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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로 읽는 서유기 ]
돼지 요괴, 저팔계의 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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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구  /  2025 년 7 월 [통권 제147호]  /     /  작성일25-07-05 12:17  /   조회6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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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오공은 저팔계의 전신인 돼지 요괴를 만난다. 이 돼지 요괴는 원래 천궁의 옥황상제를 호위하는 천봉원수로서 막강한 신통력을 부리는 요괴였다. 그런데 손오공을 보자 겁에 질려 달아나 버린다. 손오공이 천상을 뒤집어엎을 때 그도 천상의 장군으로서 낭패를 당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돼지 요괴는 본거지로 달아났다가 아홉 이빨 쇠스랑을 들고 나와 손오공을 상대한다. 싸움은 밤새 계속된다. 그러다 날이 밝자 요괴는 견디지 못하고 달아나 동굴 문을 닫아버린다. 손오공은 취란의 집에 돌아가 상황을 보고한다.

 

삼장은 기왕 시작한 일, 끝을 잘 맺도록 격려한다. 이에 다시 요괴의 동굴로 쳐들어간 손오공은 동굴의 석문을 부숴버린다. 요괴는 자신이 상대가 되지 못함을 안다. 여기에 더해 손오공이 삼장을 보호하여 서천으로 간다는 사실을 알고 순순히 귀순한다. 손오공은 항복한 돼지 요괴의 두 팔을 묶고 귀를 잡고 개선한다. 삼장은 그에게 팔계라는 별명을 지어주고 구법단의 일원으로 삼는다. 

 

손오공과 돼지 요괴의 싸움

 

손오공과 돼지 요괴 사이에는 태양[日]+달[月]=밝음[明]이라는 공식이 심화되는 세 번의 싸움이 일어난다. 첫 번째의 싸움은 돼지 요괴가 손오공에게 속아 그 이름과 사는 곳을 밝히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두 번째의 싸움은 요괴가 아홉 이빨 쇠스랑을 들고 나와 밤새 벌이는 싸움이다. 이 싸움은 날이 밝으면서 요괴가 동굴에 숨는 것으로 끝난다. 세 번째 싸움은 손오공이 요괴를 동굴 밖으로 끌어낸 뒤 자기 머리를 내어놓으며 압도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사진 1. 돼지 요괴와 손오공의 싸움.

 

첫 번째 싸움은 달의 상징인 돼지 요괴가 태양의 상징인 손오공을 만났을 때 일어나는 상황을 묘사한다. 돼지 요괴가 사는 곳이 오사장국, 즉 태양이 지는 나라라는 사실, 날이 밝으면 사라졌다가 어두워지면 출현한다는 사실, 항아와 그 분신들에 집착한다는 사실 등을 통해 그가 달의 상징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손오공은 ‘불의 눈에 황금 눈동자[火眼金睛]’를 한 관찰의 명수라는 점에서 태양을 상징한다. 태양 빛 아래 달이 존재를 감추는 것처럼 손오공을 만난 저팔계가 달아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요괴는 동굴에서 아홉 이빨 쇠스랑을 들고 나와 손오공에게 반격을 가한다. 두 번째 전투다. 어째서 반격이 일어나는 것일까? 태양으로서의 손오공이 달로서의 돼지 요괴를 비출 때 그 욕망은 유지되지 못한다. 그래서 도망간다. 그러나 그 비춤의 체험은 욕망의 용광로 속에 들어가 돼지 요괴의 자산이 된다. 밝은 비춤을 내가 체험했다는 새로운 자아의식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본거지에 돌아가 아홉 이빨 쇠스랑을 들고 반격을 가하는 것이다. 아홉 이빨 쇠스랑의 아홉[九]은 중국문화에서 큰 수를 상징하고, 이빨은 탐욕을, 내 쪽으로 끌어당기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쇠스랑은 소유를 상징한다. 그러니까 모든 것을 끌어당겨 나의 소유로 삼고자 하는 것이 아홉 이빨 쇠스랑인 것이다. 수행 중의 특별한 체험을 자기화하여 자부심의 근거로 삼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사진 2. 돼지 요괴와 아홉 이빨 쇠스랑.

