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산 저편 티베트 불교]
부탄 불교미술의 보고, 둠쩨그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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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현 / 2024 년 4 월 [통권 제132호] / / 작성일24-04-05 13:56 / 조회1,814회 / 댓글0건본문
입국하기가 어려운 부탄왕국을 들어갔던 이유는 무엇보다 필자의 롤 모델이라고 부를 만한 다리도사 탕동겔뽀의 체취를 맡고자 함이었다. 더 꼭 집어서 말하자면, 5백여 년 된 어떤 쇠사슬 다리 위에서 어떤 노래를(주1) 흥얼거려 보고 싶다는 다소 엉뚱한 동기였다고, 신년 1월호에서 밝힌 바 있다.
그 노래는 바로 ‘화신교化身橋’를 테마로 한 현대 팝송이었다. 인간의 몸을 눕혀야만 건널 수 있는 다리! 이 풍진 이쪽 세상에서 열반의 저쪽으로 넘어 갈 수 있는 다리!
부탄왕국 최고의 불교미술 보고 둠쩨그 사원
중앙 티베트를 종횡무진하며 철다리를 만들던 탕동겔뽀(Thangtong Gyalpo, 1385~1464)는 시절인연이 무르익자 히말라야 대산맥을 넘어 당시 바율(Bayul Demojong)(주2)이라 불리던 땅으로 들어오게 된다. 일설에는 그 직접적인 이유가 다리를 건설하는 데 사용할 철광석을 찾아왔다고도 한다.
그리고 역시 티베트 본토에서처럼 유랑극단을 조직하여 골짜기마다 찾아다니며 ‘티베트 오페라’로 불리는 <아지라무>를 공연하면서 보시금을 모아 필요한 다리(주3)를 놓으며 사원과 탑을 세웠다. 그 8개의 다리 중 하나가 신년 1월호에 연재된 탐촉(Thamchok) 다리이고, 그 사원 중 하나가 이번 달 무대인 둠쩨그 사원(Jangtsa Dumtseg:Dungtsi)이다.
1433년에 창건된 이 사원은 파로계곡에 걸쳐 있는 다리를 건너서 현 부탄국립박물관으로 가는 길목 야트막한 둔치에 자리 잡고 있다. 멀리서 보아도 부탄에서는 매우 드물게 인도식 돔형의 초르텐 모양이어서 인상적이다.
전하는 창건설화에 의하면, “개구리처럼 생긴 언덕 지하에 한 마귀가 살고 있어서 때때로 주민들을 괴롭히고 있어서~” 지나가던 성자, 즉 탕동겔뽀가 이 어둠의 세력을 누르기 위하여 그 머리 부분에 해당되는 곳에 초르텐 탑과 사원을 세웠다고 한다.
물론 내가 이곳을 답사한 이유는 물론 다리 도사님의 체취를 맡고자 하는 이유 외에도 이곳이 부탄 최고 최대의 불교미술의 보고이기 때문이다. 삼계(지옥, 땅, 천국)을 상징하여 3층으로 설계된 사원 내부는 생각 이상으로 높고 넓었다. 하지만 조그만 창문으로 들어오는 자연광에 의존해야 했기에 더욱 은밀할 수밖에 없었다.
1층은 방대한 양의 벽화와 탱화 그리고 불교적 도상(Iconography)이 펼쳐져 있는 판테온(Pantheon, 萬神殿)이었다. 주로 역사적 인물들과 보살상 및 기타 수호신 등이, 특히 이 사원의 창건주인 탕동겔뽀 자신을 비롯하여 제2의 붓다로 숭배되고 있는 구루린뽀체(Guru Rinpoche)와 다양한 관세음보살상과 딴트릭 불교의 5선정불五禪定佛이 차례로 순례자들을 맞이한다.
2층과 3층은 커다란 통나무 원목을 깎아 가파르게 세워 놓은 나무 사다리를 기어서 올라가다시피 했기에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2층의 외벽에는 수백 명의 분노존忿怒尊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고, 내벽에는 죽음과 환생의 중간 상태인 바르도(Bardo), 『티베트사자의 서』에서 묘사된 다양한 장면들이 묘사되어 있어서 심약한 중생들에게 원초적인 공포를 느끼게 해주고 있었다.
