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문화의 장인을 찾아서]
3천 좌의 불상을 조성한 불상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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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리 / 2024 년 6 월 [통권 제134호] / / 작성일24-06-05 10:22 / 조회1,270회 / 댓글0건본문
대전광역시무형문화재 제6호 불상조각장 이진형
국립중앙박물관은 우리나라 최고의 예술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시대별, 주제별, 나라별 전시는 물론 기획 특별전이 열릴 때마다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기도 한다. 그중 개장 전부터 크게 이슈가 되었고 지금까지 인기 있는 곳은 바로 상설전시관에 마련된 ‘사유의 방’이다.
불상에서 얻는 치유의 감동
기존의 관람 동선에서 과감히 벗어나 오로지 국보 반가사유상 두 점만 나란히 자리하였다. 입체적인 공간 구성과 반가사유상에 몰입할 수 있도록 조명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두 미륵보살의 아름다운 미소를 최대치로 이끌어낼 수 있는 음영과 빛을 사용하였다. 관람객들은 반가사유상에 마주함에 심오한 감동마저 느끼게 된다. 어떤 관람객은 “반가사유상을 보고 있으면 영혼이 치유되는 느낌을 받는다.”라고 말했으니 1500년을 넘나드는 교감이 실로 대단하다.
정식 명칭은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金銅彌勒菩薩半跏思惟像이다. 매끄러우면서 아름다운 금빛과 검은빛의 광채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소재의 특성과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만들어진 천연의 광채일 것이다. 은근히 남아 있는 금빛과 드러난 속동빛의 조화가 아름답다.
금불은 금으로 조성한 것이고, 금동불은 동이나 청동에 금을 입힌 것이다. 철불은 쇠로 만든 불상이며 소조불은 점토로 만든 불상이다. 잘 알다시피 돌로 석불을, 나무로 목불을 제작하며, 건칠불은 나무로 골격을 만들고 그 위에 종이나 천으로 불상의 형을 만들어 옻칠 한 뒤 금을 입힌 것이다. 오늘날 가장 일반적인 불상은 나무나 청동을 재료로 하여 만들고. 불상만을 전문적으로 조성하는 전문가를 불상조각가라 부른다. 이번 호에서는 평생 불상만을 조성한 불상조각장을 만나보도록 한다.
대중불교 친화를 꿈꾸는 이진형 불상조각장
이진형 장인은 우리나라 전통 불상 조각 기예를 인정받아 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6호 불상조각장으로 지정되었다. 불상조각을 시작한 지 올해로 56년에 접어들지만, 흙을 다듬고 나무와 돌, 쇠를 다루는 모든 일에 초심을 잊지 않기 위해 늘 노력하고 있다. 그의 손을 거친 불상과 목탱화, 산신상, 사천왕상, 각종 신장상 등의 불사는 3,000여 점에 이른다.
이진형 불상조각장이 늘상 출근하는 곳은 대전 유성구 탑립동에 위치하고 있는 여진불교조각연구소이다. 그의 작업실과 연구실, 전시실이 함께 있는 곳이다. 여진불교미술관은 산책하기 좋은 야외 불교테마공원과 이웃해 있다. 이 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이진형 장인은 틈틈이 땅을 고르고 나무를 심으며 가꾸다가 2005년 개관하였다. 1999년 지방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사회에 대한 기여나 불교 대중화에 대한 생각을 보다 구체적으로 하게 되었다고 한다.
“저에게 무형문화재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동안 불상조각 기능인으로 열심히 살아온 것을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고, 또 불교미술에 대한 대중화·포교에 보다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진 4. 전시관 입구.
이전까지는 오로지 작품 활동에만 몰두하였다면 문화재로 지정되었다는 것은 사회적 책임을 함께 지닌다는 그의 사명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여진미술관의 준공이나 불교테마공원 조성으로 연계된다. 그는 항상 불교미술이 대중화되어 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를 바라왔다. 산책하다가 우연히 만나는 마애불의 자비함에서, 때로는 광대하게 펼쳐지는 대형불에서 느껴지는 존엄함에서, 혹은 낮게 들여다보며 웃음 짓게 하는 작은 동자상의 해맑음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불교에 한 걸음 가까워지는 것이다.
