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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로 읽는 서유기 ]
천상락의 후유증, 제2차 하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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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구  /  2024 년 10 월 [통권 제138호]  /     /  작성일24-10-05 13:27  /   조회248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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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오공을 잡기 위해 출전했던 천신들이 모두 패전해서 돌아오자 태백금성이 말한다. “제천대성이라는 관직을 줘 버리지요. 할 일도 없고 봉록도 없는 허직虛職으로 말입니다.” 이에 손오공은 제천대성에 임명된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서왕모의 반도복숭아 밭을 관리하는 직까지 맡게 된다. 

 

천상락을 향유하는 손오공

 

그러나 손오공의 말썽은 끝이 없었다. 그는 반도복숭아를 모두 따먹고, 서왕모의 잔치가 열리는 요지瑤池 궁전으로 숨어 들어가 불사의 잔치에 쓸 술을 마셔 버린다. 술에 취해서는 태상노군의 도솔천궁에 들어가 다섯 호로의 구전금단九轉金丹을 모두 먹어 버린다. 나중에 정신을 차린 손오공은 후환이 두려워 화과산으로 달아나 버린다.

 

이에 천상에서는 손오공의 죄를 다스리기 위한 토벌단이 꾸려진다. 손오공과 천신들 간의 제2차 하늘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천신들은 10만의 군대를 출전시키고 18겹으로 천라지망을 펼쳐 화과산을 포위한다. 그리고는 시간을 관장하는 아홉 별의 신[九曜星官]과 공간을 관장하는 신인 사대천왕 등이 이 전투에 나선다. 그러나 천신들은 손오공의 여의봉과 변신술 공격에 힘을 쓰지 못하고 일패도지하고 만다.

 

반도복숭아와 불사의 꿈

 

손오공이 망가뜨린 반도복숭아 밭의 주인은 서왕모다. 서왕모는 『장자』나 『포박자』에도 보이는 불사의 능력을 지닌 여신이다. 그녀는 특히 반도복숭아 잔치를 열어 불사의 생명력을 신과 인간들에게 선물한다고 믿어졌다. 이것을 손오공이 모두 먹어 버린 것이다. 

 

사진 1. 반도원의 손오공과 7선녀.

 

손오공이 반도복숭아와 신선주를 훔쳐먹는 장면은 동방삭東方朔의 전설로부터 가져온 것이다. 동방삭은 한무제 시기의 실존 인물이지만 3천 갑자를 살았다는 전설로 더 유명한 인물이다. 전설에 의하면 한무제의 생일에 서왕모가 현신하여 불사의 복숭아를 선물한 일이 있다. 그때 동방삭이 밑에서 시립하고 있었는데 서왕모가 그를 가리키며 “저자가 내 반도복숭아를 세 번이나 훔쳐먹은 일이 있노라.”고 했다는 것이다.

 

불교적 입장에서 볼 때 복숭아는 과일이라는 점에서 과보果報를 상징한다. 손오공이 천상에서 반도복숭아를 먹는 행위는 ‘천상의 과보’를 향유하는 일에 속한다. 실로 손오공은 불사의 삶을 약속하는 반도복숭아와 서왕모의 술과 태상노군의 선단을 모두 먹어 버렸다는 점에서 천상의 과보를 제대로 누린 셈이다. 

 

사진 2. 서왕모.

 

그런데 천상의 과보가 아무리 성대하더라도 그것은 끝나는 날이 있다. 아무리 최고의 천상이라도 윤회의 바퀴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손오공은 천상의 과보를 소진한 끝에 결국은 지상의 화과산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도솔천궁의 외곽에서

 

손오공이 태상노군의 선단을 훔쳐먹은 도솔천궁은 외원外院과 내원內院의 이중구조로 이루어져 있는 천계다. 외원, 그러니까 바깥 궁전은 온갖 행복이 구비된 곳으로 기쁨과 즐거움의 하늘[喜樂天]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곳이다. 손오공이 들어가 어슬렁거리는 곳이 이곳이다. 이에 비해 내원은 수행을 완성한 미륵보살이 부처로 현신하기 전에 머무는 곳이다. 석가모니도 이곳에서 머물다 마야부인의 태중으로 들어간 것으로 되어 있다. 말하자면 도솔천궁의 내원은 보살이 마지막 숙제를 완성하기 위해 출발하는 전진기지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도솔천궁은 도착지인 동시에 새로운 출발지가 된다.

 

사진 3. 노자의 신격, 태상노군.

 

손오공이 숨어 들었을 때 태상노군은 도솔천궁의 내원에서 연등불을 만나 법담을 나누는 중이었다. 손오공이 바깥 궁전에서 선단에 혹하지 않았다면 이 궁극의 밀실로 들어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손오공은 궁전의 외곽에서 어슬렁거리면서 그 안쪽에 궁극의 내원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다. 그래서 손오공은 다시 지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천상락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이에 손오공은 말한다. “가자! 돌아가자! 아래 세상의 왕 노릇도 할 만하니까!” 천상 인간의 다섯 가지 쇠약 증상[天人五衰]이라는 것이 있다. 천상의 삶이 끝날 때가 되면 다음의 다섯 가지 징조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천의에 때가 묻고[衣服垢穢], 머리의 꽃이 시들고[頭上華萎], 몸에서 냄새가 나고[身體臭穢], 겨드랑이에서 땀이 나고[腋下汗流], 자기 자리가 즐겁지 않게 된다[不樂本座].