특히 천계를 상징하는 3층 외벽에는 부탄왕국에서 주로 신봉되는 유일한 종파인 둑빠-까규(Drukpa Kagyu)와 창건주인 탕동겔뽀의 종파인 샹빠-까규빠(Shangpa Kagyu) 특유의 딴트릭 밀교의 비의적秘意的인 오신만다라五身曼茶羅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커다란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또한 내벽에는 설역 고원에 불교를 화려하게 꽃피게 만든 까규종빠(Kagyue school)의 3대 종조宗祖들인 마르빠(Marpa) - 밀라래빠(Milarepa) - 감포빠(Gampopa)와 84명의 성취자들이 화려하게 몸을 나투고 있었다. 특히 뭇 수행자들의 표상으로 알려진 밀라래빠의 특유한 소상은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팔을 귀에 대고 있는 모양새의 그의 독특한 도상들을 수없이 보아왔던 필자의 눈에도 이 목부조木浮彫 위에 화려하게 색칠한 모습은 마치 성인께서 살아 움직일 것 같은 생동감이 느껴질 정도의 명작이었다. 가이드의 재촉에 정신이 들어 등 떠밀려 아래층으로 내려오면서 이내 한 장의 사진도 찍지 못한 아쉬움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이미 몸은 1층에 있었기에 가이드를 졸라 대신에 오늘의 주인공 탕동겔뽀의 벽화(주4) 한 장은 건질 수 있었다.
보시행으로 회향한 탕동겔뽀의 생애
사원 밖으로 나와 별관에 마련된 기도실로 들어가 다리도사님 진영이 걸려 있는 족자 앞에서 버터 등잔에 불을 붙이면서 또 하나의 그의 업적인 <아지라무>가 생각이 나서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현재 부탄에서는 그것을 공연하는 곳이 없다는 대답뿐이었다.
이 사원의 창건주 탕동겔뽀는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삶을 살았다. 그는 차원 높은 딴트라 수행을 완성한 수행자로서 티베트 불교의 샹빠 –까규(Shangpa Kagyu)(주5) 지파의 전승인이기도 하지만 그외에도 대장장이, 건축가, 토목기사로서도 큰 족적을 남겼다. 또한 대설산을 넘나들며 드넓은 설역 고원을 종횡무진 누비고 다녔던 대여행가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티베트 오페라 ‘아지라무(Ajilamu:仙女劇) 6마당’(주6)을 만들어 직접 유랑극단을 이끌고 방방곡곡을 떠돌아다니며 공연을 하였다. 물론 그 이전에도 단순한 형식의 연극은 있었지만 그것을 불교적으로 각색하여 더욱 공연예술로서의 완성도를 높인 작업은 바로 탕동겔뽀에 의해 이루어졌기에 그는 티베트의 ‘연극의 신’으로 추앙되며 흰 수염이 풍성한 모습으로 벽화, 소상, 탱화로 그려져 붓다와 나란히 공양을 받을 정도로 민중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있다.
다리도사! 탕동겔뽀!
그는 험한 세상에 자신에 몸을 눕혀, 중생들로 하여금 차안此岸에서 ‘화신교化身橋’를 건너 피안彼岸에 이르도록 한 아가페적인 삶을 올곧이 살았던 진정한 대승보살이었다. 이른바 불교의 실천덕목인 ‘육바라밀’의 첫째 ‘보시바라밀布施波羅密’을 한평생 온몸으로 행한 것이다.
강호제현에게 묻는다. 갖가지 종파의 수행자라는 에고에 갇혀 평생을 그냥 앉아만 있다가 그냥 떠난다면, 설사 깨달음을 얻었다 해도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각주>
(주1) 그 노래는 바로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Bridge over trobled water)」 였다.
(주2) 당시는 지금의 <다시부>의 구별이 없었던 때라 그저 이상향 샴발라의 대상지로만 알려진 미지의 땅이었다. 샴발라의 후보지는 4곳으로 요약하고 있는데, 켐바룽, 바율데모쫑, 페마코, 창데모쫑 등인데, 그 두 번째가 캉첸중가 산기슭에 있다는 <바율 데모쫑(Bayul Demojong)>으로 ‘쌀의 골짜기’라는 곳은 자금의 캉첸중가봉 아래의 히말라야 남쪽기슭 일원에 해당된다.
(주3) 탕동겔뽀가 건설한 현수교는 총 58개라고 하는데, 그중 8개가 부탄에 있다고 전한다.
(주4) 이 벽화는 아마도 1841년 25대 제켐뽀(Je Khempo) 세랍겔짼(Sherab Gyeltsen)의 지시에 따라 중수작업이 이루어질 때 추가로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주5) 11세기에 큥뽀날요르(Khungpo Naljor)에 의해 창시되었다. 인도 구도여행을 떠나 전설적인 다키니 요기인 니구마(Niguma)를 만나 감화를 받고 문하생으로 들어가 ‘나로파 6법’ 갈래의 수행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큥뽀는 ‘상(Shang)’이라는 곳에 수도원을 세우고 제자들을 모아 가르침을 폈다.
(주6) 우리에게 알타이설화로 알려져 있는 <나무꾼과 선녀> 등은 실은 티베트의 <아지라모> 가무단의 단골 메뉴이다. 졸저, 『티베트의 문화산책』, 정신세계사, 2004년에 자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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