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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불교는 지금]
미국에 대규모 명상센터를 설립한 세 스승 - 성운대사, 구나라타나, 틱낫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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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광 김형근  /  2024 년 12 월 [통권 제140호]  /     /  작성일24-12-05 11:15  /   조회125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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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로스 엔젤레스에서 한 시간 거리의 하시엔다 하이츠에는 서래사西來寺(Hsi Lai Temple)가 있다. 서래사는 대만 불광산사의 대작불사를 성공적으로 한 성운대사(1927~2023)의 원력으로 이루어진 사찰로 미국에서 가장 큰 절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에서 가장 큰 절 서래사

 

전각의 모습은 대만 고웅현의 불광산종의 기본적인 전각의 배치를 조금 축소하여 옮겨 놓은 모습이라고 평가받는다. 지금은 이렇게 웅장한 모습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사찰이고 관광사찰이기도 하지만 설립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1978년 설립을 추진하면서 여섯 차례 공청회와 100여 차례 지역사회의 회의를 하였다. 

 

사진 1. 하늘에서 본 서래사 전경.

 

이 많은 모임에서 불교의 필요성과 유용성을 꾸준하게 설명하여 1984년 승인을 받았다. 그리고 1986년에야 공사가 시작되었고, 1988년 11월에 개원식을 가졌다. 홈페이지에 보면 1991년에 설립되었다고 되어 있지만 추진하기 시작하여 개원까지 10년이 걸린 것이다.

1970년대는 아시아에서 간 스님들이 미국에 도착해서 포교 활동을 시작하면 10년 정도 되면 대부분 큰 사찰을 만들 수 있는 시대였다. 어쨌든 서래사는 성운대사의 큰 뜻에 의하여 불법의 홍포와 동양과 서양을 잇는 가교역할을 하기 위해 창건된 사찰이다.

 

사진 2. 서래사 대웅전 앞에 있는 건물.

 

성운대사가 지향하는 불교는 한마디로 ‘인간불교’이며, 불광산사는 이 모토 아래 사회적 활동을 대단히 강조하고 있다. 불광산사의 종지로는 첫째, 문화사업을 통한 불교의 전파, 둘째, 교육사업을 통한 인재의 양성, 셋째, 자선사업을 통한 사회복지활동, 넷째, 법회활동을 통한 마음의 정화인데, 이 원칙은 여기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리고 자원봉사자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자원봉사자가 가이드로 봉사하며, 관광객들에게 서래사의 이곳저곳을 설명하는 프로그램을 정기적으로 하고 있다. 서래사의 프로그램은 재가 신자와 불교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불교에 흥미를 갖게 아주 잘 준비가 되어 있다고 평가를 받는다. 

 

사진 3. 50년에 걸친 성운대사의 포교활동을 정리한 화보집.

 

서래사는 또 불광산사 북미포교의 본부인데 산하에 뉴욕, 샌프란시스코, 샌디에이고, 보스톤, 휴스톤 등에 30여 개의 지부가 있다. 서래사 내부의 주요 시설은 보살전, 대웅보전, 국제회의실, 박물관, 공연장, 음악실, 선방, 책방, 식당, 찻집, 어린이 당수도장 그리고 맨 위에는 회은당懷恩堂(명부전) 등 많은 이름의 공간이 있다.

 

서래사는 신도들의 신행생활을 위한 많은 프로그램이 있지만 특히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이 아주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어린이 불자들을 위한 일요법회가 있고,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하는 방과 후 프로그램도 있다. 방과 후 프로그램은 그 근처에 있는 아이들을 직접 방과 후에 사찰 버스로 픽업하여 6시까지 돌봐준다. 숙제도 가르쳐 주고, 중국의 전통 예절도 가르치며 여러 가지 활동도 제공된다.

 

사진 4. 서래사에서 수계식을 집전하는 성운대사. 

