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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와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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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  /  2024 년 11 월 [통권 제139호]  /     /  작성일24-11-05 11:13  /   조회176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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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종교학자의 불교 이야기 11   

 

오늘은 서양 불교에 대해 좀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이제 기독교가 더 이상 서양의 종교만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불교도 이제 더 이상 동양의 종교만이 아니라는 것이 엄연한 사실입니다. 따라서 불교 이야기를 하면서 오늘 서양에서의 불교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사진 1.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1889〜1975). 사진: National Portrait Gallery.

 

우선 12권짜리 『역사의 연구(A Study of History)』라는 방대한 저술로 유명한 영국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Arnold J. Toynbee, 1889~1975)가 한 말이 생각납니다. 토인비는 후대 역사가들이 20세기에 일어난 일 중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이 무엇일까 자문하면서 그것은 우주선이나 컴퓨터 같은 과학 기술적 발달이나 공산주의의 흥기와 몰락 같은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바로 기독교와 불교가 처음으로 의미 있게 만난 것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불교와 기독교의 만남은 20세기 최대의 사건

 

근세 이전 서양에서는 몇몇 여행자나 탐험가를 제외하면 불교를 접한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17세기 동양으로 간 마태오 리치 등 예수회 선교사들의 보고로 동양의 다른 종교들과 함께 불교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18세기 상인들이 아시아에 왕래하면서 불교에 대한 정보를 가져와 서양 지성인들과 학자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습니다. 잘 알려진 예로 쇼펜하우어, 니체, 와그너, 헤르만 헤세 같은 지성인들과 에머슨, 소로, 휘트먼을 비롯하여 여러 사상가와 문필가들이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진 2. 1893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종교회의.

 

불교에 대해 대대적이고 본격적인 관심은 1893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종교회의(World Parliament of Religions)에 의해서였습니다. 이때 세계 여러 종교 대표자들과 함께 불교 대표도 초청되었습니다. 이 획기적인 사건으로 특히 미국 일반 지식인들 사이에서 세계 종교, 그중에서도 특히 불교와 힌두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습니다. 이후 하버드, 컬럼비아, 시카고 대학 등 여러 대학에 이런 종교들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종교학과가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1950년 이후 불교는 급작스럽게 대중화가 되면서 일반 지성인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습니다. 1960년대에는 미국과 캐나다, 그리고 유럽 여러 나라에 종교학과가 설립되고 불교학이 종교학 과정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불교학을 통해 불교를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 지적 관심과 교양과목으로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제가 1971년 초 캐나다로 유학을 갔는데, 그때 불교에 대한 관심은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그 당시 미국에서는 잭 케루악, 알랜 긴스버그, 개리 스나이더, 에릭 프롬, 영국인이지만 미국에서 활동한 알란 왓츠 등 불교에 관심을 가지고 활발히 활동한 시인이나 문필가들이 등장했습니다.

 

엘리트 불교

 

한 가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렇게 서양 지성들 사이에서 관심을 끌고 있는 불교는 아시아 본고장의 불교나 서양에 와 있는 아시아계 이민자들 사이에서 받드는 전통적 불교와 사뭇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동양인이 받드는 전통적 불교가 주로 예불, 초파일, 연등, 방생, 영가 천도재나 우란분재 등 기복이나 사후 문제와 관련된 예식을 중요시한다면 서양인들이 수행하는 불교는 주로 명상과 경전 연구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대조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학자들 중에는 동양인이 전통적으로 받드는 불교를 ‘민족 불교(Ethnic Buddhism)’, ‘이민자 불교(Immigrant Buddhism)’, 혹은 ‘세습 불교(Hereditary Buddhism)’라 하고, 이와 대조적으로 서양 지성인들 사이에 유행하는 불교를 ‘엘리트 불교(Elite Buddhism)’ 혹은 ‘백인 불교(White Buddhism)’나 ‘신불교(New Buddhism)’라고 구분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또 미국에서는 이런 민족 불교와 백인 불교와의 차이를 부각하여 ‘미국 내에 있는 불교(Buddhism in America)’와 ‘미국적 불교(American Buddhism)’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현재 서양인들이 받드는 불교를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하면 선불교 계통, 위파사나 수행을 강조하는 상좌불교 계통, 그리고 티베트 불교 계통이라 볼 수 있습니다.

 

서양 불교의 특징

 

서양인들이 받아들인 불교의 특징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첫째, 동양 불교가 주로 기복적이거나 의례를 중시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서양 불교는 참선과 명상을 중심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서양인들은 복을 빌거나 죽은 사람들을 위해 천도하는 일 등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서양의 불자들 중 절대다수가 자기들의 종교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참선이라고 합니다.

 

사진 3. 카르마 렉쉐 초모(Karma Lekshe Tsomo).

