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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산 저편 티베트 불교]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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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현  /  2024 년 1 월 [통권 제129호]  /     /  작성일24-01-05 13:07  /   조회1,765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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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현 

티베트문화연구소 소장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배낭 여행객들에게는 비싸고 까다롭기로 악명(?)이 높은 부탄왕국의 관광비자를 받아들고 필자는 혼자서 부탄왕국의 관문인 폰출링 게이트Puncholing Gate(주1)를 통과하여 부탄의 심장부로 올라갈 수 있었다.

 

지난 30여 년 동안 세상의 모든 티베트 권역을 누비고 다녔던 자칭타칭 티베트 마니아로 손꼽히는 필자였지만 유독 부탄왕국만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나 보다. 사실 필자가 오랫동안 부탄을 방문하고 싶어 했던 이유는 여느 호사가들처럼 나름대로의 자신의 ‘버킷리스트’를 채우는 목적이 아니었다. 방문하는 데 들어가는 소요경비가 너무 많이 드는 데다가 입국수속도 까다로워 그동안 시절인연을 기다려 왔던 셈이었다. 

 

 

아무튼 부탄의 국경선 밖까지 마중 나온 가이드를 만나 국경을 넘어서 그들이 몰고 온 차를 타고 출발하여 부탄의 수도인 팀푸Thimphu로 가는 ‘1번 도로’를 타고 올라가다가 중간에서 파로공항 쪽으로 좌회전하여 탐촉Thamchok이란 곳에 도착하였다. 주차장에서 내려다보니 발아래 깊은 계곡에는 키추Khichu의 거친 물결이 흘러내렸고, 그 위로 별로 길지 않는 아담한 다리 2개가 놓여 있었다.

 

드디어 ‘탐촉다리’에 서다

 

그 다리가 바로 5백여 년 전 탕동갤뽀(Thangtong Gyalpo, 1385~1464)라는 승려가 개인적으로 놓은 것이었다. 사실 나의 부탄행의 첫째 목적지가 그 다리였는데, 나에게는 그 다리 위에서 어떤 노래를 흥얼거려 보고 싶다는 다소 엉뚱한 바람도 있었기에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사진 3. 국경도시 폰출링에서 수도 팀푸 그리고 탐촉에 이르는 노선도.

 

그 노래는 바로 70년대를 풍미했던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Bridge over trobled water)’라는 팝송이었다. 영국 출신의 남성 듀엣인 싸이먼 & 가펀클(P.Simon & Garfunkel)이 불러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노래였다. 이미 팝음악의 고전이 되었기에 요즘 신세대들에겐 생소한 곡일지 모르나 중장년층이라면 귀에 익은 곡이다. 다시 한번 그 가사를 곱씹어 보는 것이 오늘의 주인공인 다리도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당신이 삶에 지치고 초라해지는 것만 같을 때 

당신의 눈에 눈물이 고일 때 

내가 그 눈물을 닦아 주리라. 

나는 당신 편에 있어 주리라.

아, 힘든 시간이 다가올 때나 

친구들마저 보이지 않을 때

험한 세상에 놓인 다리처럼 날 눕히리라.(주2)

 

사진 4. 다리도사 탕동겔뽀가 놓은 철제 현수교인 탐촉다리.

 

이 노래의 테마는 바로 ‘화신교化身橋’이다. 인간의 몸을 눕혀야만 건널 수 있는 다리이기에 전설에서나 존재하는 그런 다리이다. 이 풍진 이쪽 세상에서 니르바나의 저쪽 세상으로 넘어갈 수 있는 대승大乘(Maha-Yana)적 다리!

 

옛날에 어느 깊은 산골짜기 암자에 노승과 어린 제자가 살았는데 하루는 큰비가 내려 산사태가 일어나 암자가 무너졌다. 이에 급히 안전한 곳으로 피신을 가야 했지만 이미 험한 계곡에 걸쳐져 있던 외나무다리는 떠내려가고 없었다. 위험은 시시각각 닥쳐오는데 별 대책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던 노승이 제자만이라도 살릴 결심을 하고 말했다. 

