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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로 읽는 서유기 ]
장생불사의 길을 찾아 여행하는 원숭이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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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구  /  2024 년 4 월 [통권 제132호]  /     /  작성일24-04-05 10:51  /   조회1,663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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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왕은 아침이면 화과산에 나가 놀다가 저녁에는 수렴동으로 돌아와 자는 자유로운 생활을 만끽한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자신도 결국 늙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에 그는 장생불사의 술법을 배우러 길을 떠난다. 처음 도착한 곳은 남섬부주의 인간 세상이었다. 이곳에서 사람들의 예절을 배우고 사람들의 말을 배우면서 부처와 신선과 성인을 찾아다녔으나 명예와 이익을 좇는 무리만 있을 뿐 생사의 비밀을 탐구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원숭이왕은 다시 바다를 건너 서우하주에 이른다. 그리고 한 산중에서 땔나무를 팔아 홀어머니를 봉양하는 나무꾼을 만난다. 나무꾼은 그에게 스승이 있는 곳을 알려준다. 영대방촌산靈臺方寸山으로 불리는 이 산에 사월삼성동斜月三星洞이라는 동굴이 있고, 그 동굴에서 수보리조사라는 도인이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장생불사의 길을 찾는 여정 

 

원숭이왕이 장생불사의 길을 찾는 여정에 나선 뒤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남섬부주의 인간 세상이다. 그리고 남섬부주에 사는 인간들의 행태에 실망하여 다시 바다로 나가 도착한 곳이 서우하주다.

 

불교의 우주관에 의하면 우주의 중심에는 수미산이 있다. 그 주위를 일곱 개의 산이 동심원을 그려가며 둘러싸고 있는데 그것이 황금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7금산이라고 부른다. 중앙의 수미산과 일곱 바퀴 7금산을 합하면 산이 여덟 개가 된다. 그 여덟 개의 산 사이에 일곱 개의 바다가 있다. 이것을 안쪽 바다[內海]라고 부른다. 바다라고는 하지만 그 물이 담수이므로 실제로는 호수다.

 

사진 1. 수미세계 개념도.

 

그런데 7금산의 마지막 산인 ‘변방의 산[持邊山]’을 넘어가면 짠 물로 이루어진 진짜 바다가 나타난다. 이것을 바깥 바다[外海]라고 부른다. 바깥 바다에는 남섬부주 등의 네 대륙이 떠 있고, 이 바깥 바다와 네 대륙을 하나의 산이 철벽처럼 둘러싸고 있다. 그것이 철위산鐵圍山이다. 전체적으로 산이 9개, 바다가 8개 있으므로 이것을 9산8해九山八海라고 총칭한다. 

 

한편 수미산의 중간과 정상, 그리고 그 위로 욕계의 하늘, 색계의 하늘, 그리고 무색계의 하늘이 층을 이루고 있다. 횡으로는 9산8해, 종으로는 욕계 6천(사천왕천, 도리천, 도솔천, 야마천, 화락천, 타화자재천)과 색계 18천, 그리고 무색계 4천의 총 28차원이 합해진 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하나의 세계다.

 

이것은 불교의 수행이 나아가는 약도이기도 하다. 불교 수행자는 횡으로는 중앙의 수미산을 향해 여러 산과 여러 바다를 건너는 경로를 걷고, 종으로는 수미산의 중턱(사천왕천)과 정상(도리천)을 거쳐 다시 여러 층의 하늘을 오르는 차원의 전이를 감행한다. 부처님은 최상의 하늘인 무색계의 제4천(비상비비상천)까지 뛰어넘었다. 그것은 『서유기』의 손오공과 삼장 일행이 걷는 길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중 남섬부주에 살고 있다. 현재의 우주개념으로 보자면 남섬부주는 대체로 지구에 해당한다. 그런데 돌원숭이는 동승신주에서 태어나 그곳에 살다가 남섬부주를 방문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원숭이왕은 외계인인가? 그렇지는 않다. 동승신주를 출발로 삼은 것은 중국이 인도의 동쪽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서유기』에서는 동승신주東勝身洲의 몸 신身자를 신성할 신神으로 바꾸어 동승신주東勝神洲로 표현한다.

 

사진 2. 남섬부주의 인간들과 원숭이왕.

