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삼국의 선 이야기 ]
위앙종 원상의 전파자 오관산 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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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방룡 / 2024 년 9 월 [통권 제137호] / / 작성일24-09-05 09:17 / 조회951회 / 댓글0건본문
한국선 이야기 9_ 남종선 전래와 나말여초 구산선문의 형성 7
선의 세계를 원상圓相◯을 통하여 표현한 전통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함허의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서문과 청허의 『선가귀감禪家龜鑑』 그리고 경허와 성철에 이르기까지 원상은 심즉불心卽佛의 대표적 상징으로 표현되어 왔다. 원불교의 신앙 대상이 되고 있는 일원상에 대한 이야기는 한국선종사에 있어서 오관산 순지順之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말여초 구산선문의 형성을 마무리하면서 위앙종潙仰宗의 전승자 순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순지의 생애
마조도일馬祖道一의 법이 백장회해百丈懷海에게 전해지고, 백장의 법은 위산영우潙山靈祐에게 위산의 법은 앙산혜적仰山慧寂에게 전해졌다. 그리고 위산과 앙산에게서 남종선 오가칠종의 최초의 종파인 위앙종이 탄생하였으며, 위산의 제자인 향엄과 앙산 사이에서 여래선과 조사선의 구별이 생겨났다. 비록 구산선문에는 속하지 못했지만 앙산으로부터 법을 전해 받고 귀국하여 오관산문을 개창한 요오순지了悟順之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순지에 관한 기록은 「개풍 서운사 요오화상 진원탑비문」이 있고 『전등록』 권12에 ‘신라 오관산 순지順支대사’ 조목이 있다. 그의 비문은 고려 태조 20년(937년)에 경기도 개풍군 영남면 서운사瑞雲寺에 세워진 것으로, 찬자의 이름은 마멸이 되어 있고, 본문과 음기가 수록되어 있다.(주1) 주목되는 것은 『조당집』 권20에 실린 ‘오관산五冠山 서운사화상瑞雲寺和尙’조로 여기에는 비문보다 더 상세하게 순지의 생애와 사상을 소개하고 있다. 이는 『조당집』에 실린 신라 승려 가운데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는데, 이렇게 된 데에는 고려인에 의하여 『조당집』이 20권으로 새롭게 편찬되는 과정에서 순지의 선사상에 크게 주목하였던 것이다.
순지順之의 정확한 생몰년은 알 수 없지만, 평안도 패강浿江(현 대동강) 지역 출신으로 속성은 박朴씨이며, 어머니는 소昭씨이다. 지방 호족 출신의 순지는 약관의 나이에 오대산으로 가서 삭발하고, 속리산에 가서 구족계를 받았다. 헌안왕 2년(858)에 입당하여 앙산혜적仰山慧寂(807~883)을 찾아가 제자 되기를 청하자, 앙산은 “온 것이 어찌 이리 늦었으며, 인연이 어찌 그리 늦었는가? 뜻한 바가 있으니 그대 마음대로 머물러라.”라고 허락하였다. 거기에서 순지는 앙산의 곁을 떠나지 않고 현현한 종지를 물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안회가 공자 곁에 있는 것 같고, 가섭이 부처님 앞에 있는 것 같았다 한다.