 

둘째, 서양 불교는 스님 중심이 아니라 재가 불자 중심입니다. 동양에서는 참선한다면 거의 스님들이 절에서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서양에서 참선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일반 재가 신도들입니다. 서양인으로 참선을 지도하는 이들 중에는 독신 스님으로 선방에서 수행에만 전념하는 이들도 있지만 상당수는 일상적 가정생활이나 심지어 직장생활을 유지하면서 수행을 지도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셋째, 동양 불교에서는 한국, 대만, 베트남 등 몇 나라를 제외하면 여자들을 위한 비구니 승단이 아예 없습니다. 한국에서처럼 비구니 승단이 있기는 하지만 전통적으로 비구니는 비구 아래로 취급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티베트 불교를 수행하는 캘리포니아 출신 백인 여승 초모(Karma Lekshe Tsomo)가 제가 있던 학교에 와서 강연을 했는데, 그는 티베트에서 여승 자격을 얻을 수 없어 한국에 머물면서 비구니 자격을 얻었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서양 불교에서는 남녀 차별이 없습니다. 남녀가 같은 선방에서 함께 참선 수행을 하고, 심지어 여자 지도자가 참선을 지도하는 경우도 흔합니다. 두드러진 예로 필립 카플로의 후계자로 토니 패커(Toni Packer)라는 여자분이 지정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비키 메켄지 같은 여성 수행자는 『나는 여성의 몸으로 붓다가 되리라』는 책도 썼습니다.

 

사진 4. 조셉 골드스타인(Joseph Goldstein), 사진: Spirit-Rock.

 

넷째, 동양 불교 공동체가 주로 가족 중심적이고 그 종교 전통이 부모에게서 자녀로 이어지는 것이 보통이라면 서양 불교는 개인 중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양 불자가 불자가 되는 것은 대부분 개인의 결단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자기 배우자들이나 자녀들에게 이를 강요하지 않는 것이 보통입니다.

 

다섯째, 동양 불교는 여러 가지 종파로 구별되어 자기가 속한 전통에 충실하는 것이 보통이라면 서양 불교는 불교의 법맥이나 도맥 같은 전통을 크게 중요시하지 않습니다. 어느 면에서 서양 불교를 ‘통불교通佛敎’라고 해도 좋을 만큼 서로 어울려 수행을 함께합니다. 이런 경향을 두고 기독교 에큐메니즘에 빗대어 ‘불교 에큐메니즘’이라 부르는 이도 있고, 심지어 조셉 골드스타인(Joseph Goldstein) 같은 이는 동양의 종파적 성격의 불교가 서양에 와서 서로 융합되는 경향에 따라 서양 특유의 창조적 불교가 형성된다고 보고 이를 ‘One Dharma’라 하며, 이런 제목으로 책도 냈는데, 그 부제목이 ‘새롭게 등장하는 서양 불교’입니다. 서두에 그는 “순수하게 서양적인 불교가 지금 탄생하고 있다.”고 공언합니다. 

 

여섯째, 동양에서는 불교와 이웃 종교 간의 대화가 아직 활발하지 못한 편이지만 서양에서는 서양 불자들이 주로 기독교, 유대교 등의 배경을 가진 이들이 많아 불교와 이들 종교 간의 만남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셈입니다. 특히 서양 백인 불자들 중에는 유대인이 30퍼센트 정도, 특히 북미에서 불교를 연구하거나 가르치는 사람들의 30 내지 50퍼센트가 유대인 계통이라는 보고가 있을 정도입니다.

 

사진 5. 조셉 골드스타인의 책 One Dharma.

 

일곱째, 끝으로 서양 불교의 최근 특징 중 하나는 이른바 ‘참여불교(Engaged Buddhism)’의 성질을 강하게 띠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참여불교란 본래 베트남 출신 승려 틱낫한 스님이 제창한 것으로, 그는 베트남 전쟁 당시 자기 옆에 폭탄이 떨어져 사람들이 죽어 가고 있는데 자기 혼자 앉아서 참선을 한다거나 염불을 하는 것이 의미가 없음을 깨닫고, 사회와 아픔을 같이하고, 그 아픔을 주는 외적 요소도 제거하는 것이 불교가 하는 일이어야 한다는 자각에서 생긴 것입니다. 참여불교에 관심이 있는 서양 불자들은 이런 평화운동뿐 아니라 인권운동, 환경운동, 동물 권리운동, 양성평등운동 등에도 참가하고 있습니다.

 

나가면서

 

서양 불교가 동양 불교와 다른 것은 문화적, 사회적 상이성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가 글로벌 빌리지로서 여러 가지 문화적 재산을 공유하고 있다고 보면 서양에서 보이는 불교의 특색 중 동양에서 채택할 것이 있으면 채택하는 것이 동양 불교를 더욱 윤택하게 하고 세계화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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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
서울대학교 종교학 석사, 캐나다 맥매스터 대학교 종교학과에서 ‘화엄 법계연기에 대한 연구’로 Ph.D. 학위취득.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종교학 명예교수. 저서로는 『불교 이웃 종교로 읽다』, 『오강남의 그리스도교 이야기』, 『도덕경』, 『장자』, 『세계종교 둘러보기』, 『진짜 종교는 무엇이 다른가』『종교란 무엇인가』, 『예수는 없다』, 『나를 찾아가는 십우도 여행』, 『살아계신 예수의 비밀의 말씀』, 『오강남의 생각』 등. 번역서로는 『살아계신 붓다, 살아계신 예수』, 『예수의 기도』, 『예언자』 등.
soft10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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