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삼국의 선 이야기 ]
무사도에 선을 접목시킨 무가쿠 소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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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영상 / 2024 년 10 월 [통권 제138호] / / 작성일24-10-05 12:17 / 조회514회 / 댓글0건본문
일본선 이야기 10
일본의 선종이 한국의 그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지만, 역사적으로 차이가 있다면 중국의 선사들이 도일하여 일본선의 전통을 확립했다는 점일 것이다. 무가쿠 소겐無學祖元( 1226〜1286) 또한 그러한 인물 중의 한 명이다. 힘의 지배가 본격화되는 중세에 많은 무사들에게 참선을 지도함으로써 무사도에 선의 정신을 불어넣었다. 불살생을 제1 계율로 하는 불교에서 볼 때 모순되는 역사적 현실이라고도 할 수 있다. 국가 권력과의 관계를 통해 발전해 온 불교계로서는 새로운 해석을 가할 필요도 있지만 일단 역사는 역사로써 보기로 한다.
구자무불성화를 참구하다 깨달음을 얻다
무가쿠는 어릴 때 야보도천의 “대 그림자 섬돌을 쓸지만 먼지 일어나지 않고, 달 호수 바닥을 뚫어도 물 흔적도 없네(竹影掃階塵不動 月穿潭底水無痕).”라는 글을 보고 속세는 덧없음을 느꼈다. 13살 무렵 항주 정자사에서 북간거간에게 출가, 다음 해 경산사의 무준사범의 문하에서 참선했다. ‘구자무불성狗子無佛性’을 화두로 입참하여 승당에서 6년간 두문불출하던 중 어느 새벽 건판 두드리는 소리에 깨닫고 다음과 같은 오도송을 읊었다.
한 몽둥이로 정령의 소굴을 깨뜨리니
문득 튀어나온 나타(귀신)의 철면피.
두 귀는 먹은 듯하고 입은 벙어리 되어
한가로이 건드려도 불꽃을 날리는구나 - 『원형석서』
무가쿠가 위의 오도송을 무준에게 올리자 ‘향엄격죽’의 송으로 시험하고 인가했다. 석계심월, 언계광문, 송원숭악, 허당지우, 물초대관 등 강호의 선사 문하에서 깊이 연마하며 법거량을 통해 기량을 더욱 다졌다.
송원숭악이 마조도일의 타우거打牛車(『선문염송집』 121칙)를 설할 때, 모든 분별을 잊고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물초대관의 문하에서는 어느 날, 물을 길어 올리려고 우물가에 서 있을 때, 두레박이 드르륵 하는 소리를 듣고 한 소식을 얻었다. 밀암함걸의 탑을 참배할 때 그는 “함부로 사기 접시를 설하여 무겁기가 산 같으니, 세 번 절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어려우리라. 황금으로 황금 불상을 주조하지 않는데, 소나무와 대나무는 서로 다투어 밤마다 차갑구나.”라고 읊었다. 그 사이 30세 때는 선문에서 벗어나 백운암에서 노모를 정성을 다해 7년간 봉양했다. 이후 절강성 진여사의 주지가 되었다.
가마쿠라 원각사의 개산조가 되다
1275년에 몽골이 남송을 침입했다. 온주溫州 능인사에 피난해 있던 무가쿠는 포위당해 생사의 기로에 처했다. 목이 베일 상황에서 태연히 한시를 읊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지팡이 하나 꽂을 땅 없으나, 기쁘도다. 사람도 공이요, 법도 공임을 알았으니. 진중한 대원大元의 석 자짜리 칼, 번갯불 번쩍하는 새에 봄바람을 베도다.”라고 했다.
이에 몽골 군사들이 그가 비범한 인물임을 알고 말없이 물러갔다. 1277년 영파의 천동산에 올라 환계유일의 문하에서 수좌가 되었다. 1278년 일본 건장사의 개산조 난계도륭이 열반하자 가마쿠라 막부의 8대 실권자 호조 도키무네北条時宗는 난계의 뒤를 이을 선사를 물색했다. 다음 해에 고승을 초빙하기 위해 난계의 제자 도쿠젠德詮과 소에이宗英 두 승려를 중국으로 파견했다.
난계의 후임으로 무가쿠의 사형師兄에 해당하는 환계에게 부탁했다. 그러나 그는 노구를 이유로 거절하며, 무준사범으로부터 받은 가사를 무가쿠에게 전했다. 그는 그것을 집어 들고, “세존께서 금란을 전하는 것 외에 별도로 어떤 물건을 전하셨나요. 허물은 그대에게 있으며, 재앙은 나에게 미치는구료.”(『붓코선사행장佛光禪師行狀』)라고 말하고는 가사를 걸쳤다.