이 공간은 대중의 불교 친화를 위한 그의 소망과 꿈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산책로를 따라 초전법륜상, 약사여래상 등이 조성되어 있고, 공원의 중앙에는 대불大佛을 봉안하여 놓았다. 이 장인은 무형의 가치를 실천하고자 여진미술관을 2009년 공익법인화하여 조계종단에 기증하였다.
그의 손으로 만들어진 불상은 전국 사찰에 봉안되어 있다. 대구 동화사, 칠곡 대원사, 부산의 범어사와 용화사, 전라도의 백양사, 선운사, 송광사, 제주도의 관음사와 극락사 등 그는 50여 년 동안 3,000여 불사(불상, 목탱화, 불구 등)를 하였을 정도로 많은 족적을 남겼다. 국내뿐 아니라 인도 분황사(芬皇寺)에서도 이진형 불상조각장의 석가모니불을 만날 수 있다. 2022년 부처님 성도지인 인도 부다가야에 건립된 한국사찰 분황사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주불로 안치되었는데, 가장 한국적이고 전통적인 모습에 주안점을 두어 모셨다고 한다.
분황사 대웅전에 모시는 석가모니 부처님 성상은 높이 2m 5cm로 조성되었고, 높이 2m 10cm의 가섭·아난존자 성상도 좌대와 함께 청동으로 제작하였다. 한국은 전통적인 불상 조성시 목재를 선호하지만, 인도의 기후적 특성을 고려해 청동을 주재료로 한 것이다. 인도는 건기 때 최고 기온이 58℃에 육박하며, 우기에는 습도가 높아 목재는 보존상 적합지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타국 땅에서 만나는 한국 부처님은 인도인들에게는 이국적이겠지만, 우리에게 또 하나의 고향과 같은 부처님이 되시겠다.
전통적인 것과 미래지향적인 것
이진형 장인은 전통만을 고집하고 답습하는 데 연연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편리와 생략을 위해 전통적인 방식을 부정하는 일은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우리는 천연옻칠이 얼마나 우수한지 잘 알고 있다. 7번 이상 옻칠하게 되면 내구성이 강해 반영구적이 되고, 온도나 습도, 화공약품에 의해 변질되지 않는다. 또 살균력이 강하고 인체에도 해가 없으니 건강하게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장점이 된다.
그러나 제작 과정이 지난하고 번거롭다는 단점이 있다. 건조 과정이 여름 날씨의 온습도를 유지해야 건조가 되고 시간도 상당히 오래 걸린다. 사용 전에는 정제 과정이 필요하고, 부패하거나 공기와 접촉하면 굳어져서 장기 보관이 어렵기도 하다. 그래서 상당히 편리한 천연옻칠 대체제가 나오긴 했다는데 이진형 장인의 판단으로는 아직까지 영구적인 사용에 있어서는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문화재 보전처리나 수리에서 사용하게 되면 오히려 원형을 훼손하게 되는 가능성도 보이는 듯싶다. 귀한 것일수록 오랜 검증을 통해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이진형 장인은 불상조각 분야 국보급 문화재의 보존을 위해서는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이 시급하고, 새로운 불상조각의 창작과 변모를 위한 다각적인 도전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현재 국보나 보물이 가장 많은 분야가 불교문화이고, 그중에서도 부처님과 관련된 불상, 불화가 많습니다. 불화장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는데, 불상조각장 분야는 없어요. 국가문화유산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지만 정작 아직까지 인식이 부족한 것 같아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불교문화를 오래도록 잘 지켜내기 위해서는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이진형 장인은 불교문화의 폭넓은 발전을 위해 수익금의 일부를 불교 공예 개발 및 전승을 위해 재투자하고 있다. 새로운 양식의 촛대, 꽃병, 향로, 사리탑 등을 개발하고 있는 중이다. 특히 동화사 통일약사여래 대불 앞 통일기원대전 1층 법당에 봉안된 ‘황금사리보탑’은 국보 제112호 감은사지 사리탑을 모본으로 삼았는데 2년 여 동안 조성한 작품이다. 높이 3m로 청동 1400kg, 금박 2만2000장, 큐빅 300개 등을 들여 새롭게 선보였다. 옛것을 충분히 익히고 나서 그것을 미루어서 새것을 안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이제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정신은 두 아들 이재윤, 이재석 씨가 이어받아 불모로서 불교조각에 매진하고 있다. 앞으로 더 좋은 작품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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