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탁소리]
30여 년 만에 금빛 장엄을 마친 고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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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 2024 년 10 월 [통권 제138호] / / 작성일24-10-05 14:30 / 조회1,442회 / 댓글0건본문
어느 날 큰스님께서 부르시더니, “원택아! 내가 이제 장경각에 있는 책장을 열 힘도 없어졌다. 그러니 장경각에 들어가면 책장을 열지 않고도 책을 자유롭게 뽑아 볼 수 있게 장경각을 새로 지어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가 큰스님께서 80세를 앞둔 시절로 기억됩니다.
큰스님 말씀을 듣고 나와서 생각해 보니, 장경각 안에 있는 책장들은 큰스님께서 봉암사 시절부터 해인총림에 오시기 전까지 주석처를 옮기실 때마다 이고 지고 다닌 것으로, 어쩌다 큰스님 심부름으로 책을 찾으러 들어가서 책장을 열려면 장년도 팔힘을 써야 할 정도로 아귀가 뒤틀린 낡고 오래된 것이었습니다. 소납은 이제야 큰스님의 연로하신 모습이 눈에 들어온 죄송한 마음으로 장경각을 새로 지을 터로 어디가 좋을까 하고 백련암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전혀 감感이 잡히질 않았습니다.
큰스님 방에 들어가 절을 올리고 “큰스님께서 장경각 자리로 점지해 두신 곳이 있으시면 알려 주셨으면 합니다.” 하고 아뢰었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지금 샘물이 나오고 있는 두꺼비바위 앞에 서시곤 그 뒤편 낮은 산언덕을 가리키시며 “저쪽 터를 잘 정리해서 장경각을 짓도록 하거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큰스님께서 점지해 주신 장소에 장경각을 새로 짓게 된 불사의 소소한 내력은 즉, 고심원古心院을 짓게 된 내력과 지금 새로 지은 장경각 건물에 대한 이야기는 『고경』 1월호(통권 제129호)를 통해 전해 드린 바가 있습니다.
고심원에 큰스님 존상을 모시다
큰스님께서 개가식 장경각의 새 이름으로 붙여 주신 고심원 불사가 거의 마무리되어 갈 무렵인 93년 11월 초나흘, 큰스님께서 홀연히 열반 적정에 드시고 나니 고심원은 책을 볼 주인을 잃은 빈 집이 되고 말았습니다. 다비식과 사리친견법회 등의 분주한 일정을 마무리하고 문도들과 고심원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의논하였습니다. 생전의 큰스님 말씀대로 개가식 도서관으로 만들어 장서들을 진열하게 되면 제대로 관리를 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고, 우선 큰스님 기념관으로 정하고, 조각가 강대철 씨에게 부탁하여 큰스님 존상을 봉안하기로 하였습니다. 존상은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기치旗幟로 봉암사 결사를 결행하셨을 때, 늘 육환장을 짚고 다니셨다는 말씀을 기억하고 육환장을 짚고 의자에 앉아 계시는 모습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고심원에 큰스님의 좌상을 모시고 나니 여기저기서 비난의 소리가 봇물 터지듯 밀려왔습니다. “주불인 부처님은 25평 입궁 집으로 지은 법당에 모셔 놓고, 큰스님은 35평 외5포 내7포로 지은 큰 법당에 모셔 놓은 나쁜 원택이다”, “조사 스님들은 가실 때 무소유 무자취로 가시는데, 백련암의 성철 큰스님 뜻은 아닐 테고 원택이가 상相이 너무 많다”는 등등의 비난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소납도 출가하여 15년 만에 입궁형 법당을 짓고 5년이 못 되어 5포형 큰 법당을 짓는 동안, 절집의 법당 불사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해인사 박물관에 가면 신라 말 고려 초에 활동하셨던 희랑조사의 좌상이 늘 관람객을 반겨주고 있어서 육환장을 짚고 앉아 계신 성철 종정예하의 좌상으로, “그렇게나 선사들의 무자취의 정신을 모르나!”라고 욕먹을 줄은 전혀 짐작도 하지 못한 일이라 큰스님께 크게 죄송하고 무안하여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
그리고 어른 스님들께서 새집을 짓고 단청을 하지 않으면 목조집은 쉽게 상한다는 조언을 해 주셔서 내부는 정성을 다하여 단청을 하였으나, “중이 사는 집에 단청은 하지 말라.”라는 큰스님의 당부가 있어서 외부는 문양도 그리지 않은 채 옻칠만 하고 지내 왔습니다.
