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 스님의 화두 참선 이야기]
마지막 등불, 은퇴, 그리고 봉암사에서 돌아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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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승 / 2023 년 12 월 [통권 제128호] / / 작성일23-12-04 15:30 / 조회2,162회 / 댓글0건본문
고우스님은 간화선 수행자로 평생 참선의 길을 가면서 간화선의 대중화, 생활화에 원력을 행하였지만, 교학이나 위빠사나도 훌륭한 불교 수행법이라 존중하였다.
간화선과 위빠사나의 만남 국제연찬회
2011년 공주 한국문화연수원에서는 뜻깊은 법회가 열렸다. ‘간화선과 위빠사나의 만남 국제연찬회’로 2박 3일 동안 간화선을 대표하여 고우스님, 위빠사나(사마타)를 대표하여 파욱 사야도가 법문하고 대담을 나누는 행사였다.
불교 2600년 역사에서 남방과 북방을 대표하는 위빠사나와 간화선 수행자가 만나서 2박 3일 동안 서로 대화하고 정진한 법회는 이때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 법회는 필자가 고우스님의 승낙을 얻어 기획하고 제따와나선원 일묵스님에게 부탁하여 남방 위빠사나(사마타) 수행자 중에서 대표적 선지식인 파욱스님을 국내로 초청하여 성사되었다.
이 법회에서 고우스님은 “부처님이 깨치고 처음으로 법을 설한 『초전법륜경』에 당신이 중도를 깨달아 생사의 괴로움에서 해탈했다고 하셨으니, 중도에 정견을 세우면 간화선을 하든지 위빠사나를 하든지 같은 부처님의 깨달음 길이니 우열이 없다. 다만, 높은 산의 정상을 깨달음에 비유한다면 위빠사나는 평탄한 길로 돌아서 올라가는 길이고, 간화선은 험하고 가파른 지름길로 올라가는 길이므로 좀 빠르다.”라고 하였다.
파욱스님은 “부처님이 깨치고 일러주신 깨달음의 길은 계를 바탕으로 사마타[선정]와 위빠사나[지혜]를 닦아서 일체의 번뇌 망상을 없애면 아라한과를 성취하는 것이다.”고 하였다.
만행, 달라이라마를 만난 이야기
고우스님은 2000년대 초에 여러 스님들과 인도의 다람살라로 가서 달라이라마를 만나 문답한 이야기를 가끔 하셨다. 달라이라마는 고우스님을 비롯한 한국 스님들에게 “부처님 해탈의 핵심은 지관止觀이 아닙니까?”라고 말했다. 그 말에 고우스님도 공감하고는 통역을 통해 이렇게 문답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깨달으면 생사윤회에서 해탈한다고 하셨는데, 어째서 티베트 불교에서는 생사윤회를 반복하는 보살행을 말씀하십니까?”
“부처님은 깨달음을 통한 해탈을 말씀하시면서도 끝없이 생사를 반복해서 중생 구제도 가르쳤기 때문에 그렇게 합니다.”
고우스님은 달라이라마는 주로 인과법문을 함에 비하여 한국불교는 선禪이 들어와서 보다 깊은 생사해탈 법문을 한다고 보았다. 그런데 “깊은 법문을 하는 한국 스님들이 달라이라마보다 신뢰와 존경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언행일치를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고우스님은 안타까워하였다. 그래서 당신이라도 언행일치하려고 하셨다. 한국불교가 변화 발전하려면 언행일치하는 실천행이 관건이라고 보았다.
프랑스 파리에서 간화선을 알리다
2005년 문화체육관광부는 프랑스 파리에서 한국 전통문화를 알리는 차원에서 고우스님을 초청해서 간화선 특강을 마련했다. 스님은 그렇게 하여 처음으로 유럽에 가게 되었다. 파리의 한 대학에서 고우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간화선은 부처님이 깨달아 생로병사의 괴로움에서 영원히 해탈한 중도를 화두로 바로 체험하여 깨치는 길이다. 간화선이 비록 중국에서 출현하였지만, 지금 중국은 공산화 문화혁명을 거치며 선맥禪脈이 단절되었다. 일본에도 간화선이 전파되었는데, 교학과 결합하여 화두를 단계 단계별로 깨치는 의리선義理禪으로 변질되었다.
다만, 한국 간화선은 부처님이 깨친 중도를 화두로 바로 깨치는 직지直指, 돈오선을 그대로 전승하고 있다. 지금 세계 인류에게 닥친 지구환경 위기와 정치·경제적인 양극화나 대립 갈등의 해결에 부처님이 깨친 중도와 한국선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불교사상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의 자유, 평등, 박애 정신과도 상통하는 것이다.”
