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석 그늘 아래 ]
간절한 마음과 응집력이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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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타스님 / 2024 년 4 월 [통권 제132호] / / 작성일24-04-05 14:26 / 조회1,746회 / 댓글0건본문
본 내용은 2022년 해인사 백련암 참선 모임에 참여한 불자들을 대상으로 설법하신 법문을 요약한 것입니다.
연기법緣起法에 대한 확실한 믿음
불교가 아닌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 이를테면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사람이 죽고 다시 태어나고 또다시 죽고 태어나는 윤회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 사람들은 원죄나 천지창조 등을 믿지요. 하지만 불법은 연기법緣起法을 믿습니다. 사람도 어떤 인연과 조건이 만나 태어났고, 나무나 사물들도 여러 가지 조건이 합쳐져 만들어진 것이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모든 존재는 인연과 조건의 화합으로 만들어졌을 뿐, 우리가 알고 있고 눈으로 보고 있는 모든 것들의 궁극적 실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의심이 가지 않습니까. 여기 이렇게 법문하는 스님도 있고, 또 좌복에 앉아 법문을 듣는 나도 멀쩡히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실재하지 않는다고 하니 믿어지나요? 바로 여기에 화두 참구의 요결이 있습니다.
물론 나라는 주체가 실재하지도 않고 눈에 보이는 것이 다 헛것이라고 하면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할 겁니다. 이해도 안 되고 답답하지요. 그렇지만 이것은 법문을 많이 듣는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고 불교 교리를 많이 안다고 해서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마음이 고요히 가라앉고 맑아진 상태에서 화두 일념으로 깨쳐야만 합니다.
일체법불생一切法不生
일체법불멸一切法不滅
약능여시해若能如是解
제불상현전諸佛常現前
일체 만법이 나지도 않고
일체 만법이 없어지지도 않나니
만일 이와 같이 알 것 같으면
모든 부처님이 항상 나타나리라.
우리는 번뇌 망상이 없는 마음을 불생不生이라고 합니다. 번뇌 망상이 일어나지 않아 마음이 맑은 상태, 마치 맑게 정수된 물처럼 속이 환히 들여다보이는 상태에서 오로지 화두 일념으로 정진해야 합니다. 이것을 얼마만큼 철절히 신뢰하느냐에 따라 부처님처럼 6년 고행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겨나기도 하고, 성철 큰스님처럼 정좌불와를 할 수 있는 힘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간절함과 응집력이 생명
종종 참선하는 분들로부터 한 몇 년 해 봤는데 처음엔 집중도 잘 되고 마음이 시원했는데, 이
제는 재미도 없고 별 소득도 없다고 하는 말을 듣곤 합니다. 법회에 와서 법문을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경전을 보면 감로수 같은 말씀이 담겨 있고, 가까운 도반이 뜻하지 않게 닥친 불행이나 고통을 참선을 통해 해결해 나가는 것을 보고 나도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하면 결과는 뻔합니다.
처음엔 뭔가 되는 듯하지만 어느 새 화두는 사라지고 번뇌 망상이 그 자리를 꿰차고 맙니다. 그래도 어찌해 볼 요량으로 좌복에 앉아 용을 써 보지만 별 소용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자기 삶에 대한 강한 의문도 없고, 아울러 화두에 대한 강한 신념과 집중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서산대사西山大師는 『선가귀감禪家龜鑑』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화두는 의심을 일으키되 그 뜻을 알아맞히려 해서도 안 되고, 생각으로 헤아려서도 안 된다. 또한 깨닫기를 기다리지도 말고, 더 생각할 수 없는 데까지 나아가 생각하면 마음이 더 이상 갈 곳이 없게 된다. 마치 늙은 쥐가 물소의 뿔 속으로 들어가 죽은 듯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인가 저것인가 따지고 맞추어 보는 것이 그릇된 생각과 분별심을 일으키는 것이며, 두려워 갈팡질팡하는 것도 그릇된 생각을 일으키는 식정識情이다. 요즈음 사람들은 이 병통을 알지 못하고 오로지 이 속에서 빠졌다 나왔다 할 뿐이다.”
그러므로 화두를 들 때는 마치 닭이 알을 품듯, 고양이가 쥐를 잡듯이, 배고플 때 밥 생각하듯이, 목마를 때 물 생각하듯이, 어린아이가 엄마 생각하듯이 간절하게 해야만 합니다. 이러한 간절한 마음과 응집력이 없이 그저 앉아 있기만 하는 것은 허송세월을 하는 겁니다.
‘왜, 어째서’라고 방점만 찍을 뿐
동산수초洞山守初(910~990) 화상에게 한 승려가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동산이 말했다.
“삼이 서 근이다.”
“부처를 물었는데 왜 삼이 서 근[麻三斤]이라고 했을까?” 바로 여기에서 의심을 일으켜야 합니다. ‘왜?’라고 방점을 찍어야 합니다. 삼이 뭔지, 한 근은 얼마인지 분석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의심을 하는 데는 학력이 필요 없습니다. 초등학교를 마쳤든지 안 마쳤든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땄든지 안 땄든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왜?’라는 의심이 무르익어 의정疑情이 되고 결국 한 덩이 의단疑團이 은산철벽銀山鐵壁을 마주한 듯 하는 곳에서 결단을 내야 합니다. 성철 큰스님께서도 삼서근 화두로 제자들의 공부와 참선 수행을 점검하셨습니다.
화두는 일종의 기호입니다. 군대에서 임무 교대할 때 사용하는 일종의 암호와 같은 것입니다.
화두는 스승께서 던져준 언어의 미끼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분석해서 알아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왜’, ‘어째서’라고 삼 서 근에 방점을 찍고 마음을 집중해 나가야 하는 겁니다. 방 청소를 하든, 이불을 개든, 밥을 먹든, 길을 가든, ‘어째서’라고 계속 강하게 밀고 나가면 점점점점 8만 4천 가지 번뇌라고 할 수 있는 잡생각은 줄어들고 어느 순간 꽉 막히는 지점에 이릅니다. 이때 더더욱 확 밀어붙여서 밀고 나가면 됩니다.
그런데 부처를 물었는데 삼 서 근이라고 말씀하신 데는 틀림없이 분명한 이유가 있을 거야라고 하면서 내 상식과 경험을 동원하든가 과학적인 지식을 동원해서 이걸 풀려고 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박사도 필요 없고, 국민학생도 필요 없이 다 똑같습니다. 그런데 많이 배운 사람들일수록 자기 함정에 쉽게 빠져 버립니다. 앞에서도 거듭 말했듯이 ‘나’라고 할 만한 궁극적 주체는 실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간절한 의심만을 내야 합니다.
사람 몸 만나기 어렵고, 부처님 법 만나기 어렵고, 또 바른 부모 만나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좋은 법을 만났고, 또 우리 시대의 부처인 성철 큰스님을 만나 바른 가르침까지 받았으니 더없이 기쁜 일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오늘부터 자나 깨나 부처를 물었는데 어째서 삼서근이라 했는지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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