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와 불교윤리 ]
인공지능(AI)과 자비윤리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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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결 / 2024 년 8 월 [통권 제136호] / / 작성일24-08-05 10:35 / 조회1,079회 / 댓글0건본문
올봄에 출시된 오픈 AI 사의 챗 GPT-4o가 그동안 인공지능(AI)의 발달에 거부감을 보여 왔던 문화예술의 영역마저 마침내 접수하기 시작한 듯하다. 여기서 알파벳 ‘o’는 텍스트와 오디오 및 이미지 등을 동시에 입력하고 또 출력할 수 있다는 것을 함축한 ‘Omni’의 약자이다. 성능
이 기대 이상인 것 같다.
인공지능(AI)은 외면할 수 없는 현실
마치 인간이라도 된 듯 감탄사와 적절한 농담을 섞어서 말하는가 하면 “아까 너 뒤로 누군가 지나가던데”라고, 조금 전의 기억에 바탕을 둔 대화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상 보고, 듣고, 판단하고, 말하는 인공지능이 등장한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다.(주1) 이런 상황은 바야흐로 인공지능의 시대가 도래했으며, 각자의 영역에서 어떤 형태로든 인공지능과 공존의 지혜를 모색하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인식의 대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이와 같은 시대적 분위기와 관련하여 남방불교 국가인 태국 출라롱콘 대학의 소랏 헝라다롬Soraj Hongladarom 교수는 ‘자비로운 알고리즘(merciful algorithm)’이란 개념을 통해 미래의 불교가 지향해야 할 인공지능의 불교적 성격을 제안한 바 있다. 그에 의하면 인공지능이 ‘자비로운 것’이 되려면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려는 원력과 실천을 자신의 기본값으로 설정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이론적으로 ‘기술적 탁월성(technological excellence)’과 ‘윤리적 탁월성(ethical excellence)’을 동시에 갖춘 ‘기계적 깨달음(machine enlightenment)’을 실현한 인공지능이 될 것이다.(주2)
다시 말해 그는 인공지능이 붓다의 자비로운 성품과 같은 윤리적 덕성을 갖출 때 비로소 정의롭고 평등한 인간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개인적으로도 불교의 지혜와 자비의 윤리야말로 인공지능 시대를 사는 인간의 실존적 공포와 불안을 잠재울 유력한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인공지능(AI)의 등장과 인류사회의 미래
챗 GPT-4o가 촉발한 이른바 ‘생성형(generative) 인공지능’의 등장은 인간과 기계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한 다각도의 성찰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크게 보면 인공지능을 인간의 미래를 위협하는 ‘나쁜’ 기술로 볼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행복을 획기적으로 증진할 ‘좋은’ 기술로 기꺼이 수용할 것인가라는, 두 가지 방향의 상황인식으로 정리될 수 있을 것 같다.(주3)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챗 GPT-4o는 수년 전 알파 Go가 세계 최고 수준의 바둑기사인 이세돌 9단을 4대 1로 물리쳤을 때와는 질적으로 다른 어떤 공포심을 조성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알파 Go가 미리 정해진 과제를 수행하는 데 특화된 인공특수지능(ASI)이라면, 챗 GPT-4o는 부여받은 다양한 작업을 인간처럼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는 인공일반지능(AGI)에 한 걸음 더 다가선 컴퓨팅 기술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것은 인공지능이 인간과 같은 수준의 일반지능을 갖게 되는 이른바 ‘특이점(singularity)’의 순간을 실질적으로 앞당겼다는 해석의 여지를 제공하기도 했다.
챗 GPT-4o와 같은 생성형 AI 모델들은 종종 엉뚱한 답변을 내놓는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글쓰기, 그래픽 제작, 데이터 요약 및 분석 등 인간의 창의성과 추론 능력 위에서나 실현 가능한 것으로 여겨지던 거의 모든 업무를 사실상 처리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유하게 되었다.”(주4) 다만 현재로선 막연한 두려움도 장밋빛 낙관도 모두 경계해야 할 일이다. 그 이유는 인공지능의 앞날도 결국 우리가 인간지능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와 직간접적인 관계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지혜와 자비의 종교인 불교는 능동적으로 공론의 장인 야단법석을 열어 “인공지능 시대의 휴머니즘”(주5)이라는 아젠다를 적극적으로 주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인공지능은 불쑥 찾아온 미래의 손님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너무 빨리 왔다고 내쫓거나 추운데 문밖에 그대로 세워 놓는 것은 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이다. 일단 방으로 안내하고 그간의 자초지종을 들어봐야 정확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붓다의 교설인 지혜와 자비의 윤리는 언제나 현재 진행형임과 동시에 미래 능동형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주6)
이른바 생성형 인공지능은 인간이 입력한 질문에 대해 방대하게 학습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적절한 솔루션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감탄할 정도로 놀랄 만한 부분이 있는가 하면, 간혹 심각하게 멍청한 모습을 보여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이는 인공지능의 ‘환각(hallucination)’ 현상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인간 본연의 교양과 상식을 이해하지 못한 채 기계적으로 학습한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설계에 따라 ‘발생 가능한 결과’의 확률만 계산해서 보여주는 문제처리 방식 때문이다.