금빛으로 더욱 빛나는 고심원
큰스님 열반 20주년이 지나면서 백련암을 성지순례 삼아 다녀가시는 분들이 점점 늘어남에 따라, “큰스님 계실 때보다 더 검소하게 살아야겠지만 다들 집 상한다고 걱정을 하니 화려하지는 않더라도 보통의 단청은 하고 살아야겠다.”고 의논이 되어, 새로 지은 전각들은 중 정도의 단청을 하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던 어느 날, 고심원 외부를 자세히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한참을 둘러보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평방과 창방 사이에 지붕 포가 끝나는 곳마다 여섯 개의 기둥이 서고, 앞면 문 위 다섯 개의 교창과 좌우측 각 한 개의 교창이 기둥 사이사이에 있는데, 30cm 넓이의 얇은 나무판에 한 칸에는 봉황을, 한 칸에는 용을 새기고, 또 그 사이사이를 연꽃, 부처님, 애기동자 등을 세심하게 조각하여 정면 5단, 측면 2단을 장식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고심원을 지어 준 대소목님들에게 감사감사하였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서울특별시 은평구 구산동에 있는 수국사가 원래는 평범한 절이었는데, 1992년 재건축을 하면서 사찰 법당 전체를 금박으로 씌워서 황금사찰이 되었다는 이야기와 더불어 사진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크기도 일본에 있는 국보 금각사보다 2배나 넓다고 하였습니다. 그 후로 고심원을 볼 때마다 ‘정면에서 보이는 기둥 6개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창방 아래의 다섯 개 교창에 조각되어 있는 부분만이라도 황금사찰 수국사처럼 금박을 붙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잠기곤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원통전 위쪽으로 문화재청의 예산으로 장경각이 새로 지어지고 단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단천장인 최인숙 법연화 보살에게 물었습니다.
“서울에 있는 황금사찰 수국사를 아십니까?”
“그럼요, 스님. 그 도금 불사를 할 때 저도 그 불사에 동참하여 일한다고 고상깨나 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소납은 얼마나 반갑고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저기 큰스님 존상을 모시고 있는 고심원을 자세히 보니 목수들 정성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우선 평방과 창방 아래 여섯 기둥 사이에 있는 교창만이라도 금박불사를 하면 어떨까 하고 진즉부터 생각을 해 오고 있었습니다. 그럼 법연화 보살께서 가을에 시간을 내어 그 불사를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여름은 맡은 일이 있어서 안 되고 가을이 되면 한번 시간을 내 보겠습니다.”
그래서 지난 8월 19일부터 시작하여 9월 1일까지 금박불사를 하여 마치게 되었습니다. 금박불사를 하는 김에 6개 기둥에 걸려 있던 성철 종정예하의 열반송 주련 글씨도 30여 년이 넘어 금박이 여기저기 떨어지고 해서 이번에 제대로 손을 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법연화 보살님, 지금 주련 바탕 색깔이 검은 바탕인데, 그것을 가지 색깔로 바꾸면 어떻겠습니까?”
“네, 스님. 좋은 색깔을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고심정사에 가서 무릎 치료를 받고 돌아오니 법연화 보살이 “스님, 의논해 보니 가지색보다는 짙은 남색을 바르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렇게 법연화 보살 덕으로 정면 문 위 다섯 군데 교창과 양 측면 두 곳의 교창까지 금박을 붙여 놓으니 고심원이 더욱 화사하게 보여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고심원 방향이 정서향에 가깝다 보니, 저녁 석양빛이 고심원을 비추면 그 빛이 황금빛으로 더욱 찬란하게 빛이 났습니다.
그 빛을 따라가며 곧 열반 31주기를 맞이하는 우리 모두 성철 큰스님께서 평소 늘 말씀하신 ‘자기를 바로 보라’, ‘남을 위해 기도하라’, ‘남 모르게 남을 도우라’는 가르침을 되새겨 서로에 대한 존중과 평화가 넘치는 세상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손을 모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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