 

세 번째 싸움은 낮에 일어난다. 돼지 요괴가 굴속으로 들어가 석문을 닫아 걸자 손오공은 삼장에게 돌아간다. 관찰이 도저해지면 자아는 더 이상 주체를 고집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돼지 요괴가 동굴에 숨는다. 이때 자아의식이 사라졌다는 착각이 일어날 수 있다. 할 일을 마쳤다고 생각하고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자아는 동굴 속에 잠시 숨은 것이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 일시적 무심의 상태에 속아 관찰을 내려놓으면 자아는 틈을 보아 권토중래한다. “무심이라 해도 아직 관문이 남아 있기 때문[無心猶隔一重關]”이다. 그래서 삼장이 독려한다. “기왕 시작했으니 판을 끝내도록 해라.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저팔계의 귀순

 

손오공이 다시 요괴의 동굴을 찾아 석문을 박살 낸다. 그러면서 ‘삼매육증三媒六證’ 없이 남의 집 딸을 강제로 빼앗은 범죄를 규탄한다. 옛날의 결혼은 가문 간의 거래였다. 그래서 서로를 분명하게 알기 위한 규정된 절차와 교환할 물품의 품목이 정해져 있었다. 먼저 혼인의 시작 단계에 세 명의 중매인이 필요했다. 신랑 측 중매인과 신부 측 중매인, 그리고 중간의 중매인이 그것이다. 이들을 ‘삼매三媒’라 불렀다. 그것은 상대 가문과 인물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확인하는 일종의 간접 보험에 해당한다. 

 

사진 3. 손오공과 팔계의 끝없는 싸움.

 

혼인의 완성단계에는 말[斗], 자[尺], 가위[剪], 거울[鏡], 주판[算盤], 저울[秤]의 여섯 가지 물건이 교환되었다. 이것을 여섯 가지 증명이라는 뜻에서 ‘육증六證’이라고 불렀다. 이 중 말[斗]은 먹고 사는 수준, 자[尺]와 가위는 입고 사는 수준, 거울은 용모, 주판은 거래의 분명성, 저울은 사물의 경중에 공평한지를 직접 확인하는 증거였다. 『서유기』에서 삼매육증은 자아를 비추는 간접지혜와 직접지혜의 실천을 상징한다. 그 가장 뚜렷한 기준은 항상성이다. 대상도 없고 주체도 없는 경계가 항상 변함이 없느냐를 재는 것이다. 이 기준에 의하면 돼지 요괴는 어림도 없다. 달빛의 어렴풋한 상태가 태양 빛과 같을 수 없고, 동굴에 숨어든 것이 영원한 소멸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돼지 요괴가 치른 깨달음의 결혼식을 범죄라 한 것이다.

 

그렇다면 손오공이 요괴에게 머리를 쳐보라고 내놓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이야기에서 돼지 요괴는 대상에 집착하는 주체이고, 손오공은 그 주체를 비추는 작용이다. 그 밝음의 차이는 달과 해에 비유된다. 달이 태양 앞에서 밝음을 뽐낼 수 없듯 돼지 요괴가 손오공을 이길 수 없다. 돼지 요괴는 손오공이 자신이 기다리고 있던 삼장법사를 수행하는 구법단의 일원이라는 것을 알고 귀순한다. 이에 손오공은 돼지 요괴의 두 손을 묶고 그 귀를 잡고 개선한다.

 

사진 4. 현대 결혼에도 쓰이는 6종 혼수의 하나(저울).