 

사진 5. 5백여 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튼튼한 다리.

 

“내가 계곡 사이에 돌출되어 있는 바위 위로 잠시 엎드려 있을 터이니 그 틈에 내 등을 밟고 건너뛰어 가거라”. 

 

물론 제자가 선뜻 그 제안을 승낙할 리는 없었지만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없었기에 둘은 눈물을 머금고 노승이 엎드려 있는 사이에 제자는 스승의 등을 밟고 계곡을 건너갈 수 있었다. 제자가 건너편 안전한 곳에 도착하여 뒤를 돌아다보니 이미 노승은 거센 물결에 떠내려가고 보이지 않았다.

 

사진 6. 탐촉다리 아래 세워진 안내판에는 다리의 유래가 쓰여 있다.

 

혼자 살아난 제자가 죄책감에 휩싸여 그 자리에서 한동안 울기만 하였으나 이를 어쩌랴? 할 수 없이 제자는 그 자리를 떴다가 물살이 잦아지자 자기가 살던 암자 터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다시 암자를 복원하고 열심히 용맹정진하여 마침내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티베트 본토를 종횡무진 누비며 다리를 놓았던 탕동겔뽀는 시절인연이 무르익은 것을 알고는 49세 때인 1433년 대설산을 넘어와 티베트 불교의 최대, 최고의 스승 구루린뽀체Guru Rinpoche가 축복을 내린 ‘화룡火龍의 땅’, 즉 부탄왕국으로 들어와 유랑극단을 만들어 각지를 돌아다니며 ‘아지라무’를 공연하면서 보시금을 모아 사원과 탑을 세우고 외진 마을을 이어주는 다리도 놓아주었다.

 

사진 7. 졸저 『티베트의 문화산책』(정신세계사, 2004)의 표지와 내지.

 

마치 위의 전설에서 살아남은 제자처럼 스승의 은혜를 뭇 중생들에게 회향하였다. 그의 전기에 의하면 그가 만든 쇠다리는 58개라고 하는데, 그중 8개가 부탄에 있다고 한다.

 

필자가 30년 전 라싸의 티베트 대학에서 수학하고 있을 때 근교에 있는 충리오체Chung Riwoche라는 마을을 방문하여 그가 놓았다는 사원과 탑 그리고 다리를 직접 보고는 묵직한 울림을 받아서 이 다리도사님에 대해서 뒤에 『티베트의 문화산책』(주3)에서 그 사실을 쓴 바 있기에 여기서 다시 그의 진한 체취를 맡을 수 있다는 것에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탕동겔뽀의 후손이 살고 있는 탐촉라캉

 

이 유서 깊은 다리 건너 언덕 위에는 탕동겔뽀의 후손이 살고 있는 탐촉사원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입구에는 오랫동안 다리를 지켜보았을 천년 향나무가 해동의 나그네를 반겨 주었다. 3층으로 된 고풍스런 라캉Lakhang 건물은 무척 가파른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어둠속에서 보아도 품격있는 장식들과 탕카들로 가득 차 있었고 처음 보는 그의 초상 탕카도 몇 점 보였다.

 

탕동겔뽀는 불교사적으로는 티베트불교의 샹빠-까규Shangpa Kagyu(주4)분파의 전승인으로 차원 높은 수행을 완성한 밀교행자였을 뿐만 아니라 놀라우리만치 다양한 삶을 살았기에 그의 별칭(주5)도 많은 편이다.

 

그는 오랫동안 나의 수행의 ‘롤모델’이었다. 무엇보다도 가슴 따듯한 대승보살의 삶을 오롯이 실천한 대목에 무엇보다 후한 점수를 주었겠지만, 그가 티베트 역사상 가장 많이 여행을 한 ‘노마드’란 대목도 가산점을 받았으리라…. 중세기 당시에는 티베트 본토에서 대설산을 넘어 부탄을 넘나들었다니 역시 못 말리는 ‘역마살의 화신’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사진 8. ‘아지라무’ 오페라가 공연될 때 내 걸리는 하얀 수염의 다리도사님의 탕카.