 

손오공에게는 이중 특히 ‘자신의 자리가 즐겁지 않은 증세[不樂本座]’가 나타난 것이다. 손오공이 달아나자 천상에서는 그를 잡기 위한 토벌단을 꾸린다.

 

천신들과의 싸움

 

손오공을 토벌하기 위해 제1차 하늘 전쟁에 출전했던 천신들은 크기의 신(거령신)과 수량의 신(나타태자)이었다. 이번 제2차 하늘 전쟁에서는 시간의 신과 공간의 신이 손오공 토벌의 중심에 선다. 시간을 관장하는 아홉 별의 신[九曜星官]과 사대천왕이 그들이다. 아홉 별의 신은 누구인가? 태양과 달에 금金, 목木, 수水, 화火, 토土를 더한 일곱 신들과 화성에 부속된 라후羅候성, 토성에 부속된 계도計都성이 그들이었다.

 

이들은 시간에 따라 운행하면서 인간의 길흉화복을 주관하는 신들이었다. 그런데 손오공을 어떻게 하지 못한다. 손오공이 영원한 생명(반도복숭아), 자아도취(술), 금강불괴(구전선단)의 차원으로 진입하여 시간에 묶이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시간의 신들은 손오공의 여의봉 공격에 기진맥진, 힘을 쓰지 못하고 물러나고 만다.

 

다음으로 공간의 신들인 사대천왕들이 출전한다. 이들은 시간의 신들에 비해 한 수 위라서 손오공의 부하인 외뿔대왕과 72명의 요괴들을 사로잡아 간다. 이에 손오공이 털을 하나 뽑아 입으로 잘게 씹어 수천 수백의 손오공을 만들어 천왕들을 물리친다. 이것은 선문답과 같은 싸움이다. 공간의 신들이 나서서 유일한 하나(외뿔대왕)와 다양한 현상(72명의 요괴들)들을 제압했다는 것이다.

 

본질이라 하든 현상이라 하든 그 모든 것이 허공과 같이 실체가 없는 것임을 밝혔다는 말이 된다. 이에 손오공이 하나의 털을 쪼개 수천, 수백의 원숭이로 만들어 허공의 신들을 물리친다. 여기에서 하나의 털과 그것을 잘게 쪼갠 수천 수백의 손오공들은 둘이 아니다. 그러니까 이 변신은 본질과 현상의 불이성을 확인하는 현장이 된다.

 

얼핏 보면 바른 도리의 실천으로 보인다. 그런데 여기에서 손오공은 요마로서 토벌의 대상이 되어 있다. 왜 그런가? 털과 분신들이 하나와 많음의 불이적 관계로 통일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을 부리는 주체로서의 자아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 일말의 자의식이야말로 토벌해야 할 요마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관념의 찌꺼기가 남아 있기는 해도 하나와 많음의 통일적 공존[一即多, 多即一]을 구현한 손오공의 분신술은 무적의 힘을 발휘한다. 손오공의 불이적 차원에 비해 공에 치우친 허공의 신들의 차원이 훨씬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관세음보살의 비춤[照見] 전사들

 

연이은 패배에 천신들이 망연자실하고 있는데 관세음보살이 나타난다. 관세음보살은 우선 행자 혜안惠岸을 보내 상황을 살펴보도록 한다. 행자 혜안은 천군의 사령관인 탁탑천왕의 둘째 아들이었다. 그가 돌아와 상황을 보고하자 관세음보살은 천신과 지상의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이랑신二郞神을 추천한다. 이랑신은 매산梅山의 6형제와 사냥개와 매를 거느리고 싸움에 뛰어든다. 이랑신은 이 부하들을 풀어 손오공의 요새를 소탕해 버린다. 당황한 손오공이 변신술로 숨기를 반복하는데 그때마다 이랑신이 그를 찾아낸다. 결국 손오공은 이랑신의 사냥개에게 물려 사로잡히고 만다.

 

사진 4. 손오공을 쫓는 이랑진군.

 

제2선의 전사들

 

왜 관세음보살은 천신들도 이기지 못하는 싸움에 혜안 행자와 이랑신을 추천하는가? 이들은 누구인가? 관세음보살의 행자 혜안은 원래 당나라 때의 고승인 승가僧伽 대사의 제자였다. 승가대사는 생전과 사후에 숱한 신이한 행적을 보여 사주대성泗州大聖으로 신앙되었고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여겨지기도 한 고승이다.

