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산 저편 티베트 불교]
연꽃에서 태어난 사람 빠드마 삼바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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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현 / 2024 년 10 월 [통권 제138호] / / 작성일24-10-05 13:20 / 조회1,238회 / 댓글0건본문
‘옴 아 훔 바즈라 구루 빠드마 싣디 훔’
‘마하 구루(Maha Guru)’에게 바치는 만트라(Mantra, 眞言)이다.
지난 호에 『바르도 퇴돌』의 출현에 대한 글이 넘쳐서 이번 달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이참에 티베트학의 최대 화두 중의 하나인 ‘연꽃에서 태어난 사람(Padmashabhava, 蓮華生)’은 도대체 어떤 인물인가? 그리고 그가 정말로 『바르도 퇴돌』의 원저자原著者인가에 대한 몇 가지 쟁점을 다루어 보기로 한다.
마하 구루, 구루 린뽀체, 빠드마 삼바바
오늘의 주인공 ‘연꽃도사’는 티베트, 네팔, 인도, 시킴, 부탄 등지에서 주류를 이루는 ‘금강승金剛乘(Vajra-Yana)’ 불교권에서 ‘제2의 붓다’로 불릴 정도로 묵직한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이다. 어찌 보면 석가 붓다보다도 더욱 많은 사랑과 경배를 한 몸에 받고 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런데도 세계불교사에서 그의 위치는 명확하지 않다. 북방, 남방불교에서는 말할 것도 없지만, 티베트 쪽 역사서(주1)에서도 그의 행적은 의외로 간략하다.
필자는 그간 수십 년 동안 이 연꽃도사와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는 그런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으로 불교사적 인물로 보지 못했다. 단지 민중들의 요구로 합성된 ‘전설의 합성체’로 인식하였기에 크게 비중을 두지 않고 지내 왔다. 왜냐하면 그는 분명히 실존 인물이긴 하지만 그를 둘러싸고 있는 다분히 SF적인 이야기를 대할 때마다 그를 역사 속의 인물로 믿기에는 석연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어디에서도 그의 생몰년대 표기를 본 적이 없던 것이 결정적인 이유였겠지만….
연꽃도사의 비상
서두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는 후대에 들어와서 아니 현재에도 불교 수행자라기보다는 마치 호랑이를 타고 돌아다니는 마법사에 가까운 초인적인 인물로 설역 고원의 민초들의 가슴에 깊이 새겨져 있다.
그를 티베트로 초청한 토번제국의 38대 짼뽀[王]인 티송데짼(Trisong Derchen, 755〜797)과의 첫 만남도 그렇게 시작되고 있다. 신심 깊은 국왕은 오랫동안 기다리던 유명한 스승이 설역雪域 땅에 들어온 것을 기뻐하며 왕궁 근교까지 마중을 나왔다. 많은 황금을 바치며 가르침을 구했을 때, 연꽃도사의 행동은 정말로 파격적이었다. 그는 “나는 황금을 찾으러 온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많은 황금을 노란 모래로 만들어 버렸다. 그 외에도 흐르는 얄룽짱뽀 강물을 거꾸로 흐르게 하는 등 마치 기적 같은 행동을 국왕과 신하들과 민초들에게 보여주었다고 한다.
물론 이런 행적의 전설화는 닝마빠(Ningma-Pa)에 소속된 몇몇 불교학자들의 의도에서 시작되었다고 보인다. 자신들의 스승이 위대해질수록 자신과 자신의 종파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이니까. 그것을 주도했던 첫 번째 인물은 니마 외제르(Nyima-Özer, 1124〜1192)였다. 그는 『구리 궁전(Zangling-ma: The Copper Palace)』이라는 빠드마의 전기를 저술하면서 전설화의 날개를 달았고, 뒤를 이어 여러 명의 편집자들이 그의 행적을 조금씩 부풀려 나가면서 신비의 날개를 달아 설역 고원으로 날려 보냈다.
그 후 『구리 궁전』 류의 전설화는 14세기에 이르러 완성되었다. 오르겐 링빠(Orgyen Lingpa)라는 예술가는 1352년에 제작한 <빠드마 카탕(Padma-bka-thang: 遺敎)>에서 연꽃도사의 행장을 12단계로 나누어 시각적으로 체계화시켰다. 말하자면 붓다의 삶을 표현한 팔상성도의 패러디라고 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이런 일련의 작업들은 닝마빠에 의해 전승되어 티베트의 다른 유명한 영웅 서사시와 민간적인 전설을 제치고 마침내 연꽃도사를 두 번째 붓다라는 경지로 밀어 올려놓았다.
연꽃도사의 고향 우디야나(Oḍḍiyāna)
역사적인 인물에 대하여는 생몰년대를 병기倂記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필자 자신도 수십 년 동안 연꽃도사를 화두로 삼아 온갖 자료의 밀림을 헤집고 다녔으나 그런 병기의 사례를 보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필자가 처음 사용하는 ‘구루 린뽀체, 빠드마 삼바바(732~804?)’라는 표기는 아직은 그냥 가설假說일 뿐이라는 사족을 달아야 한다. 그만큼 연꽃도사의 생몰년대 비정比定은 조심스러운 문제이다.
그의 실존에 대한 키워드를 쥐고 있는 자료는 두 종류이다. 하나는 중국 쪽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인도 출신의 순례승 수바하카라심하(Subhakarasimha, 637〜735년)의 기록이다. 그는 고향을 떠나 중국으로 향하던 중 714~715년 우디야나에서 잠시 머물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보드가야에서 서쪽으로 향하는 도중에 우디야나 지방에 자투마띠(Jatumati)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는 인드라 부띠(Indra Bhuti) 왕이 살았던 에메랄드 궁전이 있다.”