 

그 외에도 탕동갤뽀의 비범함은 그에 의하여 지금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유명한 공연예술인 티베트 오페라 아지라무Aji Lhamu가 처음 기획되고 공연되어, 티베트 문화의 중요한 한 축이 되었다는 문화사적 사실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렇기에 그는 지금도 ‘연극의 신’으로 숭배를 받으며 백발 성성한 도인의 모습을 한 그의 초상화 탕카와 함께 ‘아지라무’가 공연되는 세계 곳곳에 높이 걸려 있다.

 

‘샹빠-까규’ 분파에 대한 사족

 

티베트불교는 크게는 ‘4대 종파’로 알려졌지만 전승 계보를 중요시하는 밀교의 특성상 종파에서 다시 많은 분파가 생겨난 데다가 더하여 각 종파마다 그들의 수장을 ‘제14대’니 ‘제17대’니 하는 전승 족보를 만들며 권위를 내세우고 있어서 사계의 문외한들로 하여금 헷갈리게 만들고 있다. 지금 이야기하는 ‘샹빠파派’도 그리 유명한 종파는 아니지만 오늘의 주인공이 소속된 분파이기에 사족을 좀 달아 본다.

 

사진 9. 다리를 내려다보는 위치에 자리 잡은 탐촉라캉에는 그의 후손들이 살고 있다.

 

참 여기서 단어의 개념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다. ‘샹빠-까규파’의 뒤에 붙는 파派는 갈래를, ‘빠Pa’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샹빠’는 ‘샹Shang의 사람’이고 ‘샹파派’는 ‘샹이라는 분파’를 뜻한다는 점을 기억하시면 티베트불교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샹빠-까규 분파는 11세기에 큥뽀 날요르Khungpo Naljor(주6)란 수행자에 의해 창시되었다. 티베트 불교의 백가쟁명의 시대에 명맥이 사라졌다가 근대에 이르러 깔루 린포체 Kalu Rinpoche에 의해 부활되어 현재 활발히 교세를 펼쳐 나가고 있다.

 

사진 10. 탐촉라캉의 수호목인 천년향나무.

 

<각주>

(주1) 부탄과 인도의 국경도시 자이가온Jaigaon의 관문으로 이곳 곳곳에 부탄비자를 대행해 주는 투어 회사가 많다.

(주2) When you're weary, feeling small / When tears are in your eyes / I'll dry them all / I'm on your side / Oh, when times get rough / And friends just can't be found / 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 I will lay me down.

(주3) 졸저 『티베트의 문화산책』(정신세계사, 2004년) 2장 25쪽.

(주4) 샹빠파는 4대 종파인 하나인 까규종파의 닥뽀Dagpo Kagyu에서 다시 갈라진 지파로 최초의 수행처가 상Shang계곡에 있다고 하여 샹빠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전한다. 백가쟁명의 시대에 사라졌다가 현대에 이르러 깔루 린포체Kalu Rinpoche에 의해 부활되어 현재 교세를 펼쳐 나가는 추세이다.

(주5) 우선 ‘쇠다리 도인(Chakzampa)’을 비롯하여 ‘연극의 신’, ‘빈 평원의 왕’, ‘빈계곡의 미치광이’ 등이 그것들이다.

(주6) 원래 그는 샤머니즘적 원시종교인 뵌뽀 출신이었다. 진리의 목마름으로 인도 구도여행을 떠나 전설적인 다키니 요기인 니구마Niguma를 만나 감화를 받고 문하생으로 들어가 ‘나로파 6법’ 수행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상Shang’이라는 곳에 수도원을 세우고 제자들을 모아 가르침을 폈다. 하지만 사부인(Niguma)에게서 전수한 비밀의 가르침은 오직 목촉(Mochok Rinchen Tsondru)에게만 전수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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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현
현재 8년째 ‘인생 4주기’ 중의 ‘유행기遊行期’를 보내려고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로 들어와 네팔학교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틈틈이 히말라야 권역의 불교유적을 순례하고 있다.
suri116@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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