 

그리고 한국 교회에서 많이 하는 일이지만 여기에도 토요중국학교가 있다. 이 토요중국학교는 오전과 오후로 되어 있어서 거의 모든 학생들이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수업을 들을 수 있게끔 하고 있다. 또 방학 때 학생들을 위한 여름학교가 있다. 이런 것은 젊은 학부모들이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아주 실용적인 프로그램이다.

 

서래사에는 한국불교에는 없는 프로그램이 많은데 그중 하나가 구정舊正(설날) 행사다. 이 행사는 하루가 아니고 15일 혹은 20일간 한다. 이 행사에는 사람들이 많이 오기 때문에 절 근처의 주차장은 오는 신도들을 다 소화할 수 없다. 절 근방 2마일 인근의 비어 있는 상가마다 임시주차장을 열고 사찰 소유의 학교 버스를 운행하여 교통을 돕는다. 직접 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 엄청난 광경을 잘 상상할 수가 없다.

 

사진 5.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여성국제회의 준비 모임.

 

“매주 일요법회 참석 인원은 적게는 1천 명, 많게는 2천 명이다.(주1) 상주하는 스님은 대략 30명이다. 상주하는 스님들은 잘 짜인 하나의 틀 속에서 스님 각자의 개성보다는 전법과 중생을 위한 전체의 흐름을 벗어나지 않는 속에서 주경야선晝耕夜禪으로 수행정진한다. 서래사에서 신도들이나 스님을 만날 때는 합장과 함께 ‘아미타포’라고 한다. 대만 불광산종의 승가는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재가불자와 함께 살아 숨 쉬며 변화하는 승가로 부처님의 가르침과 중생들과 소중한 인연을 맺어주는 실천적 단체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현대적인 삶 속에서 보여 주는 이상적인 승가이다.

- 《미주현대불교》 2009년 5월호, 「대만불교의 특색을 지닌 서래사」, 황상준 글.

 

위빠사나 수행을 지도하는 바바나 협회(Bhavana Society)

 

현재 미국에는 선불교, 정토불교, 티베트 밀교를 비롯하여 각종 수행법이 다 들어와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테레바다 불교의 위빠사나 수행자가 가장 많다고 생각한다.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곳은 대개 테레바다 국가들이 세운 사찰과 미국인들이 설립한 동부의 IMS(Insight  Meditation Society)와 서부의 스핏릭 락(Spirit Rock Meditation Center) 등을 비롯하여 아주 많다.

 

사진 6. 바바나 소사이어티 입구. 

 

1927년생인 헤네폴라 구나라타나(Henepola Gunaratana) 스님은 현재 미국에서 스리랑카 스님을 대표하는 스님이다. 세속 나이로 현재 97세이다. 백세 가까이 살면서 의식도 뚜렷하고 혼자 걸으면서 활동하는 스님은 내가 아는 한에서 구나라타나 스님과 미얀마 양곤에 있는 찬매 명상센터의 우 자나카 스님이다.

 

구나라타나 스님은 12세에 사미계를 받았고 20세에 캔디에서 비구계를 받았다. 스리랑카 여러 대학에서 수학한 후에 인도, 말레이시아 등에서 포교활동을 하였다. 스님은 1968년 도미渡美한 후 워싱턴 DC의 워싱턴 비하라에서 사무총장으로 일했다. 1980년에는 그 협회의 회장에 임명되었다. 1971년 워싱턴에 있는 미국대학(America University)에 입학해 1980년에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워싱턴 지역의 여러 대학에서 불교과목을 가르쳤다. 그는 아홉 권의 영어 저서가 있는데 한국어로 몇 권이 번역되어 있다.

 

사진 7. 2023년 수도원을 방문한 한국 스님들과 대화하는 구나라타나 스님.