이 자투마띠 마을에 대해서는 『티베트사자의 서』의 편저자로 유명한 에반스 웬츠도 1954년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에서 발행한 『인드라 부띠 왕과 소원을 이루는 보석』 조에서 역시 같은 내용으로 소개하고 있다.
여러 가지 종류의 자료에서 보이는 이 인드라 부띠 왕이 바로 연꽃도사의 양아버지이다. 이렇게 실증적인 방법으로 비정하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후에 연꽃도사라고 불리게 되는 이 아이는 물원숭이[水申年(732년)]에 다나꼬사(Danakosa) 호숫가의 작은 영주였던 싸크라 왕과 왕비 사이에서 태어났다. 몸에 상서로운 표시가 있었기에 도르제 두둘[Vajra Demon Subjugator]이라고 불렸다.
그러나 8살 때 자식이 없는 우디야나 왕국의 인드라 부띠 왕에게 입양되어 왕자로 자랐고 13살 때 바사다라 공주와 약혼도 했다. 그러나 당시 국내외 정세의 큰 변화로 인해(중략), 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어서 그의 직속 호위대와 함께 스와트 계곡과 인더스강을 거슬러 올라가 카슈미르로 들어가 20살까지 유랑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바르도 퇴돌』의 원저자는 누구인가?
연꽃도사를 개조開祖로 받드는 닝마빠 학파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위대한 스승께서 한때 핍박을 받고 계셨을 때 제자들과 함께 설산의 동굴로 숨어들어 새로운 시절인연을 기다리면서 경전들을 티베트어로 번역하셨다. 그렇게 번역된 경전이 이른바 『108 떼르마[寶藏]』인데, 당시는 그것들을 세상에 공개할 여건이 되지 못했다. 히말라야 동굴 속에 몇 권씩 숨겨 두고 몇 명의 특수한 제자들에게 때가 되면 그것들을 찾아내어 세상을 전하라고 부촉하셨다고 한다.
이런 비법은 닝마빠의 스승과 제자 사이에 비밀스럽게 전해지는 방법인데, 대개 2가지로 나뉜다. ‘서장書藏’은 경전 자체를 비밀스런 동굴 같은 곳에 숨기는 방법이고, ‘식장識藏’은 사람의 의식 속에 숨기는 방법이다. 그것이 바로 떼르마(Tertma: 堀藏經)와 떼르뙨(Terthön: 堀藏師)이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겠지만 지금까지 떼르뙨들이 찾아낸 떼르마는 65권에 이른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중 한 권, 아니 ‘한 묶음[函]’이 바로 유명한 밀리언셀러 『바르도 퇴돌』 즉 『티베트사자의 서』이다.
현재로서 알려진 바로는 이 놀라운 문헌의 원저자는 바로 빠드마 삼바바이다. 그러나 여러 명의 티베트학 연구자들은 조금 다른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물론 원저자가 빠드마라고 하더라도 후대에 죽음의 문턱을 들어갔다 나왔던 여러 명의 경험담이 역시 여러 명의 편집자에 의해 현재와 같은 텍스트로 재편집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미스테리에 싸인 연꽃도사의 마지막
세월의 수레바퀴 깔라짜크라는 무심하게 돌고 돌아 803년이 되자 유일하게 연꽃도사를 알아주었던 영걸 티송데짼 왕이 서거하였다. 대권을 아들 무네짼뽀에게 넘겨주고 조용한 수행처에서 은거한 지 6년 뒤였다.
이에 연꽃도사도 20여 년 동안 살았던 정든 설역 땅을 떠날 때가 되었음을 알고, 다음해인 804년(Wooden Monky) 봄, 그의 나이 72살 때 젊은 왕과 대신들과 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많은 제자들의 송별을 받으며 망율 땅의 궁탕고개로 향했다.
그리고는 천상의 무지개에 올라타 유성처럼 날아서 빛 속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이른바 닝마빠의 대성취자만이 증득할 수 있다는 ‘무지개몸[Rainbow body: 七彩化身]’으로 변해 사라졌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닝마빠들의 입장처럼 신비의 안개 속에 가려놓은, 그의 마지막을 추적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다. 그래도 반드시 그의 연보를 완성해야 한다면 804년으로 비정할 수는 있다.
그 근거로 필자는 연꽃도사에 대한 마지막 흔적을 부탄 붐탕(Bumthang)의 꾸르제 라캉(Kurje L.)의 한 동굴에서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설에 따르면 그곳에 연꽃도사의 시신屍身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고 하였지만 역시 정확한 연도는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부탄왕국에서 연꽃도사의 체취를 맡을 수 있는 곳이 많다는 것도 이런 비정을 내리게 된 뒷배경이기도 하다. 그중 가장 유명한 곳이 파로탁상 사원인데, 그는 나르는 호랑이로 변신하여 그의 배우자 예세초걀과 함께 설역 본토에서 그곳으로 날아왔다고 한다.
그리고 왕의 노여움을 사게 된 지역신을 조복시키기 위해 거대한 가루다(Galuda) 새를 타고 붐탕으로 향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곳 붐탕을 연꽃도사의 마지막 체취가 남아 있는 곳으로 마침표를 찍는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각주>
(주1)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삼예사원의 창건설화인 「바세」와 부톤의 「불교사」 등에 단편적으로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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