 

순순히 항복했는데 굳이 포박하고 귀를 잡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저팔계는 꺾이지 않는 자아의식의 상징이다. 그래서 이름도 저강렵猪剛鬣, 뻣뻣한 갈기털이다. 그것의 권토중래적 발호를 차단하려면 강력한 통제가 필요하다. 그래서 손오공은 항복한 돼지 요괴의 두 팔을 뒤로 묶는 것이다. 귀를 잡은 것은 더 의미심장하다. 단단히 잡을수록 해[日]와 달[月]이 더욱 밀접하게 붙어 밝음[明]을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 손오공은 저팔계가 말썽을 피울 때마다 작은 벌레로 변해 그의 귀나 목덜미에 붙어 감시를 계속한다. 그 감시를 완성하는 것이 서유기의 여정이기도 하다.

 

돼지 요괴의 법명 오능悟能과 별명 팔계八戒

 

귀순한 돼지 요괴에게는 관세음보살이 지어준 오능悟能이라는 법명이 있었다. 삼장은 다시 그에게 팔계八戒라는 법명을 지어준다. 그래서 돼지 요괴는 저팔계가 된다. 삼장은 제자를 새로 거둘 때마다 별명을 지어준다. 손오공에게는 행자行者, 사오정沙悟淨에게는 화상和尙, 그리고 저오능에게는 팔계라는 별명이 주어진다. 이 중 법명은 궁극의 목표인 깨달음을 가리켜 보인다. 그래서 모두 깨달을 오悟자를 돌림자로 쓴 것이다. 이에 비해 별명은 현실적 실천과제를 제시한다. 저팔계의 경우, 관세음보살이 내려준 법명인 오능悟能은 욕망하는 주체[能]의 실상을 깨달으라는 목표를 제시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체[能]로서 대상[所]에 욕망하는 습관을 통제해야 한다. 그래서 여덟 가지 자기 절제[八戒]의 현실적 과제를 제시한 것이다.

 

이 팔계라는 별명에 대한 이해는 8이라는 숫자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8은 우선 9가 아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중국의 문화에서 9는 가장 큰 수다. 그래서 팔계의 여덟 가지 계율 역시 9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슨하다. 원래 대승불교에서는 깨달음을 근본지향으로 삼기 때문에 계율에 대해서는 탄력적인 태도를 취한다. 이와 관련하여 개차지범開遮持犯의 원칙이 있다. 열어주고[開], 금지하며[遮], 지키고[持], 범함[犯]을 상황에 맞게 하라는 것이다.

 

사진 5. 저팔계를 주인공으로 한 저팔계 전기.

 

팔계의 여덟 가지 계율은 모두 먹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다섯 가지 자극성 채소[五葷]와 세 가지의 차마 먹을 수 없는 고기[三厭]가 그 금기의 대상이다. 자극성 채소로는 파, 마늘, 부추, 달래, 흥거가 여기에 속하고, 차마 먹을 수 없는 고기로는 기러기, 개, 거북이가 이에 속한다. 살생, 도둑질, 음행의 핵심 계율이 빠져 있다. 또한 먹는 것에 대한 핵심 금기인 술도 빠져 있다. 사실 손오공과 팔계는 가끔 술을 마시고 삼장도 이를 허락한다.

 