 

찬녕贊寧의 『고승전』에 보면 이 승가대사에게 혜안惠岸, 혜엄慧儼, 목차木叉의 세 제자가 있었다. 승가대사가 허공에 모습을 드러내어 기적을 베풀 때에는 항상 혜안惠岸과 목차木叉가 시립하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서유기』에서는 이 두 인물을 하나로 합친 혜안목차惠岸木叉라는 인물형상을 제시한다. 혜안은 법명, 목차는 속명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 목차는 중국의 전설에서 탁탑천왕의 둘째 아들이다. 조선시대 중국어 교재였던 『박통사언해』에 수록된 『서유기평화』(옛 서유기)를 보면 그를 출전시킨 것이 관세음보살이 아니라 탁탑천왕이라고 되어 있다. 그가 탁탑천왕의 아들이었다는 설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관세음보살은 어떻게 탁탑천왕조차 패배한 전투에 그 아들 혜안 행자를 내보낸 것일까? 또 이랑신은 어떤 존재이기에 천신들도 어쩌지 못하는 손오공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일까?

 

사진 5. 사주대성泗州大聖 좌상.

 

무엇보다도 이 두 용사가 모두 둘째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혜안은 탁탑천왕의 둘째 아들로서 관음보살에게 출가하여 행자 생활을 하는 중에 있었다. 둘째이므로 그는 싸움의 제2선에 있다. 그래서 혜안은 참전을 하지만 직접 싸우는 것이 아닌 전황 파악을 주 임무로 하고 있다. 한편 이랑신은 옥황상제의 누이동생이 인간과 혼인하여 난 반인반신의 존재다. 촌수를 계산하면 옥황상제가 그의 외삼촌이 되는데 그 역시 둘째다. 중국의 신화에는 다양한 이랑신이 나타나지만 둘째라는 점은 동일하다. 그러니까 그 역시 항상 싸움의 제2선에 있다.

 

어떤 신화를 보면 후방에서 군량미를 책임지는 독량관으로 나오기도 한다. 이래저래 제2선인 것이다. 이들은 제2선에서 무슨 일을 하는가? 관세음보살은 혜안을 보내면서 “가서 정확한 실상을 알아내는 데 힘쓰라!”고 당부한다. 실상을 알아내는 일을 『반야심경』 식으로 표현하자면 조견照見이 된다. 그래서 혜안은 전체를 조감하는 지혜惠=慧 언덕[岸]에서 실상을 알아내는 임무를 수행한다.

 

혜안의 뒤를 이어 손오공의 토별에 나서는 이랑신은 보다 전면적인 비춤을 실천한다. 그의 이마 한가운데에는 봉황 눈[鳳目]이라 불리는 제3의 눈이 세로로 나 있다. 그것은 형상에 속지 않고 실상을 바로 보는 눈이었다. 그래서 손오공이 무엇으로 변신하든 그것을 알아채는 것이다. 손오공과 이랑신 사이에 벌어지는 현란한 변신술 시합은 자아에 대한 관조를 통해 그 허상성을 바로 보는 실천에 대한 상징이다.

 

그 내용은 이렇다. 손오공이 참새가 되어 덤불에 숨으면 이랑신은 매가 되어 그것을 찾아낸다. 가마우지가 되어 달아나면 높이 나는 바다 두루미가 되어 그것을 쫓아간다. 물고기가 되면 물수리가 된다. 물뱀으로 변하면 목이 높은 두루미로 변신해서 그것을 쫓는다. 이처럼 이랑신의 변신은 어느 경우나 높이 날며 시력이 좋은 새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전체를 보면서 개별체를 식별하는 관찰과 집중을 실천하는 것이다. 특히 그의 관찰은 전체와의 관계성 속에서 대상을 파악한다. 예컨대 물고기로 변신한 손오공을 보면서 이랑신은 이렇게 말한다.

 

“저 물고기는 잉어인가? 꼬리가 붉지 않네. 쏘가리인가? 꽃무늬 비늘이 안 보이는데? 가물치 같은데 머리에 별무늬가 없고! 그렇다면 방어인가? 뺨에 침이 없잖아. 그런데 나를 보고는 달아나네. 틀림없이 그 원숭이 놈이 변한 것이로구나.”

  

상호 관계성을 비춰보고 ‘아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형상에 속지 않고 그 본질이 무엇인지를 여실하게 보는 것이다. 현상을 보되 그것에 흔들리지 않는 이것을 즉비卽非의 관찰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서유기』에서는 이것을 금강안, 즉 금강의 눈이라고 표현한다. 전투의 제2선을 지키는 데서 일어나는 안목이 그렇다는 말이다.

 

여기에 관찰과 지각의 명수인 사냥개와 독수리가 그의 관찰에 힘을 더해 주므로 손오공은 달아날 곳이 없게 된다. 손오공이 이랑신의 개에게 사로잡혀(그것은 견원지간犬猿之間이라는 사자성어를 적용한 장면이기도 하다) 천상으로 압송되고 만다. 이랑신의 싸움은 관조반야觀照般若의 실천을 형상화한 것인데 그 구체적 내용은 다음의 얘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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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구
현재 동의대학교 중국어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중앙도서관장을 맡고 있다. 교수로서 강의와 연구에 최대한 충실하고자 노력하는 한편 수행자로서의 본분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
kkkang@de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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