무준을 위해 향을 피우고 나서 대중에게 설했다. “옛사람은 바다를 건너고 사막을 건너서 중화에 이르렀다. 대법을 전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오늘 원元 상좌, 일본의 타이라平 장군의 초청으로 건너간다.”라며 『회남자』의 내용을 빌려, “우가羽嘉는 응룡應龍을 낳고, 응룡은 봉황鳳凰을 낳고, 봉황은 중우衆羽를 낳는다.”고 설했다. 우가는 날아다니는 새, 응룡은 날개 있는 용의 일종, 봉황은 성인이 세상에 나올 때 나타나는 새, 중우는 많은 새를 말한다. 자신으로 인해 선종이 일본에서 꽃을 피울 것을 예언한 것이다.
도일 3년 뒤인 1282년 호조는 거액을 들여 가마쿠라에 원각사가 완성되자 무가쿠를 개산조로 삼았다. 이 절은 전쟁터에서 전사한 무사들의 위령을 위한 것이었다. 개당하는 날, 사슴들이 모여드는 것을 보고, 석존이 초전법륜을 위해 주석하던 상서로운 녹야원을 떠올리며 뒷산을 서록산瑞鹿山이라고 명명했다. 그는 대중 앞에서 설했다.
“참선이란 모름지기 가슴속에 있는 것을 떨어내고 깨끗하게 하여 정식情識에서 중히 여기는 것을 없애 버리고, 오로지 자기를 가지고 탐구하는 것이다. 자기를 어떻게 탐구하는가? 자기는 이미 자기니, 다른 무엇으로 자기를 탐구하겠는가? 그대들은 지견과 이해로써 밤낮 구별하면서 물리치고 밤낮 얽매여 있으므로 해탈할 수가 없고 벗어날 수도 없다. 이것이 바로 첫 번째 감옥이다. 그대들이 허다한 지견과 이해를 떠나서 공空으로 가없는 곳에 나아가고 텅 비어 아득한 곳을 다닌다고 하더라도, 이는 아주 환하고 크나큰 깨달음이 아니다. 이는 한낱 기대는 게 없는 납자일 뿐이다. 다만 이 기대는 게 없는 곳은 모든 부처가 몸을 내던지고 목숨을 버리는 것이다.” - 『원형석서』
화두를 통해 확연통철의 경지까지 밀어붙이는 수참인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3년만 일본에 머물고자 했지만, 불법을 전하기 위해 남은 평생을 일본에서 보내기로 결심했다.
가마쿠라 막부 무사들에게 참선 지도
가마쿠라 막부의 무사들은 너도나도 무가쿠로부터 참선 지도받기를 원했다. 당시 일본은 몽골의 침략을 받고 있을 때였다. 호조는 굴복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보이기 위해 몽골의 사자를 두 번이나 살해했다. 무가쿠 또한 숙적인 몽골에 대해 강경한 자세를 보였다. 1281년 몽골군은 10만의 병력을 실은 군선으로 다시 침입했다.
그 소식을 들은 호조는 무가쿠에게 갔다. “방금 일대 위기가 도래했습니다.”라고 소리를 높이자, 무가쿠는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라고 물었다. 호조는 마치 눈앞에 대군이 있는 것처럼 바라보면서 “카츠喝!” 하고 외쳤다. 이를 들은 무가쿠는 기쁜 기색을 띠며, “참으로 용자勇者다. 곧 바로 앞으로 나아가서 뒤를 돌아보지 말라.”라고 했다. 이는 “곧바로 꿰뚫어라[驀直去].”, “고뇌하지 말라[莫煩惱].”라는 법어로 남아 있다.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적의 심장을 돌파하라는 의미다. 후에 맥직전진驀直前進이라는 고사성어가 되었다. 공부, 일, 취미 등 어떤 일에도 목표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 반드시 성취하라는 의미다. 일본의 무사도에 선의 지향성이 직접적으로 접목된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태풍이 불어 몽골군의 원정은 실패했지만, 호조는 선의 정신에 의해 그들을 퇴각시켰다고 생각했다.
무가쿠의 가르침은 임제의현→양기방회→원오극근→파암조선→무준사범으로 이어지는 전통 그대로였다. 그는 『원각경』·『능엄경』·『화엄경』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가마쿠라의 무사들에게 사경을 권하기도 했다. 호조는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대승경전을 피로 사경하여 기도했다. 무가쿠는 원각사의 대불전을 대광명전으로 칭하고, 보관의 석가불을 본존으로 모시며 원각회상의 12보살을 협시보살로 세웠다.