성철스님 탄신 100주년 기념 『백일법문』 대강좌
고우스님은 1987년 각화사 동암에서 강렬한 깨달음을 체험한 이후 시중의 불교 서적을 살펴보던 중 성철스님의 『백일법문』과 『선문정로』가 가장 분명한 불교 수행의 지침서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스님은 늘 『백일법문』을 소개하며 ‘부처님의 깨달음이 중도연기’라는 것을 확실히 이해할 때까지 반복해서 읽기를 권했다.
고우스님의 가르침에 따라 『백일법문』을 10번 읽고 불교를 확실히 이해한 필자는 불교인재원의 엄상호 이사장과 함께 원택스님의 도움을 받아 고우스님을 서울로 청하여 『백일법문』 대강좌를 열었다. 마침 성철스님 탄신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불교인재원 엄상호 이사장은 사재를 털어 성철스님 탄신 100주년을 기념하는 성철스님 수행도량 20여 곳을 한 달에 한 번씩 순례하는 법회를 1년이 넘게 진행하였다. ‘고우스님 『백일법문』 대강좌’는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공연장에서 진행하였는데, 300석 좌석이 꽉 차 신청자를 더 받지 못했다.
고우스님은 대강좌 중에 “성철스님께서 『선문정로』, 『본지풍광』을 내시고는 ‘부처님께 밥값 했다’고 하셨다고 하는데, 내가 볼 때는 『백일법문』이 밥값하신 것이다. 『백일법문』은 누구나 보기 쉽게 부처님의 깨달음을 경전과 선어록을 회통하여 설명하고 있다. 누구든지 『백일법문』 상권만 읽어 중도연기를 이해하면 팔만대장경을 다 이해할 수 있으니 세계 최고의 불교 입문서다.”라고 강조하셨다.
2021년 83세에 열반에 드시다
그 무렵 스님은 80세가 되어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이때 말씀하시기를 “부처님께서도 80세까지 활동하시다가 돌아가셨는데, 나도 이제 은퇴해야지.” 하셨다. 스님은 늘 『금강경』, 『육조단경』, 『서장』, 『선요』를 선지식으로 삼아 정진하라고 하셨다.
필자는 스님이 떠나시기 전에 그동안 들은 법문에 보답하는 뜻으로 『태백산 선지식의 영원한 행복』(어의운하)이라는 법문집을 펴내어 2020년에 세상에 내놓았다.
한번은 필자가 찾아가서 문안 인사를 드리고 스님께 “스님 건강을 염려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뭐라고 전할까요?” 하고 여쭈니 “폐병에 걸려서 죽으려고 절에 왔다가 불교를 만나 정말로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오늘 당장 죽어도 아무런 여한이 없습니다. 종단이 좀 걱정되지만, 나는 행복하게 잘 살다 갑니다. 누가 물으면,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하세요.” 이것이 마지막 법문이고 임종게가 되었다.
2021년 8월 하순의 어느 날 아침, 스님께서 일어나지 못하시고 몸에 열이 났다. 맏상좌 중산스님과 철산스님이 경주 동국대 병원으로 모셨다. 이 소식을 듣고 법연스님, 혜국스님, 영진스님, 원타스님 등 수좌스님들이 병원으로 왔다. 입원한 지 하루를 지나 차도가 없자 병원장이 회복이 어려울 듯하다고 말했다.
이에 수좌계 스님들과 봉암사 수좌들이 “봉암사 제2결사를 주도하시어 오늘날 조계종 종립선원 봉암사의 기틀을 만드신 분이니 봉암사로 돌아가서 전국선원수좌회장으로 모시자.”고 뜻을 모았다.
고우스님의 마지막 모습은 참으로 신기했다. 스님은 병원에 가신 뒤 며칠 동안 눈을 뜨지 않으셨는데, 경주 병원에서 문경 봉암사 동방장실로 모시어 눕혀 드리고 “스님, 여기는 봉암사입니다.” 하니 갑자기 눈을 번쩍 뜨시고 좌우를 둘러보시고는 다시 편안히 눈을 감으셨다.
이것이 고우스님의 마지막 모습으로 2021년 8월 28일이었다. 5일 뒤 종정 진제스님과 전국 수좌 스님들 그리고 사부대중이 영결식을 하고 봉암사에서 다비를 했다. 그렇게 고우스님은 한 줌의 재가 되어 자연으로 돌아가셨다. 봉암사와 금봉암에 부도를 세우고 고우스님의 뜻을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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