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삼국의 선 이야기 ]
오도송에 나타난 당하즉시當下卽是 종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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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무 / 2024 년 1 월 [통권 제129호] / / 작성일24-01-05 10:29 / 조회3,250회 / 댓글0건본문
중국선 이야기 36 | 조동종 ②
김진무 철학 박사
조동종을 건립한 양개良价 선사는 21세(827)에 구족계를 받은 이후 “대중大中(847~860) 말년에 신풍산新豊山에 머물며 선요禪要를 펼쳤다.”(주1)라고 한다. 보통 ‘말년’은 연호가 끝나는 3, 4년 전까지도 말하니, 대체로 양개의 나이 51세에서 54세 정도에 비로소 신풍산에 주석하면서 법을 펼쳤고, 그 이후 동산洞山으로 옮겨서 주석하다가 함통咸通 10년(869)에 63세로 입적하였다. 그리고 양개가 법을 계승한 운암담성雲巖曇晟은 회창會昌 원년(841)에 입적하였다. 따라서 양개가 운암을 참알한 것은 841년 이전이 될 것이고, 그렇다면 이른바 과수도영過水睹影을 계기로 깨달음을 얻은 후, 최소한 이십 년, 최대한 삼십여 년 이후에야 비로소 개당開堂하였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러한 양개의 행적으로 보자면, 구족계를 받은 후 최소한 31년에서 33년을 제방의 납자로 행각을 했으며, 실제로 법을 편 기간은 십여 년이라 하겠다. 그에 따라 당시 수많은 선사와 교류할 수 있었고, 다양한 일화들이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장기간의 행각은 양개의 선사상과 제접법을 폭넓게 하였다고 추정할 수 있다.
오도게悟道偈에 나타난 당하즉시當下卽是
명대 조동종을 계승한 무이원래無異元來(1575~1630)의 『무이선사광록無異禪師廣錄』에서 다음과 같이 논한다.
동산대사洞山大師의 오도게悟道偈에서 이르기를, “남을 통해 찾지 말지니, 더욱 나와 멀어지리라. 나 이제 홀로 가나니, 가는 곳마다 그것을 만나리. 그것은 지금 바로 나이지만, 나는 지금 그것이 아니네. 마땅히 이렇게 깨달아야, 비로소 여여如如하게 계합契合하리.”라고 하였다. 이는 동산의 종지宗旨로, 면밀綿密하고 회호回互함이 모두 이 오도게에서 흘러나온 것이다.(주2)
이로부터 후대에 양개의 종지를 ‘오도게’로 삼고 있고, 그로부터 ‘면밀회호綿密回互’의 선사상이 전개되었음을 밝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면밀’하다는 평가는 양개의 세심한 마음의 성향과 장기간 제방의 행각을 통해 검증하였으므로 형성된 것이라 추정된다. 그리고 ‘회호’는 청원계 석두희천石頭希遷의 「참동계參同契」에서 “문문門門의 일체 경계가 회호回互·불회호不回互한다. ‘회호’하면 상섭相涉하고, ‘불회호’하면 위位에 의지하여 머문다.”(주3)라는 구절로부터 연원한 것으로, 조동종의 종풍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따라서 양개의 선사상은 바로 양개의 ‘오도게’에 대한 고찰로부터 시작하여야 할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양개는 운암을 참알하여 무정설법에 관한 문답을 나누고 헤어지면서 양개가 “백년 후, 홀연히 어떤 사람이 선사의 참모습을 찾는다면,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라는 물음에 운암은 “바로 이것이다[卽這個是].”라고 하였다. 당시 양개는 운암의 언구에 계합하지 못하였고, 이후 과수도영을 계기로 깨달음을 얻었음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다. 이에 관련된 내용이 『동산양개선사어록』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다른 날, 운암雲巖 선사의 진영眞影에 공양을 올리는데, 어떤 승려가 “선사先師(운암)는 다만 ‘이것[這是]’이라고 말하였다는데 바로 그렇습니까?”라고 물으니, 양개는 “그렇다.”라고 하자, “뜻의 요지는 무엇입니까?”라고 하였다. 양개는 “당시에는 거의 선사의 뜻을 잘못 알 뻔했다.”라고 하고, “선사가 알고 있는 것도 모르셨습니까?”라고 묻자 양개는 “만약 알고 있지 않았다면 어찌 이렇게 말할 수 있었겠는가? 만약 알고 있었다면 어찌 이러한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라고 하였다.(주4)
이로부터 양개는 운암이 “바로 이것이다[卽這個是].”라고 말한 의미를 당시에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음을 인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운암과 헤어져 시냇물을 건너면서 물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서 비로소 깨달음을 얻어 위의 ‘오도게’를 짓게 되었다고 하겠다. 이 오도게는 이후 양개가 찬술한 『보경삼매寶鏡三昧』 가운데 “마치 보경寶鏡을 대하면 모습[形]과 그림자[影]가 서로 바라보니, 네가 그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바로 너이다.”(주5)라는 구절로 이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양개의 오도게 가운데 “그것은 지금 바로 나이지만 나는 지금 그것이 아니네[渠今正是我, 我今不是渠].”라는 구절과 『보경삼매』의 “네가 그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바로 너이다[汝不是渠, 渠正是汝].”라는 구절을 비교하여 다양한 철학적 분석도 가능하겠지만, 사실상 거의 동일한 의미라 하겠다.