개당 법어는 『원각경』을 주안으로 삼았다. 그의 화엄적인 세계관은 선경禪經들로 인해 뒷받침되어 일본 중세의 무사들을 보다 넓은 시야로 인도했다. 죽음을 늘 염두에 두고 있는 무사들에게는 높은 교양과 더불어 사후 대자유를 구가할 희망을 심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무사도의 정신을 형성하는 데에 중·근세에 일본선의 독자성을 개척한 선사들의 영향이 가세하게 된다.
관음신앙을 방편으로 활용
무가쿠는 특히 『관음경』을 중시하기도 했다. 『법화경』의 「관세음보살보문품」을 따로 떼어 만든 경으로 동아시아에서는 관음신앙의 경전으로 유통되었다. 『원형석서』에서는 무가쿠의 관음신앙의 일면을 보여준다. 그가 선정에 들었을 때, 관음보살이 나타나 “내가 배를 끌고 와서 너를 태우고 가리라.”라고 하며 일월日月 두 글자를 보여주었다.
선정에서 나와 불상 앞에서 점을 쳤는데 일월 두 자가 나왔다. 향을 사르고 쇄구결鎖口訣을 짓고 쉬었다. 쇄구결은 사람의 입에 자물쇠를 채워 말할 수 없게 하는 비법이다. 꿈속에 어떤 사람이 나타나 “백만의 도적들이 침략하나 천병天兵이 순리를 좇는 자를 도우니, 어찌 이기지 못하겠소.”라고 했다. 왜 그런 말을 하느냐고 묻자, 훗날 알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는 쇄구결 가운데에 “화살을 허공에 쏘아 올리니, 바람이 불고 먼지가 인다.”라는 구절을 넣었다. 몽골군이 물러가고 다시 나라가 평온해졌을 때, 호조는 무가쿠에게 “해적들이 노략질하고 태풍이 휩쓸고 갈 것을 화상께서는 어떻게 미리 아셨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나중에 일러주겠다며 이미 쇄구결에 써두었다고 했다.
불립문자, 교외별전을 주장하는 선문에서 다소 밀교적인 요소가 엿보이는 것은 당시 무가쿠가 처해 있던 일본의 상황에 대한 하나의 방편으로 보인다. 관음신앙은 일본에서도 고대로부터 각광받던 신앙이었다. 임신이나 안산은 물론 각종 재난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보살이었다. 고대 후반인 헤이안平安 시대부터 관음순례가 널리 확산되었다. 말하자면 현세이익을 위한 신앙이었던 셈이다. 순수선을 이식한 중국 선사들은 일본선의 토착화에 큰 힘을 주었지만, 한편으로는 대승정신을 잃어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래도 시대의 상황과 당시 민중의 입장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사의 구제방편으로 또한 관음신앙이 활용된 것이다.
1286년 초가을에 병세가 있던 무가쿠는 열반이 다가옴을 알고 주위에 이별을 알렸다. 그는 “모든 부처와 범부는 한결같이 헛된 것이니, 실상을 구하려 한다면 눈에 티끌이 생기리라. 노승의 사리가 천지를 껴안았으니, 빈산에다가 차가운 재를 던지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고 단정하게 앉아 붓을 들고 임종게를 썼다. “온 것 또한 앞일이 아니요, 가는 것 또한 뒷일이 아니다. 수백억 털끝에 사자가 나타나고, 수백억 털끝에서 사자가 울부짖네!” 붓을 내리고는 세상을 떠났다. 사후, 붓코佛光 선사라는 시호를 받았다.
그는 붓코파佛光派의 시조가 되었다. 고호 켄니치高峰顯日, 기안 소엔規庵祖圓, 무가이 뇨다이無外如大, 이치오 인고一翁院豪 등의 걸출한 일본 선사들이 뒤를 이어 나왔다. 무가이는 여승으로서 니오산尼五山의 제일이었던 경애사景愛寺의 개산조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고호의 문하로부터 무소 소세키夢窓疎石가 배출되어 5산 선림의 주류 세력을 이뤘다.
무가쿠는 불법의 인연으로 일본에 와서 이제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삶의 형태를 보게 되었다. 그럼에도 선의 세계를 미지의 땅에 접목시켰다. 무형의 불법은 인간이 사는 곳이면 어디든 꽃을 피울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그야말로 불법의 대해를 마음껏 활보하며 세계의 끝까지 그 지평을 넓힌 참된 주인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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