 

스님은 1982년에 미국인 매튜 플릭스테인과 워싱턴에서 차로 2시간 걸리는 곳인 웨스트버지니아 숲속에 있는 사찰이자 명상센터인 바바나 협회(Bhavana Society)를 설립하였다. 현재 이 단체 대표직을 맡고 있다. 1988년 10월 첫 번째 건물과 꾸띠를 만들고 공식적으로 개원하였다. 스님은 현재는 고령으로 활동은 못하지만 90세 초까지만 해도 전 세계를 다니며 활발한 강연 활동과 집중 수련회 지도를 하였다. 지금도 아주 천천히 경내에서 걷기는 할 수 있다. 

 

바바나 협회는 현재는 회원이 12,000명이라고 한다. 바바나 소사이어티 ‘숲속의 명상수도원’이란 말 속에는 스님이 목표로 한 세 가지 소원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나무와 꽃과 벌레와 짐승들이 한데 어울려서 사는 고요한 숲, 어느 한순간도 떠나지 않는 마음챙김(minddfulness)의 명상, 그러한 구도자들이 모여 사는 수도원이다.

 

IMS나 스프릭 랏 명상센터 등은 수련회비가 결코 싸지 않다. 그러나 고엔카 센터와 이곳은 대부분 프로그램을 무료로 하며 대신 참가자들의 자율 보시로 운영한다. 스님들은 돈에 대해서는 일체 말하지 않으며, 판매용 책도 많이 있지만 필요한 사람이 알아서 가지고 가고, 모든 것을 자발적 헌금을 하도록 한다. 이렇게 운영해도 문제가 없다고 한다. 이 수도원은 단지 스님을 위한 수도원이 아니고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신자들을 위한 여러 프로그램이 있고, 손쉽게 수행을 지도받을 수 있다.

 

사진 8. 바바나 선방.

 

구나라타나 스님은 젊은 시절 매우 뛰어나게 기억력이 좋아 마치 사진기로 찍은 것처럼 특출난 기억력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스님에 의하면 오대양 육대주를 다 방문하면서 포교하였다. 북한을 제외한 아시아의 모든 나라를 방문하였으며, 첫 번째 한국 방문은 1967년, 마지막 방문은 2011년이었다. 이 스님은 2004년 한국의 보리수선원과 2005년 서울시 가양동의 홍원사 초청으로 와서 수행지도와 설법을 하였다.

 

숲속의 명상수도원은 6만 평의 대지에는 큰 빌딩이 4개가 있는데, 큰 명상실이 있고, 20개의 꾸띠가 있고, 남자 기숙사와 여자 기숙자가 따로 있다. 하지만 스투파(탑)는 없다. 스님에 의하면 아시아 신도들은 납골당을 만들라고 요청한다고 한다. 수련회에 참석하면 누구나 새벽 4시 45분에 일어나 명상하고, 일하고 오후에는 음식을 먹지 않는 엄격한 일정에 따른다.

 

구나라타나 스님은 미국에서 살고 있지만 미국의 생활방식에 대해 비판적이다. “미국과 미국의 자유분방하고 유물론적인 생활방식이 해외 여러 나라의 가치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도 큰 문젯거리”라고 여기는 스님의 미국에 대한 견해는 매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아직 10대 청소년, 즉 어른이 되고자 하는 어린애와 같은데 그러한 영적 미성숙 상태를 전 세계가 표준으로 삼아서 좇아가고 있습니다. 나는 그것이 건강한 사고방식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라는 말씀도 의미심장하다.

 

틱낫한 스님 계열 수도원들

 

틱낫한 스님(1926~2022)은 세계에 널리 알려진 불교지도자이다. 이 스님은 평화운동가, 시인, 저술가, 명상지도자이고 저서가 수십 권에 달한다. 프랑스 플럼빌리지가 이 스님 근거지였지만 미국에도 일찍 진출하였고, 미국불교계의 사회참여불교와 출판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나는 틱낫한 스님이 서양인에게 불교포교를 위해 가장 많은 연구를 한 스님이라고 생각한다.

 

사진 9. 미시시피 수도원에서 행사를 마치고 참가자들과 함께 걷는 틱낫한 스님.