순지가 귀국한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이후 874년경에 송악군松岳君의 여자 단월인 원창元昌 왕후와 그의 아들인 위무대왕威武大王이 오관산 용암사龍巖寺를 희사하여 거기에 머물렀는데, 이후에 서운사瑞雲寺로 개칭하였다. 65세에 입적하였는데, 호는 요오了悟이며, 탑호는 진원眞原이라고 한다. 김두진은 이러한 내용을 토대로 하여 순지가 874년경에 신라에 귀국하여 약 20년 활동하고서 894년경에 열반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주2)
위앙종에 있어서 순지의 위상
위앙종의 종풍은 ‘방원묵계方圓黙契 체용쌍창體用雙彰’으로 알려져 있다. 선禪을 가르치거나 배우거나 학인을 제접할 때 기용機用이 원융하며 이사理事가 병행하는 데 있어서 소박함 가운데 묵계를 깊이 함유하고 있는 것을 ‘방원묵계’라 하고, 체와 용을 밝혀 멀고 가까움을 논하기 때문에 ‘체용쌍창’이라 말한다. 이는 『종문십규론宗門十規論』과 『인천안목人天眼目』 및 『오가종지찬요五家宗旨纂要』 등에서 공통적으로 밝히고 있는 내용이다. 참고로 『인천안목』에서는 위앙종의 종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위앙종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이 효도를 다하여 위에서 영을 내리면 아래서 따르는 것이다. 네가 밥을 먹고자 하면 나는 곧 국을 가져오며, 네가 강을 건너고자 하면 나는 곧 배에 노를 젓는다. 산이 막혀도 연기를 보면 곧 불인 줄을 알며, 담이 막혀도 뿔을 보면 소인 줄을 안다.(주3)
위앙종의 종풍 가운데 하나가 원상을 통하여 제자들을 제접하는 것이다. 『인천안목』에 의하면 원상의 기원은 혜능의 제자인 남양혜충南陽慧忠 국사에서 시작하여 탐원耽源 선사가 전수하고, 탐원은 원상도의 비결을 계승하여 앙산仰山 선사에게 전해 주었다. 탐원이 앙산에게 이르기를 “혜충 국사는 육조 혜능대사에서 전해 내려온 원상 97개를 나에게 전수한다.”고 하였다. 국사가 열반할 적에 “내가 죽고 30년 후에 남방에서 한 사미가 여기에 이르는데 크게 이 원상의 도를 일으킬 것이니, 그에게 차례로 전수해 주어 대대로 단절되지 않게 하라.”라고 하였으므로 탐원이 앙산에게 전하여 주었다.
『인천안목』에는 ‘오관요오화상여앙산입현문현답五冠了悟和尙與仰山立玄問玄答’이라 하여 순지와 앙산이 세운 5개의 현문현답이 실려 있다. 참고로 이 가운데 끝의 두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하나는 ◯ 안에 ‘佛’을 쓰고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모양은 이미 이룬 보배 그릇의 상相이라 한다. 만일 이 모양을 가져와 묻는다면, 다만 ◯ 안에 ‘土’의 글자를 써서 대답한다.(주4)
이어 ◯ 안에 ‘土’를 쓰고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모양은 현인현지玄印玄旨(미묘한 도장과 심오한 뜻)의 상相이라 한다. 다만 앞에서 진술한 여러 원상을 벗어난 것이니 교의敎意가 포함한 바에 집착하지 않는다. 만일 영리한 사람이면 면전에서 분부하고 만일 머뭇거리면 보지 못한다.(주5)
위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여기에 소개되고 있는 5개의 현문현답은 앙산과 순지가 원상을 통하여 제자들이 법을 물었을 때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를 밝히고 있는 내용이다. 한마디로 앙산의 선법이 순지에게 전승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조당집』 ‘서운사화상’조에서는 이러한 내용이 ‘사대팔상四對八相’으로 나타나고 있다.
순지의 ‘삼편성불론三遍成佛論’
순지의 선사상에 있어서 위앙종의 선풍을 계승하고 있는 측면과 더불어 그의 독자적인 점은 무엇일까? 그 대표적인 것이 순지의 성불론成佛論이라 할 수 있는데, 『조당집』에는 순지가 주장하고 있는 성불론을 증리성불證理成佛·행만성불行滿成佛·시현성불示顯成佛의 세 가지로 밝히고 있다.
우선 ‘증리성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증리성불’은 선지식의 말끝에서 자기 마음 근원에 본래 한 물건도 없음을 언뜻 돌이켜 성불하는 것인데, 만행을 닦아 점차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치를 증득한 성불이라 한다. 그러므로 경에서 “처음 발심할 때 바로 정각을 이룬다.”라고 하였고, 또 옛사람[永明延壽]이 “불도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돌이키면 된다.”라고 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이 뜻이다. 이 증리성불에서 체성을 말하면 한 물건도 없지만 삼신三身을 통틀어 논하면 한 부처와 두 보살이 없지 않다. 비록 세 사람이 있다고 하나 여기서는 특히 성품을 보아 부처 이루는 쪽을 논하기 때문에 부처를 이루는 공功이 문수에게 있다.