그런데 운암이 대답한 ‘즉저개시卽這個是’는 다른 측면으로 볼 때, 바로 『육조단경』 이래 조사선에서 끊임없이 강조해 온 ‘당하즉시當下卽是’와 ‘본래현성本來現成’를 의미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즉저개시’에서 ‘저개這箇’를 삭제한다면 ‘즉시卽是’이고, 이는 그대로 ‘당하즉시’와 연계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운암이 말한 ‘즉저개시’는 바로 돈오頓悟를 의미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당하즉시’와 ‘본래현성’의 전제는 명확하게 ‘돈오’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개의 오도게는 바로 양개가 ‘돈오’한 이후의 ‘당하즉시’를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중명玄中銘」에 나타난 이사원융理事圓融
양개의 선사상은 또한 그가 찬술한 「현중명玄中銘」에서 엿볼 수 있다. 양개의 어록은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脩大藏經 47책에 일본 혜인慧印이 교정校訂한 『균주동산오본선사어록筠州洞山悟本禪師語錄』과 명대明代 어풍원신語風圓信과 곽응지郭凝之가 편집한 『서주동산양개선사어록瑞州洞山良价禪師語錄』의 두 판본이 실려 있다. 그 가운데 「현중명」은 『균주동산오본선사어록』에만 실려 있다.
이 「현중명」에서는 “쓰고도 공功이 없고 고요하면서도 비워 비추면, 일[事]과 이치[理]가 둘 다 밝아져, 체體와 용用이 막힘이 없다.”(주6)라는 현중지지玄中之旨를 밝히고 있다. 이 「현중명」의 핵심은 바로 이사理事의 원융圓融을 추구하는 것인데, 이는 조사선의 핵심이기도 하다. 본래 조사선에서는 ‘돈오’를 가장 궁극적 깨달음으로 설정하여 다양한 선리禪理를 제시하는데, 돈오의 개념은 바로 진리眞理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도출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인식하는 우주 법계의 궁극적인 이치인 이극理極에 도달하여 반야의 지智로 극조極照함이 바로 돈오이다. 이러한 까닭에 조사선에서 이사理事를 중시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에 따라 오가의 마지막 종인 법안종을 창립한 법안문익法眼文益은 『종문십규론宗門十規論』에서 “조불祖佛의 종宗은 이치[理]를 갖추고 일[事]을 갖추었다. 일은 이치를 의지해 세우고, 이치는 일을 빌려 밝힌다. 이치와 일이 서로 바탕이 되어, 또한 눈과 발이 같다. 만약 일이 있는데 이치가 없으면 진흙에 막혀 통하지 못하고, 만약 이치가 있는데 일이 없으면 질펀하게 젖어 돌아오지 못한다. 그 불이不二를 바란다면, 원융圓融을 귀하게 해야 한다.”(주7)라고 말한다. 특히 조동종과 임제종에 대하여 “조동의 가풍은 편偏이 있고 정正이 있으며 명明이 있고 암暗이 있는데, 임제는 주主가 있고 빈賓이 있으며, 체體가 있고 용用이 있다.”(주8)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로부터 문익은 오가가 모두 이사원융理事圓融을 지극히 강조하고 있지만, 조동종은 편정偏正과 명암明暗을 중시하고, 임제종은 주빈主賓과 체용體用을 더욱 중시한다고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중명」에서는 당연히 이사원융을 강조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맑게 깨달으면 붉은 봉황에 깃들이지 않고, 맑은 연못이 어찌 붉은 바퀴에 떨어지겠는가. 혼자면서 외롭지 않고, 뿌리가 없으면서 영원히 굳세고, 쌍으로 밝혀 운을 가지런히 하면, 일[事]과 이치[理]가 원융圓融을 갖춘다.”(주9)