 

틱낫한 스님이 서양 사람들에게 맞는 여러 가지 불교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무려 16년이 걸렸다고 한다. 스님이 서양에 불교포교를 위해 서양사회와 서양인들에 맞게 고안한 창의적인 방법들이 여러 가지가 있다. 걷기명상을 서양에 널리 퍼뜨리기도 했던 틱낫한 스님은 주로 ‘마인드플리스(mindfulness, 알아차림)’ 수행을 주장하였다. 수행을 통해 깨어있는 삶을 강조한다.

 

틱낫한 스님은 불교포교에 있어서 스님들의 역할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여 스님들을 철저하게 교육시켰는데, 그것은 바로 스님들의 자세와 태도였다. 여기에 소속된 스님들에게 친절과 겸손한 인격을 갖추게 하고, 자비심을 기르게 하였다고 한다. 어쨌든 틱낫한 스님은 포교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할 스님 교육에 심혈을 기울인 것 같다.

 

사진 10. 앞치마 두르고 음식 준비하는 스님.

 

행사가 있을 때 가보면 참가자들을 맞이하면서 가장 먼저 “어서 오십시오.” 하고 인사를 하는 것을 신도가 아니고 스님이 한다. 이곳에 거주하는 40명 정도의 스님들은 핸드폰이 없는 스님들이 많다. 스님들은 이 수도원 공동으로 사용하는 3, 4개의 핸드폰을 필요한 경우에 사용한다고 한다. 스님들과 대화를 해보고 사는 모습을 보면 세속적인 삶에서 매우 중요한 돈 문제에서 멀리 벗어나 있는 것 같다. 

 

틱낫한 스님은 소속 스님들에게 스님으로서의 권위를 내세우는 것을 철저히 경계하였으며 겸손과 하심을 강조하고, 이를 수도원에서 실천하게 하였다. 스님들은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에서 일반 신자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고, 식사 준비를 한다. 식사도 스님들끼리 따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신도들과 함께한다. 식사 후에는 설거지도 스님들이 각자 손수 한다. 나는 세계 여러 불교 국가를 방문하고 여러 승가를 보았지만 다른 곳에서는 이런 모습을 보지 못했다. 

 

사진 11. 하늘에서 본 벽암수도원 풍경.

 

프랑스 플럼빌리지를 본부로 하는 틱낫한 스님 계열의 수도원 중에는 미국에도 세 개의 수도원이 있다. 서부의 로스엔젤레스 근교에 ‘녹야원(Deer Park Monastery)’, 동부 뉴욕 업스테이트 캐스킬 자락에 ‘벽암수도원(blue cliff monastery)’, 남부 미시시피주에 ‘목련 숲 수도원(Magnolia Grove Monastery)’이 그것이다. 

 

세 개의 수도원에 대략 총 100명의 스님들이 살고 있는데, 녹야원에 가장 많고, 뉴욕에는 대략 40명 정도 산다. 설립 순서는 동부에 먼저 설립됐다. 1997년에 버먼트주 우드스탁에 비구 수도원인 ‘단풍나무숲 수도원(Maple forest Monastery)’를 먼저 만들고 1년 후인 1998년에 버몬트주 하트랜드Hartland 타운에 비구니 수도원인 ‘푸른 산 법당(Green Mount Dharma Center)’를 설립했다.

 

사진 12. 미시시피 수도원의 일주문.

 

이 두 수도원은 2007년 5월에 업스테이트 Fine Bush의 호텔을 인수하여 함께 같은 장소로 이전하였는데 규모는 80에이커(약 10만 평)이다. 이곳에 큰 선방을 비롯하여 종무소, 책방, 비구니 수도원, 비구 수도원, 게스트 하우스 등 크고 작은 건물 15개가 있고, 큰 비구니 숙소를 건설 중에 있다. 매달 법회를 하며, 미국 현지인들과 베트남 사람들을 위한 3일, 5일 등 여러 형태의 수련회가 자주 있다. 