다음으로 ‘행만성불’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행만성불’ 비록 이미 진리를 끝까지 알았지만 보현의 행원을 따라 보살의 단계를 거치면서 널리 보살도를 닦아서 수행이 고루 갖추어지고 지혜와 자비가 원만해지기 때문에 수행이 원만한 성불이라 한다. 이 행만성불의 과덕果德을 말하면 오직 보현행으로써 불도를 이루는 것뿐이나 삼신三身을 논하면 여기에도 한 부처와 두 보살이 있다. 비록 세 사람이라고 하지만 여기서는 특히 수행이 쌓여서 부처를 이룬다는 쪽으로 논하기 때문에 부처를 이루는 공功이 보현에게 있다.
다음으로 ‘시현성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시현성불’은 앞의 이치를 증득한 성불과 수행이 원만한 성불이 스스로의 행으로 부처를 이루는 것이었다면, 여기서는 중생을 위해 부처를 이루는 팔상성도八相成道를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시현성불이라 하는 것이니, 이 팔상의 성도는 보신報身과 화신化身일 뿐 진신眞身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경에 “여래께서는 세상에 나오시지도 않았고, 열반에 드신 일도 없지만 본원의 힘으로 자재한 법을 나타내 보인다.”라고 했는데, 이 경은 보신불과 화신불을 통해서 진불眞佛을 가리킨 것이다. 또 경에서 “내가 성불한 뒤로 한량없는 아승기겁이 지났다.”라고 하였으니, 석가여래께서 한량없는 겁 이전에 이미 행이 원만한 대각을 이루었으나 중생을 위해서 정각 이루심을 이제야 나타내 보였음을 알 수 있다.
순지의 삼편성불론에서 증리는 깨달음, 행만은 실천, 시현은 교화를 말한다. 깨침과 자비, 돈오와 점수의 과정을 통한 내증외화內證外化를 통해 성불의 모습을 그리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순지는 “교전을 보고 옛사람의 자취를 두루 살피어 한 사람이 성불하는 과정을 관찰하면 세 번의 성불하는 도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하고서 “부처의 지위를 연마하려는 이는 대략 문자 방편을 살핀 뒤에 다시 먼저의 부처와 나중의 부처가 다 같은 길이 된다. 마치 사람들이 길을 가는데, 옛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같은 길이었음을 생각해야 한다.”라고 당부하고 있다.
순지 선사상의 특징과 영향
순지가 귀국하여 본격적으로 활약했던 시기는 헌강왕과 진성여왕 대이며, 『조당집』과 순지의 비문이 찬술된 고려 초와는 상당한 차이를 지닌다. 또한 화엄사상과 법화사상이 바탕이 된 순지의 선사상과 위산과 앙산의 선사상 사이에는 적지 않은 거리가 존재하고 있음도 발견된다.
순지의 표상현법의 계승은 보조국사 지눌이 활약하였던 고려 중기 정각국사靜覺國師 지겸志謙(1145~1229)으로 이어지게 된다. 지겸의 『종문원상집宗門圓相集』에서 순지의 선사상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다만 순지와 지겸 사이의 사상적 계승이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는 좀 더 살펴보아야 할 문제이다.
<각주>
1) 이 비문의 내용은 『조선금석전문』에 수록되어 있으며, 『교감역주 역대고승비문(고려편 Ⅰ)』에 원문과 번역문이 실려 있다.
2) 김두진, 「요오선사 순지의 선사상-그의 삼편성불론을 중심으로」, 『역사학보』 65집, 1975, 6쪽.
3) 晦巖智昭, 『人天眼目』(大正藏 48, 323b), “潙仰門庭. 潙仰宗者 父慈子孝 上令下從. 爾欲捧飯 我便與羹. 爾欲渡江 我便撑船. 隔山見煙 便知是火. 隔牆見角 便知是牛.”
4) 위의 책, 322b. “◯此名已成寶器相. 若將此相來問 但於內書土字答之.”
5) 위와 같음. “此名玄印玄旨相. 獨脫超前衆相 不著敎意所攝. 若是靈利底 對面分付. 擬之則不見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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