우리는 주체인 인간과 객체인 기계의 존재론적 위계질서를 통계와 확률값으로만 성격 규정지어서는 안될 것이다.(주7) 그래서인지 진화생물학자들은 인공지능의 등장을 인류의 미래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이다. 인간지능과 인공지능의 접촉과 갈등 및 협력 가능성 등은 긴 안목에서 볼 때 모두 진화의 한 과정으로 포섭될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인공지능(AI)의 시대: 휴머니즘의 새로운 의미를 회복할 때
알려져 있다시피 진화생물학자들은 진화의 과정에서 최종적인 승자는 결국 양성생식을 통해 끊임없이 생명의 다양성을 추구해 온 특정한 ‘종(species)’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해 왔다. 생성형 AI가 생식행위를 거쳐 스스로 자식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한 인간이 기계의 지배를 받을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는 학자들도 있다.(주8)
챗 GPT-4o의 발매를 두고 마치 인류가 인공지능과 전쟁이라도 벌여야 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 때가 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하면 인공지능의 특화된 기능들을 인간 전체의 행복을 위해 능동적으로 사용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할 때라고 본다는 말이다. 진화론이 이해한 자연은 피할 수 없다면 서로 협력하면서 더불어 사는 최적의 방법을 찾으라고 가르쳤다. 이런 공존의 모색은 결과적으로 생존을 위한 협력의 실천으로 이어졌다.
인공지능이 일상 속으로 깊숙이 들어온 오늘날, 우리는 생존을 위해서라도 인공지능과 인간 윤리의 공존 가능성, 즉 소박한 ‘휴머니즘의 재발견’을 모색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지금보다 물질적으로 더 풍족함과 동시에 정신적으로 더 여유로운 공동체의 건설을 모색하자는 주문일 수도 있겠다. 인공지능의 발전속도로 미루어 볼 때 앞으로 사회의 생산성은 날이 갈수록 더욱 높아질 것이며, 고된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인간은 인공지능이 생산한 부를 공정하게 분배하고 자비롭게 소비할 지혜를 발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인류가 직면한 문제는 인공지능의 직접적인 위협이 아니라 하루빨리 인공지능의 사용방법을 제대로 익히고 널리 공유하자는 사회적 공감대의 확산이라는 지적이 많다. 미찰 보니Michal Boni도 인공지능의 발전이 우리가 막연히 우려하는 것과는 반대로 인간과의 공존 가능성을 한층 더 높여줄 것이라고 예상한 바 있다.(주9)
이와 같은 일련의 문제의식 및 연구동향과 관련하여 인공지능과 불교윤리를 이론적으로 접목하려는 학문적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어 우리의 지적 관심을 자극한다. 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 소랏 헝라다롬 교수는 최근 펴낸 『불교의 시각에서 본 AI와 로봇윤리-불교, 인공지능과 로봇을 말하다』(2020)(주10)에서 인공지능 시대의 불교를 향해 ‘자비로운 알고리즘’의 적극적인 개발과 과감한 적용을 요청하고 있다.
<각주>
(주1) <조선일보> 2024년 5월 15일 자 A5면.
(주2) Soraj Hongladarom(2020), The Ethics of AI and Robotics: A Buddhist Viewpoint(London: The Rowman&Littlefield Group, Inc.,); 소랏 헝라다롬 지음, 허남결 외 옮김(2022), 『불교의 시각에서 본 AI와 로봇 윤리-불교, 인공지능과 로봇을 말하다』(서울: 씨아이알).
(주3) Will Douglass Heaven(2023), 「챗GPT 시대의 교육, 파괴가 아닌 혁신을 향하다」, 『MIT Technology Review Korea』, vol. 9, 2023, Jul/Aug.12-17.
(주4) David Rotman(2023), 「챗 GPT가 불러올 경제혁명, 공동번영으로 이어질까」, 『MIT Technology Review Korea』, vol. 8, 2023, May/June. 38.
(주5) 이광형(2022.08.15.), 「[이광형의 퍼스펙티브] 휴머니즘 기반해 인간·AI 공존하는 질서 만들어야」, 중앙일보. 이런 공존의 윤리를 역설하고 있는, 최근의 출판물에는 윤송이 외, 『가장 인간적인 미래』(서울: 웨일북, 2022); 스튜어트 러셀, 이한음 옮김, 『어떻게 인간과 공존하는 인공지능을 만들 것인가-AI와 통제 문제』(파주: 김영사, 2022); 김상균, 『초인류-AI와 함께 인공진화에 접어든 인류의 미래』(파주: 웅진지식하우스, 2023) 등이 있음.
(주6) 불교의 시각에서 인공지능의 문제를 진지하게 다룬 논문과 저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양성철(보일), “인공지능 챗봇에 대한 선문답 알고리즘의 데이터-심리치료 상담챗봇을 중심으로-”, 『한국불교학』(제84집, 2017); 한성자, “인공지능(AI) 로봇의 해탈 가능성-‘인간은 생각하는 기계인가’에 대한 불교적 관점-”, 『한국불교학』(제85집, 2018); 김성옥, 이관수, “인공지능 ‘자유의지’ 논의에 대한 선결조건-<엑스마키나(Ex Machina)>를 바라보는 불교와 과학의 시선”, 『불교학연구』(제70호, 2022); 보일(양성철), “디지털 휴먼에 대한 불교적 관점-악업의 증장인가, 선교방편인가-”, 『宗敎硏究』(제7집, 2022); 보일, “챗 GPT의 등장과 불교계의 대응방안, 『불교평론』(2023년 여름호); 보일 지음, 『AI 부디즘』(서울: 담앤북스, 2021) 등.
(주7) https://www.youtube.com/watch?v=wTI-klquHRA, 검색 일자 2023년 6월 25일. 최예진 교수의 TED 강연자료.
(주8) https://www.youtube.com/playlist? list+PLMd4CV6iDBunlnuiYS7kDpllB1Ub9qRl3, 검색 일자 2023년 6월 25일. 최재천 교수의 강연자료.
(주9) Michael Boni (2022), “The ethical dimension of human-artificial intelligence collaboration”, European view, vol. 20(2).182, 183, 185-186, 188.
(주10) 소랏 헝라다롬Soraj Hongladarom(2020), 허남결 외 옮김(2022), 앞의 책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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