 

서부 녹야원은 2000년에 설립되었으며 대략 400에이커(약 50만 평)이다. ‘목련 숲 수도원’은  바이블 벨트 한복판이고,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주로 알려진 미시시피주에 2005년 설립되었다. 부지는 120에이커(15만 평)이다. 미시시피에는 베트남 사람들은 별로 없다. 틱낫한 스님은 생전에 2년에 한 번씩 미국을 방문하여 이곳을 중심으로 대략 2달 반 정도를 여러 도시를 순회하면서 행사를 하였다. 

 

연재를 끝맺으며

 

미국불교사는 1844년 동 보스톤의 초월주의자들에 의해 소개된 이후 오랜 기간 담론으로 이어졌다. 1844년을 미국불교의 기점으로 보는데, 나는 이 주장을 지지하면서 1960년대를 기준점으로 본다. 60년대 들어 아시아에서 스님들이 많이 입국하였으며, 샌프란시스코에서 선불교 바람이 불면서 비로소 수행이 시작되었다. 또 60년대는 베트남 전쟁이 발발하였고, 미국 현대사에서 격동의 시대이다. 기존사회의 가치관에 대응하여 반문화운동이 일어났는데 이들을 히피 세대라고 한다. 히피 세력들이 미국의 기존 문화와 철학, 종교를 대신하여 선택한 것이 선불교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이 미국불교의 주류세력이 되었다. 이렇게 시작한 미국불교 바람은 강풍이 되어 50년에 걸쳐 미주 전 지역에 불었다. 1960년대 들어 이민법 개정으로 아시아 사람들이 대거 입국하면서 이민자 공동체를 만들면서 사찰들도 많이 생기게 되었다.

 

사진 13. 벽암수도원을 가득 메운 청중들.

 

“1980년대에는 미국에서 나고 자란 미국인 세대가 학자로서, 법사로 공동체의 지도자로 두각을 나타내면서 미국 불교인들만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1990년대에 들어 가장 미국적이라고 간주되는 불교를 주창하기 시작했다. 아시아불교보다 더 평등하고 민주적이며, 더 사회참여 지향적이고 여성들의 관심과 열망에도 개방적이라고 환호를 받았다.” 

- 리차드 휴지스 시거, 『미국불교』 중

 

2010년에 이르러 마음챙김은 미국불교계에서 중요한 가치와 수행으로 등장한다. 오늘날의 마음챙김 담론은 새로운 불교기관들로부터 퍼져 나가고 있고, 불교사상을 사회로 널리 확산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불교사를 보면 아시아의 불교 전파와 달리 처음에는 포교하는 스님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미국사회의 필요와 요구에 의해서 미국인들에 의해 불교가 선택되었다. 그리고 불교가 미국의 역사적 흐름에 따라 미국사회의 요구에 부응하여 미국사회의 갈등과 욕구를 흡수하면서 전개되었다. 그 결과 미국의 사상과 철학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미국문화를 풍부하게 해주고 미국사회 발전에 기여하였다.

 

이 글로 미국불교에 대한 2년간의 연재를 마친다. 거대한 미국불교를 소개하기에는 여러 가지로 부족한 나에게 미국불교를 소개할 기회를 준 『고경』 관계자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각주>

(주1) 법회 참석 인원은 코로나 이후 변화가 생겨 최근에는 1천 명이 못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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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광 김형근
미주현대불교 편집인 및 발행인. 전북 김제가 고향으로 전북대학교 회계학과를 졸업하고 1984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1989년 뉴욕에서 월간 잡지 『미주현대불교』를 창간하여 운영하고 있다. 2010년부터 사단법인 ‘korean Cultural Heritage Foundation’을 설립하여 한국전통문화를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이외에도 남북불교교류 활동의 일환으로 미국에서 북한사찰순례단을 조직하여 2005 년부터 4차례에 걸쳐 단체로 북한사찰순례를 하면서 북한불교를 소개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정부의 북한 여행 금지로 인해 중단되었다.

mobuddhis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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