“체體와 용用을 혼연히 하여 치우침[偏]과 원만함[圓]을 완만하게 굴린다.”(주10)
“공체空體는 적연寂然하여 뭇 움직임에 어그러지지 않는다.”(주11)
“쓰면서도 움직이지 않고 고요하면서도 응집하지 않으며, 맑은 바람은 풀을 넘어뜨리면서도 흔들리지 않고, 밝은 달은 하늘에 널리 하면서도 비추지 않는다.”(주12)
이로부터 이사원융을 철저하게 강조하고 있음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이러한 「현중명」의 이사원융의 사상은 그대로 『보경삼매』와 조동종의 전체적인 선리禪理와 제접법에도 관철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회호’를 강조하는 조동종에서는 ‘원융’이 어쩌면 필수적인 전제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각주>
(주1) 靜, 筠編, 『祖堂集』 卷6(補遺編25, 416a), “唐大中末年, 住於新豊山, 大弘禪要.”
(주2) (法孫)弘瀚彙編, 弘裕同集, 『無異禪師廣錄』 卷7(卍續藏72, 267c), “洞山大師悟道偈云: 切忌從他覓, 迢迢與我疎. 我今獨自往, 處處得逢渠. 渠今正是我, 我今不是渠. 若能如是會, 方得契如如. 此是洞山宗旨, 綿密回互, 皆從此偈中流出.”
(주3) [宋]道原纂, 『景德傳燈錄』 卷30(大正藏51, 459b), “門門一切境, 迴互不迴互. 迴而更相涉, 不爾依位住.”
(주4) [明]語風圓信, 郭凝之編集, 『瑞州洞山良价禪師語錄』(大正藏47, 520a), “他日, 因供養雲巖眞次, 僧問: 先師道祇這是, 莫便是否? 師云: 是. 云: 意旨如何? 師云: 當時幾錯會先師意. 云: 未審先師還知有也無? 師云: 若不知有, 爭解恁麽道? 若知有, 爭肯恁麽道?”
(주5) 앞의 책(大正藏47, 526a), “如臨寶鏡, 形影相睹, 汝不是渠, 渠正是汝” [日本]慧印校訂, 『筠州洞山悟本禪師語錄』(大正藏47, 515a)에서는 『寶鏡三昧』를 『寶鏡三昧歌』라고 한다.
(주6) [日本]慧印校, 『筠州洞山悟本禪師語錄』(大正藏47, 515b), “用而無功, 寂而虛照, 事理雙明, 體用無滯.”
(주7) [唐]文益撰, 『宗門十規論』(卍續藏63, 37c), “祖佛之宗, 具理具事. 事依理立, 理假事明; 理事相資, 還同目足. 若有事而無理則滯泥不通, 若有理而無事則汗漫無歸. 欲其不二, 貴在圓融.”
(주8) 앞의 책. “曹洞家風則有偏有正, 有明有暗; 臨濟有主有賓, 有體有用.”
(주9) [日本]慧印校, 『筠州洞山悟本禪師語錄』(大正藏47, 515b), “蒼悟不栖於丹鳳, 澂潭豈墜於紅輪. 獨而不孤, 無根永固, 雙明齊韻, 事理俱融.”
(주10) “渾然體用, 宛轉偏圓.”
(주11) “空體寂然不乖群動.”
(주12) “用而不動, 寂而不凝, 淸風偃草而不搖, 皓月普天而非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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