여기에서 핵심계율이 빠진 것은 『서유기』의 전투적 상징 때문이다. 전투에서 죽이고, 훔치고, 속이는 것을 피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술이 금지되지 않은 것은 술에 대한 중국문화의 관념 때문이다. 중국의 문화에서 술이 없으면 신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성품을 어지럽게 하지 않을 정도의 적절한 음주는 항상 용인되는 분위기가 있었다. 이조 혜가慧可나 당의 규기窺基, 송나라의 제공濟公이 모두 주육酒肉 화상이면서도 본래면목을 놓치지 않았던 일로 널리 회자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편, 팔계에게 내려진 오신채와 육식에 대한 금기는 중국 도교의 계율을 불교에서 차용한 것이다. 그것은 초기불교의 계율에는 없던 것이다. 부처님 재세 시에 육식을 절대 금지하자는 제바달다의 주장이 힘을 얻었던 적이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그것은 계율로 채택되지 않았다. 걸식하는 입장에서는 주는 대로 먹는 것이 중도의 진리에 합당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오훈삼염을 금기시한 계율의 지향점은 무엇인가? 몸은 음식으로 구성되고 마음은 몸의 영향을 받는다. 결국 음식 기운은 몸과 마음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이와 관련하여 중국에는 몸에 대해 상반된 두 가지의 태도가 나타난다. 첫째로는 몸과 마음을 통일적 관계로 보아 몸에 집중하는 흐름이 있다. 도교에서는 몸의 단련이라는 형식을 통해 마음을 닦고 영혼을 진화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몸 철학이 있었으므로 도교의 먹는 것에 대한 금기 원칙이 정밀하게 세워진다.

 

사진 6. 삼장에게 귀의하여 길 떠나는 팔계.

 

둘째로는 몸의 허구적 본질을 이해하고 그 구속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태도가 있다. 불교에서는 음식 기운의 집합에 불과한 몸이 진짜 나일 수 없다고 본다. 이것이 여덟 가지 금기가 돼지 요괴를 지혜로 이끄는 현실적 실천 방안이 된 이유이다. 분명 여덟 가지 음식은 돼지 요괴의 능동적 주체성을 강화하고, 밖의 경계를 좇아 치달리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 그러므로 우선 그것을 먹지 않는 방편 지혜를 써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그와 동시에 음식 기운에 좌우되는 이 몸에 대한 거리를 확보해야 한다. 이렇게 몸을 벗어난 시야를 확보하는 일을 실천하는 것이 팔계라는 별명에 담긴 과제다.

 

오소烏巢 선사의 『반야심경』 전수

 

저팔계를 거두어들인 삼장 일행은 오사장국의 경계를 지나 높은 산을 만난다. 그곳에는 오소선사가 나무 위에 까마귀 둥지[烏巢]를 짓고 살고 있었다. 팔계와 인연이 있는 사이였는데 삼장을 알아보고 반가워한다. 그는 서천으로의 길은 멀고 많은 고난이 있을 거라면서 삼장에게 이것을 막을 『반야심경』을 전수한다. 

 

사진 7. 오소선사와 삼장.

 

현장법사의 대중적 지명도는 그가 번역한 『반야심경』의 유행과 관련되어 있다. 그 위대성을 드러내기 위해 그것을 오소선사라는 신비의 인물에게 전수받았다는 이야기가 창작된 것이다. 이 오소선사 이야기는 팔계의 이야기 뒤에 붙어 있고 독립된 스토리도 없다. 그러니까 이것은 팔계 이야기의 후일담에 해당한다. 오소선사의 인물형상은 당나라의 백거이가 만났던 도림道林 선사를 원형으로 한다. 그가 나무 위에 까마귀처럼 집을 짓고 살았기 때문이다.

 

물론 오소선사가 암시하고 상징하는 바는 따로 있다. 첫째로는 팔계가 귀의함으로써 이제까지 잠겨 있던 태양이 다시 떠오르게 되었음을 암시한다. 오사장국의 달빛 시대가 지나고 오소선사의 태양 빛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둘째로는 공空의 가르침을 상징한다. 까마귀 오烏자는 없을 무無와 발음이 같아서 같은 뜻으로 쓰인다. 오소선사가 공의 교과서라 할 『반야심경』을 전수한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런데 이 오소선사와 손오공 사이에 약간의 충돌이 일어난다. 미묘한 입장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의 글로 미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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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구
현재 동의대학교 중국어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중앙도서관장을 맡고 있다. 교수로서 강의와 연구에 최대한 충실하고자 노력하는 한편 수행자로서의 본분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
kkkang@de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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