일법문』에서 『선문정로』로 넘어가면서 미세한 차이가 일어난 부분이 여럿 보인다. 돈오점수의 비판에 해오점수라는 표현을 추가한 것, 아뢰야식 차원의 무심을 대무심이라고 했다가 이것을 가무심假無心으로 표현하여 그 배격의 입장을 분명히 한 점, 돈오점수의 핵심에 해당하는 오후보임에 대한 언급이 별로 없다가 ‘보임무심’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창안하면서까지 그것이 구경각을 성취한 대해탈인의 살림살이라는 것을 최대의 편폭을 할애하여 논의를 전개한 점, 제7말나식을 설정해야 한다는 원효의 견해를 수용했다가 그것을 따로 논할 필요가 없다는 현수의 설을 취한 점 등에 있어서 차이가 나타난다. 그 역시 청법자의 차이에 대한 고려의 결과였던 것으로 보인다. 본 고찰은 이 상호 간의 차이점에 대한 구체적 고찰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셋째, 화두 드는 법에 대한 구체적 가르침이 없다는 것 또한 『선문정로』의 설법의 한 특징이다. 『선문정로』는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 수행자를 위한 지침서이다. 그럼에도 그 전체 법문에 화두란 무엇인지, 어떤 화두를 들 것인지, 어떻게 화두를 참구할 것인지, 화두 참구 시 주의할 점은 없는지에 대한 구체적 안내와 지침이 거의 없다.

 

어째서 『선문정로』에는 이러한 화두 참선의 기초와 요령에 대한 구체적인 가르침이 빠져 있는 것일까? 그것은 설법의 지향이 선의 ‘근본’을 밝히는 데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근본’이란 무엇인가? 성철스님이 강조한 바와 같이 “선문의 근본은 견성”에 있고, 『선문정로』의 근본사상은 “견성과 견성 아님”을 가르는 데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선문정로』의 전체 설법을 살펴보면 전체 19장의 법문이 ‘바른’ 견성인지 그렇지 않은지, 진짜 무생법인인지 아닌지, 무심으로 노니는 보임인지 망심에 휘둘리는 보임인지, 아뢰야식의 불완전한 오매일여인지 진여의 완전한 오매일여인지 등을 판정하는 데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시각 하에 제3장 「두 가지의 영원불멸, 고苦와 대자유大自由」에서는 윤회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각 청법대중의 차이에 따라 영혼에 의한 윤회→아뢰야식에 의한 윤회→아뢰야식의 멸진을 통한 견성의 방식으로 설법의 중심이 이동한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제4장 「깨달음의 공간성」에서는 깨달은 존재가 거주하는 공간을 깊은 산 속의 성계聖界→법성정토의 이치→견성한 이에게 드러나는 상적광의 차원의 방식으로 설법의 중심이 변해 감을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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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구
현재 동의대학교 중국어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중앙도서관장을 맡고 있다. 교수로서 강의와 연구에 최대한 충실하고자 노력하는 한편 수행자로서의 본분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
kkkang@de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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