 

불교에서 말하는 동승신주의 ‘신’은 원래 몸 신身자를 쓴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신체조건이 우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인들은 자기들이 사는 땅을 신성한 세계(神州, 혹은 神洲)라고 불러왔다. 지금도 중국의 땅을 표현할 때 신성한 세계, 위대한 땅[神州大地]이라는 말을 쓴다. 『서유기』의 작가는 이렇게 중국이 인도의 동쪽에 있다는 점, 또 ‘신주’의 발음이 같다는 점 등에서 문학적 영감을 받아 그 표기를 신身→신神으로 바꿈으로써 중국을 강조한 것이다. 또 그렇게 해야 동쪽 중국에서 출발하여 서쪽 인도에 도달하는 『서유기』의 전체 여정을 그리기 쉽다는 점도 고려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우주적 4대부주를 지구의 동서남북으로 환치했으므로 원숭이왕은 동쪽(동승신주)에서 뗏목을 타고 남쪽(남섬부주)에 갔다가, 다시 뗏목을 타고 서쪽(서우하주)으로 가는 항해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원숭이왕은 바로 이 서우하주에서 스승을 만난다. 원래 『서유기』의 세계관에서 동쪽은 출발지, 남쪽은 중간 사잇길, 서쪽은 목적지로 가는 바른 길이다. 그러므로 서쪽에서 스승을 만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남섬부주에서 서우하주로

 

원숭이왕은 남섬부주에 도착하여 사람의 옷을 입고 사람의 예절을 배우고 사람의 말을 배운다. 그렇지만 결국 그가 목도한 것은 명예와 이익만을 좇는 무리들뿐이었다. 생멸의 파도에 휩싸여 살아가는 그 현장에서 장생불사의 길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원숭이왕의 남섬부주행은 헛고생이었을까? 그렇지는 않다. 부귀공명을 추구하는 삶의 허무를 절감하고 그것을 멀리 떠나는 실행력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영혼 성숙의 징표이기 때문이다. 그는 남섬부주를 떠나 서쪽을 향해 나아간 끝에 서우하주에 도착한다. 원숭이왕은 한 산중에서 나무꾼을 만나 수보리조사라는 스승의 소문을 듣는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 나무꾼에 주목해야 한다. 나무꾼은 수보리조사의 도를 흠모하면서도 홀어머니를 모시느라 떠나지 못하고 있다. 나무꾼은 몇 가지 점에서 남섬부주의 현실적 삶과 서우하주의 초월적 삶을 연결하는 교량적 존재이다. 우선 그가 남섬부주적 삶의 약점인 욕망을 버린 존재라는 점이 중요하다.

 

사진 3. 나무꾼과 원숭이왕.

 

나무꾼인 그가 땔나무로 파는 상품은 마른 등나무다. 왜 화력이 좋은 참나무나 소나무가 아니라 마른 등나무인가? 그게 팔리기나 할까? 등나무는 복잡하게 얽히며 넝쿨을 뻗어가는 특성 때문에 칡과 함께 갈등葛藤의 원관념에 해당한다. 그런 등나무가 말라버렸다는 것이니까 자신의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 그로 인한 갈등이 해소되었다는 말이 된다. 요컨대 나무꾼은 욕심을 버린 삶을 자본으로 삼고 있는 참신한 장사꾼인 것이다. 

 

다음으로 이 나무꾼은 효심이 깊은 효자다. 유가사상의 핵심인 효는 자신을 존재하도록 한 뿌리인 부모에 대한 은혜 갚음을 내용으로 한다. 부모를 받드는 실천이 간절해지면 저절로 자아에 대한 집착이 사라진다. 그것은 자아에 대한 집착을 끊는 불교의 길과 대단히 근접해 있다. 비록 위경僞經이기는 하지만 『부모은중경』이 편찬되어 사회적 실천과 불교적 수행을 함께 이끄는 역할을 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 원숭이왕도 그에게 동반 출가를 권하다가 사정을 듣고는 “원래 효도를 실천하는 군자이셨군요. 앞으로 틀림없이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라고 그를 축복한다. 

 

그런데 이 나무꾼에게 6조 혜능스님의 영상이 투영되어 있다는 것이 확인된다. 우선 그는 출가 전 혜능스님이 그랬던 것처럼 나무꾼이다. 또 어려서 부친을 잃고 홀어머니를 봉양하고 있다는 점, 진리에 이르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있다는 점도 동일하다. 무엇보다 그는 5조 홍인스님을 형상화한 수보리조사를 직접 만난 일이 있고, 그를 흠모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나무꾼은 출가 직전의 혜능스님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스승을 만난 원숭이왕

 

원숭이왕은 나무꾼이 가리켜 준 길을 걸어 영대방촌산靈臺方寸山, 사월삼성동斜月三星洞을 찾아낸다. 그러자 동굴의 문이 열리면서 동자가 나타난다. 동자를 따라 동굴에 들어가니 찬란한 누각과 고요한 거처가 즐비하고 그 끝, 옥으로 된 좌대 위에 수보리조사가 앉아 있었다. 원숭이왕이 들어가 절을 하자 수보리조사가 물었다. 

 

“성이 어떻게 되느냐?” 원숭이왕이 대답한다. “저는 성을 내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욕을 해도 기분 나빠하지 않습니다.” “아니! 그런 성 말고 네 부모의 성이 뭐냔 말이다.” “저는 부모가 없습니다.” “부모가 없으면 나무에서 나기라도 했다는 말이냐?” “나무가 아니라 돌에서 났습니다. 화과산에 신기한 돌이 하나 있었는데 그 돌이 깨지면서 제가 태어난 것입니다.”

 

사진 4. 수보리조사와 손오공.

 

이 말을 듣고 조사가 기뻐하며 말하였다. “그렇다면 하늘과 땅이 만든 것이로구나.” 이에 수보리조사는 원숭이왕에게 손오공이라는 이름을 내린다. 성으로 받은 손자 손孫자는 원숭이 손猻 자에서 동물을 뜻하는 부수를 빼고 갓난아기처럼 살아가라는 뜻을 담고 있었고, 이름인 오공悟空은 “넓고 큰 지혜로 실체 없는[空] 진여의 성품을 깨달으라[悟]”는 뜻이었다. 이후 원숭이왕은 손오공으로 불리게 된다. 

 

영대방촌산, 사월삼성동

 

영대방촌산靈臺方寸山의 영대靈臺나 방촌方寸은 모두 마음의 별칭이다. 영대는 영혼이 깃들인 곳이라는 뜻이다. 중국어에서 영대는 마음이 깃든 심장이 위치한 곳을 가리키는 말이다. 예컨대 한의학에서는 등뼈의 6번째 마디 아래 오목한 곳을 영대혈이라고 부르는데, 그곳이 심장과 연결된 지점이기 때문이다. 한편 방촌은 마음이 깃들인 곳이 사방 1촌寸으로 면적이 작은 지점이라는 뜻이다. 이 영대방촌산을 줄이면 영산이 된다. 영산은 부처가 상주하는 산이다. 부처는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영산이 서천의 어딘가에 있다는 생각으로 이 여행에 임한다면 영원히 도달할 수 없게 되어 있다.

 

한편 사월삼성동斜月三星洞은 초승달[斜月]과 세 개의 별[三星]이 있는 동굴이라는 뜻이다. 초승달을 그려놓고 그 위에 별 세 개를 얹으면 마음 심心자가 나타난다. 이런 식으로 글자를 표현하는 것을 파자破字라고 하는데, 전통적 한문 수사법의 하나에 해당한다. 하필이면 달과 별을 가지고 마음 심心을 파자한 것은 이유가 있다.

 

우리는 달과 별을 통해 그 배경인 고요하고 빈 허공을 확인한다. 전체 빈 허공이 마음의 바탕이 되고, 그 허공에 모양을 드러내는 달과 별은 마음이 드러난 현상이 되는 것이다. 사월삼성동이라고 했으니까 마음은 동굴이기도 하다. 동굴은 비어 있다는 점에서 공空을 상징한다. 마음의 실체가 따로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서도 마음은 달처럼[斜月] 별처럼[三星] 그 뚜렷한 모양과 작용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진공묘유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영대방촌산이 부처님이 사는 영산이 되는 이유는 사월삼성동이 있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수보리조사의 정체

 

사월삼성동, 그 마음의 동굴에서는 수보리조사가 가르침을 펴고 있다. 수보리는 공의 이해에 있어서 제일의 달인(해공제일)으로 불리는 인물이고 『금강경』의 주인공이다. 그런데 수보리는 존자라고 부르지 조사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러니까 수보리조사는 해공제일 수보리와 선종 조사의 합성어이다. 먼저 수보리조사가 사는 동굴은 비어 있다는 점에서 공이다.

 

그러니까 사월삼성동을 빈 동굴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수보리조사는 해공제일 수보리다. 그런데 그는 공의 동굴 깊은 곳에 세워진 보배 누각에 산다. 보배는 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진여자성을 상징한다. 진여자성을 깨달은 존재를 선종에서는 조사라고 부른다. 그래서 수보리 ‘조사’다. 

 

사진 5. 5조 홍인스님.

 

그렇다면 이 조사는 구체적으로 누구인가? 바로 5조 홍인스님이다. 그가 홍인스님인 이유가 있다. 우선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손오공에게 길을 가리켜 준 나무꾼에게는 혜능스님의 영상이 투영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나무꾼이 흠모하는 수보리조사는 혜능스님이 귀의한 홍인스님과 겹친다. 당시 홍인스님은 어려운 『능가경』 대신 쉽고 대중적인 『금강경』에 의거하여 선종의 체질을 바꾸는 중에 있었다. 그로 인해 『금강경』이 불교 안팎에 널리 알려지게 된다.

 

『금강경』은 구마라집과 현장삼장에 의해 번역되었지만 그것이 일반 대중들에게까지 친근하게 알려진 것은 홍인스님의 동산법문으로 인해서였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홍인스님은 『금강경』, 혹은 그 청법의 주인공인 수보리와 관계가 밀접하다. 중국의 수보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또 손오공과 수보리조사가 처음 만나 불성에 대한 문답을 하는 장면, 수보리조사가 손오공을 야반삼경에 불러 심법을 전하는 장면 역시 홍인스님과 혜능스님 간의 만남을 재연하고 있다. 그것을 확인하려면 다음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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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구
현재 동의대학교 중국어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중앙도서관장을 맡고 있다. 교수로서 강의와 연구에 최대한 충실하고자 노력하는 한편 수행자로서의 본분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
kkkang@de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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